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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박근혜 '옹호 집회' 관찰기 "폴리스라인 밀어붙여"
[기고] 朴 탄핵 반대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김동규 동명대학교 언론광고학과 교수  2017.01.10 08:21:32
 
두 가지의 천국을 만났다. 하나는 아멘과 할렐루야가 흘러넘치지만 사실은 아귀같은 탐욕과 저주가 이글거리는 곳. 다른 하나는 다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의 물결이 강물처럼 고요히 흐르는 곳.
 
휴일 오후에 봉은사 근처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근데 봉은사역 계단을 오르자마자 대형 스피커 소리가 진동을 한다. 코엑스 쪽으로 군중이 모여 있고 엄청난 음량으로 "할렐루야!"가 터져나온다. 가짜 군복을 입은 해병전우회 할아버지들, 흔들리는 하이톤에 수시로 '박근혜 대통령 살려내야 한다' 중얼대는 할머니들이 가득하다. 말로만 듣던 극우 집회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이 무리들을 제대로 관찰하겠는가. 
 
태극기가 난무하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난데없이 집회 초입에 커다란 성조기가 펄럭인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부터 20대 초반 청년 그리고 늙수그레한 할머니까지, 년령도 다양한 일가족이 손팻말과 깃발을 흔들고 있다. 
 
마스크 쓰고 성조기 흔드는 청년에게 슬쩍 물어본다. "어디서 왔어요?" 인천에 있는 교회에서 참석했단다. 대절버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박사모(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와 어버이연합의 합동 집회라 한다. 아무래도 60대 이상 연령층이 많다. 그런데 의외로 청년층과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다.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김동규

▲박근혜 탄핵 집회에는 '태극기'를 든 젊은이들이 꽤 눈에 띠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는 사실관계가 다른 이야기들이 '구호'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동규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포착된 한 목사. 그의 가슴에는 '스테프(STEFF)'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김동규

코엑스 앞 8차선 도로 중 4차선을 점령할 정도로 상당한 인원이다. 대형 중계 모니터도 여러 대 설치되어 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50대 여성이 "폴리스 라인을 밀어붙여요"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혹시라도 돈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 유심히 면면을 살펴본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옆의 할아버지에게 여쭤봤다. 주로 누가 나왔냐고. 
 
말씀인즉 모임 주도는 교회 사람들이란다. 어디서 이런 인원들이 집회에 동원되는지 지금까지 몰랐다. 오늘 분명히 확인한 것은 이들 군중의 절대 다수가 극우 개신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서 괴성 지르며 "오 주여"를 외치는 자들이 하나같이 목사들이 입는 설교복 차림이다. 실제로 무슨무슨 교회 목사님 어쩌고 군중들에게 연사를 소개한다.  
 
이 목사들이 열에 들떠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탄핵 주도하는 좌파 세력에게 벼락같은 저주를 내려주시고 우리 박대통령의 억울한 누명을 하느님께서 벗겨달라고 통성기도를 한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에서 오싹하게 묘사된, 서북청년단과 그들의 이념적 모태가 되었던 서북기독교의 악몽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집회의 수준과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긴 말은 필요없겠다. 코메디를 능가하는 다음 사진 한 장만 보면 된다. 연단에 올라있는 주요 목사님들이 가슴에 붙인 명찰이다. 한글로 진행(요원)이라 적고 그 위에 영어로 이렇게 써놓았다.'STEFF'. 
 
목 쉰 소리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기도 속에 하느님이 난무하고 역사와 정의가 춤을 춘다. 그들이 꿈꾸는 천국이 바로 저 단어들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만의 천국, 그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독선을 숨기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아귀들의 가짜 천국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저녁 7시 경 광화문에 도착했다. 며칠 있으면 304명의 세월호 참극 희생자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000일이 되는 날(1월 9일)이다. 차가운 맹골수도 깊은 물 속에 아직도 9명의 미수습 실종자가있다. 유가족 합창단이 눈물의 노래를 불렀다. 친구들을 잃은 9명의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무대에 올랐다. 대표 학생이 글을 읽는데 그 중에서 가장 울컥한 것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 나중에 18살의 모습으로 서로 만나자는 말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시울을 닦다가 이런 확신이 들었다. 저 아이들의 희생이 이 삭막한 땅에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그 씨앗에서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러한 세상의 일그러진 모습에 분노하는 수백만 촛불의 꽃이 태어났다고.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천국은 어디냐고 물으면 바로 그곳, 아이들이 먼저 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라 답할 거라고.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세월호 천막과 그 위에 펄럭이는 작은 깃발들이 보인다. 애들아 너희들을 잊지 않을께. 이 어둠이 앞으로 오랫동안 우리를 묶을지라도 너희들을 위해 촛불을 절대 꺼트리지 않을게. 나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상의 엄마 아빠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저 높은 곳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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