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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국립현충원 앞 '박정희 이장하라' 1인시위

 
'일왕에 견마지로 맹세한 친일파가 현충원..항일지사 모욕'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10/28 [14:4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지난 10월26일, 한 남성은 박정희 내외가 묻혀있는 국립현충원 앞에서 '박정희묘 이장하여 국군을 바로세우자' 라고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참고로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 '현충원에 항일지사와 친일파 함께 안장 부당' 1인시위     © 서울의소리 제공

 

1인 시위남성은 '왜 박정희 묘 이장을 요구하느냐' 라는 일부 현충원 방문객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 '박정희 묘 이장' 주장하는 1인시위자     © 서울의소리 제공

 

이를 취재하던 서울의소리 www.amn.kr 백은종 대표(사진속 오른쪽 뒷모습)는 '박정희는 일제강점기 일왕에 개나 말처럼 충성을 다하겠다 혈서를 쓴 인물로 항일지사들이 안장된 현충원에 함께 안장되는 것이 부적절하다. 항일 지사에 대한 모욕이다' 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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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빨리 사, 朴 빨리 팔아, 혈세 수십조 펑펑

 
해외자원 살 때는 ‘글로벌 호구’ 팔 때는 ‘헐값 잔치’
 
육근성 | 2014-10-28 12:40:4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B 정권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종종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복음(기쁜소식)을 국민에게 전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유전 개발 계약이 체결돼 중동과 북미에 ‘우리 유전’을 갖게 됐다는 것. 해외자원 개발 사업이 눈부신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자화자찬이었다.


MB의 ‘복음’(기쁜소식) 알고 보니 ‘뻥’

이 ‘복음’ 전파는 정권 말까지 이어졌다. 2012년 3월 6일에도 MB는 아랍에미레이트 유전 개발 본계약이 체결됐으니 기뻐해 달라며 방송을 했다. 대통령이 직접 제 입으로 ‘복음’이라고 강조한 이 사업은 어떻게 됐을까. 총 799억원이 투입됐지만 회수율은 고작 9%. ‘깡통’이 됐다는 얘기다.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 해외자원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대표적 공기업이다. 적극적이었던 만큼 출혈이 극심하다. 석유공사의 경우 MB 정권 5년 동안 부채가 3조 6천억원에서 21조 3천억원으로 7배 증가했으며, 이중 민간차입과 회사채는 103억원에서 12조5천억원으로 1216배나 폭증했다. 금융이자만 연 4110억원에 달해 벌어서 이자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다.

광물자원공사 상황은 더하다. 이자 감당도 못한다. 부채는 7배 이상 급증했지만 투자액(3조2천억원)에 비해 수익(6년간 2200억원)은 보잘 것 없다. 금융이자로 연간 865억원이 나가지만 당기순이익은 189억원. 벌어들이는 돈보다 이자가 5배나 많다. 이런데도 연봉이 높아 사장의 경우 2억원 넘게 받아왔다. 최근 임원 연봉을 크게 낮췄지만 감사 연봉은 오히려 올랐다. 친박 낙하산에 대한 배려다. 현재 상임감사는 18대 대선 새누리당 공동여성본부장 출신인 홍표근씨다.


비싸게 사서 ‘헐값 잔치’, 공기업 해외자산 매각 ‘러시’

뻥 뒤에 남은 건 빈 깡통. MB의 자원외교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MB정권 동안 앞뒤 안 가리고 해외자원 개발에 뛰어들었던 공기업들. 이젠 보유하고 있는 해외 자산을 내다 파느라 정신이 없다. 박 대통령이 부채 줄이라고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이다. 2017년까지 내다 팔 공기업 해외자산은 6조3000억원에 달한다.

하베스트 정유 자회사 NARL을 포함해 다수 해외사업 매각을 추진 중인 석유공사의 매각 규모는 2조7천억원. 광물자원공사 1조4천억원, 한국전력 1조4천2백억원, 가스공사 5천8백억원, 한국수력원자력 1천4백억원 등 해외자산 매각이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헐값 매각이다. 국민 혈세를 펑펑 쓰며 비싸게 사더니 이젠 절반도 못 건진 채 마구잡이로 내다 팔려고 한다. MB 정권 5년 동안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가스공사 등이 벌인 해외 자원 투자 규모는 26조원. 하지만 회수된 금액은 3조6천억원에 불과하다. 실적이 이러니 매물로 내놓아도 제 가격 받을 수 있겠나. 자신들 돈이 아니니 펑펑 쓰다가 안 되면 휴지조각처럼 버려도 그만이란 말인가.


1조원에 사서 900억원에 팔기도, 부도난 회사 인수에 2조원 퍼줘

석탄공사가 보유한 몽골 홋고르 탄광. 2011년에 274억원을 주고 사더니 이제 111억원에 팔려고 한다. 투자금의 절반도 못 건지게 됐다. 광물자원공사의 남아공 블락플라츠 유연탄광. 2010년에 지분매입 명목으로 187억원을 투자했지만 3년 만에 176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투자금의 95%를 날린 것이다. 대부분 상황이 이렇다.

어이없어 입이 떡 벌어지는 사례 하나. 1달러짜리를 1조원에 사놓고 연간 수백억원 이상의 손실을 혈세로 매우다가 4년 만에 900억원에 매각한 경우도 있다. 2009년 석유공사는 캐나다 하베스트에너지를 인수한다. 애당초 인수가격은 2조5천억원. 하지만 석유공사는 2조원 웃돈을 얹어 4조5천억원을 건넨다. ‘2조원 웃돈’에는 하베스트에너지 자회사인 NARL 인수대금 1조원이 포함됐다.

1986년에도 NARL이 매각된 적이 있다. 당시 소유주인 캐나다 국영석유회사는 NARL을 단돈 1달러에 팔았다. 판 것이 아니라 거저 줬다는 얘기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유업체지만 섬에 위치해 입지도 안 좋은데다 40년 이상 된 설비라 노후화가 심각해 연간 100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베스트에너지가 ‘애물단지’ NARL을 석유공사에 거액을 받고 끼워 판 것이다.

1달러짜리인데 1조원을 줬다. 누가 석유공사를 ‘글로벌 호구’로 만들었을까. 턱없는 요구에 응하도록 자문한 곳은 메릴린치 서울지점. 김형찬 지점장은 MB의 40년 집사로 불리던 김백준 당시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아들이다. 이 황당한 거래의 배후에 MB와 김백준이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알고도 호구 행세를 했나? 그럼 사기를 친 것이다.


환상의 콤비… MB는 ‘빨리 사라’, 朴은 ‘빨리 팔아라’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투자도 있다. 2008년 광물자원공사는 멕시코 볼레오 동광산 지분 30%를 인수한다. 이게 화근이 됐다. 2011년 제련시설이 착공되지만 개발회사인 바하마이닝은 2억9천만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발표한다. 그러자 채권단은 추가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다. 광산사업권이 채권단 수중에 들어가자 광물자원공사가 나서 채권 권리유보 협상을 벌여 투자지원 계약을 맺고 추가 지분 인수에 나선다.

이미 부도난 회사의 주식을 인수하고 채권단의 권리집행을 막기 위해 광물자원공사가 쓴 돈은 현금과 지급보증 등을 합해 모두 2조원. 엄청난 돈을 들여 바하마이닝의 Default를 풀고 70% 이상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볼레오 광산 사업성은 부정적이다. 미국 증권선물위원회가 밝힌 ‘볼레오 사업성 분석 자료’에는 온통 빨간불이다. 참여연대는 멕시코로 건너간 돈 가운데 일부가 행방이 묘연할뿐더러 비정상적인 송금이 이뤄진 사실도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 볼수록 재미있다. ‘얼른 투자하라’고 닦달했던 MB. ‘빨리 팔아치워 부채 줄여라’고 볶아대는 박근혜. 손발이 척척 맞는다. 살 때는 턱 없이 비싼 값 치러 글로벌호구 되더니 팔 때는 ‘헐값 잔치’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두 정권의 팀워크 덕분에 국민혈세만 폭포수처럼 새어 나간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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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MB의 비용'을 따져야만 하는 이유

[MB의 비용]'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지식 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는 직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로 'MB의 비용'을 공동 기획, 연재했다. 연재 1부를 마무리하는 글을 유종일 이사장이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1. '돈벌레, 사기꾼, 도둑놈, 철면피, 기생충, 대왕쥐, 재테크, 슬픈 역사'가 SNS에서 “이명박은 … 다”라고 규정해보라는 요청을 한 결과 얻은 답 중 일부다. 조금 긴 것들로는 ‘칠 사기는 다 치는 놈, 나라를 거덜 낸 놈, 우리가 똥 밟은 것’도 있다. 많은 이들의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아쉽게도 대단하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표현은 없었다. 그런데 똥 밟은 것이라는 표현에는 선뜻 수긍이 가면서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똥통에 푹 빠진 것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았다.
 
혹 똥을 밟아본 사람은 있어도 똥통에 정말로 빠져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군복무 중에 매우 지근거리에서 간접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날이 흐려 캄캄한 밤이었고, 우리는 야영훈련 중이었다. 항상 하던 대로 소대원 하나가 한밤중에 몰래 마을에 나가 소주를 사서 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가 텐트로 돌아오다가 그만 논두렁 옆에 똥과 섞어서 썩히던 커다란 두엄더미 저장고에 빠져버린 것이다. 한잔 하고 자려고 텐트 안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소주는커녕 엄청난 똥 냄새의 공격을 받으며 잠을 청해야 했다. 똥통에 빠진 병사가 냇가에 가서 온몸을 씻었고 군복도 빨아 입고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그 병사는 그날 이후로 틈만 나면 씻고 또 씻었지만, 악취는 며칠이 가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참 지독했다.
 
지금 우리 국민의 꼴이 똥통에 빠진 격이다. MB가 '싸질러' 놓은 거대한 똥 무더기에 빠져 사방에서 진동하는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으니 악취가 더욱 진동한다.
 
2. 4대강 사업 이후 여름만 되면 보에 고인 물이 ‘녹조라떼’로 변하고, 녹조가 썩으면서 악취를 풍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큰빗이끼벌레라는 시궁창 냄새를 풍기는 고약한 벌레가 창궐하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에 비추어 4대강 사업 추진 당시부터 능히 짐작했던 바다. 작년에 MB는 "녹조가 생기는 건 수질이 나아졌다는 뜻"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언을 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원래 유체이탈화법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우리의 의표를 찌른 한 차원 높은 발언이었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22조 원의 사업비보다 3배나 되는 65조 원이 필요하다. 복지 예산에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 이런 황당한 짓을 벌여놓은 것이다. 낙동강의 썩은 물에서 풍겨오는 악취는 4대강 사업과 MB정권의 상징적인 유산이지만, 앞으로 수자원 공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 우리의 세금이 올라갈 것이 자명하다. 수도요금이 오를 때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비명이 새어나올 것이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3. MB정권 5년 동안 정권 실세들의 주도하에 온갖 구린 일들이 벌어졌다. 위장 대운하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사업은 물론 MB 본인이 주도한 것이고, MB와 더불어 '만사형통' 이상득과 '실세차관' 박영준은 자원외교라는 미명아래 천문학적 돈을 뿌리고 다녔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의 추정에 의하면 자원외교는 약 56조 원의 부채를 우리에게 남겼다고 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불거지는 얘기들을 보면 아마도 손실액은 더욱 불어날 것 같다. 금액은 적지만 영부인 김윤옥도 한식세계화 사업에 편승해서 참으로 민망한 짓을 하고 다녔다. 
 
탐욕의 촉각을 지닌 정권 실세들은 정부 사업 외에도 수많은 구린 일에 손을 뻗쳤다. 이상득은 수많은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되었고, 박영준은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한수원 비리에 연루되었다. KT나 포스코처럼 완전히 민영화된 기업도 정권이 점령군처럼 운영했고, 정권과 가까운 롯데그룹이나 효성그룹에 대한 특혜시비도 끊이지 않았다.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을 모조리 MB맨으로 채운 결과 이들은 ‘금융권 4대천황’이라 불리며 우리나라 금융을 주물렀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화제가 된 한국투자공사(KIC)의 메릴린치 우선주 20억 불 투자건도 MB정권과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증거가 매우 많다. 여론의 반대로 무산이 되기는 했지만 인천공항을 민영화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구린 일들이 구린 것으로 끝난 것만은 아니다. 국고의 손실만 해도 100조가 훌쩍 넘고, 정부 사업을 떠맡은 공기업들은 부채더미에 올라앉았으며, 정권의 낙하산들이 점령한 KT, 포스코, 금융지주회사 등에서는 각종 부실과 비리가 터져 나왔으며 당연히 경쟁력을 잃어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구린 일에 앞장서고 몸 바친 결과, 온몸에서 구린 냄새가 펄펄 나는 이들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기세등등하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주도한 자들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정부의 포상까지 받고 희희낙락하고 있으며, 자원외교 한답시고 혹은 멜리린치에 투자한답시고 조 단위로 돈을 날린 자들이 오히려 영전하여 잘나가는 것이 오늘날의 뒤틀린 현실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계기로 소위 친이계 부활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매우 구리다.
 
4. 흔히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고 한다. 보수정권인 MB정권의 부패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 그걸 탓하지 말고 얼마나 유능한 정권이었는지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겠다. 권력의 부패와 그로 인한 공적 권위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로 매우 중대한 평가 잣대가 되어야겠지만, 국정운영을 잘했다면 어느 정도는 용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MB정권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활력을 살려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왔는가?
 
MB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경제성장이다. ‘747’을 이루겠다는 정권이었다. 하지만 MB정권 5년간 연평균성장률은 불과 2.9%였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연평균성장률 5.1%나, 노무현 정부의 4.3%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였다. 글로벌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으니 핑계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도성장에 따른 혜택도 누렸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도 IMF위기가 있었고 노무현 정부도 정권 초에 카드채 위기를 맞았다. 
 
성장은 결국 국민이 잘살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임금이 얼마나 올랐는지 살펴보자. 10인 이상 업체 비농전산업 연평균실질임금상승률은 김대중 정부 동안에는 3.5%, 노무현 정부 동안에는 3.7%였던데 반해 MB정권 동안에는 고작 0.2%였다. MB 정부 아래에서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은 폭증했지만 실질임금은 완전히 정체했던 것이다. 
 
▲역대 정부의 국정성과 지표. 1)5년간 연평균 2)정권 말 2007년, 2012년 기준(단 IT산업경쟁력 순위는 2007년, 2011년 기준) ©유종일

▲역대 정부의 국정성과 지표. 1)5년간 연평균 2)정권 말 2007년, 2012년 기준(단 IT산업경쟁력 순위는 2007년, 2011년 기준) ©유종일

 
5. 경제성장의 이면도 살펴보자. 가장 큰 문제는 MB정부의 초라한 경제성장마저도 엄청난 빚더미 위에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기재부 발표로는 국가채무는 2007년 말 약 299조 원에서 2012년 말 약 448조 원으로 50%나 증가했다. 그 결과 GDP대비 비율도 30.7%에서 32.8%로 증가했다. 
 
공공기관 부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07년 말 약 249조 원에서 2012년 말에는 498조 원으로 정확하게 두 배로, 즉 100%나 증가했다. 정부만 빚진 게 아니고 가계부채 또한 폭증했다. MB정부 5년간 금융권 가계대출은 222.3조 원 증가했으며, 이중 예금은행 대출은 20.3% 증가한 데 비해 금리가 높은 기타금융기관 대출은 46.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한 것을 경제고통지수라고 한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경제고통지수에 소득불평등, 범죄율, 자살률을 더해 사회경제고통지수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1993년부터 이 지수를 산출한 결과 김영삼 정부 집권 시기엔 -3.8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고, 김대중 정부 0.6, 노무현 정부 0.7로 높아지더니 이명박 정부에서는 3.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줄어든 것도 있다. 남북통합지수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고안한 남북통합지수는 2007년 270.9에서 MB정부가 들어선 직후 200년 214.2로 급락하고 2012년에는 197.6까지 하락했다. 
 
사회경제고통지수나 남북통합지수가 진보편향적인 지표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보수성향 단체들의 평가를 보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2007년에는 11위였으나 MB정부 출범 후 2008년 13위, 2009년 19위, 2010년 22위, 2011년 24위, 2012년 19위로 2012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뒷걸음질 쳤다. 또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하는 IT산업 경쟁력지수에서는 우리나라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8년 8위, 2009년 16위, 2011년 19위로 급락했다. 미국의 NGO인 프리덤하우스는 언론부자유지수를 매년 발표하는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30점 이하를 기록해 줄곧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었으나, MB정부 집권 3년차에 32점으로 상승해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되었다.
 
MB정부도 잘한 일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외환 및 자본거래 관련 규제를 강화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 신현송 교수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한 덕택이었다. 하지만 잘한 일을 아무리 꼽아보아도 위에서 살펴본 거시적인 지표의 부진을 극복할 수는 없다. <표1>은 이들 지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6. 필자의 SNS 질문에 MB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안의 욕심이 MB를 만들었다는 답들도 꽤 있었다. 나는 이런 관점을 존중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해 ‘내 탓이오’ 하는 종교적 자세에 배울 점이 있고, MB를 낳은 얄팍한 선택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불의와 맞서 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그래야만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은근히 MB에게 투표한 유권자를 탓하는 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많은 유권자가 MB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원인과 책임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정치적 실천에 매우 중요하다.
 
누가 우리를 MB라는 똥통으로 이끌었던가? 두 말 할 나위 없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이었다. 넓게는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정치적 실패였다. 이에 관한 솔직한 인식을 회피하고 반성을 거부한 채, 그저 정권 심판론에 기대어 눈앞의 선거승리와 계파간 패권다툼에만 몰두해온 야권은 참패를 거듭해왔고 결국 선택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솔직한 고백이 주는 신뢰, 정책과 정당운영에 관한 참으로 진지한 성찰, 이런 것들 없이는 야권에 희망이 없다. 지금의 야권은 MB가 싸질러 놓은 똥 무더기 이상으로 악취를 풍길 따름이다.
 
7. 박근혜 정부가 꾸린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는 중립적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구실 아래 비판론자들을 배제하고 사실상 찬성론자들을 여럿 포함시킴으로써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 이런 구성 때문에 박근혜와 MB 담합설까지 흘러나왔다. 둘 사이에 쌓인 사적인 감정으로 보나 전두환의 은닉재산 추징에서도 나타난 정치적 셈법으로 보나 MB에 대한 추상같은 응징이 마땅하련만, 박근혜 대통령이 MB를 감싸고돌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대선을 매개로 해서 둘 사이에 끊기 어려운 연결고리가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고 진실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의 비호로 인해 우리는 MB의 똥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똥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게 억울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때그때 권력에 줄서기만 잘하면 출세도 하고 이익도 향유하며 잘못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참으로 나쁜 교훈 말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발생한 ‘역사의 도덕적 해이’가 오늘까지도 반복되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 총리지명자 문창극 씨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했는데, 신임 적십자총재 김성주 씨도 유사한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이 땅에서 신나게 먹고 신나게 싸지른 자들은 권력이 바뀌어도 항상 승승장구했고, 우리 국민들은 진동하는 구린내를 맡아가며 똥 치우기에 바빴던 게 한국현대사의 한 흐름이 아니었던가?
 
지난 2일 82Cook, 리멤버0416 등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60여개의 풀뿌리시민모임이 모여 성명을 발표했다. “사악한 집권여당도, 나약한 거대 야당도 정파적 이해에만 고립되어있는 소수야당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국민들만 신뢰하고 싸워나가겠고 했다. MB가 끼친 해악, 진동하는 구린내를 청산하는 노력도 정치권에서는 기대난망이다. 국민이 직접 나서야만 한다.
 
8.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MB정권이 우리 국민에게 끼친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기로 했다. 단편적으로는 많은 얘기가 흘러나왔지만 흩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억투쟁'을 위해 중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합원들께서 분야별로 나누어 맡아 연초부터 작업을 했고, 그 성과의 일부를 8월 1일부터 <프레시안>에 연재하였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고,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우리가 제기한 이슈들이 확대‧재생산되기도 하였다. 일과성으로 지나가면 끝나버리는 정치권과는 달리 우리는 MB정권의 폐해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조만간 MB의 비용에 관한 단행본을 출판하려고 하니 독자들의 관심을 당부한다. '기억투쟁'은 '청산투쟁'의 초석이다.
 
학문적 업적으로 쳐주지도 않는 글을 쓰느라고 고생한 조합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박창근 교수님, 고기영 교수님, 김용진 교수님, 김학진 교수님, 이후천 교수님 등 <프레시안>에 글을 연재하신 분들 외에도 조애리 교수님, 남준우 교수님, 황평우 소장님 등이 기획 및 집필에 참여하여 많은 수고를 해주셨다. 필자의 조교인 신호정 씨는 방대한 자료를 추적하고 집적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도 기획에 도움을 주고 지면을 할애하여 주었다.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1> MB의 비용 : 4대강 사업, 22조 원 부은 '밑 빠진 독' ① "박근혜 정부 5년 수질 관리 비용만 20조 원" 

 

▲ MB의 자원외교 

<1>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① MB 자원외교, 71건 MOU 중 계약은 딱 1건! 

<2> MB의 비용 :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② MB정부, 자원외교에 43조 원 투자했으나…

<3>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③ 에너지 자립? 돈만 날린 MB 자원외교

<4> [MB의 비용] MB자원외교의 虛와 實 ④ MB 자원외교…묻지마 투자, 수 조원 손실

<5> [MB의 비용] MB 자원외교의 虛와 實 ⑤ "MB 자원외교, 국민에게 56조 부채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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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촛불' 불렀단 적개심에서 끝내 교양국 '해체'까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0/28 14:17
  • 수정일
    2014/10/28 14: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MBC 시사교양국의 수난사]지속적이고 꼼꼼했던 폭력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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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10.28  12:08:51
 

MBC ‘교양제작국’이 끝내 해체된다. 교양제작국 소속 PD들 일부는 외주 제작물을 관리하는 콘텐츠제작국으로 나머지는 예능1국의 제작4부로 이동한다. 이와 함께 MBC 대표 교양 프로그램 <불만제로>, <원더풀 금요일> 등이 폐지가 이미 확정됐다. MBC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김문환 이사장은 이번 조직개편과 프로그램 폐지에 대해 “성과가 적어서”라고 답했다. MBC 이번 조직개편은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역할이 아닌 사업자로서의 ‘수익성’과 ‘성과’가 전면화 된 것이다. 보도국 내에 ‘뉴스사업부’를신설한 것은 너무 적나라한 위악이다.  

MBC의 교양제작국의 뿌리는 ‘시사교양국’이다. 2012년 큰 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맞았다는 김재철 전 사장이 조직을 개편하기 전 ‘시사’와 ‘교양’은 한 몸이었다. 그걸 김재철 전 사장이 쪼개고, 이번에 최종적으로 해체한 것이다. 근 5년 여의 세월이다. 수난의 MBC 시사교양국, 과연 MBC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MBC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

MBC ‘시사교양국 수난’의 시작, <PD수첩> 흔들기에서 시작

MBC ‘시사교양국’의 수난은 2008년 정권교체부터 시작됐다. 타깃은 정확했다. <PD수첩>이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는 <PD수첩>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잖아도 '방송 때문에 정권을 잃었었다'는 적개심에 불타던 정권에게 <PD수첩> ‘광우병 편’은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이 한 편의 보도를 보수언론 전체는 물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방통위원회,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매일 같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물어뜯었다.

당시, <조선일보>는 ‘PD수첩의 광우병 사망자 조작 사실 밝혀졌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었다. 지금까지도 보수언론들의 대표적 왜곡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기사다. 협공이었다. 여당의 진성호·김용태 의원은 별도 보도자료를 통해 ‘PD수첩, 광우병 위험 어떻게 왜곡 과장했나’를 배포했다. 곧바로 바통은 정부여당 추천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방통심의위가 이어 받았다. 방통심의위는 철저히 다수결 원리에 따라 MBC <PD수첩>에 최고 징계인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다. 당시, 여당 추천 박명진 방통심의위원장(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은 <PD수첩>을 두고 “제작진들의 의욕이 넘쳐서 알면서고 그런 것(오역) 아니냐”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정부여권은 물론 보수세력 전체가 MBC <PD수첩>을 바라보는 시각을 대변했다. 해당 심의결과는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의 명예훼손 근거가 되면서 형사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내부에도 적은 있었다. MBC 경영진과 관리감독 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MBC 경영진들은 제작진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통심의위의 ‘시청자사과’ 결정에 일방적으로 사과방송을 송출했다. 그리고 당시 정호식 시사교양국장을 다른 보직으로 인사발령했다. 방송문화진흥회 김우룡 이사장은 “시사교양국과 보도제작국이 분리돼 있어 소재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한 뒤, 사실상 두 부처의 통폐합을 종용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외부의 간섭을 배척해야할 책임자들이 오히려 시사교양국 PD들의 적으로 나선 격이었다.

   
▲ PD수첩 동료인 이춘근 PD 연행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김보슬 PD ⓒ민중의소리

검찰 역시 뜨겁게(!) 화답했다. MBC에 촬영원본 제출을 요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한 발 더 나아갔다. MBC <PD수첩> 이춘근 PD를 시작으로 밤 12시~새벽2시 사이에 조능희 PD와 송일준 PD, 김은희·이연히 작가를 연이어 체포했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 언론인에 대한 긴급체포, 결코 벌어져선 안되는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진 셈이었다.

이후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들은 길고 긴 법정 투쟁을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그 당시 겪었던 수많은 고초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리고 MBC 시사교양국에 대한 수난은 그렇게 시작됐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2,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해야할까, MBC <PD수첩>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최승호 PD의 역할이 컸다. 2010년 4월 MBC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은 향응 및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검사 57명의 실명이 담긴 문건을 공개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비롯해 법무부 고위직 인사와 부장검사들이 다수 연루돼 있었다. 훗날, 최 PD는 그 압력을 버텨낼 수 있던 까닭에 “‘노동조합’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이 가능했다”고 회고했다.

   
▲ 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MBC <PD수첩> 제작자율성에 대한 간섭은 점차 심해졌다. 시사교양국의 칼끝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할수록 그 권력자들은 MBC를 압박했다. 그리고 그해 8월 일이 터졌다. MBC <PD수첩> 최승호 PD는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제작했으나, 김재철 사장은 ‘방송 보류’를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국책사업이자 천문학적 규모의 토목공사였던 4대강 사업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권 입장에서 사활을 걸고 막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논란 끝에 방영이 됐지만, 이미 그때 시사교양국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때부터 MBC 경영진은 노골적으로 조직개편을 압박하며,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흔들었다. ‘시사교양국’ 조직 전체가 타깃이 됐다. MBC 사측은 <후플러스>, <김혜수의 W>를 폐지했다. <후플러스>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가치를 가지고 만든 프로그램이었고, <김혜수의 W>는 심층적인 정규 해외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MBC 경영진은 해당 프로그램들에 일방적인 폐지를 통보했다. 

   
▲ MBC <후플러스> 홈페이지 캡처

그리고 MBC는 2011년 2월 조직개편에 돌입했다.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하는 조직개편안이었다. MBC 경영진은 조직개편의 이유를 ‘조직의 슬림화’를 들이댔다. 교양국을 폐지한 지금과 같은 논리다. 당시, 시사교양국 소속 PD들은 “시사교양국이 편성제작본부로 이동할 경우 <PD수첩>과 같은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경영진의 노골적인 간섭이 용이해지게 된다”, “편성본부장이 아이템 기획과 결정, 예산 확보 등에 직접 관여함으로써 제작의 완성도보다는 사측의 입김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시사교양국장 자리는 김재철 사장과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윤길용 씨에게 돌아갔다. <PD수첩>에 대한 직할통치의 시작이었다. 

윤길용 효과는 강력했다. <PD수첩>의 상징과 같던 최승호 PD가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인맥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망교회를 취재하던 중 최 PD는 갑자기 강제발령 났다. 그 후, 소망교회 취재는 중단됐고 관련 방송은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 이 때 최 PD와 함께 <PD수첩>을 만들던 제작진 11명 가운데 6명을 이후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났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사의 2라운드의 허망한 종료였다. 당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PD수첩 희석시키자는 게 솔직한 속내”라고 대놓고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3,…방송프로램 ‘직접개입’

이후에도 <PD수첩>의 수난은 계속됐다. 1차 조직개편을 통해 <PD수첩>을 편성제작본부로 이동시키고 최승호 PD등 유능한 PD들을 타 부처로 발령 낸 MBC는 급기야 프로그램 내용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시작했고, 소속 PD들에 대한 감시도 노골적으로 시행했다.

전성관 PD가 <PD수첩>의 코너 아이템으로 ‘MB 국가 조찬기도회 무릎 논란’을 방송하려했지만 막아섰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은 다만 “민감한 사안이다”, “헤프닝성 아이템”이라며 취재를 막았다. 민감한 사안을 다뤄야 할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민감성을 빼라는 지시였다. 문제는 취재중단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 시사교양국장은 전 PD를 취업규칙 위반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해버렸다. 이 밖에도 윤 시사교양국장은 <PD수첩>을 통해 ‘남북 경협 파탄 그 후’ 아이템을 방송하려던 이우환 PD와 '황우석' 편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눈물>을 제작한 한학수 PD를 각각 용인드라미아와 경인지사, 비제작 부서로 인사 발령했다. 갑작스런 인사였다.

   
▲ MBC스페셜 홈페이지 캡처

MBC 경영진들은 간섭은 이후 더 꼼꼼해졌다. MBC <MBC스페셜>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편 불방(2011년 6월)을 결정했다.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체제에서 ‘MB 무릎기도 사건’과 ‘남북경제협력 중단 1년’ 아이템에 이은 세 번째 불방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논란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해당 편 불방이 ‘경남 사천’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의 아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김재철 사장이 해당 지역구에서 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언론계에 파다할 때였다. 이후, 김 전 사장은 지난 4월 새누리당 사천시장 후보 경선에서 출마해 탈락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하게 완성돼 내부 시사회까지 거친 프로그램을 불방시킨 셈이었지만, 이후 김 전 사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사교양국 PD들에 대한 감시 사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같은 해 7월 <PD수첩> 담당 김철진 부장이 제작진의 노트북을 뒤적이고 책상을 열어보는 등 사찰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으켰고, 새누리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인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다룰 예정이던 방송은 경영진과 시사교양국장의 지시로 인해 상당 부분 수정되기도 했다. 회사의 이런 기류는 노동조합에 속해있던 이들은 물론 비조합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PD수첩> 김영호 PD는 한미FTA 아이템과 관련해 촬영까지 모두 마쳤지만 김철진 시사교양2부 부장의 반대로 방송이 무기한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1년 9월 14일에는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는 김보슬·송일준·이춘근·조능희 PD등 제작진을 재차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조능희PD와 김보슬PD에게 정직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가 달렸다.

MBC 시사교양국 수난4…‘시사’와 ‘교양’ 쪼개기 그리고 교양국폐지까지

MBC노조가 2012년 초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을 내걸고 파업에 들어간 사이 MBC는 2012년 4월 <PD수첩>이 속한 시사교양국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안(제2차)을 발표했다. 편성제작본부 아래 <PD수첩>이 속해있던 시사교양국은 보도제작국과 통합돼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됐다. 그리고 시사제작국장에 심원택, 교양제작국장으로는 김현종 씨가 각각 배치됐다.

심원택 시사제작국장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다루려 했던 국정원 아이템을 불방시킨 장본인으로 지속적으로 시사·고발 보도를 막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인물이다. 김현종 교양제작국장 또한 <PD수첩>을 망가뜨린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던 이였지만 회사는 오히려 보란듯 그들을 임명해 시사와 교양을 보는 시작을 과시(!)했다.

그리고 끝내 최승호 PD를 해고(2012년 6월)했다. 최 PD가 MBC노조 파업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적절한 해명도 듣지 않은 채 해고가 확정됐다. 그리고 PD를 넘어 시사교양국 내 작가들까지 손보기에 돌입했다. <PD수첩> 작가 해고사태가 벌어진 게 2012년 7월의 일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 길목을 끊고 핵심 인사들을 축출하며 MBC <PD수첩> 길들이기, 시사교양국 장악은 완성됐다. 그 결과 <PD수첩>의 위상은 말할 수 없이 쪼그라들었다. MBC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이지만 ‘돈’을 위해서는 언제든 방송시간을 내주어야했고, 연성 아이템으로 점철된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이 되었다. <PD수첩> 방영 시간에 철지난 영화가 틀어지기도 했고, 드라마 제작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됐을 때도 또 속절 없이 방송 시간을 내줘야 할 정도로 초라한 프로그램이 됐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교양제작국 해체 반대 피케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끝없이 이어지던 MBC의 ‘시사교양국’ 손보기는 안광한 사장 체제에 이르러 조직개편을 통한 아예 교양제작국을 해체해버리는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시사교양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하나의 ‘국’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 셈이다. MBC를 대표했던 교양 프로그램들이 사실상 전부 사라지게 됐다. <PD수첩>은 간판이 남을지도 불확실하지만, 남더라도 계속된 수난사 속에 이미 죽은 프로그램이 된지 오래다. 뭐가 더 남아있을까. MBC 경영진은 회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직원들을 아예 회사 밖으로 내쫓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기대는 너무 낭만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영방송이 교양국이 없앨 수도 있다는 걸 언제 상상이나 해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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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894년 갑오년 '일본 학살에 맞선 민중투쟁기'

 
 
'영원히 잊지 않는다' 우리는?
 
정찬희 기자 
기사입력: 2014/10/28 [10: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올해 2014년은 한국은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의 해다.

양반 기득권에 썩어문드러진 기득권을 지키려는 왕조와 세상을 개혁해보려는 아래로 부터의 혁명의 기운이 충돌, 그 와중에 왕조는 자국민을 치기위해 외세를 끌어들이고 관군까지 합세해 자국백성을 학살했다. 그것이 바로 1894년 우금치 전투이다.

 

중국의 1894년은 어땠을까?

그 일면을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에서 볼 수 있었다.

 

▲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 일본군은 중국으로 들어와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고 중국인은 저항했다    © 정찬희 기자

 

무력침탈의 야욕에 불탄 일본은 신식화력을 앞세워 조선과 중국에 진출했다.

일본은 중국 여순에서 수많은 학살과 양민수탈을 자행하여 2만명 이상의 인민을 학살하고 그 만행에 중국인들은 죽음을 불사한 강력한 저항으로 맞섰다.

 

중국여순의 만충묘 기념관은 일제의 만행에 순국한 이들의 무덤과 그 저항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기념관으로 수많은 일제의 만행과 그 저항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자주민보 독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내부의 전시모습을 일부 공개한다.

(원래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이나 플래쉬를 터트리지 않고 찍는 사진은 허용해주어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기념관 관계자들께 감사를 표한다.)

 

▲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는 사람들     © 정찬희 기자

 

입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문구는 '여순대도살(학살)' 이라는 표식이다. 

 

▲ 여순 대도살(학살)이라 적힌 표지판     © 정찬희 기자

 

일제의 만행은 잔인했다.

이 만행을 기념관의 사실적 그림들과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신식무기를 앞세워 진군하여 양민을 총칼로 학살하여 길가에 시체를 늘어놓았다.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제의 중국인 학살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     © 정찬희 기자

 

▲ 여순 만충묘 기념관 내 전시된 '일본군의 신랑살해, 신부겁탈' 장면 그림     © 정찬희 기자

 

하단의 그림은 민가에 들어와 신랑을 살해하고 신부를 겁탈하는 일본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2만수천명의 숫자조차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중국인이 일본군의 무력에 의해 도살(학살)당하고 중국인은 울분에 분노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일본의 무자비한 악행에 참지않고 일어났다.

 

▲ 변발을 한 남자가 일본군을 죽이는 모습을 담은 그림     © 정찬희 기자

  

 

▲ 일본군 진영에 침투에 몰래 우물에 독을 타는 중국인     © 정찬희 기자

 

침략자 일본군 진영에 몰래 침투해 식수 우물에 독을 타는 그림도 있었다.

학살자 일본에 대한 중국인의 뜨거운 분노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일제의 만행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중국인의 다짐     © 정찬희 기자

 

이 기념관의 한면에는 커다랗게 이런 글귀가 박혀 있었다. '永失不忘(영실불망)'

즉 '영원히 잊지 않겠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고 말한다.

일본이 용서를 구한적이 없음에도 '경제관계' 등의 관계를 이유로 용서하고 쉬쉬하자 한다. 심지어는 친일을 미화하는 이가 국무총리 후보가 되고 공중파 이사에 취임하고 있음이 떠오른다. 중국은 우리 못지 않게 일본과 많은 경제적 교역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보면 잊지 않는 것과 경제는 별개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올해는 갑오농민투쟁 12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이 같은해 일본에 의해 우리못지 않은 참극을 당했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 만충묘기념관 내 만충묘     © 정찬희 기자

 

중국 여순 만충묘 기념관은 여순 버스터미널(火車站 훠쳐짠) 인근 도보 1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참고로 여순 버스터미널에서 길을 건너 3번 버스를 타면 10여 분정도면 안중근, 신채호 선생 등이 순국한 여순일아감옥에 도착할 수 있다. 3번버스 종점이고 택시로는 기본요금거리. 여순감옥 또한 입장료 무료. 오후 3시 반 폐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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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통제권 영영 갖지 못하게 된 한국군

 
 
한호석의 개벽예감 <135> 과연 한국 독자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 가능할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10/27 [12:3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침략군이 강점하여 저들의 본거지로 사용하였던 용산기지를 8.15 해방 후에는 주한미국군이 자기들의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다.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자리잡고 있는 용산기지는 용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건물 1,245동이 들어찬 방대한 규모로 건설되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사용하는 용산기지 건물들 가운데 한 군데를 촬영한 것이다. 용산기지에는 미국군 2,500명, 미국군속민간인 1,000명, 미국군인가족 3,500명을 포함한 미국인 7,000명과 한국군지원단 소속 한국군 1,000명과 한국인 근무자 6,000명을 포함한 한국인 7,000명이 있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영구히 위임받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용산기지에 영구히 머물려고 한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집단자위권 틀어쥔 일본자위대와 작전통제권 상실한 한국군의 극적인 대조

 

국가 또는 교전단체가 폭발적인 형태로 무력을 사용하는 특수상황을 전쟁이라 한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흥하고, 전쟁에서 진 나라는 망한다. 동서고금 전쟁사는 전쟁의 승패여부가 국가존망을 결정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 전쟁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특수집단이 바로 군대다.


그러므로 군사력은 강해야 하고, 군대는 강군이어야 한다. 강군을 가진 군사강국은 국가주권을 지키며 안정과 번영의 길을 갈 수 있고, 전쟁이 일어나도 이길 수 있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평범한 이치인 것 같지만, 전쟁에서 이길 강한 군대는 처음부터 강군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건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전투력을 기르고 전법을 연마하는 어렵고 힘든 준비와 단련을 거쳐야 강군으로 장성하는 법이다.


군대를 강군으로 육성하려면 군대를 움직이는 권한 곧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지휘권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평시에 강군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이다. 지휘권과 강군육성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국군사령관과 외국군사령관이 지휘권(command authority)을 각각 절반씩 나눠가질 수 없는 것처럼, 한국군 지휘권도 한국군 합참의장과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절반씩 나눠가질 수 없다. 한국군 지휘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해야 마땅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사진 1>


현실이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군 지휘권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최고위급 지휘관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지휘권의 핵심부분인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 authority)을 완전히 장악, 행사하고 있다. 지휘권에는 작전통제권 이외에 다른 권한도 포함되지만, 작전통제권이 가장 중요한 핵심권한이므로 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은 사실상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


한국군 합참의장은 자신이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했으나, 전시작전통제권은 아직 환수하지 못했노라고 하면서 전작권 환수문제를 놓고 미국과 협의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에 관한 진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이 말장난처럼 들린다. 한반도 군사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대북방위태세(DEFCON) 3단계’로 진입하면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해오던 평시작전통제권이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넘어가는데, 그런 준전시상황이 아닌 평시에는 한국군 합참의장이 한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군 지휘부의 주장이고, 국민들도 그런 주장을 곧이듣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평시에 한국군 합참의장은 이른바 연합작전위임권(Combined Operational Delegated Authority, CODA)이라는 명목으로 자기의 평시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한다. 연합작전위임권이란 말 그대로 한국군과 미국군의 연합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당연히 행사하는 미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므로, 연합작전위임권이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한다는 뜻 이외에 다른 뜻이 아니다. 이처럼 위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전시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평시에도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해야 할 작전통제권을 자신이 행사한다.


원래 평시작전통제권이란 정찰정보체계를 관리하고, 지휘통신체계를 운용하고, 작전계획을 세우고, 실전연습을 실시하는 권한인데, 그런 모든 권한이 평시에도 연합작전위임권을 장악한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넘어가 있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이처럼 평시에 정찰정보관리권, 지휘통신체계운용권, 작전계획권, 실전연습권을 전반적으로 장악하고 있으므로, 그런 그가 전시에 한국군을 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동원권과 전쟁수행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위와 같은 사실을 살펴보면, 한국군 합참의장이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작전통제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국가주권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는 나라도 없고, 국가주권의 핵심인 작전통제권을 다른 나라에게 넘겨주는 나라도 없다. 작전통제권 이양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이웃나라 일본에도 주일미국군이 주둔하지만, 일본자위대의 작전통제권은 자위대 통합막료장이 행사한다. 다만 미국군과 일본자위대가 합동훈련을 실시할 때 또는 전시에 미일연합작전을 수행할 때 자위대 통합막료장은 미국군사령관에게 일본자위대의 작전통제권을 일시적으로 넘겨준다. 일본에는 연합작전위임권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연합작전위임권과 전시작전통제권을 모두 장악하고 그 권한을 일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행사하게 되어있다. 지난날 건군 당시에는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작전통제권이 있었는데, 6.25전쟁 중에 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한 것이 아니라, 한국군은 건군 당시부터 작전통제권이 없는 ‘기형아’로 태어난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발표된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군과 한국군은 평시에 한미연합참모단을 편성하여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평시에 한미연합참모단을 통해 한국군을 지휘통제하게 될 것임을 말해준다. 또한 위의 공동성명에 따르면, 한미연합참모단 직속으로 한미연합사단을 편성하여 운영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결정은 평시에나 전시에나 한국군 합참의장이 작전통제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게 만들어놓은 기존 결정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국군이라는 군대는 있는데 한국군 합참의장은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했고, 작전통제권이 없으니 전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자위대는 작전통제권을 주일미국군사령관에게 위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본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까지 틀어쥐는 판인데, 그와는 정반대로 한국군은 작전통제권마저 갖지 못했다. 바로 이것이 미일동맹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미동맹의 치욕적인 실태다.


북은 작전통제권도 없고 전쟁도 할 수 없는 기형군을 ‘괴뢰군’이라 조롱하고 있으니, 한국군으로서는 치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치욕적인 현실에 무관심한 이 땅의 국민들은 군사권도 없고 전쟁도 하지 못하는 기형군에게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내맡기고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무지야말로 불행과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라는 말은 그런 사례에서도 진실로 드러난다.


어떤 얼빠진 사람은 한국군이 너무 허약하니까 강대한 미국군에게 작전통제권을 위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강변하지만, 그런 발상이야말로 상전에게 자기 운명을 내맡기는 하수인의 굴종적 발상이 아닌가. 작전통제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작전통제권을 가져야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력을 기르고 전법을 연마하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강군으로 장성할 수 있는 것이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만일 북이 작전통제권을 소련에게 내맡겨, 핵무력을 가진 소련군이 조선인민군의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정전협정 체결 이후 40년 동안 군사분계선을 지켜주었다면 북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련과 서독의 정치적 흥정물로 전락하는 바람에 소련군이 철군하자마자 망해버린 동독의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남측 정부가 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내맡겨, 핵무력을 가진 미국군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60년 동안 군사분계선을 지켜주었으니, 과연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과 미국의 대결에서 패퇴한 미국이 미국군을 철군할 때 남은 동독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사진 2>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를 진행하였다. 그 회의에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 행사하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반환하는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무기연기가 아니라 영구위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군사주권 포기로 한국군은 작전통제권을 영영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명목상 군사주권 돌려주겠다는 제안 사절하고 사실상 영구위임 택한 박근혜 대통령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지난 10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 행사하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반환하는 시점을 또 다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진 2> 이러한 재연기 사안은 지난 10월 10일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한미국방통합협의체(KIDD) 회의에서 이미 합의된 것이다. 매달 한 차례씩 열린 그 회의에는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데이빗 헬비(David Helby)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해왔다.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는 지난 10월 10일에 진행된 한미국방통합협의체 회의의 재연기 합의사항을 양측 국방장관이 공식문건으로 서명하고 외부에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재연기 결정에서 문제로 되는 것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주한미국군사령관으로부터 한국군의 전작권을 환수하는 시점이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환수시점을 명시하였는데, 박근혜 정부는 왜 명시하지 않았을까?


<세계일보> 2014년 5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25일 서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2015년으로 연기해놓았던 전작권 반환환수시기를 또 다시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간청을 들어주면서, 오는 2018년에 전작권을 반환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돌려주겠다는 전작권은 명목뿐인 전작권이지 실질적인 전작권은 아니다. 평시에도 그렇지만 전시에도 한미연합군은 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전작권을 돌려받아도 그것은 명목뿐인 전작권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10일에 진행된 한미국방통합협의체 회의에서는 전작권 반환환수시점을 명시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비록 명목뿐인 전작권이나마 한국군의 전작권을 어느 특정시점에 반환해주겠다고 하였는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제의를 정중히 사절하였음을 말해준다.


대통령 재임 시기에 전작권을 조기환수하려고 애썼던 노무현 대통령은 전작권을 반환환수하는 문제를 2006년 9월 16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쉬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합의하였고, 그에 따라 2007년 2월 23일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양측은 2012년 4월 17일에 전작권을 반환환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 반환환수시점을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였고,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은 반환환수시점마저 명시하지 않는 수법으로 전작권을 영구위임한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Chuck Hagel) 국방장관이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전작권 반환환수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에 대해 남측 언론매체들은 그것이 전작권 반환환수를 무기한 연기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지만, 그것은 무기연기가 아니라 영구위임이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반환하겠다고 하는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고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현 상태로 영구히 위임한 것이다.


군사주권을 돌려주겠다는 데도 그 제안을 사절하고 영구위임을 택한 박근혜 대통령의 처사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0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원은 전작권 반환환수시점을 명기하지 않은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군사주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권포기행위는 대통령의 사과발언으로 간단히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주권수호책임을 방기한 것은 대통령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며 헌정질서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므로 탄핵을 받아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다른 나라 국회라면 그처럼 헌정질서를 훼손한 무자격 대통령에게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을 것인데, 기이하게도 이 땅의 국회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언제나 오가는 말이 넘쳐나 말싸움으로 번지는 국회가 정작 한미관계에 관련된 중대현안이 부각되면 미국의 눈치나 살피면서 할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핑계를 대면서 비난여론을 무마하려고 한다. 그들이 꺼내놓은 핑계는 한국군이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어야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을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전작권 환수조건이란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대남공격위험을 사전에 탐지하는 능력, 공격개시가 임박한 조선인민군을 선제타격하는 능력,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을 막아내는 방어능력을 한국군이 갖추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사전탐지능력과 선제타격능력을 실체화한 한국군의 작전체계가 대북선제타격체계인 ‘킬 체인(Kill-Chain)’이고, 그런 미사일방어능력을 실체화한 한국군의 작전체계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을 완료해야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영구위임을 위해 꺼내놓은 핑계인 것이다.

 

▲ <사진 3> 한국군은 2020년대 중반까지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거기에는 북측 전역을 감시할 정찰위성 5기를 보유하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정찰위성이 없으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지 못한다. 위의 사진은 미국이 운용하는 정찰위성 라크로스/아닉스(Lacrosse/Onyx) 레이더 정찰위성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측의 기술수준으로는 앞으로 10년 안에 정찰위성을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2020년대 중반까지 구축되지 못할 것임을 말해준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한국군은 2020년대 중반까지 탐지능력과 타격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지난 10월 23일에 발표된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따르면, 한민구 국방장관은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2020년대 중반까지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재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그처럼 자신 있게 발언할 수 있었던 까닭은, 미국이 ‘킬 체인’ 및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을 소문 없이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CMCC)를 통해 한국군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기술정보를 넘겨주는 한편, 한국군의 ‘킬 체인’ 및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을 통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는 2012년 말에 결성되어 해마다 두 차례씩 진행되어왔다.   2013년 11월 25일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M.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서울에서 열린 육군협회 초청강연에 출연하여 북의 미사일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국군과 한국군이 공동으로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를 결성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한민구 국방장관이 자신 있게 말한 것처럼, 한국군은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과연 2020년대 중반까지 구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판단하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킬 체인’의 사전탐지능력을 보유하려면, 북측 전역을 감시할 정찰위성 5기를 쏘아올려야 하며, 미국산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를 수입해야 하며, 중고도무인정찰기를 자체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 위와 같은 여러 감시수단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찰위성이다. 정찰위성이 없으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군이 정찰위성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를테면, 2013년 10월 6일 국회는 국방부가 제출한 예산청구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정찰위성 연구개발하기 위한 기본계획이 없다는 이유로 그 부문에 청구한 예산 20억원을 삭감하였다. 기본계획도 없으면서 예산만 타내려고 하다가 청구예산마저 삭감당한 국방부가 정찰위성 5기를 2020년대 중반까지 자체 기술로 개발하려는 것은 능력도 없이 의욕만 앞세운 행동이다. 2013년 7월 31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우주개발중장기계획안을 발표하면서 2040년까지 위성운반로켓과 고성능 지구관측위성을 자력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방부보다 더 현실에 가까운 발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사실상 정찰위성으로 기능하는 레이더위성 2기와 광학위성 2기밖에 갖지 못했는데, 위성개발기술수준이 일본보다 훨씬 뒤진 남측이 앞으로 10년 안에 정찰위성 5기를 자체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진 3>


심각한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한국군은 지상이동표적을 감시할 최첨단장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설령 정찰위성을 보유한다고 해도 지상고정표적만 감시할 뿐 지상이동표적은 감시하지 못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 자행발사대를 기동시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임의의 방향으로 발사할 전술미사일을 한국군의 ‘킬 체인’이 사전에 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지난 10월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서 육군대장 출신인 백군기 국회의원은 “이동표적 감시능력이 없는 ‘킬 체인’은 반쪽짜리”라고 비판하였다. 


지난 3월 말 한국군은 미국산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4대를 8,890억원에 수입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2012년에 글로벌 호크 4대를 1조3,000억원에 한국군에게 팔겠다고 하였다가, 8,890억원으로 깎아주는 대신 미국군이 사용하는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기능삭제형 글로벌 호크를 판매하려는 것이다. 그런 기능삭제형 고고도무인정찰기를 수입하면 북측 전역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은 한미미사일지침에 따라 한국군이 탑재중량 500kg 이상의 미사일과 무인정찰기를 만들거나 보유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기체무게가 많이 나가는 고고도무인정찰기를 개발하고 싶어도 개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2006년부터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기체무게가 500kg 미만인 중고도무인정찰기를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거기에 장착할 적외선영상장비, 합성영상레이더, 통신장비를 한미미사일지침의 중량제한규정에 맞게 개발해왔다. 개발비용으로 1,800억원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 2012년에 미국은 기체무게만이 아니라 비행연료무게까지 포함시켜 500kg 이상의 무인정찰기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남측 국방부에 통보하였다. 중고도무인정찰기의 비행연료무게는 200kg이나 되는데, 미국의 요구대로 비행연료무게를 제외한 기체무게를 300kg 이하로 줄인 중고도무인정찰기는 미국에서도 만들지 못한다. 명백하게도, 미국은 한미미사일지침에 대한 억지해석을 들이대면서 한국군의 중고도무인정찰기 개발사업을 중도에서 금지시킨 것이다. 미국의 금지에 가로막힌 남측 국방부는 하는 수 없이 미국산 중고도무인정찰기를 수입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자국산 중고도무인정찰기를 한국군에게 판매하려고 억지를 부려 한국국방과학연구소의 중고도무인정찰기 개발사업을 중지시킨 것이다.

 
둘째, ‘킬 체인’의 선제타격능력을 보유하려면, 사거리 500~800km의 지대지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야 하며, 수출가격이 한 발에 33억 원이 넘는 사거리 500km의 토러스(Taurus)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을 수입해야 하고, GPS유도폭탄과 중거리공대지유도폭탄을 개발해야 하고, 한국군이 보유한 사거리가 가장 긴 현무-2 탄도미사일의 성능을 개량해야 한다. 이를테면, 2013년 10월 6일 국회는 국방부가 제출한 예산청구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장거리공대지미사일을 수입하기 위해 청구한 예산 877억원을 400억원으로 삭감하였고, GPS유도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예산에서 103억원, 중거리공대지유도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예산에서 97억원, 현무-2 미사일의 성능을 개량하기 위한 예산에서 150억원을 각각 삭감하였다. 이처럼 예산을 삭감당하는 처지이므로 ‘킬 체인’의 타격수단들을 수입 또는 개발하는 사업이 불가피하게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2014년 4월 4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사거리가 500km이고 탄두무게가 1t인 신형 탄도미사일이 성공적으로 시험발사되었다. 사거리가 300km이고 탄두무게가 500kg인 현무-2의 기존 성능을 개량하여 만든 이 신형 미사일은 현무-3인데, 2017년부터 작전배치될 것이라고 한다. ‘킬 체인’의 여러 타격수단들 가운데 현무-3 미사일만 계획대로 작전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이 사진은 2013년 7월 27일 북의 전승절 군사행진에서 5축10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이동하는 화성-7호를 촬영한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핵탄두를 탑재하여 운용하는 화성-7호는 마하 7을 넘어서는 극초음속으로 날아가는데, 그처럼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는 물체를 요격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격미사일부문에서 가장 앞섰다는 미국에게도 그런 기술은 없다. 그런데도 한국군은 미국에서 값비싼 군사장비들을 수입해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공격을 막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허풍으로 들린다.     © 자주민보, 한호석 소장 제공


셋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려면, 요격고도가 40km인 미국산 미사일요격체계인 페이트리엇(PAC)-3을 수입해야 하고, 중거리지대공미사일(M-SAM)을 개발해야 하는 것은 물론 고도 60km 이상의 고공에서 비행표적을 요격하는 장거리지대공미사일(L-SAM)도 개발해야 한다.


지난 4월 28일 한국방위사업청은 미국산 페이트리엇-3을 2016년 말부터 2020년 말까지 기간에 수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수입하기로 결정된 페이트리엇-3의 수량은 100발 미만이다. 그런데 페이트리엇-3은 5축10륜 자행발사대에서 쏘는 북의 핵타격미사일 화성-7호를 요격하지 못한다. 지난 6월 19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화성-7호의 비행속도가 마하 7 이상이어서 페이트리엇-3으로는 “요격하기 쉽지 않다”고 밝힌 바 있는데, 요격하기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요격하지 못한다. 마하 5부터 마하 10에 이르는 범위의 비행속도는 극초음속(hypersonic)이라 하는데,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는 물체를 요격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4>


지금 남측의 기술로는 중거리지대공미사일과 장거리지대공미사일을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남측의 경우 미사일부문의 국산화율은 2012년을 기준으로 77%인데, 나머지 23%에 해당하는 핵심기술을 다른 나라들에서 수입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남측 정부는 러시아로부터 중거리 및 장거리지대공미사일 기술을 수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자기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한국군을 끌어들이려 애쓰는 미국은 남측이 러시아의 미사일기술을 수입하여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독자적으로 수립하려는 것을 중지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넷째, 남측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17조원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8년 동안 해마다 2조1,250억원씩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무사령관 출신 송영근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지난 10월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합참본부 국정감사에서 합참본부와 방위사업청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이 북의 ‘비대칭위협’에 맞서기 위해 이미 지출한 경비는 14조원을 넘었고, 앞으로도 25조원 이상 지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이 그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을 군비증강사업에 집중투입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위에서 언급한 국정감사에서 송영근 국회의원은 그처럼 막대한 예산을 지출해도 북의 비대칭위협을 “제대로 막아내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군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2020년대 중반까지 구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2020년대 중반까지 킬 체인과 KAMD를 완성한다는 것은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였다. 만일 상상을 초월한 어떤 ‘기적’이 일어나 한국군이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2020년대 중반까지 구축한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실전에서 별반 쓸모가 없는 군사장비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그렇게 판단하는 까닭은 정찰위성으로는 자행발사대(TEL) 기동상황을 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사일을 탑재한 조선인민군 전략군 자행발사대들이 북측 산악지대 지하갱도기지들에서 불시에 동시다발로 출동하여 임의의 장소로 각각 이동한 뒤에 신속하게 미사일을 발사하는 징후를 사전에 탐지하는 것은 미국군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군 고위지휘관들은 자기들이 첨단미사일조기경보체계를 가지고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탐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군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한국군이 해보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으니 황당하게 들린다.


그보다 더 황당하게 들리는 것은, 미사일발사가 임박한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선제타격하기 위해 ‘킬 체인’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24일 스캐퍼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이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이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고 말한 사실에서 드러난 것처럼 북이 보유한 핵무력은 매우 강력하다. 그런데 핵무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한국군이 강력한 핵무력을 가진 조선인민군 전략군을 공격하겠다고 하니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지 의심하게 된다. 설령 한국군이 먼저 미사일 몇 발을 쏘았다고 하더라도,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자기들을 먼저 공격한 한국군을 전술핵탄으로 몰살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그런 점에서, ‘킬 체인’은 한국군에게 ‘살상의 사슬(Kill-Chain)’로 되돌아갈 위험이 매우 높다. 한국군의 대북선제타격이 핵재앙을 자초하는 집단자살로 보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번에 발표된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 따르면, 한국군이 “핵심군사능력을 구비하고, 한반도 및 역내안보환경이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할 때 전작권이 대한민국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장한다고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 공동성명에서 말하는,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이란 위에서 언급한 ‘킬 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뜻한다.


그런데 위의 공동성명에서 주목할 점은, 한반도 및 역내안보환경이 전작권을 안정적으로 반환환수할 수 있을 만큼 변화되었을 때 전작권을 반환환수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전작권을 안정적으로 반환환수할 수 있을 만큼 변화된 한반도 및 역내안보환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공동성명에서는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양 장관은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이의 확산활동을 포함한 정책과 도발이 지역안정 및 범세계 안보와 비확산체계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한미 양국의 확고한 인식을 재강조하였다”고 명시한 것을 보면, 미국이 ‘북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상황, 다시 말해서 미국이 북의 핵무력을 제거하는 상황이 그들이 말하는 전작권을 안정적으로 반환환수할 수 있는 안보환경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이 북의 핵무력을 제거하려면 북을 항복시켜 북의 정권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현 시기 북미관계나 북의 내부사정을 각각 살펴보면 그런 일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현실은 미국의 그런 전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최근 북은 조국통일대전에서 승리하여 미국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최종준비를 완료하였는데, 이것은 북미관계와 한반도정세가 미국의 전망과는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의 핵무력을 제거하려는 미국은 현실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망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9일에 나온 ‘조선중앙통신사 론평’은 “우리가 때리면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구실 없이 얻어맞아야 하며 침략의 크고 작은 본거지들은 불바다가 되고 재더미가 될 것이라는 것과 함께 우리의 자위적 억제력이 그렇게 만들 만단의 준비태세에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내외에 천명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북이 공격징후를 드러내지 않고 불시에 몰아칠 조국통일대전의 거대한 열핵폭풍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날려보낼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런 망상에서 깨어나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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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전국 모든 운행 차량 실시간 감시시스템 구축했다

등록 : 2014.10.26 20:08수정 : 2014.10.26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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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도로 CCTV 6천여대에서
차량 번호 실시간 전송받아
전국민 이동 경로 추적 가능
수사권 남용·사생활 침해 심각
경찰청 “시험 운영 중단”

경찰이 전국 도로에서 운행중인 차량을 자동 식별·감시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시험운영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권 남용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막을 안전장치 없이 시스템이 구축돼 ‘도로 위 실시간 사찰’이라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수배차량 검색체계 개선사업’ 자료를 보면, 경찰은 차량번호 자동 수집이 가능한 전국의 차량방범용 카메라 5929대에 찍히는 차량정보를 경찰청 서버로 실시간 전송하는 시스템을 지난 3월 구축하고 7월까지 4개월 동안 시험운영까지 했다. 경찰이 전송받은 차량정보를 미리 입력해놓은 차량번호와 자동 비교·판독한 뒤 수배·도난 차량 등으로 확인되면 지역 경찰에 곧바로 ‘모바일 검문 지령’이 내려가게 된다.

 

 

경찰은 1992년 실시간 검색과 현장 검문소를 연결한 시스템(AVNI)을 도입해 서울 9곳을 포함해 전국 주요 길목 76곳에서 가동하며 해당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의 사진을 촬영하고 차량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여기에 경찰이 구축한 새 시스템을 가동하면 각 지자체 관제센터에서 보관 중인 동영상까지 더욱 쉽게 검색할 수 있어 차량 이동 상황 파악이 수월해진다. 차량정보는 최소 석 달 이상 저장할 수 있으며, 차량번호만 입력하면 과거·현재의 이동 경로와 탑승자 영상까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진 의원은 “기존 시스템이 작동하는 76곳에서 한 달 동안 수집되는 차량정보는 2300만건에 달한다”며, 새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면 차량 이동 감시가 사실상 무제한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찰은 살인·강도·성폭력·납치·절도 등 범죄 수사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새 시스템에서 개인정보 오·남용을 막기 위해 접속자 로그 기록을 주기적으로 관리하도록 했지만 조회 권한을 누구에게, 어떤 범죄 혐의에 한정해,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시스템 구축 주무 부서인 경찰청 정보통신담당관실은 “인권침해 우려가 있어 시험운영을 중단하고 구체적인 운영 방법을 수사 부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카카오톡 사찰 논란에서 보듯 ‘투망식’ 사찰이나 수사에 악용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진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경찰은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 당시 업무방해 혐의로 수배된 노조 간부의 행적을 찾겠다며 기존 수배차량 검색 시스템을 통해 노조 간부 친인척들의 몇 달치 차량 이동 정보까지를 추적했다.

 

진 의원은 “일반 국민들의 차량운행 정보를 영장도 없이 수집하는 것은 헌법이 정하는 영장주의에 어긋날 뿐 아니라 심각한 사생활 침해다. 경찰은 국민들의 차량을 사찰하는 수배차량 검색체계 도입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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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분열하는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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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시 창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김성일(왼쪽) 창원시의원이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구단 전용구장 후보지 이전을 결정한 안상수(오른쪽) 창원시장에게 날달걀을 던지고 있다. 박재현(가운데) 창원시 제1부시장이 팔을 뻗어 막았으나, 안 시장은 2개의 달걀 가운데 첫번째 달걀을 오른팔에 맞았다. 경남신문 제공

지난달 16일 김성일(69·진해 너) 경남 창원시의원은 창원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안상수(68) 창원시장에게 날달걀 2개를 던졌다. 안 시장은 오른팔에 첫번째 달걀을 맞고 전치 2주 부상을 당했다.

이 장면은 언론 보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눈요깃감이 됐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여당(한나라당) 대표까지 지낸 안 시장은 왜 시의회에서 달걀을 맞았을까?

지난달 4일 안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구단 전용구장 후보지를 경남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 옛 육군대학 터에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마산종합운동장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달걀 투척은 야구장을 다른 지역에 빼앗기게 된 진해 출신 시의원의 ‘응징’이었던 셈이다.

김 의원이 달걀을 던질 당시 창원시의회 앞엔 야구장 후보지 이전에 반대하는 진해지역 주민 수십명이 몰려와 항의하고 있었다. 달걀 투척 다음날인 17일 창원시 간부공무원 27명은 김 의원을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경남지방경찰청에 고발했고, 김 의원은 지난달 30일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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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야구에 열광하는 도시라서 ‘야도’라고까지 불린다. 그렇다고 과연 창원시민은 프로야구 앞에선 폭력도 서슴지 않을 만큼 비이성적인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다. 여기에 동의할 창원시민은 아무도 없다. 이번 ‘달걀 투척사건’을 창원시민 대부분은 “의회 내 폭력은 드러난 현상일 뿐, 본질은 통합 창원시 어거지 출범의 후유증”으로 이해한다. 달걀 투척사건 직후 창원시의회가 옛 창원과 진해 분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만 봐도 통합 창원시 출범 그 자체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정부가 예산 지원 등을 내세워 경남 창원·마산·진해 등 3개 시의 통합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해당 지역 많은 시민들은 통합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통해 통합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0년 7월1일 통합 창원시 출범 때까지 주민투표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경남도의회와 창원·마산·진해 시의회에선 절대다수인 한나라당 의원들끼리 통합을 밀어붙였다. 한나라당 의원들과 비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의회 앞은 성난 군중으로 들끓었다.

당시 정부는 전국 여러 곳에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했으나 유일하게 창원·마산·진해 통합만 성사시켰고, 이를 두고 ‘주민자율형 통합’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지난 7월1일 충북 청원군과 청주시가 합친 통합 청주시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축사에서 “통합 청주시 출범은 지방자치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 주민이 자율적으로 통합을 이룬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통합 창원시는 ‘주민자율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엔 ‘어거지 통합’의 후유증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통합 창원시는 국회의원 선거구에 맞춰 5개 행정구를 설치했다. 구청장은 창원시장이 임명한다. 마산지역의 2개 행정구는 ‘마산’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옛 마산시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라는 어색한 이름을 갖게 됐다. 고속열차가 서는 역은 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 등 세곳이나 된다.

통합 결정 직후인 2010년 2월 ‘창원·마산·진해시 통합준비위원회’는 통합시 이름과 시청 위치, 통합에 따른 정부 지원금 분배 등의 문제를 주민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창원·마산·진해 주민 2000명씩 모두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통합시 이름을 ‘창원시’로 결정했다. 시청 위치는 당분간 창원시청을 임시청사로 사용하되, 마산의 마산종합운동장과 진해의 옛 육군대학 터를 공동 1순위, 창원의 육군 39사단 터를 2순위로 정해 통합시 출범 이후 확정하기로 했다. 정부 특별교부세는 마산과 진해가 40%씩, 나머지 20%를 창원이 갖기로 했다.

그러나 통합 창원시 출범 이후, 창원시의원들은 창원·마산·진해 등 소지역주의로 갈려 몸싸움을 벌이는 등 마찰을 빚었고, 시청 위치 관련 약속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2월 창원시의회는 ‘창원시 청사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회’를 만들어 백지상태에서 이 문제를 재검토했고, 지난해 4월23일 ‘창원시청 소재지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가결해, 통합 창원시 임시청사로 사용하던 옛 창원시청을 통합 창원시 청사로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애초 약속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었다. 이 과정에 옛 창원과 진해 지역 창원시의원들이 힘을 합쳤고, 그 결과로 엔씨 다이노스 프로야구단의 전용구장 위치가 진해의 옛 육군대학 터로 결정됐다.

야구장 후보지 발표와 동시에 잘못된 결정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창원시는 3단계 용역조사를 거쳐 야구장 후보지를 결정했는데, 11곳을 추린 1차 후보지에서 옛 육군대학 터는 꼴찌를 기록했다. 접근성과 이동성 등 평가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종 평가에선 1차 평가에서 1등과 2등을 차지했던 창원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과 마산종합운동장 옆 공터를 모두 꺾고 최종 후보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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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

야구장 후보지 결정에 관여한 창원시 한 간부는 “창원시가 프로야구단을 유치한 것은 통합 창원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야구장을 진해에 건설하면서 도로를 신설하거나 확장하면 접근성과 이동성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낙후된 진해지역의 발전도 함께 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옛 마산시민들은 “시청에 이어 야구장까지 빼앗겼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마산지역 창원시의원들은 ‘통합 창원시에서 구 마산시 분리 건의안’을 시의회에 냈다. 한국야구위원회도 “옛 육군대학 터는 새 야구장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 새 야구장은 옛 창원이나 마산에 건립돼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엔씨 다이노스 구단도 “옛 육군대학 터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한 과정의 타당성·공정성·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창원시에 새 야구장 입지 변경을 요청했다.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7월1일 취임한 안상수 창원시장은 지난달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야구장 후보지를 마산종합운동장으로 옮기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마산종합운동장은 엔씨 다이노스가 임시구장으로 사용하는 마산야구장에 인접한 시설로, 마산회원구청이 입주해 있다.
이번엔 진해지역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창원시는 지난 8일 옛 육군대학 터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진해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김성일 창원시의원이 안상수 시장에게 달걀을 던진 것도 진해지역 시민들의 상실감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었다.

갈수록 증폭되는 통합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라도 주민투표를 하자는 여론이 최근 강하게 일고 있다. 박춘덕 창원시의원은 다음달 6일 창원시의회 임시회에 ‘통합 창원시 정당성 확보를 위한 지역별 주민투표 실시 건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건의안 자체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김성일 의원과 유원석 의장을 제외한 전체 창원시의원 41명 가운데 이미 35명이 서명했다. 창원진보연합 등 창원지역 28개 시민단체도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통합 창원시 찬반 주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차윤재 마산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은 “달걀 투척 등 최근 몇 년 동안 창원시의회에서 일어난 모든 의회 폭력은 통합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강제적으로 통합 창원시를 출범시켰고, 가장 중요한 시청 위치 관련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한다면 다시 분리하자고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 뻔한 결과를 보기 위해 주민투표까지 할 바에는 차라리 창원지역 국회의원 5명이 협의해 통합 특별법을 개정함으로써 국회 차원에서 예전의 3개 시로 되돌리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호 창원진보연합 대표도 “야구장 문제는 통합 갈등이 드러난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반강제 통합에 따른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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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정세현 "박정희의 피맺힌 '자주국방', 그 딸이…"

[정세현의 정세토크] "전작권 전환 무기한 연기는 '갑오보호조약'"

 
이재호 기자(정리) 2014.10.26 15:39:06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 대해 군사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행위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은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다"며 씁쓸해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905년 일본과 맺은 을사늑약을 거론하며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 지금은 또 다르기 때문에", 즉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대중, 대북한 외교에서 한국의 입지는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이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하는 수순을 밟아갈 것으로 보여,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 전 장관은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것"이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중국이 실력 행사를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진단했다. 
 
북한과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도발을 저지른 이후 전작권이 있는 미국에게는 바로 사과했지만 남한에게는 큰 이익이 걸려있지 않은 이상 사과한 적이 없다. 정 전 장관은 "만약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사과한다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꼴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한 이유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크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이 8억 1000만 달러,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다"라며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이다. 그 많은 국방비는 다 어디에 썼나?"라고 반문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이 위협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본다"며 2002년 부시 정부가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유통시킨 사례를 들었다. 미국에서 이야기가 돌면 그것이 곧 실체적 진실이 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것"이라며 야당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박인규 대표와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23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연례협의회의(SCM)에서 한미 양국 정부는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권 전환'에 합의했는데요. 따로 기한을 정하지 않고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겁니다. 이로써 당초 2012년으로 예정됐던 전작권 환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다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이번 결정이 한국의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정세현 : 이번 결정으로 군사주권 환수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군사주권, 경제주권, 외교주권이 있는데, 한 나라의 외교는 사실상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력은 장비와 병력 외에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군을 통제할 수 없다면 군사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바로 이러한 군의 '통제권'을 미국에 무기한 맡겨버린 겁니다.
 
조선 조 말 이완용 등 조정 대신들이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주권을 일본에 넘겼습니다. '늑약'은 일본이 우리에게서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뜻인데, 일본은 '보호조약'이라고 말해왔지요. 1894년 갑오년에 민족자주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갑오 농민혁명'이 일어났었는데, 그로부터 120년 후 오늘, 2014년 갑오년에는 우리 정부 장관들이 자진해서 미국에 군사주권을 무기한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905년 일본이 힘으로 외교주권을 빼앗아갔던 경우와는 또 다른 것이죠. 미국은 전작권 찾아가라고 하는데 우리가 매달려서 맡겼으니까 '늑약'은 아니고, 한국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사주권을 갖고 있기로 했으니 '갑오 보호조약'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1905년 일본에 외교주권을 뺏기기 전 우리는 이미 경제주권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일본 교관들한테 받다 보니 군사주권도 일본에 뺏긴 것이나 다름없었죠. 이렇게 군사주권이 넘어가면 국가 운영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외교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군사주권을 미국에게 무기한으로 맡긴 이번 결정으로 우리 외교의 운신 폭이 대단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지 않은 이유로 북핵 위협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이 위협이 없어지거나,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이 완비되면 전작권을 환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위협에 대비하는 군사적 예방책은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구축, 그리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들어가는 도입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사드 배치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추 대사는 사드를 두고 "북핵 대응이 아니라 한반도를 훨씬 넘는 범위를 커버한다"면서 우려를 표명했죠. 즉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겁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와 KAMD, 킬체인, 사드 배치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대북억지력을 강화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중 간 외교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게다가 중국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계기로 한미일 정보공유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를 무대로 국제정치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일단 동아시아만 자신의 세력권 아래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태평양 가운데나 유럽 어딘가에 있다면 중국이 그러든 말든 상관없지만, 우리와 중국은 같은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는 국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웃나라 한국이 중국의 인중(人中: 코와 입 사이의 급소)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국이 우리를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경제입니다. 중국이 한중경제관계에서 실력 행사로 나오면 우리는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즉 대중 경제외교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가인 데다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대중 교역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이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 함께 대중국 봉쇄에 나서는 것으로 비쳐지면 중국은 경제 분야에서 압박카드를 쓸 겁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합니다. 전작권을 환수하기 위한 '조건'이 결국 미국의 대중국 압박 및 포위 전략의 일환이 된다는 생각은 못하고, 북핵 위협 핑계를 대면서 아직 전작권을 찾아올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건, 바둑 용어로, 패착(敗着)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과 관계에서도 남한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으로 남북 간 군사문제가 터지면 북한은 전작권도 없는 남한정부를 상대로 웬만해서는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에는 좀 다르겠지요. 즉 사과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챙겨야 할 큰 이익이 없어지는 상황이 된다면 몰라도. 예를 들어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터졌을 때, 당시 북한은 쌀과 비료를 챙겨가야 했기 때문에 장관급 회담 수석대표가 통일부장관 앞으로 사과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이나 1975년 8월 15일 문세광 사건,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북한은 사과는커녕 잡아떼기로 일관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은 대신 전작권이 있는 미국과는 사건 발생 즉시 협상을 하거나 사과도 했습니다. 김신조 사건 이틀 후 발생한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때 북한은 바로 미국과 협상했습니다. 물론 그건 미국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고 미국이 먼저 제안은 했지만, 아무튼 미국과는 그런 식으로 합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도 김일성 주석이 미국에 직접 사과했었죠. 북한은 미국을 '화가 나면 바로 군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한은 화나게 만들어도 미국의 허락이 없으면 북한에게 결정적인 군사적 대응조치를 할 수 없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실제 1996년 9월 18일,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북한은 사건 이후 100일 만에 남한이 아닌 미국에 사과했습니다. 그때 제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했었는데 우리 대통령과 나라가 참 처량하게 보이더군요. 북한이 우리 바다에 침투해서 우리 땅에 올라와 총격전을 벌였고, 우리 군에서 조사하고 결과 발표했는데 정작 사과는 미국에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은, 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에 환수 받았지만 사실상 진짜 지휘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작권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죠. 
 
북한은 자신들의 도발에 대해 사과할 때 주어를 명시하지 않고 얼버무립니다. "OO사건이 일어난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필요에 따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이같은 방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만약 이런 식의 사과마저 군사문제라는 이유로 미국에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만약 그리된다면 우리는 완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통수권은 인사·재정 등 군정권과 작전지휘 등 군령권으로 구성되는데, 이번 일로 앞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인사권만 있고 군 지휘권은 없는 거나 다름없이 됐습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군정권은 국방부 장관이,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집행하는데, 대통령이 합참의장에게 지시를 해도 합참의장은 ‘협의’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주한미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6.25동란이 터진 지 40일 만인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 모자를 쓴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넘긴 이후 그래 왔습니다. 그걸 노무현 정부가 2012년 4월 17일에 찾아오게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2015년 말로 연기시켜서 안타까웠는데 박근혜 정부는 한 수 더 두었습니다. 아예 무기 연기시켜 버렸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1.21사건이나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간 '문세광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북한이 미군 장교가 죽게 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미국에 즉각 사과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엄청난 굴욕감과 비애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 '자주국방'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주국방'은 멋진 수사(修辭)가 아니라 피맺힌 절규였다고 봅니다. 
 
이게 40년이 넘었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그동안 엄청난 국가예산을 국방비에 투자했는데도 아직도 군사력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없어서 전작권을 무기한 미국에 맡길 수밖에 없이 됐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주국방을 피맺히게 외쳤던 아버지의 딸이 40여 년 후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 '의존국방'의 시대를 열어 놓은 셈입니다.  
 
'북한 곧 붕괴' 예상하면서 북한 핵미사일은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고 후속 조치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군 출신인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을 외쳤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붕괴를 가정한 흡수통일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북한의 체제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인데 불과 9개월 만에 북한이 위협적이라면서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정세현 : 통일대박론과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는 상충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신 통일대박론,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론, 통일준비위원회 등은 모두 사실상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곧 붕괴할 북한, 흡수할 북한을 상대로 해서 군사력을 강화한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가당착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습니다. 
 
통일대박론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9개월 남짓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곧 붕괴할 북한’, ‘흡수통일 대상인 북한’이 ‘무시무시한 핵·미사일 강국’으로 변했습니다. 청와대나 군부는 이걸 국민들이 그대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번에 이런 큰일을 벌인 거겠지요?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불과 2년 전,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당초 계획대로 전작권을 2015년 12월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청와대 대변인은 “공약보다는 국가 안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변인은 대통령을 2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장 2년 전에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할 정도로 사안을 보는 통찰력이 없다면 안보 책임을 맡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경욱 대변인은 대통령을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대선 끝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국가 안보 상황이 어려워져서 전작권을 찾아오지 못하게 됐다는 말을 어느 국민이 믿겠습니까. 
 
한쪽에선 북한 붕괴를 전제로 통일 대박론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의 군사력이 커지고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2020년대 중반까지 우리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북한은 언제 붕괴하는 건가요? 대박은 언제 터집니까? 킬체인, KAMD 개발· 배치하면서 드레스덴 선언에서 제시한 대북지원 프로그램을 쓸 수 있을까요?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만들겠다는 각종 정책과 프로그램은 언제 쓰려는 거죠? 요컨대, 통일이 임박했고 그래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해놓고는 전작권은 2020년 이후까지 연기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붕괴 직전에 있는 집단의 군사력이 무서워서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 그것의 핵심인 전작권을 미국에게 무기한 맡긴다?   
 
국방비 차이 30배, 그런데도 북한이 위협적이다? 
 
프레시안 : 정부는 전작권 환수 무기한 연기의 이유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40년 동안 자주국방을 외쳐왔고 경제 규모로는 북한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경제강국인 한국이 아직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두려워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세현 : 북한의 군사력은 재래식 전력과 비대칭 전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는 우리가 북한을 겁낼 것이 없습니다. 하기야 한때 무인기 가지고도 법석을 떨었으니까 재래식 무기나 원시적 무기에도 대비는 해야겠지만, 문제는 핵과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자금이 없으면 만들 수가 없습니다. 결국 군사력은 경제력과 직결되는 겁니다.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 23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도착해 사전 의전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한민구(왼쪽)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의 국방비 예산은 8억 1000만 달러입니다. 같은 해 남한의 국방비 예산은 225억 7000만 달러였습니다. 국방비만 따지면 28배가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체 예산 규모로 따져 봐도 북한은 남한에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2010년 남한 국가 총예산이 1740억 달러인데, 북한은 52억 달러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 국가 예산 전부를 국방비에 쓴다고 가정해도 남한 군사비 225억 7000만 달러의 4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단순히 국방비만 놓고 봐도 우리는 지금 북한이 “위협적”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정상입니다. 대체 그 동안 그 많은 우리 국방비는 어디에 사용한 겁니까?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투자를 했으면 이제는 북한의 군사능력이 위협적이라는 말은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또 북한의 핵미사일이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미국에 떼를 쓰던지 애원을 해서라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 미사일 사거리 연장 문제 등을 해결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정권의 성격과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군부의 사고방식과 의식구조의 문제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북한을 상대할 수도 이길 수도 없으니까 모든 걸 힘이 센 미국에 맡겨야 한다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애당초 이런 요구도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결국 자주국방이란 고가의 첨단무기를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평화를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 고민, 즉 의지의 문제라는 말씀이군요. 제가 최근 한 공직자로부터 들은 얘긴데 우리 군에 별을 단 장성이 400명, 대령은 3000명이라고 하더군요. 이 수많은 별들이 북한보다 30배나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 자주국방을 외친 지 40년이 지나서도 북한 군사력이 무서워 전작권 전환 무기 연기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세현 : 그렇습니다. 여담이지만 북한은 장성이 1000명이 넘기는 하지요. 그래서 무섭다고 할 수도 있지요(웃음). 아무튼 우리는 그 많은 국방비로 북한에 대응할 무기를 샀지만 그냥 무기만 사다 놓은 겁니다. 고가의 미국 무기를 열심히 구매해준 셈입니다. 북한 무기에 대응해야 하니까 우리도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전략적 판단 없이 미국이 사라고 하는 것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식으로 구입해준 겁니다. 한국 무기의 80%가 미국산 무기라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니 전작권 전환 연기를 위한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미제 무기 구매를 대폭 늘였다고 하더군요.
 
우리 군은 기본적으로 전략 판단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플 일이 없죠. 그러니까 군의 기강이 안 잡히고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들이 생기는 겁니다. 전략적인 고민을 하는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에 간부가 부하를 성추행하는 사고를 일으키겠습니까? 국가를 지킬 전략 짜느라 밤을 새는 상관 모시려면 술 진탕 마시고 딴 짓 할 시간이 없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전력이 위협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전작권 전환 협상이 타결된 이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세현 : 저는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 중에는 실체적 진실보다 부풀려지고 왜곡된 것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정보라는 것이 원래 객관적 사실이기보다 가공된 해석 아닙니까? 그 가공되고 해석된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몇 번 구르고 나면 별것 아닌 위협이 엄청난 괴물로 과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강원도의 고랭지 채소가 밭떼기 상인한테 싼값에 팔렸으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올 때까지 여러 유통단계에서 엄청난 마진이 붙음으로써 생산가의 몇 배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북핵과 미사일 관련 정보도 많은 전문가와 씽크탱크 등의 발언과 해석을 거치는 동안 가공되고 과장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부시 정무는 북한이 연료봉을 재처리 하지 않고도 막 바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자백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발표가 제네바 합의 파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은 사실 당시 부시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개입돼서 나온 과장·왜곡된 정보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부시 정부가 그걸로 북한을 압박해도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나중에는 북한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슬그머니 말을 바꾸더군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즉 HEU(Highly Enriched Uranium)이 아니라 그보다 급이 낮은 ‘농축 우라늄’으로 슬그머니 용어도 바꿨습니다. 그냥 ‘우라늄 농축’은 북한이 원자로 연료봉을 만들기 위해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입니다.  
 
이처럼 미국이 내놓은 북한 관련 정보라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얼마든지 가공·왜곡·가미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과학·기술 면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나라이다 보니까 그들이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기 정보를 가공하고 왜곡해도 그것이 불변의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개된 진실’ 이면에는 사실은 별것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는 명분이자 근거로 내놓는 북한 핵능력에 대한 판단도 실체적 진실보다는 가공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무기 시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시장 관리 차원에서 정보를 가공하기도 합니다.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죠. 군산복합체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이런 정보들을 우리처럼 대미 의존성이 강하고 친미를 넘어 숭미, 종미 하는 사람들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에 흘립니다. 그럼 여지없이 이것이 진실이 되는 겁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북한에 대한 평가는 일단 싱크탱크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대부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 있습니다. 제대로 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산복합체에 이익이 되는 정보들로 가공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보수성향의 지도층과 군은 북한의 군사력과 병력에 대해 트라우마, 즉 근원적 공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싱크탱크와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실체적 진실과 다른 이른바 ‘괴물’ 북한이 만들어 집니다. 
 
그런데 미국은 사실 우리와 정보를 100% 공유하지 않습니다. 1995년엔가 오산 공군작전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북한 전역을 인공위성이나 U-2기로 볼 수 있는 방이 있는데 한국 장교도 거기까지는 들어갈 수 있더군요. 그런데 소리를 듣는 방에는 한국 장교건 사병이건 들어가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군사정보가 됐건 정치정보가 됐건 영상정보보다 음성정보가 핵심인데, 미군사병도 들어가는 방에 한국 장교도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한국은 핵심 정보에 접근을 못하는 겁니다. 아니 미국이 핵심 정보는 안 주는 거지요. 
 
프레시안 :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KAMD와 킬체인 등이 마련돼야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유치한 발상 아닌가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너무 1차원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과거 정부는 다른 방법을 썼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김영삼 대통령도 미국에 의존해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을 군사력으로 상쇄하거나 억지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남한의 우월한 경제력을 앞세워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19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영삼 대통령의 기본 구상은 “북한의 대남 위협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경제협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경협이 심화돼 남북간 상호 의존성이 커지고, 이를 통해 북한이 지속적으로 혜택을 본다면 북한이 쉽게 군사적인 도발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으로 북한의 위협을 줄이려고 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 2000년 6월 6.15 공동선언이 나왔는데, 당시 정부는 이 정상회담과 그 이후 장차관급 남북회담들에서 경협을 레버리지로 삼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고 완화시키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든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MD를 팔려고 혈안이 돼 있던 때, 당시 김대중 정부는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지 않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소한다는 발상이죠.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군사주권의 포기입니다. 어쩌면 훗날 박근혜 정부가 남긴 가장 부정적 유산으로 기록될지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공사보다도 치명적 피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결정이 아무런 사회적 토론 없이 밀실에서 은밀하게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이번 결정의 중대함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세현 : 전작권 전환의 무기한 연기는 야당 전체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도 모자랄 일입니다. 군사주권 포기는 정권의 도덕성, 정통성과도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바쁘고 전문성이 없으면 연구소라도 잘 만들어서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누리당의 여의도연구소는 그런대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연구소는 해당 전공도 아닌 사람들이 연줄을 타고 내려온다고 하더군요. 다 자신을 밀어준 이른바 ‘보스’가 있구요. 제대로 된 정책 조언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야당은 여당을 비판하고 견제함으로써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우리 야당은 그런 개념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전작권 전환 연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과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을 국민과는 일언반구의 논의도 없이 미국에 갖다 바쳤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군사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가진 것은 군 인사권뿐입니다. 인사권만 가진 지휘권은 반쪽에 불과합니다. 야당은 이런 점을 잘 파고들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걸로 봐서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야당, 참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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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조사권 무력화, 집요하고 끔찍하다

 

[세월호 특별법 연속기고①] 세월호 특별법 논의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14.10.26 20:31l최종 업데이트 14.10.26 20:31l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여·야 협상이 또다시 질곡에 빠졌습니다. 새누리당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수사와 기소를 가로막은 데 이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권마저 흔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독립적인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은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연속칼럼을 통해, 세월호 가족들과 530만 국민의 염원인 특별법을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을 낱낱이 짚어보고 이를 극복해나갈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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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만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포함한 국회 운영 방안을 논의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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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우리가 알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 304명의 생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던 그 시각,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고 따라서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지 못했다면, 국민들은 왜 그랬는지를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의문투성이다.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일지 모른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은 국정원의 해명을 받아쓰기 하면서 '국정원이 믿으라니 그냥 믿으라'고 했고, 통영함은 왜 세월호를 구하러 갈 수 없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왜 해경은 미군과 해군을 돌려보내고, 민간인 잠수사를 통제했는지도 알 수 없다. 유가족이라면, 그리고 합리적인 시민이라면 이런 의혹을 밝히기 위해 최고책임자가 받은 보고와 조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그 이유였다. 그런데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에 '청와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는 하나씩 차단 당했다. 올해 6월 국정조사가 진행될 때 청와대는 185건의 자료요청 중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다. 8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청문회는 청와대 측 증인채택 문제로 공방을 벌이다가 결국 무산되었다. 검찰은 구조실패의 최종 책임을 123함정 정장에게 물었을 뿐 소위 '윗선'은 수사도 하지 않았다. '행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으나 형사상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면 감사원의 감사에서라도 행정적 책임이 드러나야 했으나 감사원도 청와대 감싸기에 바빴다. 감사원은 5급 공무원 두 명을 보내 단 하루 동안 청와대 행정관 4명만 만나고 돌아와서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4월 16일 당일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하여 청와대 답변서에 없는 내용을 임의로 추가하여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민 정황도 보인다.

이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독립적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갖는 특별위원회'만이 진실을 밝힐 수 있겠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런데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도 청와대가 개입하여 어지럽히고 있다. 9월 16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중 대통령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면서 특별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면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결국 특별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포기하고 특검제도를 중심으로 논의한 세 번째 협상과정에서도 '협상이 정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발언해 유가족과 여야의 합의로 특검 후보를 선정하는 논의도 무산시켰다.

수사권·기소권 위헌이라더니 '조사권'마저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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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념하는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에 앞서 묵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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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다가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었다. 그런데 '독립적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여야 합의로 무력화시킨 청와대는 이제 '독립적인 조사권'에까지 손을 대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에서 여야 모두가 합의한 바는, 특별위원회 위원을 모두 17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을 그 내부에서 논의하여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청문회를 여는 권한, 실지조사, 동행명령권 등 여러 가지 조사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조사권도 무력화하려고 한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자고 하는 등 위원장을 청와대의 의도대로 만들려고 하고, 청문회와 실지조사와 동행명령권 등에 대해서 손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슬슬 흘리고 있다. 

정말로 집요하고 끔찍하다. 가족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지 못한 채 200일 동안 '왜 죽었는지 밝혀내겠다'면서 거리를 떠돈 가족들의 아픔이 아직도 지속되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재난과 참사가 계속 벌어지고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며 비참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덮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부 여당의 이러한 태도는 도대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국회, 언론, 검찰, 감사원, 청와대에 묻는다. 나라가 자신을 살려줄 것이라고 믿으며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죽음을 당한 304명의 고통보다 대통령이 더 중요한가. 청와대가 무엇을 했는지 묻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질문을 가로막기 위해서, 유가족들의 마음에 못을 박고, 진실을 덮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특별위원회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자리에 있는가. 

특별위원회 조사권의 독립성마저도 훼손하는 안을 슬그머니 언론에 흘리고, 일부 언론들은 조사권에 대해서 위헌이니 무리한 요구이니 하면서 맞장구를 치고, 그러다가 다시 여야가 가족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야합하는 행위가 반복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요구한다. 양당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특별법 논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특별법 논의가 암흑상자 속에서 진행되는 한, 특별위원회의 권한은 청와대의 권력 아래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덮으려 해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죽음을 가슴에 품은 이들, 그 아픔에 공명하며 적어도 이번 일은 결코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시민들은 아직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이번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독립적인 기소권과 수사권, 조사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규명할 것이다. 진실을 감추려 했던 이들도 그 분노를 잠재우지는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김혜진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 이 기사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http://sewolho416.org)에도 동시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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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폭탄' 그 이름 대북전단


[친절한 통일씨] 대북전단으로 본 남북관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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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6  21: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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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 순화해서 전단이라고 부른다. 2007년 경찰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 규칙을 폐지해 없어졌지만 누구나 한 번쯤 북한에서 뿌린 전단을 발견해 경찰서에 신고하면 학용품을 받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심리전의 하나인 전단살포는 한국전쟁은 물론 휴전 이후에도 남북이 서로 살포하면서 자극해왔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자 국가차원의 전단은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최근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관계가 어수선하다. 지난 25일 한 보수단체가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려 하자 지역주민이 들고 일어나 반대했다. 앞서 지난 10일 연천 지역에서는 대북전단으로 총탄이 오가는 위기상황까지 갔다.

종이에 불과한 전단이 무엇이기에 전쟁 일촉즉발 상황까지 만들어 내는가. 전단이 어떤 의미이고 대북전단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전단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활용

전단을 우리는 '삐라'라고 부른다. '삐라'는 영어 'bil'에서 유래된 말로 일본어로 '비라'라고 발음, 우리에게는 '삐라'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식 표현은 'leaflet'이고, '전단'으로 순화해 부른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삐라'를 '전단, 혹은 전단의 북한말'로 정의한다. 합동참모본부가 발행한 '합동.연합작전 군사용어사전'에는 '심리전의 한 수단으로 항공기나 기타 수단에 의해서 적지에 살포하는 삐라'라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삐라'라는 잘못된 일본어 표기가 아닌 우리말로 순화된 '전단'으로 통칭하고자 한다.

 

   
▲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상대로 뿌려진 유엔군의 전단. [자료출처-'한국전쟁기 맥아더사령부의 삐라 선전정책'(이상호, 2011)]

 

독일 언론학자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전단을 두고 "다양한 텍스트와 구성양식을 매우 상이한 이용 방식 및 기능으로 묶어주는 매체"라고 성격을 규정, △간결함, △구체성, △감각적인 명료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체화, △상호대조, △빠른 생산성, △저렴한 가격, △임시적 성격, △호소적인 구조, △저장 기능, △통제 불가능성 등의 특징을 지녔다고 분석했다.

즉, 전단은 장문의 글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단번에 자극해 국민적 동요를 불러오게 하기 위해 매우 간단히, 그리고 자극적이고 호소력 짙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래서 시각적 효과를 위해 그림과 사진을 활용, 이를 두고 전쟁미술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단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대체로 일반전단, 화폐전단, 안전보장증형 전단, 벽보 및 포스터형, 연 전단, 수기형 전단, 플랜카드와 에드벌룬, 신문.잡지.포스터.패러디형 전단 등으로 나눈다.

내용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는데, '호소형 전단'은 읽는 이에게 호소하는 형식의 그림과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읽는 즉시 내용을 즉각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주로 활용한다.

'뉴스형 전단'은 객관적 시각에서 사실만을 전달하는 내용을 담아, 마치 신문을 읽는 기분을 준다. '전술형 전단'은 주로 전쟁 당시 군인을 선동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는데 '안전보장증형 전단'이 이에 해당된다.

 

   
▲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이 살포한 전단. [자료출처-koreanwar-educator.org(좌), 위키피디아(우)]

 

전단은 대체적으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규격으로 제작되는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10x8cm 크기에서 A4용지(26.5x19cm)까지 6종류의 크기로 제작됐다. 최근 살포되는 대북전단도 이와 비슷한 크기이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물에 젖지 않는 얇은 폴리비닐로 만들기도 한다.

전단살포 방법도 다양하다. △비행기에 탑재해 투하하는 지폭탄(종이폭탄), △헬기나 수송기로 전단뭉치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방법, △대포에 전단을 넣어 살포하는 지폭탄, △풍선 등 기구에 매달아 부력을 이용한 방법, △연이나 하천 및 해류를 이용하는 방법, △차량이나 직접 인편을 통한 방법, △인터넷 등 사이버상에서 살포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전단은 총력전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2차 세계대전부터 전쟁도구로 쓰였다. '전쟁 당사자가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전쟁에 임한다'는 의미의 총력전은 독일 참모차장인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처음 전쟁개념으로 도입했다.

 

   
▲ 전쟁이 끝난 뒤 남북은 각각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다. 사진은 북한이 살포했던 대남전단.[자료사진-통일뉴스]

 

총력전의 개념에는 심리전도 포함되는데, 심리전은 '대상 청중의 문화심리적 성격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이용하여 주로 정부나 정치적 운동과 같은 후원조직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전략과 전술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즉, 심리전이 도입된 2차 대전부터 전후방이라는 전선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적국의 민간인들에게 전쟁에 관한 선전전을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단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등에도 다양한 내용의 전단이 뿌려져 전단은 심리전의 상징이 됐다.

전단은 2차 대전에 처음 등장했을까?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던 16세기 당시 독일 지역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예수와 교황의 발에 입을 맞추는 왕들의 모습이 나란히 그려진 그림이 뿌려졌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전단이다.

한국전쟁, 전단을 통한 심리전

한반도에 전단이 등장한 것은 1945년 해방에 즈음해서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전단이 대대적으로 뿌려졌다.

미 육군 극동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47년 미 육군의 심리전부대 해체에도 불구하고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에 심리전과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부서에서 1950년 6월 28일 비행기로 전단을 처음 살포했다.

이후 1951년 8월 심리전과는 작전참모부에 배속되면서 심리전부로 확대, 미8군 심리전부, 제1방송, 전단부대를 지원.감독했다.

이와 별도로 1950년 미군은 육군 전술정보파견대를 파견, 11월 4일 제1확성기.전단중대로 명칭이 변경됐다. 그리고 1955년 2월 21일 해체될 때까지 전술심리전 작전을 담당했다.

 

   
▲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6월 28일 유엔군이 투하한 첫 전단. 유엔군은 이날 약 1천2백만 장의 전단을 뿌렸다. [자료출처-'한국전쟁기 맥아더사령부의 삐라 선전정책'(이상호, 2011)]

 

전쟁발발 직후 미 극동사령부 심리전과는 6월 28일 약 1천2백만 장의 전단을 살포, 1950년 6월부터 5개월 간 뿌린 전단 살포양의 1/10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처음에는 남한 군인의 항전을 격려하고, 남한 주민에게 유엔과 우방국이 한국을 돕는다는 내용이었지만 7월 17일부터 북한군을 대상으로 전단을 살포했다. 미군은 1953년 휴전까지 B-29폭격기를 이용, 약 25억 장 이상의 전단을 살포했다.

북한군은 어떠했을까. 당시 김일성 수상은 "우리의 정의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널리 선전해야 하며 모든 것을 미제와 이승만 역도를 격멸 소탕하는데 바치도록 인민들을 고무 격려하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북한군은 전단제작의 주체가 매우 다양했는데, 조선인민군, 조선인민군 전선사업부 문화훈련국,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조선인민군 총사령부 등이 맡았다. 중국은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부가 일임했다. 주로 공산주의 체제선전, 정치선전, 유엔군 및 한국군 전의 상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북은 각각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전단살포의 양상은 변화됐다.

군이 담당하던 전단살포는 민간이 주도하는 형식으로 바뀐 것이다. 특히, 대북전단의 경우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가 중심이 됐다.

탈북자 단체들이 왜 전단을 살포할까. 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은 2003년을 기점으로 한다는 게 중론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을 통해 전단살포 행위가 금지되자,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는 "정부가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을 기점으로 탈북자의 수가 급증,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조직을 만들자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으로 보수단체와 연합전선을 구축, 대북전단 살포 횟수와 분량이 급증했다.

 

   
▲ 2008년 12월 통일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부 탈북자 단체와 보수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자 단체는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기독북한인연합'(대표 이민복), '탈북인단체총연합'(대표 한창권) 등이고, '납북자가족모임'(대표 최성용),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대표 최우원) 등 보수단체들도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던 초기에는 고무풍선을 이용했다. 풍선제작 기술 부족으로 당시에는 어린이 장난감용으로 사용되던 고무풍선에 헬륨가스를 넣어 몇 장의 전단만을 달아 날려 보냈다.

하지만 2005년 12m의 대형 비닐에 수소가스를 넣는 화학식 대형 풍선을 개발, 수 만장의 전단을 달아 보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타임조절 방식을 도입, 설정방식에 따라 단.중.장거리로 나누고 풍속 10m/s인 경우 4시간 정도면 평양에 도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제갈량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전단은 접경지역 일대에 뿌려지기도 해 대북전단살포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 보수단체들이 살포한 대북전단의 내용.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 살포비용은 공공연한 비밀로 부쳐져 있다. 초기 고무풍선의 경우 1개 당 고무풍선 130원, 헬륨가스 8백 원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식의 풍선은 수소가스 1만 8천원, 비닐 4천 원, 타이머 2천 원 등 약 13만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풍선 개당 5백여 만원으로 책정하기도 한다.

이런 비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초기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등이 지원했지만 현재 지원을 끊은 상태이다. 그리고 국정원도 지원했지만,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과 안전행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2012년부터 민간경상보조사업 명목으로 3년간 4억여 원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국무총리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대북전단 지원처가 어디든 일단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은 현재 개인 후원자가 교회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지역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이유가 후원금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이들이 뿌리는 전단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주로 군인을 상대로 하는 전술형, 안전보장증형이 아니라 주민을 대상으로 한 뉴스형, 호소형이 대부분이다. 남한의 경제체제 선전, 북한 정권 부당성 등이 주를 이룬다.

그림보다는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자극적인 모습으로 희화하는 사진 등을 담고 있지만, 가독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 지난 25일 보수단체인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살포하려 했던 대북전단. [자료사진-통일뉴스]

 

대북전단 살포, 막을 방법 없나

북한은 대북전단을 두고 반공화국 모략행위로 규정,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10월 초에는 연천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대북전단은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전단살포는 남북간 오랜 골릿거리 중 하나였다. 이에 남북은 상호 간 전단살포 금지 합의를 여러 차례 해왔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하면서 '상호 중상, 비방 금지'에 대해 합의했다.

이후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합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면서 전단 등을 포함한 도구를 이용한 상호 간의 비방 중상 금지를 명시했다.

하지만 공식적이고 실질적인 합의는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이뤄졌다. 당시 남북은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했다.

 

   
▲ 2012년 10월 정부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대북전단 살포를 막을 근거가 없다고 강조한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러나 이는 당국간 전단살포에 국한된 내용이다. 즉, 탈북자 단체 등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두고 정부는 대응방안에서 딜레마에 빠져있다.

정부는 남북간 전단 등 상호 비방 중상 금지 합의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전단 살포를 막을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기 때문에 자제요청만 할 뿐이다.

물론 이들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해 고심을 한 흔적은 있다. 2008년 범정부 대책회의를 열고 수소가스를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을 검토했지만 마땅한 근거조항을 찾지 못했다.

당시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전단 살포는 남북 합의 이행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법적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2009년 통일부는 이들 단체가 북한 화폐를 풍선에 담아 보낸다는 점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검찰은 내사종결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항공법 위반 지적도 있었지만 풍선은 초경량 비행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토교통부의 해석으로 법적 제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환경운동연합은 대북전단 살포가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라며 쓰레기 투척행위로 규정, 경범죄로 이들 단체를 고발해 주목된다.

 

   
▲ 북한이 지난 2012년에 살포한 대남전단. [자료사진-통일뉴스]

 

군은 어떠한 반응일까? 일단 군 당국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 군부의 항의에 대응만 해왔을 뿐이다.

심지어 2010년 11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김포, 철원, 연천, 북송 등 4곳에서 약 40만 장의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이에 북한도 대남전단 살포를 재개, 지난 3년간 경기도 파주, 강원 강릉 등 일대에서 약 3만여 장의 전단을 수거했다고 국방부가 밝혔다.

 

   
▲ 지난 25일 파주 임진각에서 보수단체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대북전단을 살포하려 하자 파주 지역주민들이 강력 저지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현재 한반도는 가히 전단이라는 종이폭탄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종이전쟁은 국가가 아닌 탈북자 단체 등 민간이 만들어내고 있다. 정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법적 제재 불가능 입장이다.

지난 25일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낸 건 지역 주민들이었다. 결국, 종이전쟁을 막는 것은 평범한 국민의 몫인가. 대북전단으로 총탄이 오간 상황에 이르렀지만 국가는 여전히 팔짱 끼고 불구경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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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억새물결? 아직은 철이 이르다

 

[여행] 경주 무장봉 억새군락지 등정기

14.10.26 17:05l최종 업데이트 14.10.26 17: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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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봉의 억새군락지. 1970년에 조성한 오리온 농장이 1996년 문을 닫으면서 드넓은 초지는 자연스레 억새 군락지가 되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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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억새'의 계절이다. 정선의 민둥산을 비롯해 창녕의 화왕산, 이른바 영남 알프스라는 간월재 등 드넓은 억새 군락지를 자랑하는 산이 사람들로 붐비는 시절이 된 것이다. 화왕산은 20여 년 전에, 간월재는 지난해에 다녀왔지만 정선 민둥산은 겨누어 보기만 하다 넘긴 게 몇 해째다. 

억새 평원은 경주 무장산에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민둥산은 너무 멀다. 포털에서 승용차 길 찾기를 해보면 무려 4시간이 좋이 걸린다고 나오니 겨누기만 하다 말 수밖에. 그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앞자리의 동료가 '경주 무장산 억새도 괜찮다'고 거들었다. 

무장산? 웬 '무장(武裝)'? 30여 년 전에 경주 근처에서 몇 해 산 적이 있는데도 낯선 이름이다. 하필 이름이 무장이람,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게 만만치 않은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일연은 <삼국유사>제 3권, 탑상(塔像) 제4 '무장사(䥐藏寺) 미타전'에서 '무장'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태종(太宗)이 삼국을 통일한 뒤에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 속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에 무장사(䥐藏寺)라고 한다"고 한다.

'투구 무(䥐)'자에 '감출 장(藏)'자를 쓴 무장사는 지금 터만 남아있다. 태종은 태종무열왕, 전날의 김춘추다. 그가 삼국 통일 뒤에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에 묻은 것은 후대의 해석처럼 '전쟁 없는 평화시대'를 열겠다는 뜻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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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탓일까. 10월도 중순이건만 무장산에는 아직 푸른빛이 승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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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과 절터가 남아 있어 인근 마을 주민들은 '무장산'이라 부르지만 애당초 이 산은 포항 오어사(吾魚寺)를 품은 운제산과 경주 토함산을 잇는 '624봉'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2008년에 주변이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지구로 정식 편입된 이후에야 이 산은 비로소 '무장산'으로 국토지리정보원에 정식 등록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해 본 무장산의 억새 군락은 규모도 풍치도 괜찮았다.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산행을 결정하자, 아내와 딸애는 간식과 점심을 챙기기로 했다. 지난해 간월산행에서 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터득한 것은 '산을 오르려면 하찮은 것도 제대로 챙겨라'가 아니던가(관련기사 "<'1박2일'도 반한 한국의 알프스? 가보면 누구든 반한다> 바로가기).

토요일(18일) 아침, 7시쯤 출발하려 했는데 어정대다 보니 8시가 겨워서야 길을 떠날 수 있었다. 한 시간 반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시간이 좋이 걸렸다. 손곡마을 삼거리에 도착하니 해병대 군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오는 차량들을 일제히 오른편 길섶으로 붙인다. '만차입니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세요.'

주말엔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늦으면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다는 경고를 허투루 들은 대가다. 꼼짝없이 거기다 차를 대고 시내버스를 탔더니 차는 이내 무장사지 입구 경주시 암곡동 왕산마을까지 승객들을 휑하니 실어 날라준다.

버스 종점을 지나 나타난 꽤 커다란 주차장은 이미 꽉 찼다. 거기 말고도 주차장은 한 군데 더 있는 모양인데 그곳도 찼다면 오늘 이 산 아래로 몰려든 이들을 수효를 짐작할 수 있겠다. 주차장에서 산 아래까지 이어지는 것은 '청정 미나리'와 '돼지고기'를 함께 파는 음식점들이다. 이름난 산 아래마다 이런 음식점이 들어서는 건 마치 유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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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교의 산은 가족 단위들이 당일 산행으로 붐빈다. 평탄한 숲길을 다니는 가족들이 많았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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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지킴터를 지나 삼거리에서 길이 갈린다. 왼편은 무장사지를 거쳐 무장봉에 이르는 5.3km 길이고, 오른쪽은 좀 가파른 대신 짧은 3.1km길이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물매가 꽤 급한 오르막길은 500m 남짓, 산등성이에 이르자, 비교적 너르고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에 빽빽이 들어찬 나무와 숲이 무척 실했다. 10월 중순인데도 위도가 낮아서일까, 단풍은 아직 일렀다. 가끔씩 노란빛이 섞이기는 하지만 나뭇잎들은 여전히 싱싱한 푸른빛이었다. 10월의 뙤약볕이 따가웠다.

억새 군락 못 미처 그늘이 있는 마지막 숲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오르면서 바나나와 사과 등 간식을 축냈지만 산 위에서 먹는 밥이란 원래 별미 아닌가. 가게서 사 온 김밥 맛도 괜찮았고, 아내가 부러 챙겨온 김치 맛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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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봉의 억새평원에는 곳곳에서 기념촬영에 바쁜 원색의 등산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로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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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봉의 억새군락지. 아직 가을이 이른 탓일까. 하얗게 빛나는 억새의 물결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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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산의 억새는 정선 민둥산이나 영남알프스에는 비기지 못할지라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충분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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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어 가벼워진 배낭을 걸치고 산등성이를 넘으니 눈앞에 억새 군락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그러나 그걸 심상하게 받아들인 것은 간월재에서 만난 억새 평원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등산로로 낸 데크 양옆으로 하얗게 빛났던 간월재의 억새 군락에 비겨 무장봉의 억새 빛깔은 여전히 푸른 빛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은빛 억새물결? 아직은 철이 이르다

간월재에서와 같은 하얗게 빛나던 억새의 물결을 만나려면 얼마쯤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언제나 그렇듯 좋은 풍경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조금 이르거나 조금 늦곤 하니 말이다. 억새 군락 주변 길은 곳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원색 등산복으로 어지럽다. 

무장산의 억새 군락지는 원래 1970년, 동양그룹이 산 정상부 45만 평에 조성한 오리온 목장이었다. 이 목장은 1980년 5공의 재벌 비업무용 토지 강제매각 조치로 다른 축산회사로 넘어갔다가 1996년에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주변 초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억새 군락지로 바뀌어간 것이다. 

억새군락지가 끝나는 산마루가 이 산의 정상 무장봉(642m)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투어 '인증샷'을 찍고 있는 무장봉 표지석에는 '동대봉산 무장봉'이라 씌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등록된 '무장산'은 뭐고, 멀쩡한 무장봉에 동대봉산 표지는 또 뭔가. 해발 1000m가 되지 않는 낮은 산이라 이름의 혼동이 있는 것일까.

무장봉에서 무장사지를 거쳐 내려오는 길은 경사는 완만하나 단조롭고 멀었다. 중턱쯤에 '돼지풀 확산 방지를 위한 억새 식재지역'이 있다. 돼지풀은 자생식물의 서식지를 위협하고 알레르기성 비염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억새 식재는 돼지풀의 확산을 막고 무장봉의 경관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공원 지킴터를 2Km 남짓 앞둔, 암곡동 골짜기의 가파른 등성이에 설치된 데크 길을 따라가면 주춧돌 일부와 석등을 받쳤던 연화대좌가 남은 무장사 터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무장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이 그의 숙부를 추모하여 세운 왕실의 원찰이라고 한다.

무장사 터에는 현재 아미타조상사적비(보물 125호)의 이수와 귀부가 남아 있다. 이 비는 제39대 소성왕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상을 만들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1915년 주변에서 발견된 비석 파편에 새겨진 글로 이 비가 '무장사아미타조상사적비'임이 밝혀지면서 이곳이 무장사 터라는 것도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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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 터 어귀의 데크 길. 아직도 푸른빛을 자랑하는 실한 나무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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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지 삼층석탑. 폐사지의 낡고 퇴락한 돌탑 등의 쇠잔한 모습이 연출하는 고즈넉한 정적은 쓸쓸하면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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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장사터 아래에서 만난 옅은 단풍. 바야흐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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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비가 서 있는 평지 아래 산비탈에 삼층석탑(보물 126호)이 있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석탑이다. 원래 무너진 채 깨어져 있었던 것을 1963년 일부를 보충하여 다시 세웠다고 한다. 기단부에 새겨둔 안상(眼象)으로 미루어 볼 때 9세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돌탑은 저물어가는 햇살 속에서 좀 외로워 보였다. 

절터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그렇듯 좀 각별하다. 외롭게 남은 주추, 깨어진 석등, 낡고 퇴락한 돌탑 등의 쇠잔한 모습이 연출하는 고즈넉한 정적 속에서 그 번성했던 시절의 풍경을 하나하나 재구성해 보는 것은 쓸쓸하면서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불당과 불탑을 세우던 때, 사부대중의 가슴속에 뜨겁게 살아 있었던 소박한 불심과 서원(誓願)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투구 묻은 골짜기... 그러나 평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밝힌 무장사에 대한 전언은 사실관계에서 다소 어긋난다. 그는 태종무열왕(재위 645~661)이 이 골짜기에 병기와 투구를 묻었다고 쓰고 있지만 삼국을 통일한 군주는 그 아들인 문무왕(재위 661~681) 법민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 후에 원성왕(재위 785~798)의 아버지가 여기에 왕실의 원찰을 세우면서 선대 임금의 유지를 기려 '무장사'라 명명했다는 것인데, 전후의 맥락을 살피면 이 전언의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이 골짜기에 병기와 투구를 묻었다는 이가 무열왕이든 그 아들 문무왕이든 무슨 상관이랴. 전쟁과 살육의 시대를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추구하는 것은 시대를 넘어서 인류의 영원한 과제가 아닌가 말이다.

천 년도 전, 부처의 나라를 꿈꾸었던 고대국가조차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기약했건만 그 땅에 흘리고 묻은 피와 주검은 또 얼마였던가. 이어진 후삼국의 쟁패(爭霸)뿐이 아니다. 20세기의 중반, 이 땅에 휘몰아친 골육상잔의 전쟁은 여전히 끝을 맺지 못하면서 갈등과 대립은 이어지고 있지 않은가. 

천 년도 전에 김춘추가, 아니 법민이 묻었다는 투구와 병기는 이 산골짝 어디에서 이미 흙이 되고도 남았으리라. 무장사지 앞의 벤치에서 잠깐 다리쉼을 하고 나서 우리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킴터가 가까워지면서 연도의 숲은 조금씩 물들어가는 듯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 너머로 단풍나무의 빛깔도 어느덧 한결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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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촛불 “진상규명 거래말라, 진실은 존엄이다”

세월호 촛불 “진상규명 거래말라, 진실은 존엄이다”청와대로 행진 중 경찰과 대치.. 유가족, 정부청사 앞 연좌농성 돌입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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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5  22:22:53
수정 2014.10.25  22: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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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500여명의 시민들이 “대통령도 조사하라”며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25일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국민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진상규명 거래말라 진실은 존엄이다”, “안전은 인권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단식 농성을 풀고 오랜만에 발언에 나선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4.16 나의 무관심과 어른들의 무관심이 304명의 고귀한 생명을 생매장 시켰다”며 “하지만 참사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 무능한 야당, 수구 언론사들이 방관자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씨는 “국민여러분 이제는 방관자가 되지 말자”며 “더 이상 정부 여당이 뻔뻔한 횡포를 보인다면 앞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무기한 농성을 이어 갈 것이다. 국민 여러분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저희 유가족과 끝까지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도 “끝까지 진상규명하고 남은 자식들을 위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때까지 저희 손 놓지 말고 버텨달라”며 “우리 손 놓치고 평생 그렇게 사실 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누가 손을 놓아버릴지 그게 무섭다”고 국민이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 ⓒ '세월호 대책회의'

유 대변인은 “내일 중으로 특별법 도장을 찍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유가족 참여를 추후에 논의하겠다고 이야기 하면서 누더기가 된 법안으로 진상조사위를 시작할 수는 없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시사했다. 

이날 문학평론가 양경언씨는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결성된 ‘304 낭독회’의 활동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양씨는 “작가들이 우리가 직접 쓴 글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계속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함께 움직이자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됐다”며 낭독회 결성 배경을 밝혔다.

양씨는 “두 번의 낭독회를 진행했으니 302번의 낭독회가 남았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낭독하면 25년의 시간이 걸릴텐데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이 살아있다면 25년은 더 살았을 것”이라며 “결코 짧은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고 누구보다 더 오래 읽고 쓰고 행동하겠다는 마음으로 진실을 위한 움직임에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양씨는 “이제 끝났다고 그만 말하자고 한다. 왜인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유를 물어보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대답해야 할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진실 밝히는 것이 왜 싸움이 되는지 나는 모르겠다”는 중학생의 글을 대신 낭독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다가오는 세월호 참사 200일을 맞아 대학생들의 ‘수업 반납’ 계획도 공개됐다.

국민대학교에 재학 중인 고재건 씨는 “여야는 3차 합의를 통해 유가족을 배제하고 특검 실시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청와대, 국정원, 군, 해경, 해수부 모두 수사할 수 있겠나”라며 “이럴 때 일수록 싸움의 중심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광화문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씨는 “대학생들은 다음주부터 수업을 반납하고 일주일간 광화문에서 실천 하려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대학생들이 더욱 앞장서서 싸워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경찰들이 청와대로의 행진을 막아서자 한 유가족이 경찰의 방패를 붙잡고 '비켜달라'며 절규하고 있다 ⓒ 나혜윤

한편, 이날 집회가 마무리 된 후 200여명의 시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도하다 서울정부청사 인근에서 경찰 병력에 의해 저지됐다.

경찰과의 격렬한 대치 속에 유경근 대변인의 연행이 결정되자 유가족들은 “나도 잡아가라”고 항의하며 연좌 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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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살포 저지의 정치적 의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10/26 08:37
  • 수정일
    2014/10/26 08: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과전망>북한도 막지 못했던 대북전단살포, 주민들이 막아내다.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25 [20:0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투쟁하는 농민들   

 

▲ 투쟁하는 농민들   


 

반북단체들의 북한 비방 전단 살포를 해당 접경지역주민들이 '온 몸으로' 직접 나서 막아냈다.

 

긴박한 임진각그 10월 25

 

10월 25일 임진각 주변은 오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반북단체에 속한 사람들 3-40여명은 10시 조금 넘은 시각에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임진각을 향했다.

이들은 오후 1시 임진각 망배단 등 5곳에서 대형 풍선 10개로 전단 10만 장을 살포할 것이라고 했다이미 지난 15일에 밝힌 사안이다.

 

임진각에 진입한 그들을 정면에서 맞이한 사람들은 문산파주 등 접경지역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대북전단 살포를 온몸으로 막겠다며 하루 전날부터 임진각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이중에서 특히 농민들은 트랙터 등 농기계들을 대거 동원해두고 있었다.

 

당신들만 대한민국에 사나우리도 대한민국에 산다가만히 있어라

농기계에 달린 대형현수막에 부착한 현수막의 내용이었다당신들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불안하게 산다는 문구도 있었다.

 

▲ 접경주민들을 지원하고 국민불안을 해소해야된다면서 나선 시민사회단체   

 

 

▲접경지역 시민단체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인들이  나서서 대북전단 살포 반대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민들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들도 속속 임진각으로 집결했다주민들에 대한 지원은 기업인들에게서도 나왔다개성공단기업협회 기업가들이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살포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다.

 

경찰의 대응은 반북단체의 전단 살포에 무대응 했던 여느 때와는 달랐다주변에 경찰력을 배치했다무려 1400여명, 14개 중대병력이었다양측의 물리적 충돌을 예방한다는 것을 명목으로 내세웠다.

 

주민들과 반북단체들의 대치는 정오 무렵부터 본격화되었다.

"농번기인데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일도 못하고 있다"

농민 한사람이 반북단체와 대치하면서 전단 살포를 하지말라며 한 말이다이에 대한 반북단체의 대응은 간단했다. "굶어 죽어"라고 응수를 한 것이다.

 

농민들에게 굶어죽으라고 욕설 같은 강변을 한데 이어 반북단체의 대표 한 사람은 주민들에 대해 종북세력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이날 12시 20분께 취재진 앞에서 대북 풍선과 전단을 도둑질당했다면서 "복면을 쓴 종북세력이 면도칼을 가져와서 협박"했다고 한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종북 노비들을 써서 우리를 막으려고 해도 우리는 꺾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다.

 

▲ 반북단체의 호전적인 언사    © 오마이뉴수에서 펌

 

 

▲ 주민들의 대북전단살포저지 활동에 종북논리로 대응하는 반북 단체     © 오마이뉴스에서 펌

 

 

▲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하는 탈북자에 대해 최근 '범죄를 짓고 도주한 자'라고 하고 있으며  '인간쓰레기'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3일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 하는 장면   © 한성 자유기고가

 

 

여전히 반북단체를 '방조'하는 경찰

 

전단과 풍선을 도둑맞았다는 반북단체의 주장에 대한 경찰들의 대응은 매우 신속했다파주 시민 1명을 반북단체가 준비한 대형 풍선과 전단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긴급 체포를 한 것이다경찰은 그 시민에 대해 재물손괴죄 및 업무방해죄 혐의를 붙였다.

 

이에 대해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의 한 회원은 경악했다전날인 24일 광화문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 하는 풍선날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풍선을 터뜨린 것이 경찰이었기 때문이었다.

 

 

▲ 전례없이 대규모로 동원된 경찰병력  


 

붙잡힌 시민은 저항했지만 경찰의 물리력에 의해 200여 미터를 끌려갔다그리고 버스에 태워졌다.

이 과정에 연행을 반대하는 시민들과 경찰 간의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시민들은 경찰이 보수단체의 전단 살포는 방조하면서 시민들만 막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임진각일대가 아수라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임진각 망배단에서 예정되었던 반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는 일단 그렇게 무산되었다그렇지만 반북단체들은 장소이동을 해 전단살포 재시도를 했다서울에서부터 새로운 전단과 풍선을 공급받아 오후 4시 20분께 타고 온 전세버스로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쪽으로 이동해서 살포를 재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반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저지당했다통일전망대의 통일동산 상인회와 주민들은 살포 저지조를 구성트랙터와 차량으로 통일동산 주차장 입구를 봉쇄했다.

이에 따라 반북단체는 오후 520분께부터 자유로에서 통일동산 쪽으로 향하는 샛길 옆 공터에서 전단 살포를 시도했다.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간부 한사람이 6시경 반북단체로부터 폭행을 당해 안경이 부러지는 등의 불상사도 발생 했다.

 

6시 40분경 반북단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난 뒤 서울행 버스에 탑승 했다.

 

 

▲ 찟어져 길가에 버려진 대형 풍선    ©한성 자유기고가

 

 

▲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길가에 흩뿌려진 대북 전단   


 

남북관계개선에 기여한 접경주민들

 

반북단체의 25일 대북전단살포는 사실상 무산되었다물론 강화도에서는 비밀리에 살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는 하다.

 

25일 반북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 무산은 주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나선’ 투쟁의 결과이다생존권 위협 그리고 생업 지장을 그 명분으로 삼았다그러나 그것은 현 정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는 남북 간의 총격전까지 불러온 심각한 사안이다북한에 반발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성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북한은 반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를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은 25일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기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한 정부에 살포를 저지해 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남조선 당국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삐라 살포 난동을 또다시 허용한다면 북남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 대형 헬륨가스    © 한성 자유기고가

 

 

 

▲대북전단살포현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 한성 자유기고가


 

 

 

▲ 반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에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하는 사회단체(사진은 지난 5월 3일 현장사진)     © 한성 자유기고가


 

남남갈등

정부당국이 북한과 관련되는 사안을 다루는데 있어서 자주 동원하는 논리이다북한이 자신을 주장을 내세우면서 우리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갈라놓는 것을 의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세는 반북단체의 대북전단살포야말로 남남갈등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는 반북단체들과 이를 막으려는 접경주민들은 다 대한민국 국민들이다이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남남갈등으로 되는 것은 우리정부가 반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운운하며 적극 방조를 하고 있는 데에 따르는 현상이다.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우리정부의 이러한 자세와 태도는 남남갈등을 조장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할 뿐 만 아니라 모처럼 대화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장애를 조성하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다.

주민들의 대북전단살포저지 활동이 남남갈등을 폭발시켜 남남갈등을 해소할 길을 열었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대북전단 살포 저지 활동은 종국적으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주민들의 대북전단 살포 저지는 당장에는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소멸전투의 원인을 제거한 것으로 된다.

이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소 하나를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소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온전히 정부가 해결해야할 몫이었다.

더구나 농민들은 농사를 짓지 못하고 상인들은 장사를 못하고 사회단체들 역시도 지방에서까지 올라와 규탄을 해야하는가하면 경찰병력도 대거 동원되는 등의 사회적 비용을 애초에 지불하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다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안게 되는 불안감이다.

 

▲ 25일 대북전단 살포 저지투쟁에서 맨 앞장에 선 접경 지역 농민들    

 

 

긴박했던 10월 25일 임진각우리 정부가 북한에 2차고위급회담을 30일에 진행하자고 제안한 조건에서 더욱더 심사숙고하게 바라보아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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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로 보는 올해 핵발전 동향

그래프로 보는 올해 핵발전 동향

[함께 사는 길] 한국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핵발전을 많이 하는 나라

 
 
함께 사는 길 2014.10.24 11:27:41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량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2006년 최고치를 찍은 후 줄어들고 있다.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핵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은 2359TWh다. 또한 전 세계 발전량 중 핵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6년 이후 점점 줄고 있는데 2013년 현재 전체 생산된 전력량 중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8퍼센트다.
 
■ 4번째로 핵 발전을 많이 하는 한국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핵 발전량이 많다. 이들 다섯 국가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은 전 세계 핵 발전량의 68퍼센트나 된다.
 
■ 문 닫는 핵발전소들
1954년 6월 27일 소련에 세계 최초의 핵발전소가 세워진 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기 전인 1985년까지 핵발전소 건설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1974년 한 해에만 26개의 핵발전소가 세워졌고 1984년과 1985년에 각각 33개의 핵발전소가 세워졌다. 1990년 접어들면서 가동을 중단하는 핵발전소도 늘어났다. 1991~2000년 사이 세워진 핵발전소는 52개였고 가동을 중지한 핵발전소는 30개였다. 2001~2010년에는 32개가 세워지고 32개가 문을 닫았다. 2011~2014년 중반까지 16개의 발전소가 세워졌고 26개의 발전소가 가동을 중지했다. 한편 2001년 이후 세워진 48개의 핵발전소 중 39개가 아시아에 세워졌다.
 
■ 폐쇄된 핵발전소의 평균 나이
2014년 7월 1일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153개의 핵발전소가 사고나 정치적인 이유로 가동을 중지했다. 폐쇄된 핵발전소의 평균 가동연도는 24년이다.
 
■ 2059년까지 전 세계 핵발전소 설계수명 만료
현재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핵발전소가 수명 연장 없이 설계수명 40년을 유지한다면 2060년이면 다 수명이 만료된다. 2020년에 8기의 발전소가 추가로 세워질 계획이지만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핵발전소의 유지보수 및 업데이트 비용이 급상승하고 있는 반면 핵발전소와 경쟁에 있는 다른 발전소들은 시스템 비용이 감소하고 있어 미국과 독일에서는 핵발전소의 조기폐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그 시기는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 세계는 지금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
2004년 이후 재생가능에너지와 핵 발전에 투자한 금액을 비교한 그림이다. 전체적으로 핵 발전에 대한 총투자는 재생가능에너지보다 거의 10배 정도 낮다.
 
■ 눈부신 재생가능에너지의 성장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와 핵에너지의 발전 증가율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풍력발전과 태양광은 전년도에 비해 각각 25퍼센트, 43퍼센트 성장한 반면 핵에너지는 0.4퍼센트 줄었다. 또한 2000~2013년 동안 핵 발전은 정체기를 겪으면서 발전용량은 19GW 줄었지만 같은 기간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301GW, 135GW씩 늘었다.
 
■ 태양에너지가 핵 발전 추월
매년 태양광 패널과 풍력, 핵에너지에 의해 생산된 에너지와 생산 수준 변화를 보여준다. 2013년 풍력에너지는 1997년에 비해 616TWh, 태양광에너지는 124TWh, 핵에너지는 114TWh를 더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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