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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 아들은 7년째 입원…담당의 "수술 몰랐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②] 잘못된 '대리 진료' 관행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20 오전 7:19:20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환자단체들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비보험) 진료비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선택진료제에 관한 환자들의 불만을 듣고,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를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은 환자들의 영수증을 보면 '선택진료비'라는 항목을 쉽게 볼 수 있다. 선택진료비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5년이 지나고 대학 병원에서 조교수 이상인 의사, 혹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지 10년이 지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환자가 내는 추가 비용이다. 선택진료제는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현실에서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표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대리 진료'다. 2001년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선택진료 의사가 전체 진료를 직접 담당한 경우는 60.5%였다. 선택진료 의사가 일부 진료를 하고 다른 의사가 나머지 진료를 담당한 경우가 37.9%, 다른 의사가 전체 진료를 담당한 경우는 0.6% 등으로 나타났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① "이것 믿고 박근혜 찍었는데 사기 당한 기분"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합니까?"

손영준(당시 19세) 씨의 어머니 우미향 씨도 2007년 2월 아들의 다리 수술에 '선택진료'를 했다. 선택진료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결과는 의료 사고였다. 아들은 마취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못했고,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지금까지 7년째 입원 생활을 하고 있다. 뇌에 손상을 입어 100일 된 아기 상태로 돌아간 채였다.

손 씨가 다리 골절상을 입고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은 건 2007년 2월 3일 토요일 저녁 8시께였다. 병원에서는 크게 다친 건 아니라고 부모를 안심시켰다. 부모는 정형외과와 마취과에 선택진료 의사를 택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오후 1시께 손 씨는 수술실로 향했다. 아들이 지갑을 내밀며 "친구들이 병문안 오니까 밥 좀 사주라"고 했을 때 우 씨는 그게 아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일 줄은 몰랐다.
 

▲ 손영준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2시간 반이면 끝난다던 수술은 6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우 씨는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아들이 검정 눈동자가 다 넘어간 채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부분 마취에서 전신 마취로 전환하다가 환자가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중단했는데, 그 과정에서 갑자기 심장 정지가 발생했다"고 뒤늦게 설명했다.

우 씨가 수술실에 마취과 교수 대신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해 2월 5일 월요일이었다. 마취과 교수는 "마취약이 과다하게 투입됐는지, 환자에 따라서 마취가 빨리 깨는 사람도 있고 늦게 깨는 사람도 있는데 해독제를 놨으니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수가 직접 마취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우 씨에게 "나는 일요일에 수술이 있는지 몰랐고, 내가 아니라 레지던트 1년차가 들어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우 씨는 "심지어 '마취과 교수는 휴일에 안 나온다, 어느 교수가 일요일에 나와서 마취를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아기 상태로 돌아간 손 씨는 7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
 
한 달 뒤면, 일 년 뒤면 아들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 결국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두고 지난 2010년 우 씨 부부는 병원 측을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병원이 보험회사에 선택진료비를 돌려줬으므로 죄가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우 씨는 의료진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의료진 측이 대한마취과학회에 직접 의뢰해 제출한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소견이 1심에서 받아들여져 패소하고 현재 항소한 상태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레지던트 1년차가 마취한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절대 수술을 안 했을 거예요. 수술 도중에 부분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면, 수술을 중단했을 겁니다. 교수가 수술한다고 해서 선택진료까지 신청했는데, 교수가 안 나와서 사고가 났으면 병원이 100% 책임져야죠. 마취과 교수가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니, 이제 와서 돈을 돌려줬으니 죄가 안 된다니요. 우리 인생은 2007년 이후로 멈춘 거잖아요."

선택진료제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교수가 외국 학회에 출장을 갔는데도 버젓이 선택진료 의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며 "선택진료를 한 보호자가 환자를 수술실에 보내고 나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선택진료 교수와 마주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만 있는 선택진료제, 외국은…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이 고액 진료비를 경감하기 위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을 때, 대한병원협회는 "국민의 실질적인 의사 선택권이 축소된다"며 반대했다. 환자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환자들은 숙련된 교수를 만나기 위해 대학 병원에 가는데, 5년차 이상인 의사가 거의 전부 선택 진료 의사라면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손 씨의 아버지 손상현 씨는 "우리는 선택진료를 비롯해 병원에서 하자는 모든 것을 다 했다"며 "일단 선택진료를 시켜놓고 나중에 서명만 하라고 하고, 돈만 잔뜩 받아먹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억울해했다. 그는 "선택진료가 선택이 아닌 만큼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는 대신 의료기관 점수를 평준화해서 건강보험 수가에 적용하고, 수술은 전문의 이상에게만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실 한국은 선택진료제를 도입한 유일한 국가다. 한국과 의료 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환자는 의사를 지정해 진료를 신청할 수 있지만, 특정 의사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기다릴 수는 있어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다만, 환자들이 의원(1차 의료기관)의 진료 의뢰서 없이 곧바로 병원급 이상(2차, 3차 의료기관)에 초진을 신청하면 '특정요양비'를 내야 한다.

독일유럽 국가들은 비용 부담이 건강보험의 2-3배에 달하는 민간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공공 병원 진료과 과장에게 '정규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 진료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 공공 보험 체계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사적 선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상급병원에 가야 할 경우 환자들은 자신이 정한 주치의가 추천해준 전문의를 찾아간다. 환자가 주치의에게 특정 전문의를 추천해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드물다.

미국 시민들은 주로 직장에서 제공하는 민간 보험(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에 가입하고 보험사가 의료비지급하는데, 이 경우 민간 보험사와 계약한 병·의원들이 몇 군데 정해져 있어 사실상 선택권을 제약받는다. 민간보험이 지급 보증하지 않는 병원이나 의사를 찾으려면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선택진료제, 의료기관 질 평가로 대체해야"

선택진료제를 없애면 환자의 의사 선택권이 줄어든다는 병원협회의 주장에 대해 안기종 대표는 "지금도 환자에게는 의사 선택권이 없으며, 대형 병원에서 진료 받으려면 선택진료비를 내고도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형 병원에 가면 대기 시간이 긴 것은 선택진료비 징수 유무와 상관없다는 것이다.

선택진료제를 폐지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확보하는 대안으로 그는 "의료기관 종별 질 평가를 통해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병원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의 선택권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상현 씨는 아들이 사고를 당한 이후 아내가 수술할 일이 생겨 경험 많은 의사가 있는 작은 병원을 찾아간 사례를 말했다. 손 씨는 "의사가 나를 수술실에 데려가 화면을 보여주면서 '유착이 예상보다 심해서 복강경 수술을 하기 어려우니 개복 수술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며 "이런 게 진짜 환자 선택권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의료진이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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