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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회고록 파동의 주역들

지푸라기 잡기와 고갯길 넘기
▲ 사진출처 유튜브 동영상 캡쳐

우병우 파동과 최순실 의혹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청와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게다. 오죽하면 집권당 대표가 세상의 비웃음을 사는 엉터리 단식소동까지 벌여가며 물타기를 시도했겠는가. 물론 이 물타기는 집권당 대표가 청와대의 돌격대로 전락한 것외에는 별 효력이 없었다.

그런데 청와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물건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이 물건은 지푸라기가 아닌 굵은 동아줄로 보였다. 전 외교통상부장관 송민순이 쓴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몰고 온 ‘내통시비’는 청와대에서 ‘이젠 살았다!’는 외침이 나온 그 순간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송민순의 회고록에서 이 시비거리를 찾아낸 청와대는 새누리당을 동원하여 제2의 NLL공세를 펼쳤다. ‘청와대의 내시’라는 세간의 비웃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된 새누리당 지도부는 ‘내통’, ‘반역’ 등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원색적인 비방을 했다.

사실 송민순의 회고록에 등장하는 그 내용은 대외관계의 다양한 일들에 견주어 보면 에피소드라고 해야 한다. 아마 송민순도 이 부분이 이처럼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책에 실었을 것이다. 설령 새누리당 돌격대들의 주장대로 <북한인권안 표결에 대해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았다>하더라도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쌍방간에 상호관련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 사전에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대외관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당시 남과 북은 불과 한 달 전에 정상회담을 해서 중요한 합의를 했고, 그 이행을 위한 총리급회담이 막 끝난 시점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면 북한은 이를 정상회담의 합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으니 사전 협의는 오히려 반드시 거쳐야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런 일이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적과 내통한 사건’, ‘주권을 포기하고 국기를 문란케 한 사건’, ‘반역 행위’라고 공격받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다. 후손들이 오늘을 보며 얼마나 비웃겠는가를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청와대와 집권당의 참담한 정치수준과 비이성적인 대북대결의식이 광란의 춤을 추는 현실이 낳고 있는 이 우화경의 주역들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청와대, 아닌 보살하고 있지만 <제2의 NLL공세>를 기획하고 독려하고 있는 주역이다. 이 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새누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오더없이는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 청와대의 지시라면 아무 생각없이 돌진하는 멧돼지들로 득실득실하다는 것은 세상에 다 아는 사실이다.

청와대가 이 시비를 기획한 것은 우병우-최순실의 늪에서 빠져나가고픈 갈망 때문이다. 우병우와 최순실, 특히 최순실은 청와대로서는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세간의 풍문이 사실인양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관련해서는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가톤급 사안을 만들어 국면전환을 하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려왔다.

하지만 이 ‘내통시비’는 최순실 이름 석자를 가려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순실 의혹은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하나의 사안이 아니라 박근혜의 국정난맥이 총결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흘러간 물이 방아를 돌릴 수 없듯 이미 지나간 일인 ‘내통사건’은 살아있는 ‘최순실’을 어찌할 수 없다.

그 다음 주역은 새누리당, 주역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각이 없고 막가파 방식에만 매달리지만 그래도 세상을 제일 시끄럽게 하니 주역은 주역이다. 이들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이 소란을 시작했지만 나름대로 포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기회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여소야대의 여당 신세를 면해보려는 것이고, 야당의 유력대선후보에게 큰 흉터를 새겨보자는 것이다.

이들의 바램은 매우 어렵긴 하지만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상처가 자신들에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친박의 재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의 가장 큰 문제는 민심에서 이탈해버렸다는 것이다. 댓글이 비웃음과 욕으로 도배되었던 이정현의 단식소동은 이들이 얼마나 민심에서 멀어져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이런 상태는 지난 몇 년간의 무능과 실정이 쌓인 결과이며, 민심에 역행하는 친박재집권을 추구해야하는 처지 때문이므로 안다고 해도 어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새누리당은 무엇을 해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이런 시비를 시끄럽게 벌이면 벌일수록 더 큰 욕을 먹게 된다. ‘내통시비’로 민심은 새누리당으로부터 더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역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여기서 이 분이 왜 주역으로 등장하는가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송민순이 반기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그가 때 이르게 회고록을 발간한 목적이 반기문식 대북정책, 대외활동방식을 옹호 선전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기문의 대권가도에 깔아주는 반석으로 삼으려던 회고록이 엉뚱한 사태를 일으켰다. 회고록에서 트집을 잡아 수구집단은 극단적인 이념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로인해 대선이 첨예한 이념 대립 구도 속에서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대선이 이런 분위기에서 펼쳐지면 친미중도노선을 표방하며 친박후보로 옹립되려는 반기문으로서는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그래서 ‘내통시비’로 당장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쪽은 반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득을 보려고 내놓은 물건이 되려 손해를 끼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를 두고 생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끝으로 마지막 주역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대표, 주역을 맡을 계획도, 생각도 없었지만 주역이 된 주역이다. 게다가 다른 주역들은 극중 역할이 분명하고 대본까지 주어진 사람도 있지만 이 주역은 결정된 게 거의 없다.

‘내통시비’는 문재인 전 대표에게 큰 고비다. 그런데 고비로 되는 이유가 그 일에서 문 전 대표가 책임져야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통시비’가 대선가도에서 큰 고비로 되는 것은 문재인 전 대표가 이 국면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NLL시비’를 벌여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득을 본 것이 정치공세를 잘했기 때문이라보다 문재인후보측의 대응이 서투르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10.4선언에서 논의된 <서해평화지대>는 분단과 전쟁이 만들 괴물인 NLL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후보측은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기에 급급하였고, 스스로 진실공방의 늪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서툰 대응의 원인은 이념공세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새누리당정권은 반북대결의식과 분단이념이 만든 정권이며 그에 의해 유지되는 권력이다. 따라서 수구집단의 이념공세를 두려워하는 세력은 절대로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 설령 이념공세를 피하여 정권을 쥔다해도 새누리당과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은 지난 20년에 걸친 한국정치가 남긴 교훈이다.

새누리당이 거칠게 ‘내통시비’소란을 벌이자 더민주 의원 홍익표는 ‘당시 문재인은 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는 입장이었다‘고 하였다. 문재인 전 대표의 편을 든다고 하는 말인데 한심한 노릇이다. ‘내통시비’에 대한 문재인 전 대표의 첫반응은 ‘기억이 분명한 분들에게 물어보라’였다. 더 한심한 노릇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은 그저 권력을 쥐는 사람을 갈고, 당이나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정권은 분단시대 반민족적 이념과 독재시대 반민중적 이해관계가 만든 흉물이다. 이 이념과 이해관계에 맞서 싸울 의지가 없으면 정권교체는 해보나 마나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이제까지 정치 행보는 그들과 얼마나 다르며, 얼마만큼 다르게 할 수 있는 지를 보여 준 것이라 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애를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통시비’는 그 자체로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재인 전대표에게는 매우 험한 고갯길이다. 이를 넘어설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안호국 시사평론가  damoda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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