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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이 멧돼지 입에서 도망치는 3가지 전략

양형호 2017. 08. 04
조회수 1650 추천수 0
 
양형호의 재미있는 숲 이야기
이중 알뿌리 만들기, 줄기와 뿌리를 ‘ㄴ’자 배치, 입에서 조각 ‘폭발’
하늘나리, 땅나리, 중나리…12가지 나리 구별하는 요령 총정리
 
털중나리 (2).jpg» 백합과 식물인 나리에는 종류가 많다. 요령만 알면 구분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 일찍 개화하는 털중나리.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산과 들은 나리꽃 세상이 되었다. ‘나리’란 나팔처럼 꽃을 피우는 백합과 식물을 부르는 순우리말 이름이다. 백합의 학명은 Lilium longiflorum Thunb.인데 여기서 속명 Lilium 은 흰색을 의미한다. 흔히 나팔 모양의 흰색 꽃을 흰 백(白) 자를 써 백합이 부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땅속에 있는 알뿌리가 백 개쯤 되는 인편(비늘조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백합(百合)이라 부르게 됐다. 
 
백합.jpg» 백합
 
인경.jpg» 인경
 
우리나라 산과 들에는 다양한 나리꽃들이 있다.
꽃이
하늘을 바라보고 피면 하늘나리,
옆을 바라보고 피면 중나리,
땅을 바라보고 피면 땅나리…,
그럼 아래에서 우리나라에는 어떤 나리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 털중나리
 
털중나리 (1).jpg» 털이 많은 털중나리.
 
나리 중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리는 ‘털중나리’이다. 빛이 잘 드는 숲 가장자리나 도로 사면 절개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나리이다. 꽃은 옆을 바라보고 피며 잎은 어긋나고 식물체에 털이 많아 ‘털중나리’라 부른다.    
 
2. 하늘나리
 
하늘나리 (1).jpg» 꽃이 하늘을 향하는 하늘나리.
 
하늘나리 (2).jpg» 털중나리와 비슷한 시기에 개화하는 하늘나리.
 
잎은 어긋나고 꽃은 하늘을 바라보고 피워 ‘하늘나리’라 부른다. 하늘나리는 털중나리와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며 숲 가장자리 풀밭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다. 하늘나리와 비슷하게 생긴 나리로 습지에 자라며 식물체에 털이 없는 ‘큰하늘나리’가 있는데 애석하게 필자는 큰하늘나리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다. 
 
3.날개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1).jpg» 줄기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달린 날개하늘나리.
 
날개하늘나리 (2).jpg» 고산지대에 사는 날개하늘나리는 무분별한 채집으로 보기 힘들어졌다.
 
잎이 어긋나고 꽃은 하늘을 바라보고 피우는데 줄기에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붙어 있어서 ‘날개하늘나리’라 부른다. 날개하늘나리는 국내에서는 지리산, 대암산, 보현산 등 고산에 자생하는데 개체수도 적고 꽃이 원예화처럼 아름다워 무분별한 도채로 지금은 거의 자생지에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백두산 주변 습지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나리이다. 
    
4. 참나리
 
참나리1.jpg» 나리 가운데 가장 흔히 만나는 참나리.
 
참나리2.jpg» 참나리에는 주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나리 싹.jpg» 참나리 주아에서 뿌리가 내리고 있다.
 
주아 발아 새싹.jpg» 참나리는 씨앗을 심는 것보다 주아로 쉽게 증식된다.
 
참나리는 인가 주변이나 바닷가, 혹은 하천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나리로 잎은 어긋나고 꽃은 아래쪽을 바라보며 핀다. 참나리는 나리꽃 중에 유일하게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를 먹을 수 있다. 대부분의 나리는 종자를 맺어 번식하지만 참나리는 종자 결실을 보기 쉽지 않다. 대신 잎자루 위쪽에 염소똥 같은 주아(살눈)를 만들어 번식하는데 종자가 발아되어 자라는 것보다 빠르게 꽃을 볼 수 있다. 
  
5.중나리
 
중나리1.jpg» 중나리는 참나리와 비슷하지만 주아가 없다.
 
중나리2.jpg» 중나리는 털중나리와 견줘 털이 없어 구별한다.
 
잎은 어긋나고 꽃은 옆을 바라보며 핀다. 꽃의 모양이나 무늬 등 전체적인 모습은 참나리를 닮았지만 잎자루에 주아가 달리지 않는 게 다르다. 털중나리와도 비슷하지만 식물체에 털이 없고 꽃에 주근깨 무늬가 있는 게 다르다.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 산자락에 자란다.
 
중나리는 주아도 없고 열매도 맺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나리들은 대부분 알뿌리 주변에 비늘줄기가 분얼되어 새로운 개체로 증식한다.
  
6. 땅나리
 
땅나리 (1).jpg» 꽃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땅나리.
 
땅나리 (2).jpg» 작고 귀여운 땅나리.
 
땅바닥에서 동전을 찾는 듯 꽃이 땅을 바라보며 피는 종이다. 잎은 어긋나고 나리 중에 꽃이 가장 작고 귀엽게 생겼다. 주로 양지바른 풀밭에 자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다.
    
7. 솔나리
 
솔나리 (1).jpg» 분홍색 꽃이 특이한 솔나리.
 
솔나리 (2).jpg» 솔나리의 잎은 솔잎처럼 가늘다.
 
나리 가운데 ‘얼짱’으로 잎이 솔잎처럼 가늘어 ‘솔나리’라 부른다. 무더운 여름에 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주로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하여 땀 흘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만나기 쉽지 않은 꽃이다.
   
8. 큰솔나리
 
20170529_104721.jpg» 백두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큰솔나리.
 
20170529_104812.jpg» 큰솔나리는 땅나리와 닮았지만 잎이 가늘고 전체적으로 크다.
 
잎은 어긋나고 꽃은 땅을 바라보며 피운다. 전체적인 모습은 땅나리와 닮았지만 잎이 솔잎 모양이고 식물체가 대형이라 ‘큰솔나리’라 부른다. 국내에서는 봤다는 사람은 있으나 현재 발견되지 않고 백두산 주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리이다.
 
9. 말나리
 
말나리 (1).jpg» 말나리의 꽃잎은 아래쪽으로 한 장이 빠진 모양이다.
 
말나리 (2).jpg» 잎이 치마처럼 돌려나는 것이 말나리의 특징이다.
 
줄기 아래쪽 잎이 치마처럼 돌려나고 꽃잎이 6시 방향에 한장 빠진 것처럼 좌우로 벌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지리산, 덕유산, 석병산등 비교적 높은 산 숲에서 자라는 나리이다. 잎이 우측 사진처럼 돌려나는 나리들 이름에는 모두 ‘말나리’란 이름이 들어간다.
   
10.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1.jpg» 꽃을 하늘을 향해 피우는 말나리는 하늘말나리이다.
 
하늘말나리2.jpg» 하늘말나리는 인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말나리처럼 아래쪽에 잎이 돌려나는데 꽃이 하늘을 바라보고 피어 ‘하늘말나리’라 부른다. 인가 주변 야산에 자라는 나리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종이다.
    
11. 섬말나리
 
섬말나리 (1).jpg» 울릉도 특산의 말나리가 섬말나리이다.
 
섬말나리 (2).jpg» 섬말나리는 꽃이 노란 계열이다.
 
잎이 말나리처럼 돌려나고 꽃잎도 6시 방향에 한 장 빠진 것처럼 좌우로 벌어져 있는 게 같으나 꽃이 누렇게 피는 게 다르다.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12. 뻐꾹나리
 
뻐꾹나리 (1).jpg» 뻐꾹나리의 꽃은 꼴뚜기를 닮았다.
 
뻐꾹나리 (2).jpg» 뻐꾹나리는 나리와 속이 다르다.
 
꽃이 꼴뚜기 닮았는데 꽃의 무늬가 뻐꾸기 깃무늬를 닮아 ‘뻐꾹나리’라 부른다. 
다른 나리와 같은 lilium속은 아니지만 나리라 부른다. 
 
- 나리 품종
 
누른하늘말나리.jpg» 나리의 품종 가운데 하나인 누른하늘말나리.
 
노랑땅나리.jpg» 나리 품종인 노랑땅나리.
 
붉은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야생화는 흰색의 품종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나리꽃에는 노란색 품종이 있다. 참나리, 털중나리, 하늘말나리, 땅나리, 중나리 등에 노란색 품종이 있다. 또 솔나리에는 흰색 꽃을 피우는 ‘흰솔나리’가 있다.
 
말나리 (3).jpg» 말나리 변종.
 
나리들을 야생에서 만나다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가끔 꽃들이 줄기 끝에 뭉쳐 꽃다발처럼 피는 변종이 있다. 생장할 때 산짐승에게 생장점을 다치거나 꽃눈 분화 과정에서 냉해 같은 장애를 얻어 생기는 변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를 잘 이용하면 꽃이 꽃다발처럼 여러 송이 함께 피어 절화용으로 경제적 가치가 높은 품종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70604_085345.jpg» 멧돼지 피해를 본 하늘나리.
 
나리꽃에는 인경이라는 알뿌리가 있는데 멧돼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나리가 자랄 때까지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신기하게도 꽃이 피면 멧돼지가 와서 줄기와 꽃은 그대로 둔 채 알뿌리만 쏙 뽑아 먹는다. 아마도 꽃이 필 때 알뿌리의 독성이 없어지든지 아니면 멧돼지를 유인하는 호르몬을 발산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나리는 산짐승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3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첫 번째는 멧돼지로부터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알뿌리 아래쪽에 견인근 뿌리를 만들어 해마다 뿌리를 땅속 깊이 숨기는 전략이다. 이런 이유로 나리를 전시원에 심으려면 비옥하고 토심이 깊은 땅에 심어 주는 게 생육에 좋다. 
 
두 번째는 솔나리 같은 경우 멧돼지가 뿌리를 찾지 못하게 새싹이 ‘ㄴ’자로 옆으로 누워, 싹이 나는 위치를 뿌리의 위치와 다르게 만든다. 
 
세 번째는 행여 멧돼지가 뿌리를 발견해 먹더라도 씹는 순간에 여러 개의 비늘줄기로 되어 있는 알뿌리가 자폭하듯 산산조각 부서져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흩어져 살아남은 인편은 다시 싹을 내어 새로운 개체로 살아남는다. 놀라운 생존전략이다.
 
땅나리 증식.jpg» 땅나리 증식.
 
나리꽃을 증식하기 위해 종자를 발아시켜 보면 종마다 발아 특성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잎이 어긋나는 땅나리, 솔나리, 털중나리, 날개하늘나리 등은 파종하면 그 해에 바로 발아되어 싹이 나고 이듬해부터 꽃을 피운다.
 
그러나 아래쪽 잎이 돌려나는 말나리, 하늘말나리, 섬말나리는 파종해도 바로 싹이 트지 않고 첫해는 뿌리만 살짝 내리고 이듬해 싹이 나온다는 특성이 있다. 생장도 느려 개화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참나리는 주아로 증식하면 발아율도 높고 꽃도 빨리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나리 종은 알뿌리의 인편을 쪼개어 흙에 묻어 두면 쉽게 증식되고 빠르게 꽃을 볼 수 있다.
 
요즘 여름 휴가철이라 많은 사람이 산과 바다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행길에 길가나 바닷가 바위에 무리 지어 환하게 피어 있고 잎자루에 염소똥 같은 주아가 있다면 틀림없이 참나리이다. 
 
이 글의 독자 분들은 자신 있게 주변 분들께 말해 주자. 저 주홍색으로 무리 지어 예쁘게 피는 꽃은 참나리라고….
 
글·사진 양형호/ 국립수목원 전시교육과 현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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