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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세월호 참사 2차 청문회] 발언대 앞에 선 미수습자 가족

은화 엄마 영상에 청문회장 '오열'
"딸이 언제 나가면 되냐고 묻습니다"

[현장 : 세월호 참사 2차 청문회] 발언대 앞에 선 미수습자 가족

16.03.29 21:13l최종 업데이트 16.03.29 21: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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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 엄마 "아직도 내딸이 바다 속에 있어요" 416세월호참사 특조위 제2차 청문회 두번째 날인 29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세월호 인양 관련 청문회를 참관한 미수습자 은화양의 엄마 이금희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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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수습자 은화 엄마 "대통령 약속 아직 믿는다, 우리 딸 꼭 꺼내달라" 미수습자 단원고 2학년 고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가 29일 세월호 참사 2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석한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을 향해 "우리 은화 꼭 꺼내달라"고 호소했다.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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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 영상 좀 틀어주세요."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양 어머니)씨는 29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 2차 청문회'에 참석해,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에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청문회 말미 발언 기회를 얻어 단상 앞에 선 이씨는 자신이 부탁한 영상이 청문회장 모니터에 나오자 뒤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영상은 참사 전날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의 활기찬 모습으로 시작돼, 참사 당시 세월호 안 풍경을 담은 학생들의 휴대폰 화면으로 이어졌다. "살고 싶다"고 외치는 학생의 목소리와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이 섞여 나왔다.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에 와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미수습자 가족이 한 줄기 희망을 붙들고 전국 곳곳을 다니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이내 이씨는 흐르는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모니터에는 조은화양과 함께 미수습자 9명의 사진도 비춰졌다. 이씨 뿐만 아니라 방청석에 있던 유가족들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청문회 내내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오열을 이 자리에서 쏟아냈다. 

"이제 남은 자식 살피며 살고 싶습니다"

영상이 마무리된 뒤, 이씨는 다시 단상에 서 발언을 이어갔다. "2014년 4월 15일 은화가 수학여행을 간다며 학교에 갔다"라고 입을 뗀 이씨는 발언 중에도 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오늘은 사고 후 714일째 되는 날"이라며 "우리 딸이 세월호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제가 마지막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이씨는 "팽목항 방파제에 가 있으면 '아직 나가면 안 되느냐'고, '언제까지 있으면 되냐'고 우리 딸이 이야기하는 거 같다"며 "인양팀은 가슴아픈 가족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은화 오빠는 2014년 4월 17일 진도에 내려가 작업완료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라며 "지금은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 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아이가 돼 있다"고 한탄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은화는 이제 찾았으니 네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아파하는 부모들이 일상을 살게끔, 남은 자식을 아낌없이 살피며 살아갈 수 있게끔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을 맺었다.

아래는 이씨가 이날 한 발언을 최소한으로 편집해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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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세월호참사 특조위 제2차 청문회 두번째 날인 29일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세월호 인양 관련 청문회를 참관한 미수습자 은화양의 엄마 이금희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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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5일 은화가 수학여행을 간다며 학교에 갔습니다. 안개가 많이 껴 수학여행을 못 갈 수도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녁 먹고 출발한다고 말했고, 16일 오전 8시 55분 밥 먹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9시 12분에 배가 기울었다고, "승객들이 움직이면 배가 움직이니까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듣는 아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를 해서 지금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늘이 사고 후 714일째 되는 날입니다. 저희는 사실 유가족들이 많이 부럽습니다. 사고 당일 내려갔을 때, 첫날 아이들이 나온 부모들을 보며 되게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표현을 못했습니다. 사고 후 3일이 지나고 아이들을 찾아달라는 외침에 진도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5일 째 되는 날 얼굴만이라도 보여달라고 외쳤습니다. 10일 지나서는 못 찾을까봐, 내가 마지막이 될까봐 공포와 불안에 떨었습니다. 

팽목항에, 안산에, 광화문에….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분향소를 세 군데에 놓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 바다 속이 얼마나 지저분한지, 그 속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저는 2014년 바지선에 올라 그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속에 제 딸이 있습니다. 제가 팽목항 방파제에 가 있으면 우리 딸이 이야기하는 거 같아요. 아직 나가면 안 되냐고,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고…. 우리 딸이 세월호에 있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제가 마지막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처음엔 실종자였습니다. 실종자는 제가 집을 나가도 실종자고, 없어져도 실종자입니다. 미수습자는 다릅니다. 아직 수습이 안 된 상태입니다. 정부가 9명을 수습하기 위해 인양을 결정했습니다. 미수습자에겐 인양 결정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얼마 전, 어느 교수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2주기에 한국에 없을 거 같아 미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근데 미수습자에게 2주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년엔 그러지 못했는데 올해는 어쨌든 인양이 결정돼 작업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9명을 찾을 희망이라도 있잖아요. 

인양팀(세월호 인양을 담당하는 해양수산부 직원)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9명을 미수습자로 끝내주시길 바랍니다. 한 명의 실종자, 가슴아픈 가족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 딸이 714일째 바닷속에 있습니다. 아빠고, 엄마면 다 아실 겁니다. 714일 지난 내 딸의 모습이 어떨지. 우리가 과연 엄마로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건지…. 지금 미수습자 가족 중에 서윤이(미수습자 허다윤양 언니)가 와 있습니다. 걔가 무슨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저는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은화 엄마입니다. 은화 오빠는 2014년 4월 17일 진도에 내려가 작업완료할 때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아직 인생도 펴지 못한 스무 살 오빠가 볼 거 안 볼 거 다 봤습니다. 지금은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 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아이가 돼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은화는 이제 찾았으니 네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엄마입니다. 아파하는 부모들이 일상을 살게끔, 남은 자식을 아낌없이 살피며 살아갈 수 있게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편 세월호 청문회는 28, 29일 이틀 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진행됐다. 향후 청문회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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