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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미국에서는 결코 할 수 없다

 
[함께 사는 길] 강은 반드시 와일드해야 한다
 
 
"4대강사업과 같은 경우 미국에서는 결코 할 수 없다. 1950~1960년대였다면 혹시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절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청정수법(Clean Water Act)'이 발효되면서 4대강사업과 같은 일은 벌어질 수 없는 시스템이 됐다. 청정수법 외에도 각 주마다 있는 수질과 어류 보호 관련 다양한 법률이 있기에 불가능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UC 버클리대학 마티어스 콘돌프(G. Mathias Kondolf) 교수는 하천지형학과 환경설계학을 전공한 권위 있는 전문가로서 2010년, 2014년 운하반대교수모임 등의 초청으로 한국의 4대강사업 현장을 조사한 바 있다. 그가 있는 대학으로 찾아가 21세기 미국 물 정책의 특징을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위의 말이다. 한마디로 "미국에서는 4대강사업 같은 건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국에서 1950년대나 있을 법한 구시대적 대규모 토건사업이 2010년대에 진행된 나라의 국민이라는 점 때문에 부끄러웠을까. 아니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업을 한 사람의 환경운동가로서 4대강사업을 끝끝내 막지 못한 자괴감 때문이었을까.

지난 4월 9일부터 17일까지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미 서부 워싱턴 주, 오리건 주, 캘리포니아 주 일대의 댐 철거 현장을 조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과 콘돌프 교수 등 관련 전문가를 만났다. 오마이뉴스 김병기 부사장, 정대희 기자, 대구환경연합 정수근 국장, 김종술 시민기자, 이철재 에코큐레이터와 전문통역으로 김레베카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원이 함께했다. 비용은 지난해 시민 모금으로 마련했다. 
 

▲ 엘와 강 하구 삼각주에서 바라본 올림픽 산은 만년설로 덮여있다. 엘와 강은 올림픽 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에서 발원한다. ⓒ이철재


댐은 모든 것을 가로막는 장벽 

미국 서부는 우기의 끝자락이었다. 푸른 하늘을 보이는가 싶더니, 보슬비와 장대비를 번갈아 퍼붓는 날씨가 이어졌다. 우리 초봄 날씨와 흡사해 딱 감기몸살 걸리기 좋은 상황이었다(실제 일행 몇 명은 감기몸살로 고생했다). 사실 가장 괴로운 건 어림잡아 서울~부산을 여섯 번 왕복할 거리를 승용차로 이동해야 했다는 거다. 이 때문에 아침 6시에 기상해 오전, 오후 현장방문과 인터뷰 등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고 다시 이동하면 숙소에 밤 11시, 12시를 넘어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정상 달리는 차 안에서 기사를 작성해야만 했다. 일행이 낯선 외국 땅에서 고난의 강행군을 이어간 까닭은 미국의 물 정책의 현황을 통해 4대강사업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연어가 강을 접하는 걸 가로막는 장벽, 연어가 다른 생물과 만나는 걸 막는 장벽, 우리 부족이 연어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장벽, 우리 부족의 문화적인 전통가치를 접하는 걸 가로막는 장벽, 우리 부족의 고유한 가치를 우리로부터 가로막는 장벽, 이것이 바로 댐이었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 포트엘젤리스(Port Angeles)에서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올림픽국립공원 내 엘와 강(Elwha River). 이 지역 원주민 클랄람 부족(Klallam Tribe) 의회 프란시스 찰스(France Charles) 의장은 이 강에 만들어진 2개의 댐에 대해 '모든 걸 차단해 버리는 장벽'이라 지적했다. 그녀는 원주민들이 당한 100여 년의 고통을 담아내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일행이 찾은 엘와 강은 양쪽 경사진 둔치를 사이로 쪽빛이 감도는 물줄기였다. 급경사로 이루어진 여울에서는 하얀 포말과 시원한 물소리가 뿜어졌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계곡형 강의 모습이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이곳에 높이 33미터 크기의 엘와 댐(Elwha dam)이 있었기 때문. 이 댐은 1913년 건설됐다. 1925년에는 엘와 댐 상류 15킬로미터 지점에 높이 64미터 글라인스 캐니언 댐(Glines Canyon dam)이 들어섰다. 둘 다 하류에 위치한 제지공장으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 강에서 떠내려와 하구에 쌓인 죽은 나무들은 새로운 생명의 서식처가 된다. ⓒ이철재


어도조차 만들지 않은 댐 

지난 100여 년 동안 두 댐은 엘와 강에 기대어 살아가던 원주민들과 생물들에게 재앙이었다. 올림픽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브라이언 윈터(Brain Winte) 부감독관은 "댐을 건설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두 댐은 법률에 규정된 형식적인 어도조차 만들지 않았다. 댐 건설에 대해 클랄람 부족이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미국 내무부 소속 인디언국은 이런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댐 건설로 당장 회귀성 어종인 연어들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는 원주민 부족이 연어 50%를 잡을 수 있도록 연방정부와 맺은 조약을 침범하는 것이었다.  

엘와 강이 있는 올림픽 반도는 태평양 연어 5종의 주요 산란지이자 서식지였다. 특히 100파운드(약 45킬로그램)에 달하는 시누크 연어가 회귀하는 곳이었다. 댐이 들어서자 연어 산란지 및 서식지 90%가 막히면서 연어들이 급감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핑크 연어의 경우 댐 건설 전 연간 28만 마리가 회귀했지만, 댐 건설 이후에는 고작 200~500마리 수준이었다. 다른 연어도 마찬가지였다. 

엘와 강은 원주민 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찰스 의장은 "강줄기 따라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방사성탄소 측정 결과 주거지 터는 800년, 조상들의 무덤은 2000년이 넘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연어는 주요 먹을거리이자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전통문화 그 자체였으며, 풍요의 상징이기도 했다. 두 개의 댐이 들어서자 엘와 강의 생태 시스템이 원주민을 부양할 수 없게 됐고, 그에 따라 공동체가 붕괴됐다. 원주민들은 선사시대 이래 삶의 터전이었던 엘와 강을 버리고 타지로 가거나 벌목꾼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댐으로 가로막힌 삶은 4대강사업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어민과 주민들의 삶과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반면, 엘와 강은 2011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두 개의 댐이 철거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환경청(EPA) 자료에 따르면, 엘와 댐 등 철거 비용은 2690만 달러(약 305억 원)가 소요되며, 수력발전소 매입 비용, 어류 산란장 개설 등 강 복원에 총 3억2470만 달러(약 3676억 원)가 들어간다.  

댐들이 철거되자 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클랄람 부족 어류 연구 담당관 마이크 맥헨리(Mike Mchenry)는 "엘와 강 상류까지 연어가 올라가 산란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장어 등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생물 종도 돌아왔다"며 "현재는 수천 마리에 불과하지만, 30년 후면 20만 마리가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  

엘와 강에서 댐이 철거된 이유는 연어 복원이 가지고 있는 생태계 서비스 이익과 강 복원이 가지고 있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해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는 국제적 하천 전문가인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독일 칼스루헤 대학)는 유럽과 북미 지역의 댐 철거에 대해 "연어가 상징하는 자연 생태계의 경제성 때문"이라 밝히기도 했다.
 

▲ 클람람 부족 의회 사무실 앞에 세워진 눈물 흘리는 시누크 언어. 지난 100여 년 동안 원주민과 연어의 수난을 상징적으로 말해 준다. ⓒ이철재


대형 댐을 안 짓는 미국, 한국은? 

엘와 댐은 1978년 댐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철거 논의의 단초였다. 앞서 1963년에는 멸종위기종법이 통과돼 일부 연어가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이를 바탕으로 원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철거 운동이 거세졌다. 이후 1992년 엘와 강 생태계와 어장 복원을 위한 법이 통과됐다.  

브라이언 부감독관은 "댐 철거 전후 경제성을 자세히 비교하는 자료는 없지만, 지금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 말했다. "필요한 전력은 다른 지역에서 공급되고 있으면서도 강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복원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댐이 철거되고 강과 퇴적토의 흐름이 회복되자 '산 후안 데 푸가(Strait of Juan de Fuca)' 해협으로 이어진 엘와 강 하구에서는 사암이 부서지면서 형성된 검은빛의 퇴적토 350만 세제곱미터가 쌓이면서 삼각주가 형성됐다. 

일행은 미국 도착 첫날인 9일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 엘와 강 하구를 찾았다. 걸어갈 수 있는 삼각주 한쪽의 길이만 대략 2~2.5킬로미터, 폭 0.2~1킬로미터에 이르는 드넓은 삼각주에서 물떼새, 기러기, 갈매기 등 다양한 새들을 확인했다.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죽은 나무들이 하얗게 탈색되어 흩어져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엘와 강을 둘러싸고 있는 올림픽 산에서 내려온 나무들이다. 이들을 그대로 두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마이크 담당관은 "엘와 강의 침식 과정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다른 생물들의 먹이와 서식처 기능을 하는 등 생태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강 복원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의미이다.

브라이언 부감독관의 말도 비슷하다. 그는 "엘와 강 복원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강은 반드시 와일드해야 한다'는 것"이라 말했다. 때론 거친 역동성과 생명을 품는 안정성이 존재하는 강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결국에 사람에게도 자연 그 자체에게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이어 그는 "댐은 무조건 문제를 몰고 온다. 댐을 지을 때 악영향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전조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잘 안 돼 미국도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댐 철거 정책에 대해 "지역마다 다르다. 댐을 필요로 하는 지역도 있다"면서도 "안전과 경제성 등 때문에 최근 대형 댐을 짓지 않는 추세는 맞다"고 밝혔다. 

댐 철거 및 강 복원의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복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엘와 강 사례처럼 경제적이면서도 강 복원에 따른 생태계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4대강사업과 같은 잘못된 정책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면, 이를 바로 잡는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강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이 곧 돈을 버는 일이다. 그것이 사람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 엘와 댐 철거 자리. ⓒ이철재

leecj@kfem.or.kr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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