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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장관 "우리도 핵무장? 불가능한 일"

"박근혜, 2009년 힐러리 주장이 정답이다"

 

이재호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4 오전 7:55:41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동북아가 긴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소집해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안 결의를 예고했다. 이에 북한은 핵실험은 1차 대응에 불과하다며 2, 3차 대응으로 수위를 높일수도 있다고 공언했다.

이번 북한 핵실험은 기존 1, 2차 핵실험과 질적인 차원에서 달라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어느 때보다 강경한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결 국면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차기 정부 출범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북핵이라는 난제를 마주하게 됐다.

북핵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프레시안>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에게 새로운 지평 위에 선 북핵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정 전 장관은 궁극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것은 결국 평화체제 수립,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라며 이것이 달성되면 북핵은 만들 필요도 없고 따라서 우리도 북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 전 장관은 당면과제로서 차기 정부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발을 맞춰 나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결국 북핵 문제가 북미대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에 맞춰 차기 정부가 구체적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이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전략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차기 정부가 이런 전략을 펼쳐야 하는 이유로 그는 북한 핵으로 가장 불안한 것은 미국, 일본, 중국도 아닌 한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지난 12일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3차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사진은 평양역 앞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성공 소식을 보고 있는 평양 시민들 모습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우려했던 북한의 3차 핵실험이 현실이 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의도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세현 : 북한 광명성 3호 발사에 따른 제재 차원에서 지난 1월 23일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가 채택된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예고가 한 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이 당중앙 군사위원회, 무슨 일꾼대회 등 기관을 바꿔가면서 중대한 결론을 내렸다느니 중요한 결심을 했다는 등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예고했다.

그러면 북한의 핵실험은 무엇을 노린 것인가, 의도가 무엇인가를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말 핵실험만 할 생각이면 실험하고 나서 성공했다고 발표하고 끝내면 되지, 왜 예고를 했나? 게다가 이번에는 핵실험 하루 전에 미국, 중국, 러시아통보까지 했다. 이는 북한이 주변국들에게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국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안 하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에 던지는 메시지로 볼 수 있는데 핵실험 안 할 수도 있으니 협상 테이블로 얼른 나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협상테이블로 나서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 내부의 사정도 있다. 현재 미국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아직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도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데에는 결국 미국과 장차 갖게 될 대화에서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북한은 그간 이뤄졌던 북미 협상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도발적인 일을 저질러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미국이 대화 테이블로 나왔다는 것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엔 차원에서의 제재결의안, 강력한 비난 성명 등이 나오겠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미국이 나서서 6자회담을 재개할 경우 받아낼 수 있는 반대급부를 최대한 키우기 위해 북한은 2차 핵실험보다 폭발력이 크고 소형화, 경량화 된 핵실험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

정세현 : 지금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결국은 대화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핵실험 직후인 현재는 안보리 소집, 제재 결의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지만 사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말려도 북한과 물밑접촉을 시작할 것이다. 지난 1993년 북한이 NPT탈퇴를 선언했던 제1차 북핵 위기 때도 그랬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또 미국은 핵 확산을 막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 북한이 이미 3차 핵실험에 성공까지 했지만, 앞으로 그 기술이나 핵무기가 다른 나라로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미국은 북한의 핵이 다른 나라, 특히 이란과 같은 나라에 퍼지는 것을 우려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미국은 북한과 대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프레시안 : 대화국면으로 갔을 때를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정세현 : 당장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를 더 강화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흐름을 막기는 힘들다. 국제여론에 떠밀려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우리만 역류할 수도 없다. 핵심은 추후 북핵 국면이 북미 양자의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때를 대비해 큰 틀에서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한미공조를 강화한다거나 북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하고만 대화할 가능성,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도 그런 북한의 요구에 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언제쯤 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지 감이라도 잡아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을 면할 수 있다. 다양한 수를 놓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고민해봐야 한다.

프레시안 : 이번 핵실험이 1, 2차 때와는 다른 수준의 핵실험이라는 말이 있고, 이에 따라 대북정책도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세현 : 다른 수준의 핵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북한에서 아마 우라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이것은 기존의 핵실험과는 다르다. 우선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이 엄청나다. 기본적으로 매장량이 높은 상황에서 앞으로 계속 우라늄을 농축해 폭탄으로 만들면 이는 기존의 핵실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실험을 자주 실시하다보면 경량화, 소형화도 앞당겨질 것이다. 미사일 거리는 이미 미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미국도 인정했다. 미사일 거리도 충분해졌고, 핵탄두 경량화 소형화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런 점에서 대책이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2006년에 1차 핵실험 이후 이번 3차에 이르기까지 북한 핵능력의 발전속도를 봐라. 큰일이다. '북핵 절대 불용납', '한미공조' 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래서 북한이 더 이상 실험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통 크게 나가야 한다. 응징, 제재, 한미공조 강화 등은 당면한 과제이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결국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해서 2009년 5월 2차 북한 핵실험 후인 2009년 7월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 제기했던 평화체제 논의를 최우선적으로 하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도록 미국에 권고해야 한다.

더 나아가 9.19 공동성명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한반도의 안보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미북수교, 일북수교를 진행해야 한다. 이래야지만 6자회담 참가국끼리 외교 관계가 안정화될 수 있다. 물론 정치 외교적으로 수교는 관계정상화를 의미하지만 이것이 군사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즉 평화체제 구축이 없으면 수교도 별 의미가 없다. 미국이 수교하고 있던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친 걸 보라. 북한은 바로 이것, 평화체제 구축,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체제의 안정을 바라는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핵을 통해 노리는 것이 북미 양자 대화 성사고, 이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말인가?

정세현 :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북한은 미국과 수교, 즉 관계 정상화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길 원한다. 우리가 핵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수 차례 성명을 발표했지만 북한이 그걸 듣기나 하나? 미국이 그렇게 말해도 핵실험 하고 있는데. 결국 핵을 못 가지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3차 실험이 4, 5차 실험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 카드를 갖고 미국이나 한국, 일본으로부터 받아내려는 반대급부를 줄 수밖에 없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9.19 공동성명을 보면 1항에는 북한의 핵 폐기 순서, 2항에는 북한의 핵 폐기 대가로 미국, 일본과 수교, 3항은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의 경제협력, 4항에는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시돼있다. 북한의 관심은 4항이다. 한반도 정전협정의 실질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이렇게 네 나라가 모여서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 지난 2008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연합뉴스


실제로 2009년 오바마 정부 초기에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이 메시지를 어느 정도 수용했다. 북미 수교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엮어 최우선적으로 다루자는 메시지였는데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이러한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그런데 그때 이명박 정부가 비핵화부터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체제로 갈 수 없다고 순서를 바꿔버렸다. 북한에 있어 6자회담은 핵 폐기 약속을 지킨다는 전제 하에 미북 수교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미국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 마당에 한국 정부가 나서서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 논의' 논리로 막아버리니 북한으로서는 2009년 7월 이후 6자회담에 나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핵실험까지 이어진 것이고.

프레시안 : 결국 차기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관계정상화, 여기에 평화체제 구축을 염두에 두고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뜻인가?

정세현 : 그렇다. 적어도 차기 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했던 잘못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09년 7월 미국 정부가 내놓았던 '평화체제 우선 논의'를 앞당기는 방식의 접근을 박근혜 정부가 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먼저 선제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들고 나서면 미국 정부도 이전에 생각했던 대책이기 때문에 아마 어렵지 않게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기가 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6자회담 재개하고 평화체제 논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여기에 미북수교도 연관 지어서 회담을 끌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이 더 이상 핵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제사회를 상대로 무모한 도발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막았던 경험이 있다. 4년 전 이명박 정부가 미북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비핵-개방-3000'원칙에 따라 막아버리지 않았나. 이렇게 막아 놓고 우리가 얻은 것이 한반도의 비핵화였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북한의 강화된 핵능력뿐이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하면 평화체제 협의하겠다는 둥 조건 운운하다가 때를 놓쳐서 핵 능력만 강화시켜 준 것 아니냐.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프레시안 : 차기 정부가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포함해 양국의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까지 논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세현 : 북한 핵능력이 강화되면 가장 불안한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 능력이 강화된다고 해서 미국이 겁날 것이 뭐가 있겠나?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북핵을 은근 바라고 있다. 자신들의 핵무장과 평화헌법 수정에도 좋은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핵을 쓰든 안 쓰든 겁나고 불안한 것은 우리뿐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이렇게 말하면 그럼 우리도 핵무장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핵무장을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통해 우리는 핵연료 재처리 기술과 권한을 달라고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협의 자체를 미국이 2년이나 미뤄버렸다. 그럼 우리는 그동안 핵무기는 고사하고 플루토늄 자체를 만들 수도 없다. 폐기물 재처리 능력도, 권한도 없기 때문에 북한이 계속 핵으로 우리를 협박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북한이 더는 핵실험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가장 절박한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북한의 핵국가화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그게 맘대로 안돼서 북한이 핵국가가 돼버리면 그때는 미사일 방어체제(MD)와 같은 무기 판매를 촉진할 수도 있다. 이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미국이 우리의 맹방이지만,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한미공조도 하고 제재문제도 협의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세부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이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북핵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국이 다른 방식이 아니라 미국의 공식 입장인 한반도의 비핵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핵 문제는 우리가 미국에 물어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북한을 응징하는 것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면 보다 큰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세부적인 전략을 짜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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