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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통일교육인 줄 알았더니 "촛불집회는 선동 탓"... 서울 A초 강의 중단 사태
17.05.27 18:55l최종 업데이트 17.05.27 18:5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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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2011년 나라사랑교육 강사단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
ⓒ 국가보훈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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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에서 보낸 '나라사랑교육' 강사가 초등학생들 앞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다가 강의를 중단당하는 사태가 터졌다. 교사들이 '촛불 비하 강의'에 대해 집단 항의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 강사, 자유총연맹 간부에 '태극기 집회' 활동까지
27일 서울 A초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우익단체인 자유총연맹의 양일국 대변인은 지난 24일 오전 11시 40분쯤 서울 A초에서 강의 시작 20분 만에 강단에서 내려왔다. 당초 예정된 전체 강의 분량은 40분이었다.
이날 강의는 서울시교육청의 '통일·나라사랑교육 기본계획' 지침에 따라 이 학교가 국가보훈처에 강사를 신청해 진행됐다. 이 학교는 통일교육주간을 맞아 학생 통일교육 차원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강의 수강자는 이 학교 6학년 여섯 개 반 전체 학생 150여 명이었다.
이날 강의를 직접 지켜본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강사로 나온 양 대변인은 2008년 광우병 우려 사태로 터진 '이명박 정권 규탄 촛불시위'를 겨냥해 비난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6학년 한 교사는 "강사가 강의 초반에 2008년 촛불집회 사진을 보여주면서 '너희들 촛불집회를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더니 '몇 년 전에도 촛불집회가 있었다'고 운을 뗐다"라면서 "그런 뒤 촛불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이 MBC <PD수첩>과 일부 연예인 등 소수 몇 명의 거짓 발언에 선동당한 것처럼 폄하했다"라고 당시 강의 내용을 전했다. 이 교사는 "문제의 강사가 당시 촛불시위를 지지한 연예인들 사진을 화면에 쭉 띄우더니 '거짓말쟁이다,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교사는 "해당 강사가 통일교육을 할 줄 알았는데 20분 강의시간 가운데 15분 정도를 촛불시위 비판에 써버렸다"라면서 "6학년 교사들이 '사실과도 맞지 않는 파당적인 정치발언'을 하는 강의를 계속 이어가게 할 수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도 "해당 강사의 강의록을 받아봤더니 '촛불집회' 등의 내용에서 일탈행위를 발견했다"라면서 "이는 정치적, 당파적 편견을 강의에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한 학교 통일안보교육 강사 서약서 위반"이라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말썽을 빚은 양 대변인에 대해 강의 중단조치를 내렸다. 양 대변인은 이달 중 모두 네 차례의 강의가 예정돼 있었는데, 이미 두 번은 강의를 진행한 상태다. 이 기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강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강사를 해촉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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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이 지역 초중고에 보낸 '통일·나라사랑교육 기본계획'이라는 지침. |
ⓒ 서울시교육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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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변인은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등이 벌인 태극기 집회 등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양 대변인은 지난 2월 9일 탄기국 관련 단체가 연 토론회 '국민들은 왜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오는가!'에서 사회를 맡기도 했다. <미디어워치> 보도를 보면 양 대변인은 같은 달 23일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함께 밴드를 구성해 집회의 열기를 높였다.
이에 대해 양 대변인의 해명을 듣기 위해 자유총연맹 대변인실에 전화를 걸고 쪽지를 남겼지만 당사자와 직접 통화할 수 없었다. 이 단체 대변인실 관계자는 "국가보훈처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에 그 기관의 해명을 듣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 대변인이 반론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대해 "저희 쪽은 그렇게 판단했다"라고 답했다.
전교조 "나라사랑교육 명목 반민주교육 중단해야"
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는 "이른바 나라사랑교육이란 명목으로 학교에 오는 강사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촛불 시민을 비하하는 등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라면서 "이런 비상식적이고 반민주적인 강사들이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더 이상 가르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올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소속 4500여 개교에서 나라사랑교육을 벌인다. 이 교육은 2011년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나라사랑교육과란 부서를 신설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해당 교육을 전국 초·중·고에서 진행하는 강의요원은 모두 302명이다. 하지만 이 기관 관계자는 "강의요원의 신상을 언론은 물론 국회에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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