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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을 해부해버린 남자

 

[인터뷰] ‘시크릿파일 국정원’으로 돌아온 20년 국가정보원 취재 김당 기자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10월 09일 일요일
 

김당 기자를 처음 본 건 TV브라운관에서였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까닭을 날카롭게 물으며 특검 이후 ‘남북 관계 훼손’을 우려했던 기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기자회견 영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각본설’에 휩싸일 때마다 SNS에서 회자되곤 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것은 청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그가 왜 대북송금 특검에 의문을 제기했는지 한참 뒤에 알게 됐다. 그가 1995년부터 20년 동안 국가정보원을 취재해온 전문가였고 2003년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그가 지난달 30일 탐사보도 결정판인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을 냈다. “한국 실정에 맞는 국가정보론 연구서의 공백을 메우는 아주 중요한 저작”이라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의 평가대로 역대 국정원장과 요원들의 증언이 빼곡한 국정원 실록에 가까운 저술이다. 

 

국정원 5급 이상 간부들의 고교·대학·출신지,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에 제공된 행사 비용, 탈북자와 관련된 대외비 등은 이 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고급 자료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불신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기관 사용설명서’를 제공해야 한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서 정년퇴직한 김 기자를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간첩조작 사건’과 ‘대선 개입’의 주범으로 각인된 국정원의 바른 사용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주간이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점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대외비와 비밀의 장막 뒤에 숨은 정보기관의 실상을 알리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용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자 목표다.”

-서문을 보면 “현존하는 출판물 가운데 국정원 간부들의 실명과 사진, 그리고 ‘대외비’가 가장 많이 포함된 책”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비밀의 금기와 터부를 깨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비밀이나 공작활동의 무차별 폭로가 목표는 아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한 50여 명의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신세를 진 책이다.”

-새롭게 공개된 사실이 있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피랍됐을 때, 한국 정부가 지불한 몸값이 2000만 달러라는 사실을 많이들 주목하는 것 같다. 국정원이 주도한 협상이었다.”

2007년 예비비 중 국정원 사용예산결산 내역을 보면,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로 900억 원의 예비비를 전액 사용해 불용액이 0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그는 복수의 정보위원을 통해 국정원이 2008년 정보위 결산보고 당시 2007년 아프간 인질 석방 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대테러 전쟁의 일반 원칙과 자국민 보호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을 최초 보도한 기자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관련 내용의 소제목 가운데 하나는 “정보기관공작을 법으로 심판한 노무현의 오판”이다.)이다.

“국정원이 하는 일의 태반은 큰 의미의 ‘공작’이다. 정상회담은 가장 큰 공작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국정원이 기획하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과반인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고려, 협치를 기대하고 특검을 받아들였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특검을 수용하면서 남북관계가 3년 동안 단절됐다. 임기 말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10·4 선언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정권이 교체된 뒤 도루묵이 됐다. 전략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거액의 대북 송금이 있었고 이를 현대가 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대북송금 특검안을 수용했는데, 이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형사처벌을 받았다. 대북송금 특검은 지금도 호남과 친노 세력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김당 기자는 이번 저작에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최고 수준의 국가 비밀공작의 결과였다. 5억 달러 대북송금 과정에서의 2억 달러 환전 편의 제공은 현대라는 기업을 매개로 당시 현대의 ‘7대 경협 사업’과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기소한 것은 1972년 남북한 당국이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정법을 어겼다고 기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에 대한 평가도 의외였다. 삼성 X파일 등 국정원이 자체 불법 감청 사례를 조사해 사법 처리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도청이 범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X파일 사건을 수사하다보니 감청 사례까지 걸러냈다. 감청을 하지 않는 정보기관은 없다. 그러나 들키면 안 된다.(웃음) 내부 고발자를 통해 밝혀진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자체 조사를 통해 사법처리를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러는 경우는 없다.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위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감청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국가기관이 개입해 처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장 도청 미림팀을 운용한 안기부 수뇌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만 기소됐다. 끼어넣기식으로 진행되는 감청은 실제 원장이 알 수 없다.”

 

▲ 김당 기자가 지난달 30일 펴낸 저서 ‘시크릿파일 국정원’(출판사=메디치)

-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반면, MB정부 이후의 국정원은 민주 정권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다. 이를 증명해주는 인물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아닌가?

 

“YS정부의 권영해 안기부장과 MB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참 많이 닮았다. 권영해 안기부장(1994.12~1998.3)은 재직 중에 북풍, 총풍, 세풍 등 ‘3풍 사건’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공직자다. 원세훈 원장은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개인 비리로 재직 중에 구속된 인사들이다. 정권에 충성하는 역대 원장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돈을 받아 사법처리된 사람들은 없었다.”

-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은 어떤 차이가 있나?

“원장들의 성향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 이병호 원장의 경우 국정원이 안보전문기관인 모사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신대로 조직을 운영하는지 의문이다. 국정원에서 국정원장은 신과 같은 존재다. 국정원장이 국정원장실에 있으면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정도로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다. 원장님 지시말씀은 사실상 어명에 가깝다. 모든 인사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꼼짝할 수 없는 거다. 원세훈의 국정원은 이를 악용했다.”

- 국정원하면 ‘간첩조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최승호 전 MBC PD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혹시 봤나?

“보진 못했다. 오마이뉴스에 있을 때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최승호 PD를 보면서 내가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설마 간첩을 조작할까’라는 안이한 생각. 국정원 조직을 잘 안다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 최 PD가 취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한 데 대해 존경과 부러움의 박수 보낸다. (김 기자는 이번 책 제4장에서 탈북자와 관련한 대외비 자료를 공개했다.)”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 국정원 개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결국 좋은 개혁은 정권 교체다.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1960년부터 1998년까지 한 정권에만 충성했던 게 한국의 정보기관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 TK·PK 지역 편중이 다소 완화되고 권영해 등은 선거법 및 안기부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분명 변화가 있었다.”

- 현 야당이 집권한다면 국정원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가? 이뤄진다면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완성은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첩보 위성을 확보하는 등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걸맞은 첩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백화점식 정보수집 방식은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정보기관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국정원이 수집할 경제 정보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머물고 있다. 모사드나 CIA는 1970년대에 이런 소모적 정쟁을 졸업했다.”

- 국내 언론은 의심없이 국정원발 소스를 받아쓰고 있는데, 국정원 전문 기자로 조언을 한다면?

“공영방송 KBS나 연합뉴스에서 쏟아내는 북한 보도와 관련해 국정원발로 의심되는 스트레이트가 는 것 같다. 과거 국정원은 산케이 등 일본 외신이 국정원 소스를 보도하게 만들고 이를 국내 언론이 인용하는 식으로 언론을 활용하곤 했다. 결국 기자들이 경계하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이슈라면 받아쓰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최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김당 기자는 누구?

김당 기자는 1995년부터 20년 동안 정보기관을 취재해왔다. 그는 1987년 월간 ‘샘이깊은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사저널 창간해인 1989년 시사저널로 자리를 옮겨 10년 동안 재직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안기부 북풍공작 추적 보도’, ‘최초 공개 안기부 조직표’ 등의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듬해인 1998년 시사주간지 기자로는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동아일보 ‘신동아’ 팀을 거친 그는 2002년부터 ‘오마이뉴스’ 정치데스크를 맡아 대선 취재를 지휘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했고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탐사보도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편집주간 겸 부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시크릿파일 국정원’ 후속편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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