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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의 백의종군, 미래의 지도자를 본다”

 

[김종철 칼럼] 선당후사에 백의종군, 상상이나 했는가…아직 51세, 큰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2016년 03월 19일 토요일

3월 18일 오후 인터넷매체에 오른 한 장의 사진이 짙고 깊은 감동을 주었다.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정청래가 자신의 지역구(서울 마포을)에 출마하기로 결정된 손혜원(홍보위원장)을 포옹하면서 활짝 웃고 있는 장면이다. 일찍이 한국 정치사에서 볼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지난 10일 정청래를 공천에서 ‘컷오프’ 시킨 사실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공관위 위원장 홍창선이 CBS 라디오의 대담프로에 출연해서 “이 사람은 챔피언 수준이 된 거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처럼”이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광신적인 극우분자이자 부동산재벌로서 미국 플로리다주의 팜비치에 방이 118개나 되는 초호화별장을 갖고 있고, 인종차별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경멸을 일삼고 있는 트럼프를 자신과 비교하는 말을 듣고 정청래는 얼마나 모멸과 분노를 느꼈을까? 그는 며칠 뒤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평당원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남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갈아치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80년대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손혜원은 정청래가 지난 16일 ‘불출마 기자회견’을 한 것을 지켜본 뒤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당은 그를 버렸는데 그는 끝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울보 정청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이제 제가 지키겠다. 천군만마와도 바꿀 수 없는 정 의원과 다시 시작한다.”

정청래의 인간적 아름다움과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얄궂게도 18일 오전 더민주 대표 김종인의 입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냈다. 김종인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청래 의원이 요구하고 요구를 받은 분이 수락해 손혜원 위원장을 마포을에 전략공천했다”고 밝혔다.

총선을 스무닷새 남짓 앞둔 지금 한국사회에서 지도자라고 불리는 대다수 정치인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독선, 불통, 오만, 자기중심주의의 극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집권세력 쪽에서는 대통령부터 새누리당 지도부와 공관위에 이르기까지 “내 편이 아니면 죽이겠다”는 살벌한 자세를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정청래는 16일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지도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선언을 했다.

“우리 당의 승리를 위해 저 정청래, 기꺼이 제물이 되겠습니다. (···) 저는 위대한 국민만 믿고 가겠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박근혜 정권의 폭정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

쓰러져 있는 저라도 당이 필요하다면 헌신하겠습니다. (···) 우리가 당의 주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힘을 합쳐 당을 재건하겠습니다. 개인 김종인에게 서운하더라도 당대표 김종인에 대한 비판은 자제해 주십시오. (···) 우리는 총선에서 이겨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 당대표에 대한 비판은 일단 멈춰주시고 총선 승리를 위해 뛰어 주십시오.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합니다. 국민과 정권이 싸우면 끝내 국민이 승리합니다. 총선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지난 2015년 10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안전행정위원회 종합감사에 참석한 정청래 의원이 지난달 23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당시 취재 중인 언론사 기자를 향해 최루액을 뿌리고 연행한 것과 관련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정청래는 이런 공개적 약속을 즉각 실천에 옮겼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지역구인 부산 중·영도에 더민주 예비후보로 나선 김비오는 18일 오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청래 의원이 험지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자신이 요청한 선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공천에서 탈락하면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곧바로 다른 당으로 옮겨가는 정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혜와 권력이 삶의 전부인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정청래는 이 천박한 정치풍토에 돌개바람을 일으켰다. 단순히 ‘백의종군’이라는 말만으로 압축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가 그의 행보에 담겨 있다.

 

정청래가 18일 오후 손혜원의 ‘마포을 출마’ 기자회견장에 나와 한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정청래가 더민주이고 더민주가 정청래이며 오늘 이 순간 정청래가 손혜원이고 손혜원이 정청래다. 이제 손혜원과 정청래와 더민주는 삼위일체 하나가 되었다.”

정청래가 공천에서 탈락한 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것을 가슴 아파했다고 보좌진 가운데 한 명이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의 ‘텃밭’이던 마포을에서 손혜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부산 중·영도뿐 아니라 전국의 ‘험지들’을 돌며 지원유세를 한다면 선거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청래는 51세이므로 야당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다. 이번 총선에서 그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백의종군하는 모습은 많은 주권자들에게 참신하고도 가슴 뿌듯한 인상을 줄 것이다. 그동안 약간 거칠거나 지나치게 호전적이었다는 정치권의 비판을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집권세력의 부당한 처사에는 과감히 맞서고 함께 가야 할 동지들은 화합의 정신으로 포용하게 된다면, 정청래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승리하건 패배하건 간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청래를 대통령으로!”라는 외침이 나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기왕의 ‘대권주자’ 명단에 정청래의 이름이 추가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정치 발전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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