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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과 세월호 참사의 공통점

 

[인터뷰] <가면권력> 펴낸 한성훈 교수... "죽음 해석 놓고 산 사람들이 벌이는 싸움"

14.10.19 09:49l최종 업데이트 14.10.19 09:4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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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훈 연세대 연구교수가 민간인 사찰의 증거인 1950년 인천경찰서에서 작성한 '요시찰인명부'를 들어보이고 있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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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훈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필자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에 근무할 때였다. 그는 의문사위에서 허원근 일병 군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고, 나는 그가 조사한 보고서를 영어로 번역해 주한 외국 특파원들과 공관원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그 후 지난 2007년 그를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다시 만났다. 진실위에서 한 교수는 보도연맹사건을 조사하던 조사 팀장이었고 나는 이번에도 그가 조사한 보도연맹사건을 영어로 번역해서 주한 외국 특파원들과 공관원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다.

한 교수와 두 직장에서 가까이 일하면서 난 그가 '자료 왕'라고 많이 느꼈다. 그는 아무리 사소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기록도 꼬박꼬박 수집해 차곡차곡 정리해 둔다. 당시 나는 "한 박사가 언젠가 민간인 학살 사건 관련 책을 몇 권 쓰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진실위 활동이 2010년 종료된 지 2년 만인 지난 2012년 그는 <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을 발간했다. 그리고 이어서 지난 9월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을 펴냈다. 

책 <가면권력>에서 한 교수는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사건과 거창 민간인학살 사건을 통해 민간인 학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한 교수는 과거 이승만 정권기 민간인 학살사건을 통해 지금 박근혜 정권의 세월호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거 민간인 학살사건과 지금의 세월호 사건은 둘 다 국가공권력이 불법하게 집행한 비극적 참사다.

비극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의 행태를 한 교수는 저서 <가면권력>을 통해 고발했다. 지난 며칠간 책 <가면권력>에 관해 한성훈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눴다. 아래는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정권이 왜 자국민을 학살했다고 보나? 특히 수구 인사 중에는 이 시기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살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민군이 서울·경기 지역을 점령하자 보도연맹원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가 그들을 총살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민군이 진주하면 이들이 북한 편에 설 것이라고 예단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학살을 감행한 것은 이들의 '구체적인 불법 행위'때문이 아니고, 보도연맹원과 '요시찰인' 등 '좌익'을 유사시에 살해할 수 있다는 논리와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 전쟁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거창 사건에서 주민은 적으로 간주됐고, 물리적 가해를 실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인민 유격대를 도운 '이적 분자'로 취급당했다. 대규모 살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보도연맹원이나 작전 지역 내 주민에게 씌우는 것은 책임과 비난을 떠넘기는 것이다. 가해자의 범죄를 피해자의 책임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정부 고위층과 군경지휘관들은 학살을 정당화했다. 학살당한 희생자는 전선이나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데올로기로 정의되는 '좌익'은 상대방을 '적'으로 둔갑시키는 것과 같다. '좌익'이나 '보도연맹원', '부역자', '이적분자'와 같이 '특정집단'으로 분류해서 이들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오늘날 '종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느슨한 곳에서 인권은 쉽게 침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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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 희생자 64주기 위령제가 지난 7월 31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가창골에서 열린 가운데10월 항쟁유족회장이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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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 학살 사건에서 가해자와 희생자, 생존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가해자는 정부 최고위층부터 군대와 경찰, CIC(방첩대, 현재 기무사) 등의 책임자, 지휘관과 병사, 경찰들이 있겠다. 최고 지도자부터 살인을 수행한 하급자와 이를 지켜본 상급자는 모두 끔찍한 살인의 공범자다. 

살해 명령을 내리는 이들은 '탁상 위의 살인자'다. 대량 학살은 사회의 감시나 공동체 도덕과 전혀 무관하게 일어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는데, 권력이 강압적이고 민주주의가 느슨한 곳에서 인권은 쉽게 침해된다. 가해자는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즉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취에서 살인 행위를 증폭할 수 있다.  

희생자는 국민보도연맹원과 경찰의 감시대상인 요시찰인 등 정치적 반대자들 그리고 거창 사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과거 좌익이나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중에 그렇게 학살 당해야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생존자는 학살 현장에서 살아난 보도연맹원과 그 목격자인데, 거창 사건도 신원초등학교와 박산 골짜기에서 총에 맞거나 달아나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잔혹 행위를 밝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줬다. 삶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려준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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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권력 표지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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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꽤 인상적인데 왜 <가면권력>인가?
"이 말은 법률을 비판적으로 말할 때 사용한다. <가면권력>은 많은 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와 정치, 권력을 문제 삼고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를 다룬다. 정치의 핵심이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가. 가면은 많은 이의 참혹한 죽음을 위장하는 것이고 최고위층과 관료들의 잘못으로 인한 죽음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치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내가 사유하는 죽음은 결국 산 사람들의 해석 속에 담긴 죽음, "죽은 자의 삶과 산 자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희생자가 '죽음'으로써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이 죽음은 관계 맺고 있다. 때문에 '산 사람들이 해석하는 죽음'이라는 의미다. 전쟁 당시의 학살과 마찬가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 비극을 보자. 결국 학살이나 세월호 사건은 산 사람들이 이 죽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가면'은 이 죽음을 가리고 있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 지난 1999년부터 민간인학살을 접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민단체인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를 조직했는데,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사람들의 '말'과 '삶' 때문이다. 나는 전쟁 이후 50년이 지난 1999년에 군대와 경찰이 수많은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한 시민일 뿐이다. 생존자들의 말이 나를 이끌었고, 그들이 살아온 삶이 나를 재촉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게 공동체고 사회다. 제 3자와 함께 살 수 있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정치고 국가의 역할이다. 

나는 피해자 가족과 목격자들을 만나면서 이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족 입장에서 억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국가가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이웃이 그냥 끌려가 죽은 것이다. 이걸 한 번 상상해 보라. 우리 중에 누구라도 그렇게 죽을 수 있고, 또 우리 중에 누구라도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상관의 '명령'으로 학살을 정당화 

- "우리 중에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섬뜩하다. 이 부분은 책에서 '이승만 정권기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 부분과 비슷한데 그 이유를 자세히 밝혀 달라.
"사람들은 학살이 1950년의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많은 죽음을 야기했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살을 수행한 기구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조직들이다. 군대와 경찰, 기무사 등은 평시에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부분적 기능을 각각 수행한다.

그런데 학살을 단행한 것이 이들 조직의 별다른 특징이기보다는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관료 체제는 한국 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사회조직을 장악하고 체계화하고 있는데,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언제든지 가해 기관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서와 논리가 우리 사회에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인이나 경찰이 살인 명령을 받으면 이것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증언을 들어보면 가해자는 스스로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상관의 '명령'으로 학살을 정당화한다. 관료제에서 '명령'이라는 '말'은 사실상 '법'과 같은 의미다. 병사나 경찰은 자신이 생각해도 '불법한 명령'이지만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비극은 과거에 일어난 집단살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 윤리와 사회 체계에서 되풀이되는 데 있다."

- 책에서 "한국에서 '좌익'은 사상의 문제라기보다 잘못되거나 나쁜 것에 관한 상징"이라고 했는데,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좌·우파가 균형을 취하면서 공존해있다. 우리 사회나 정치권에서 '극단적 좌익 혐오증', 즉 '광신적 레드 콤플렉스'를 가진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민간인 학살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와 국가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다. 희생자는 '내부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법의 보호에서 제외된 대상이었다. 국가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학살'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집단의 권리를 빼앗는 경우는 사람을 이념적으로 구분할 때 쉽게 발생한다. '좌익'이라고 하면 시민·국민으로서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공권력을 적법하게 행사하지 않아도 되는 논리가 뒤따른다. 가장 손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이념'이라는 진공 상태의 블랙홀이다. 이런 파국적인 편 가르기는 논리와 사실이 필요 없고, 오직 자기 확신과 주장만 있으면 가능하다."

집단 살인을 국가 범죄로 다루지 않은 이유

-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했는데, 위원회의 보고서와 권고사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인권침해 관행을 개선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과거 청산 활동이 수구 세력의 논리대로 '사회분열을 초래했고 시간 낭비'를 한 것일까?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집단 살인은 개별 사건이나 가해자 개인 행위로 취급됐을 뿐 정치세력의 조직적인 국가 범죄로 다뤄지지 않았다. 몇몇 군경이 개별 살인 사건으로 재판에 부쳐지기도 했지만, 과연 이들이 개인적 동기로 학살을 저질렀을까? 그게 아닌데도 집단 살인에 대한 재판은 가해자 행위를 '개인적 동기'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시간 낭비라고 일컫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참혹한 죽음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인간은 고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학살이 우리 인간성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공동체의 세계관은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관료제의 위계와 서열은 공무원을 단지 정치 권력의 대리자로 만들었다.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국제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진실을 조사한 후 국회와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각종 권고사항을 이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중대한 인권 침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과거와 같은 일들이 반복될 여지가 있는 제도를 고치지 않고 있다. 시민이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정치 세력으로부터 비상시에 또다시 학살당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정부는 '세계 속의 한국'이나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실규명이나 피해자 명예회복에 대해서 정부는 국제인권조약의 국내 적용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권의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한국에서 과거 청산 담론은 소수의 시민 활동가와 인권 변호사, 학자에 의해 방향이 설정됐고, 제도화 과정을 거쳐 일단 마무리 됐다. 일련의 과정과 결과는 상처를 흙으로 슬쩍 덮은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인권이 쉽게 침해당하고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량 학살과 세월호 사건의 요점은 공권력이 불법하게 집행됐다는 것과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의 분절화된 시스템 때문에 말미암은 행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민주주의 원리를 확장하고 폭넓게 적용하기 위해 제도적 규범을 바꿔야 한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체계를 일관된 국제 인권법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무원에 대한 교육과 관료 문화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성훈 교수 : 대학에서 사회학(정치·역사사회학)을 전공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역사와 공간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1999년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된 후 사회인문학 관점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시작했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고, 지은 책으로 <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돌베개, 2012), <인권사회학> (다산출판사, 2013 공저)이 있으며 전쟁과 남북한 정치사회변동, 정치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인민과 시민, 국민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저자와의 대화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 2014년 10월 30일(목) 오후 7시 30분부터 책방 이음에서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culture/716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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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공군훈련 불시 지도 등 공개활동 이어가


리설주 부인 동행, 인천AG 금메달리스트 환영 모임도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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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9  1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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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오증흡8연대칭호'를 수여받은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와 제458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진행한 도로비행장에서의 이착륙비행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최근 공개활동을 재개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공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이착륙비행훈련을 지도하고 2014인천아시안게임 등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와 감독들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오증흡8연대칭호'를 수여받은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와 제458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이 진행한 도로비행장에서의 이착륙비행훈련을 지도했으며, 리설주 부인과 함께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최근 세계선수권대회의 금메달리스트와 감독들을 만나 격려했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위성과학자주택지구과 17일 김책공업종합대학교육자살림집 현지지도에 이어진 이번 군부대 훈련 지도, 리설주 부인과의 동행행사 등으로 김 제1위원장의 건강이상설 등은 완전히 잠재워질 것으로 보인다.

항공 및 반항공군의 이착륙훈련은 김 제1위원장이 현지에서 기상조건과 도로비행장 상태를 파악한 후 직접 비행임무를 수립한 후 해당 작전비행장에서 여러 기종의 추격기들을 불시에 호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비행사들은 출격명령 후 몇 분안에 생소한 도로비행장 상공에 진입했다.

   
▲ 김 제1위원장은 훈련을 마친 후 "조국의 영공방위는 날씨와 시간을 보아가며 하는 것이 아니며 현대전도 가장 극악한 조건속에서 진행되는 것만큼 비행사들이 언제 어떤 정황과 조건이 조성되어도 자기앞에 맡겨진 공중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자면 높은 사상적 각오를 안고 훈련을 실전처럼 불리한 조건에서 많이 진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김 제1위원장은 훈련을 마친 후 "조국의 영공방위는 날씨와 시간을 보아가며 하는 것이 아니며 현대전도 가장 극악한 조건속에서 진행되는 것만큼 비행사들이 언제 어떤 정황과 조건이 조성되어도 자기앞에 맡겨진 공중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자면 높은 사상적 각오를 안고 훈련을 실전처럼 불리한 조건에서 많이 진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비행사들이 정말 비행기를 잘 탄다고,자신께서 바라는대로 높은 비행술을 소유했다"고 평가하고, 특히 땅을 스칠듯 초저공으로 도로비행장 상공을 통과하며 낮은 고도에서 횡전조작을 수행하는 추격기'를 지목해 평소의 강도높은 훈련을 짐작케 하는 용감한 비행기술을 보였다며 치하했다.

이날 김 제1위원장의 훈련지도에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오일정·한광상 노동당 부장들이 동행했으며, 도로비행장에서 최학성 항공 및 반항공군 참모장이 맞이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 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과 함께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최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과 감독들을 만나 격려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한편, 김 제1위원장은 리설주 부인과 함께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여자축구선수들과 역도의 김은국·엄윤철·리정화·김은주, 권투의 장은희, 레슬링의 정학진, 사격 김지성, 기계체조 김은향, 탁구 김혁봉 선수와 최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기계체조 홍은정·리세광, 레슬링 양경일 선수들, 그리고 김광민 여자축구팀 책임감독을 비롯한 감독들을 만나 격려했다.

김 제1위원장은 선수들과 감독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면서 경기성과를 축하하고 "우리의 체육선수들이 쟁취한 값비싼 승리는 우리 당과 조국과 인민에게 드리는 가장 깨끗한 충정의 선물"이라며, 선수와 감독들에게 당과 정부, 인민을 대표해 감사를 주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또 "이번에 거둔 경이적인 성과는 조선 인민의 높은 존엄을 걸고 싸워 이긴 위대한 승리이며 경기들마다에서 보여준 완강한 투지는 투쟁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기상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 김 제1위원장은 "이번에 거둔 경이적인 성과는 조선 인민의 높은 존엄을 걸고 싸워 이긴 위대한 승리이며 경기들마다에서 보여준 완강한 투지는 투쟁하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기상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김 제1위원장은 특히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김혁봉·김정 선수가 탁구 혼성복식에서 마지막까지 경기를 잘했다고 치하하면서, 이날 국제대회 참가를 위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김정선수는 돌아오면 꼭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연회를 마련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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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 일반관객에 공개.. 눈물-탄식의 시사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10/18 15:32
  • 수정일
    2014/10/18 15:3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故 강승묵 군 아버지 “다이빙벨 널리 알려 전 국민이 볼 수 있었으면”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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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8  10:15:11
수정 2014.10.18  14: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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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영화 ‘다이빙벨’이 일반 관객에게 처음 공개됐다.

17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VIP 시사회가 열렸다.

VIP 시사회에는 세월호 유가족, 소설가 이외수 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가수 이은미 씨, 배우 문소리 씨,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 사회 각계 인사들과 go발뉴스 후원 회원 및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이 참석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영화 ‘다이빙벨’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투입을 놓고 논란을 낳았던 다이빙벨을 소재로 담은 다큐멘터리다.

앞서 ‘다이빙벨’은 올해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두 차례 상영 모두 매진을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바 있다.

다이빙벨의 감독을 맡은 이상호 기자는 “여러분 도움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전능한 신이라면 4월 16일 이전으로 돌릴 테지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주먹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골든타임을 기록하려 했다”고 영화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기자는 “영화를 보시면 다시 4.16으로 돌아갈 텐데 우리가 무얼 잘못했는지 살아남은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취재했던 영상물로 만들어 진 ‘다이빙벨’은 생생한 사고 현장을 관객 앞으로 다시 끌어냈다. 미처 몰랐던 ‘뒷이야기’에 다수의 관객들은 한숨을 뱉어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다이빙벨 예고편의 한 장면

상영 후 단원고 2학년 故 강승묵 군의 아버지는 ‘go발뉴스’에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처음 기억을 되살리는 게 아닌가 하고 많이 망설여서 고민했다”며 “막상 영화를 보니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고 국민들이 영화를 보신다면 오해를 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이라면 필히 봐야할 내용”이라며 “이 영화를 널리 알려서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면 그 동안 감추어 졌던 게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여러 번 울었다”고 소회를 밝히고는 “눈 먼 나라의 눈먼 국민이 되지 않겠다”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천안함 프로젝트’ 백승우 감독은 “우리 영화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진솔함”이라며 “최근 본 영화중 진솔함이 가장 잘 드러났고 이 영화는 뜨거운 마음을 끌어내고 있다”며 국민들이 직접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 관객들도 영화를 본 뒤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등학생 정승연 양은 “영화를 보며 목이 막힌 것처럼 너무 답답했고 사고 당시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가슴이 먹먹했다”며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상영관을 늘려야 한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관객 김상미씨는 “대안언론으로 상황을 봐 왔기에 알았던 내용들이지만 영화를 통해 또다시 보게 되니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이 더 답답했다”며 “아직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있는데 꼭 같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다이빙벨’은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와 아트나인 등 10여 곳에서 오는 23일부터 관객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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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충돌후 침몰한 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천안함] 층돌후 침몰한 잠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번호 10885  글쓴이 신상철 (dokkotak)  조회 671  누리 5 (30,25, 8:2:4)  등록일 2014-10-17 15:43 대문 4
 
 
 
 
 


사흘 뒤 한주호 준위에 의해 용트림 바위 앞에서 발견되다


(WWW.SURPRISE.OR.KR / 신상철 / 2014-10-17)


천안함 반파 직후 함수와 함미 사이에서 발견되었던 미상의 물체는 천안함과 충돌하여 천안함을 반토막낸 장본인, 바로 '정체불명의 잠수함'(이하 'SUB-X'라 칭함)이었습니다. 'SUB-X' 역시 충돌로 인해 상당 부분 함체에 손상이 발생하였고, 인명피해 또한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함체 손상으로 인한 기동력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SUB-X'는 함미와 함수 사이에 있다가 서서히 움직여 함수 뒤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30여분이 지난 후, 천안함으로 접근하던 고속정 3척 가운데 2척은 천안함을 지나쳐 어디론가 부지런히 달려가는 모습이 TOD 영상에 잡힙니다. 저는 그 고속정들이 'SUB-X'를 향해 달려간 것으로 분석하고 추정합니다.


1. 사고지점과 고속정이 달려온 시점의 천안함 위치

이것을 비교하는 이유는, 사고 순간 천안함의 위치와 침몰 후 30여분이 지난 시점 - 고속정이 'SUB-X'를 향해 달려간 시점의 천안함의 위치를 비교함으로써 238초소의 TOD가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일에 대해 유추해 보기 위함입니다. 

 

 

238초소에서 촬영된 TOD 영상 상으로 천안함 사고 이후 가장 최초로 화면에 잡힌 시각은 사고순간으로부터 35초가 지난 시점인 21:20:53(실제시각 21:22:33)이며 그때의 방위각은 4070입니다.(좌측 그림) 그리고 38분이 지난 시점에 세 번째 고속정(NO-3)이 천안함을 스쳐 SUB-X를 향해 달려갈 당시의 TOD 방위각은 3400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우측 그림) 이것을 지도위에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238초소 TOD에 최초로 잡힌 지점은 A POINT(방위각 4070)입니다. 그때부터 TOD는 천안함에 고정되어 추적합니다. 이후 일정 간격으로 고속정 세 척이 천안함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고속정은 천안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지나쳐 버립니다. 세 번째 고속정이 TOD 오른쪽으로 사라질 무렵에는 천안함이 B POINT까지 표류한 상태이며 사고순간으로부터 38분이 지난 시점입니다.


2.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이 사라진 방향은?

그러면 천안함과 충돌하여 천안함을 반토막 낸 잠수함(SUB-X, 위 그림의 분홍색)은 어디로 갔을까요? 두무진 방향일까요? 백령도 방향일까요? 아니면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동남쪽으로 표류하였을까요? TOD 영상을 보면 SUB-X는 함수 뒤로 빠져나와 결국 TOD의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사라집니다. 이것은 마치 SUB-X가 두무진 방향으로 이동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답은 세 번째입니다. 잠수함 SUB-X는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동남쪽 방향으로 떠내려 왔습니다. 다만, 그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는 동력이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동력을 쓰기위에 무던히도 애쓴 결과 천안함과는 표류하는 속도가 달랐던 것입니다. 즉, 기동성에 문제는 발생했지만 완전히 정지된 상태로 표류한 것은 아니란 얘깁니다. 

사고후 천안함 함수의 이동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경로는 천안함 사고 발생 다음날인 2010년 3월 27일 오후 김태영 국방장관이 백령도 해병대 초소를 방문한 당시의 기사에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위 기사의 사진에 나오는 브리핑 테이블은 천안함 함수가 표류한 후 완전히 가라앉는 시점(27일 오후 1:37)까지 백령도 서남해안 6개 TOD 초소에서의 관측을 통해 정확하게 추적되고 표시된 내용입니다.

 

 

 

 

천안함 함수의 이동경로는 국방부가 발간한 천안함 백서에 표류한 시각과 함께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김태영 장관 브리핑 테이블에는 함수가 직선으로 이동한 것처럼 표기되어 있지만, 백서의 자료에는 약간의 굴절(22:25)부분이 존재합니다. 이는 표기하는 시간의 간격이 다름으로 인한 차이입니다. 

 

 

 

3. 잠수함의 존재 및 이동경로

천안함의 이동경로에 대해서는 백서에서도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지만, 잠수함에 관한 언급은 일체 없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존재 자체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방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존재를 알리고 밝히는 증거 자료는 적지 않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KBS 기자들의 보도와 증언'입니다.

 

 

2010년 4월 7일 KBS는 <한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내용의 특종보도를 합니다. 이른다 <제3의 부표>에 대한 논란의 시작을 알리는 그 보도는 하루만에 정정보도에 의해 묻혀버리고, 관련기사는 삭제되었으며 담당 취재진과 데스크는 방통위의 징계까지 받습니다. 심지어 일부기자들은 지방으로 전출되는 불이익까지 당합니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저는 당시 취재를 담당했던 황현택 기자를 끈질기게 설득하였으며 황 기자로부터 당시의 취재자료 일체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내용은 서초동 법무법인의 공증과 함께 재판부에 제출되었습니다. 다음은 당시 취재한 내용의 요약입니다.

(1) 제3의 부표 아래에 시커먼 물체가 가라앉아 있다

길이 60미터 가량의 물체가 수심 20미터 지점에 가라앉아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천안함 함수(47미터)와 함미(37미터)와는 다른 제3의 물체였습니다. 

(2) 제3의 부표 지점은 한주호 준위가 직접 찾고 설치하였다

사고후 사흘이 지난 3월 29일, 한주호 준위는 어선을 빌려서 어선의 어탐을 이용하여 수중에 가라앉아 있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부표를 설치합니다. 3월 29일은 바로 전날, 3월 28일 저녁 함수(20:00)와 함미(22:00)를 발견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 다음 날입니다. 즉, 함수, 함미가 아닌 다른 물체를 함수, 함미를 찾은 다음날 한주호 준위가 수색하여 찾았던 것입니다.

(3) 제3의 부표 지점은 용트림 바위 앞

제3의 부표가 설치된 지점은 용트림 바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지점입니다. 한주호 준위는 그곳에서 예비역 UDT 대원들과 함께 수색작업을 펼쳤던 중 사망한 것입니다. 한주호 사망 후 예비역 UDT 대원들은 부표가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추모제를 열었었지요.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은 천안함과는 달리 사고 지점으로부터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 및 표류하여 결국 용트림 바위 앞에서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그 이동경로는 다음과 같이 추정됩니다.

 

 

그 잠수함의 존재가 '잠수함'이라는 용어와 함께 문서로 나타난 것은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시간에 누군가 다가와 전달한 A4 용지 안에 비록 지워졌지만 충분히 식별될 수 있는 상태로 나타납니다. <안 보이는 것 두 척과..>라는 문귀와 <잠수함과 침몰초계함을 건져봐야 알 수 있으며..>라는 문귀 안에 몇 척이 가라앉았는지 그리고 가라앉은 녀석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이지요.

 

 

 

 

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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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와 김하영 - 대선의 공신들

 
 
대한항공 858편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이륙시간의 진실
 
신성국 신부 | 2014-10-18 09:50:4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정원의 두딸 김현희와 김하영은 둘 다 대통령 선거의 공신들이다. 김현희는 1987년 12월의 13대 대선 시기에 전두환의 육사동기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위해 KAL858기 조작 사건에 투입된 안기부 공작원이고, 국정원 요원 김하영은 2012년 대선시기에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여론조작하면서 맹활약한 국정원 요원이다.

전두환의 수족인 안기부는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당선을 위해 KAL858기 사건인 무지개 공작을 기획하고 활용하였다. 이명박의 하수인 원세훈 국정원장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여론조작 활동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국정원은 5천만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무참히 궤멸시켰다.

국내정치에 손을 떼고 환골탈퇴하겠다며 기관의 이름까지 바꾼 국정원이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고,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 같은 악행을 반복하고 있다. 국내정치에 일체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신임 국정원장 이병기의 발언을 과연 국민들이 신뢰를 할까?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나는 끊임없이 묻는다. 국가정보기관이 왜 자국의 국민 115명을 죽여야 했는지?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민이 탄 민간여객기를 이용하여 자작 테러를 감행하는 나라는 없다. 물론 미국의 통킹만 조작 사건도 자국의 배를 이용하여 베트남 전쟁을 유도한 경우도 있지만, 사망자는 4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두환과 안기부는 서슴없이 백수십명의 자국민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그들의 잔학성은 12·12 사태와 광주 민중 학살에서 여실히 드러났고, 군부정권에게 선량한 국민의 존귀한 생명은 한낱 권력 유지를 위한 용도 폐기물이었다. 세월호 사건도 전두환의 후계자들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사건이다.

진상규명을 호소하며 애태우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박근혜의 행태는 전두환의 악행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낸 결과로 2014년도에 세월호 사건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역사의 비극은 진실을 외면하고 밝히지 못할 때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거짓 세력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특별히 KAL858기 조작 사건, 18대 대선 부정선거 사건, 유신 잔당들의 세월호 학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 비극의 표적과 대상은 우리자신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858편의 진실을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이륙시간의 진실을 파헤쳐보고자 한다. 

김현희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였고,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하여 중간 기착지 UAE 아부다비 공항까지 왔다고 하였다. 김현희의 거짓 쟁점은 KAL858기 바그다드 공항 이륙시간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출발시간의 진위여부□

김현희는 대한항공 858편을 탑승하기 위해 1987년 11월 28일에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바그다드 사담 후세인 공항에서 대한항공에 탑승하기 전에 먼저 파나소닉 라디오에 시한폭탄을 셋팅시키고, KAL858기에 탑승하였다고 한다(안기부와 김현희 진술).

대한항공 858편이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언제 이륙하였는지 추적한 결과 안기부 수사발표와 김현희 진술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구 분

바그다드 이륙시간

아부다비 도착시간

시간 비교

안기부 수사발표

23시 25분 0

29일 02:44

대한항공 발표 이륙시간과 17분 차이

김현희

23시 27분 0

29일 02:44

대한항공 발표 이륙시간과 15분 차이

미얀마 사고 조사

보고서

23시 42분 0

29일 02:40

정상

대한항공

23시 42분 0

29일 02:40

정상

 

바그다드 공항 출발 관련한 정확한 이륙시간은 대한항공의 발표와 이라크 보고서에 나타난다. 대한항공사는 사고 발생 후 즉시 11월 30일 자 언론을 통해 대한항공사 임직원 일동 명의의 사과문을 냈는데 KAL858기는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23:42분에 이륙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사고 발생 다음날 모든 언론들이 호외기사를 통해서 KAL858기 이륙시간을 23:42분으로 보도하였다. 결과적으로 안기부와 김현희의 이륙시간은 사실과 다른 것이 되었다. 안기부의 수사발표가 1988년 1월 15일이기 때문에 사고 발생 45일이 넘은 시점이기에 서고 발생 다음 날 발표한 대한항공 발표와 누가 더 정확한 것인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부다비 도착시간의 거짓을 살펴보자. 대한항공 발표보다 17분과 15분을 먼저 출발했다면 아부다비 공항에 17분 먼저 도착해야 정상이다. 항공 사고나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비행기는 정상시간에 도착한다. 그런데 안기부와 김현희의 아부다비 공항 도착시간은 대한항공사 발표 시간보다 4분 늦은 02:44분이다. 위 도표에서 17분 먼저 출발한 비행기가 더 늦게 도착하고, 17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더 먼저 도착한 시간표가 나온다. 김현희와 안기부는 바그다드 공항 이륙시간 뿐 아니라 아부다비 공항 도착시간까지 모두 거짓말로 발표했다.

안기부의 끝도 없는 거짓말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대한항공 858편이 오후 11시 25분에 바그다드에서 출발했다고 공식 발표한 안기부는 김현희의 바그다드 공항 탑승시간도 거짓으로 발표한다. 안기부 발표를 보자.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행적에서 <28일 오후 8시 30분 바그다드 도착, 공항 대기중 폭발물 시한장치 조작. 오후 11시27분 KAL858기 탑승> 안기부는 바그다드에서 김현희의 KAL기 탑승시간이 오후 11시 27분이라고 한다. 아래 그림은 안기부의 발표문이다.

 

 

앞서서 안기부는 출발시간이 오후 11시 25분이라고 해놓고 탑승시간은 오후 11시 27분이라고 한다.

안기부 시간표를 적용하면 김현희는 대한항공 858기를 탑승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김현희 탑승 2분 전에 대한항공 여객기는 이미 출발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슬픈 코미디이다. 이런 엉터리 수사 내용이 KAL858기 사건에 대한 안기부와 검찰의 수사기록이다.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틀리니 가족회가 국정원에 수많은 거짓에 대하여 질의하면 김현희가 그렇게 진술했으니 김현희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책임을 기피하고 있다.

1987년 12월초부터 1988년 1월 15일까지 온 나라는 이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안기부는 언론 매체를 총동원하여 호들갑을 떨고 김현희를 북한 미녀간첩으로 둔갑시켜 선정적 표현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들이 발표한 대형 항공기 테러 폭파사건 수사 자료들을 차분하고 꼼꼼히 살펴보니 실제 사실과 다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허접한 삼류소설에 불과했다.

KAL858기에 대한 안기부와 공안 검찰의 수사기록은 전재산이 29만원이라는 전두환과 안기부의 민낯 그 자체이다. 전두환의 실체가 곧 KAL858기 조작 사건이다. 박근혜의 실체가 바로 세월호 학살사건이다.

신성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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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추락사고' 놓고 책임 공방...

이데일리 "경기도와 함께 주최"
경기도 "명의도용 책임 묻겠다"

'판교 추락사고' 놓고 책임 공방... "8명 치명적 부상, 사망자 늘어날 수도"

14.10.18 10:16l최종 업데이트 14.10.18 12:55l

 

 

[2신 : 18일 오전 11시 50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추가 사망 발생할 수도... '책임소재 공방' 
 

▲ 순식간에 지하 4층으로 추락...환풍구 주변 안전시설 없었다 17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야외공연장에서 환풍구에 올라 공연을 보던 일부 관람객이 지하 4층 깊이 10여 미터 아래로 떨어져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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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사망자 발생 가능성... 책임 소재 공방 예정" 김남준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대책본부 대변인(가운데)은 18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 분당구 수내동 분당구청 프레스룸에서 언론 브리핑에서 "현재 나온 부상자 11명 중에서 8명은 폐복부 등에 치명적 부상을 입은 상황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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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발생한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와 관련해, 이미 사망한 16명 외에 추가로 사망자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김남준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대책본부 대변인은 18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 분당구 수내동 분당구청 프레스룸에서 연 언론 브리핑에서 "현재 나온 부상자 11명 중에서 8명은 폐복부 등에 치명적 부상을 입은 상황으로,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한 여기서 사고와 관련한 진료비와 장례비 지원 방침, 유가족의 건의사항 등을 발표했다. 특히 이 행사를 주관한 이데일리TV 측의 발표와 달리, 경기도·성남시 합동대책본부는 이날 "이데일리 측이 양기관의 검토와 동의 없이 임의로 경기도·성남시 명칭을 사용했다"며 행사와 관련이 없다고 밝혀 이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질 예정이다. 

대책본부는 "본 행사는 이데일리가 2억 원 예산을 들여 사업을 추진했다"며 "경기과학진흥원이 무대설치비로 1960만 원 지원을 결정했으나 아직 지급한 것도 아니고, 이들은 독립적인 법인격이기 때문에 별도로 경기도의 승인을 받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경기도·성남시가 이데일리·경기과학기술진흥원의 행사 진행과 관련해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브리핑에 참여한 오후석 경기도청 안전기획관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경기도에서 그런 행사가 열린다는 걸 몰랐다"고 말했다. 또 "그러면 이데일리 측이 명의를 도용한 것이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그렇다, 명의를 도용한 것"이라며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데일리TV 측은 18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란 사과문을 올리면서, 사고가 발생한 '제1회 판교벤처밸리 페스티벌'과 관련해 "경기도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주최하고 이데일리TV가 주관사로 참여했다"고 명시했다. 

장례비 등은 경기도·성남시가 공동 지급 보증... "책임 유무 떠나 수습에 최선"

대책본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27명 사상자의 진료비와 장례비에 대해 "경기도와 성남시가 공동으로 지급 보증하기로 결정했다"며 "책임 소재가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책임 유무를 떠나 지자체가 국민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장례비는 1인당 최대 3000만 원, 진료·보상비는 피해자 요구를 최대한 반영할 예정이다. 

또 유가족의 건의사항에 따라, 장례식장 이용에 따른 지불 보증도 경기도와 성남시가 공동으로 하기로 했으며 담요와 식수 등은 대한적십자사와 성남시 맑은물사업소가 제공하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향후 사망자 유가족에게는 장례절차와 비용처리 등을 위한 1:1 전담 공무원을 배치하고 부상자를 위한 병원별 공무원을 배치하는 등 애로사항을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에 따르면 해당 공연장에는 환풍구 덮개가 총 13개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경찰이 현재 현장 구조물 정밀 감식을 진행해 하중을 얼마나 견디는지 등을 조사 중인 상항이다. 또 해당 행사를 담당했던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담당 행정원이 오늘 오전 7시께 판교 내 한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고 밝혔다.  

[1신 : 18일 오전 10시 16분]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주관한 이데일리TV, 공식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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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5시 53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 환풍구 덮개가 붕괴되면서 그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20여 명이 아래로 추락했다.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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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환풍구 덮개가 붕괴돼 수 십명의 추락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공연이 진행되던 당시 환풍구 위에 사람들이 올라선 모습(파란색 사각형). << 독자 제공 >>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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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 사망·11명 부상 등 27명 사상자를 낸 경기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와 관련해, 당시 축제를 주관했던 이데일리TV가 공식 사과했다. 

이데일리TV 측은 18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시작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10월 17일 경기 성남시에서 경기도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주최하고 이데일리TV가 주관사로 참여한 '제1회 판교벤처밸리 페스티벌'에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가슴 아픈 사고가 있었다"며 "주관사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어린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데일리TV 측은 사태수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데일리TV  "주관사로서 유감의 뜻... 사태수습 위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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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벨리 유스페이스앞 야외공연장서 걸그룹 공연 도중 발생한 지하 10미터 깊이 환풍구 추락사고로, 추락한 25명과 환풍구 부근에 있던 2명중에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 경기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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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벨리 유스페이스앞 야외공연장서 걸그룹 공연 도중 발생한 지하 10미터 깊이 환풍구 추락사고로, 추락한 25명과 환풍구 부근에 있던 2명중에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구급대원들이 지하로 추락한 사상자들을 넓은 곳으로 옮긴 뒤 돌보고 있다. 일부 소방대원은 시민들과 함께 추락한 환풍구 덮개를 옮기고 있다.
ⓒ 경기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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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벨리 유스페이스앞 야외공연장서 걸그룹 공연 도중 발생한 지하 10미터 깊이 환풍구 추락사고로, 추락한 25명과 환풍구 부근에 있던 2명중에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했다. 구급대원들이 지하로 추락한 사상자들을 넓은 곳으로 옮긴 뒤 돌보고 있다.
ⓒ 경기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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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5시 50분경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야외 공연이 진행되던 중, 공연장 바닥에 설치된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27명이 10여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8일 오전 10시 기준 현재 16명이 사망했고, 11명이 부상으로 인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이에 경기도와 성남시청은 합동으로 경기 성남 분당구 수내동 분당구청에 사고대책본부와 상황실을 꾸리고, 사망자의 장례 절차와 부상자 진료를 돕기 위해 이를 전담하는 시청 공무원을 각각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 행사를 계획했던 경기과학기술진흥원 담당자 오아무개(37)씨가 18일 오전 7시 15분께 테크노밸리 건물 옆 길가에서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이 정확한 경위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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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남북 긴급접촉' 먼저 비공개 요구했다


정부, 투명성 원칙 어겨..수석대표 '급' 논란도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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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7  14: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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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접촉(긴급접촉)과 관련, 남측이 먼저 북측에 비공개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부가 내세운 남북관계 투명성 원칙을 어긴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있다.

이와 함께, 남북 긴급접촉 수석대표의 '급'을 두고 북측은 특사 자격으로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통보, 남측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목했지만 민간인 신분인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내세운 문제도 논란거리다.

이번 남북 긴급접촉과 관련,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사전에 이것은 남북간에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서해 상에서 함정 간 교정이 발생하고, 연천에서 총격이 발생하는 등 당시 남북관계의 상황이 예민한 상황이었다"며 "그래서 우리 측은 좀 더 실질적인 협의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비공개 접촉을 제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북측이 긴급 단독 접촉을 제안했고, 서해교전 등 엄중한 사안을 논의하는 것이고 2차 남북 고위급접촉을 앞둔 예민한 시기였기에 정부는 비공개 접촉으로 하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남북 긴급접촉 대표단 명단 교환 시, 북측이 "비공개 접촉을 위해 정찰총국장과 대표 2명이 나갈 것"이라며 남측의 '비공개' 요구를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즉, 정부가 북측의 긴급접촉 제안을 두고 회담 비공개를 요구했고, 북측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측이 먼저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점은 정부가 내세운 남북관계 투명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 1차 고위급접촉 당시 북측이 비공개를 요구했지만, 남측이 투명성 원칙에 따라 일방적으로 공개했던 사례에 비춰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투명성이라는 것은 영원히 숨겼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협의 진행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어느 시기에 적절한 성과가 나왔을 때 공개는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 15일 열린 남북 군사당국자접촉을 두고 남측이 먼저 비공개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남북 긴급접촉 비공개 여부와 관련, 지난 16일 북측 <조선중앙통신> '공개보도'가 밝힌 7일, 8일, 10일에 보낸 세 차례 '각서' 내용에는 남측이 비공개를 요구했다는 언급이 없었다. 그리고 비공개를 합의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북측은 긴급접촉 당일 오전회의에 앞서 공개하자고 했지만 남측이 비공개를 요구해 수용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북측 '공개보도'는 "이번 접촉이 북남관계 개선의 오솔길을 대통로로 만들고 북남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높은 뜻을 받들어 마련된 것만큼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며 "이에 대해 남측은 머뭇거리며 저들끼리 수군덕거리더니 비공개로 하자고 주장해 나섰다"며 비공개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일단 남북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남북 긴급접촉은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한 점에는 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담 직전 북측이 공개를 요구하고 남측이 거부했는지는 남북의 의견이 갈리고 정확하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한 가지 짚을 대목은 남측이 당시 오후회담에서 언론보도를 이유로 공개로 선회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당시 남북 긴급접촉은 <조선일보>의 보도로 인해 이미 오전부터 언론에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일부, 국방부가 오전에는 언론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확인해줄 수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오후회의 이후 회담 공개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회담을 결렬시킬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까지 보내고 있다.

북측 공개보도는 남측이 오후회의에서 언론보도를 언급하며 공개입장으로 돌아선 사실을 공개, "전부 공개하자고 한 우리의 요구에 불응하여 비공개로 하자고 주장했던 남측의 돌변한 태도였다"고 밝혔다.

임병철 대변인도 17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그날 군사 당국자접촉이 열린다는 일부 언론의 추측성 보도가 계속 확산이 되고 있는 상황을 우리 당국은 감안을 했던 것"이라고 북측 '공개보도'를 인정했다.

그리고 "오후회의가 속개한 직후에 이것을 국민들에게 우리가 알려야될 필요성이 있었고, 이것을 북측에 전달한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우리가 나중에 공개해야 되겠다고 결과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시인했다.

정부 "류제승 남측 수석대표, 국가안보실장 위임받은 것..문제없다"

이번 남북 긴급접촉에서 북측이 김영철 특사의 상대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목했지만, 민간인 신분인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나가는 것이 급에 맞느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양측의 최고 실권자가 어떠한 권한을 위임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겉으로 나타나는 직위 자체만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군사당국자접촉 수석대표 급을 두고 "안보실장의 위임을 받아 임명한 것"이라며 문제될 것없다고 말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임 대변인은 "양측 당사자가 어느 정도 비슷한 권한을 위임받은 그런 상대방이 만나서 협의하는 것이 오히려 회담에 더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김영철을 북한이 특사로 보낸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국방부 정책실장을 안보실장의 위임을 받아 수석대표로 임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이날 "여러가지 고려했다. 북측이 정찰총국장 내보냈으니 군인이고, 북측이 이번에 군사문제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다룰 적임자를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번 남북 긴급접촉은 서해 교전과 연천 교전 상황 이후이고, 북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의제로 제시했기에 국방부 정책실장이 수석대표를 맡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측은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회담 단장이 아닌 '특사'의 자격으로 내보냈다는 점에서, 민간인 신분인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이 급에 맞는지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측은 전통문이 아니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각서' 형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정부가 북측의 제안을 무게감있게 보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측은 '공개보도'에서 김관진 실장이 나오지 않는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국가안보실장이 아닌 아무런 권능도 없는 한갖 국방부 정책실장을 대신 내보내겠다고 한 것은 우리가 특사급을 낮추거나 급수 또는 격을 놓고 시비를 걸게 만들어 긴급접촉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완전히 무산시켜보려는 교활한 속내"라고 주장했다.

한편,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의 남북 군사당국자접촉 폭로에 대해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앞으로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서 좀 서로 신뢰를 축적해 나가고, 관계가 좋아지면 이러한 일도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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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33명 전원 구조'

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칠레 광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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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진정한 재난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다.

라우렌세 골보르네는 2010년 8월 칠레 산호세 광산이 붕괴했을 때 광업부 장관이었다. 지하 700m 속 광부 33명이 갇히는 전무후무한 재난 사태에도 불구하고 ‘전원 구조’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고 이를 이뤄낸 인물이다.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을 빠르게 구성해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그 결과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69일 만에 광부 전원을 구조했다.

탁월한 위기관리 리더십 덕분에 라우렌세 골보르네는 2013년 칠레 대선 때 유력한 대권 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이 주요 외신에 소개돼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등에서 리더십 특강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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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칠레 광업부 장관


라우렌세 골보르네의 가장 훌륭한 점은 기존에 강조되던 팀워크가 아닌 ‘즉각적 팀 구성과 협동성’을 최대한 발휘한 리더였다는 사실이다. 칠레 광산 붕괴는 전무후무한 사고였으며 벤치마킹할 만한 참고 사례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과 기존에 함께 일하던 사람뿐 아니라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의 시추 전문가 등 외부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상황에 최적이라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팀을 꾸린 것이다. 팀은 구조를 위해 드릴로 구멍만 뚫는 팀, 구출 방법과 전략을 짜는 팀, 광부들이 구조된 후 이들의 생명을 유지시킬 팀, 광부들의 가족문제만을 담당하는 팀 등으로 나뉘었다.

명확한 목표를 갖고 최적화된 팀을 꾸린 골보르네 팀도 중간중간 시행착오를 겪었고, 위기의 순간도 맞이했지만 이를 빠르게 분석해 방해요소를 제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전원 구조의 목표를 달성했다.

칠레광산 사고 4주년, 세월호 참사 6개월을 맞이해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15일 라우렌세 골보르네(Laurence Golborne) 전 칠레 광업부 장관을 독점 인터뷰 했다. 매경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한국에 들른 그는 재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한 전무후무한 사례로 손꼽히는 칠레광산 사고의 노하우를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또 그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이런 큰 슬픔을 통해서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하고 예방 할 방안을 찾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죽은 사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출구를 가로 막은 70만톤의 바위, 90%의 습도, 섭씨 32도의 온도, 광부 10명의 이틀치 식량, 기름이 떠다니는 산업 용수, 700미터 아래속 33명의 광부. 사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2010년 8월 5일, 광산이 붕괴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은 어땠나.

=당시에 비행기를 타고 긴 여행을 가고 있었는데 대통령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칠레 산호세 광산이 무너졌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4군데 도시를 거쳐 겨우 새벽 2시에 현장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갖힌 광부를 빼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광산에는 이들을 빼낼 만한 시설이 없었다. '아 이거 엄청 늦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광부 가족들과 친지들은 이미 사고현장에 있었지만, 매우 절망한 상태였다. 우리는 광산 사고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는 무기력한(impotence) 상태였다.

-현장 상황은 어땠나.

=많은 루머와 혼란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보가 없었다. 뭘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절망했다. ‘광부들이 전부 다 죽었다’ ‘일부는 빼서 딴 데로 옮겼다’ 등의 루머들이 떠돌았다. 가족들의 불안감이 증대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 일을 주관하겠다고 했다. 2시간 마다 가족들이 있는 ‘희망의 캠프’를 찾아갔다. 수색의 진전이 있든 없든 2시간 마다 지금 상황을 꼭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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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칠레 광업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들이 당시 뜨거웠던 현장의 열기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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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을 구출할 캡슐에서 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장관이 내리고 있다.

-칠레 광산사고 광부 구출 작전은 기존 팀의 팀워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합한 최고의 팀을 즉각적으로 구성해 협동성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출작전을 실행하는 팀을 비롯해, 응급처치 담당팀, 실종자 가족 전담팀, 언론대응팀 등이 모두 당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장관이 되기 전에 기업에서 일했던 경험들이 많이 도움이 됐다. 나는 한 기업에서는 재무담당최고책임자(CFO)로서, 또 다른 회사에서는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조직을 운영하고 하부조직의 라인을 관리하는 것을 잘 할 줄 알기 때문에 팀을 조성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는 전력 회사에서 CFO로 일한 뒤, 소비자 제품 회사에서 CEO를 역임했다. 골보르네 장관에 따르면 소비자 제품 회사 CEO 시절, 2000년 당시 매출 1조 원, 직원 9000명의 회사를 2008년 퇴직 당시 매출 10조원 직원 10만명의 회사로 키워냈다.) 광부 가족들을 재우고 애들을 학교로 보내기 위해 가족들을 돌보는 팀이 필요했고, 구출된 광부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팀, 그리고 구조 자체를 하는 테크니컬 팀 등 필요한 팀들을 즉각 구성했다.

-지상과 광부를 잇는 구멍 세개가 뚫리고 구멍에 들어가는 지름 10cm의 튜브에는 비둘기를 뜻하는 팔로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팔로마를 통해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카메라였다. 상황을 보여줘야겠다고 판단한 이유는.

=이런 비극적 상황에 사실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무척 예외적인 상황이다. 별에 별일이 다 있을 수 있으니까. 더구나 라이브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일정 부분 위험 부담을 가지고도 감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중계를 한 이유는 사람들의 목숨이 중요했기 때문에 중계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있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필요했다.

-처음부터 작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탄광 길을 따라 직접 들어가기로 했다. 터널을 통해서 사람을 내려 보냈다. 그러나 너무 위험해서 포기했다. 탄광 안에서 구출을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더 이상 방법이 없어서 구멍을 뚫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캡슐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구멍들을 뚫어야 했기에 (10평 만한 인터뷰 룸을 가르키며) 크게 구멍을 뚫었다.

-그러다 매몰 17일째가 되던, 8월22일 매몰된 광부들을 찾았다.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구멍을 뚫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루에 50~70미터 밖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일이나 걸렸다. 드릴을 700m를 뚫었다가 올리는 것만 해도 6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드릴 끝에 스프레이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옆에 물어봤다. “이거 원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나?” “아니요" 원래는 페인트가 없었다. 그럼 이건 사람들이 있는 거다. 너무 흥분해서 또 살펴보니 드릴 끝에 편지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들 33명이 모두 살아 있다” 모두 다 흥분했다. 그 전에는 (내 장관 자리에) 아무도 있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는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있고 싶어했다.(웃음)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나머지 날들은 그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기계와 자금 문제였다. 그날부터는 판 구멍을 통해 식량과 의료를 지원했다. 또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심리적인 지원과 통신장비를 내려보냈다. 영상 통화도 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10월 12일~13일 마지막 이틀 동안은 잠도 안자고 총력을 기울여 광부 33인과 구출인원 6명 등 총 39명을 모두 구출했다. 달 착륙 다음으로 전세계 15억 명의 인구가 이번 구출 영상을 봤다고 들었다. 48시간 잠도 못자고 기뻤지만, 끝나고서는 졸음이 몰려와 자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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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된 광부 한명이 자신의 가족과 뜨겁게 포옹을 하고 있다. 뒤에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는 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장관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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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칠레 광업부 장관 뒤로 칠레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수색하는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17개의 구멍을 뚫었다. 그 와중에 기계가 부러지기도 했고 우리가 찾는 방과 전혀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다. 겨우 내려가보니 그 사람들이 있는 방이 아닌 다른 방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잘 찾아서 가는 것이었다. 구조의 키는 엔지니어였다. 계산을 하고 했는데도 비켜가고 다른 곳으로 가기 일쑤였다. 축구에서 바나나킥 하듯 추를 꺽어가며 땅을 파들어갔다. 17일째 되니 가족들이 짜증도 냈다. 초조해졌다.

-구조팀과 지질학자들은 700m의 암반을 뚫는데는 3~4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 빠른 시간에 구조했다. 시간을 단축하게 된 비결은 무엇이었나.

=재앙상황을 다룰 때는 기대감을 감안해서 말해야 된다. 처음에 구멍을 뚫기 전에는 얼마나 걸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날짜를 보수적으로 이야기했다.

-현장으로 달려간 당신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광부 가족들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모든 책임을 감수하기로 하고 대통령을 설득해 가족들의 믿음을 얻어냈다고 들었다. 광부 가족들에게 당신은 어떤 말을 했나.

=전체적으로 정책을 투명하게 집행한 것이 컸다. (이 대목에서 골보르네 장관은 '투명성'(transparency)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광산 붕괴 이틀 째 날, 산이 흔들리면서 구조대원들이 뛰쳐나왔다. 먼지 투성이로 나오더니 “장관님”하고 내 손을 붙잡았다. “저희 작업 더 하면 죽습니다”라고 말하며 울었다. 광부 가족들과 2시간 마다 이야기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이야기를 숨김 없이 말했다. 그 가운데 한 광부의 딸 두명이 나를 올려다 봤다. 눈물을 계속 흘렸다. 나도 그 순간에 눈물이 났다. 마음이 벅차서 이야기를 못했다. 쉬었다 이야기 하기를 반복했다. 아마도 그 순간에 장관도 그 사람들만큼 안타까워 한다는 것을 믿은 것 같다. 그런 마음까지도 투명하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당신이 꾸린 팀이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 돌발변수가 생기면 현장 전문가들 의견을 반영해 즉각 수정해나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모든 상황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을 믿어야 한다. 광산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 역할을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그들을 믿고 기회를 줌으로써 유연성을 유지했다. 재앙이 있을 때는 여러 부류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일을 잘 헤쳐나가려면 코디네이션, 즉 조정 능력 그리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협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광부들 구출 이후 한 광부의 기록지를 놓고 출판 전쟁이 벌어지고 했고, 생존한 광부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리얼리티쇼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들이 가진 휴대폰 MP3, 시계들은 실시간 광고판으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왔는데.

=이런 일에는 경제적인 면이 꼭 연결되는 것 같다. 요즘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이미 책도 나왔고, 올해 말에 할리우드 영화도 나온다. 정부에서는 되도록 이러한 이익이 광부들에게 조금이라도 갈 수 있도록 했다. 배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sewol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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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렌세 골보르네 전 칠레 광업부 장관

-이번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한국의 세월호 구조에 있어서는 칠레 광산사고 때와 달리 '콘트롤 타워'가 없었다는 점이 많이 지적됐다.

=큰 재앙이었다. 내부적인 사항들은 세세히 알 수 없지만, 이런 큰 슬픔을 통해서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잘못한 게 무엇인지 인지하고 다시 되짚는 과정을 통해 예방 할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지난 것은 돌아올 수 없다. 다만 과거를 통한 배움이 있어야 한다. 죽은 사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초기 대응이 너무나도 미숙했다. 단원고 학생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알려졌다. 재난대책본부가 꾸려졌지만 실종자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투입되지도 않은 잠수부가 300명이라고 보도되거나, 생존자들이 숨 쉴 수 있는 에어포켓이 존재한다며 공기를 투입하는 일도 벌어졌다.

=도덕적인 차원은 물론이고 합리적 차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숨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도 처음부터 솔직하게 있는 대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간혹 테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상황에서는 일부러 말을 안할 수는 있으나 그런 상황 외에는 모든 상황을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당신은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노스웨스턴과 스탠포드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것으로 안다. 민간 기업의 엔지니어 출신으로 정치 경력이 전무했는데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대통령이 내각을 구성할 때 모든 장관들을 전문가들로 꾸렸다. 집권 중후반에는 정치인과 전문가를 반반으로 했지만, 초기에는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전문가로 했다. 당시에는 대통령과 잘 맞아서 했다. 처음에 정치를 시작해서 쉽지는 않았다. 익숙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광산 사고를 통해 정치적 자산이 생겨 그 이전보다는 장관 업무를 수행하는데 훨씬 수월해지긴 했다.

-팬 사이트가 생겨났고 당신의 사진을 넣은 셔츠도 판매되기도 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이번 광산 붕괴사고 대처능력에 대해 91%가 지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 지난 대선에는 대선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다시 대통령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가.

=원래 나는 정치가가 아니었다. 장관 시절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기여를 했지만 정치는 내 영역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은 사외이사 활동을 여러 군데 하고 있고, 사업도 고려하고 있다. 제일 기대하고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내 딸이 한달 후면 애기를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할아버지가 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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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한국에서 수난 당하는 언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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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 마음이 가장 추워"

 
[리멤버 0416- ③] '세월호 6개월' 하루 앞둔 10월 15일, 진도 팽목항·체육관
14.10.16 20:20l최종 업데이트 14.10.16 20:20l
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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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풍선 너머, 텅 빈 체육관 16일이면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6개월째 되는 날이다.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6개월째 아들·딸·남편·엄마·조카·동생의 수습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 10명의 이름이 적힌 풍선 너머로 텅 빈 진도체육관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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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꽃 피던 때 진도에 온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은 이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실종자 수습 소식은 7월 이후 끊겼다.

그들의 시간은 '4월 16일'에서 1분, 1초도 더 나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실종자 허다윤(단원고 학생)양의 어머니 박은미씨도 참사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4월 16일을 살고 있다. 박씨는 "실종자 10명을 찾아야 한다는, 그 하나의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며 "6개월이 지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4월 16일을 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종자 가족들 중 유일하게 두 명의 실종자(동생 권재근, 조카 권혁규)를 기다리고 있는 권오복씨도 "(참사) 6개월째 되는 날이라 해도 큰 의미는 없다"며 씁쓸한 미소를 내보였다.

팽목항·체육관 '적막'... 자원봉사자도 상당수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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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그림 앞, 몸져누운 아내 15일 편두통약 두 알을 먹은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 아내 유백형씨가 진도체육관에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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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팽목항도, 진도체육관도 한산했다. 사고 당시와 비교하면 "아무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적막이 흘렀다. 최근 '기다림의 문화제' 행사 때문에 1000여 명이 모였던 팽목항(관련기사 : 김제동, 팽목항 찾아 눈물... "대통령 사랑해달라")에는 파도 소리와 펄럭이는 노란 리본 소리만 남았다. 진도체육관의 대형 모니터에선 해양수산부 국정조사 소식이 공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원봉사단체도 상당수 철수했다. 사고 직후 진도에 머물던 자원봉사단체 300여 팀은 이제 10팀 남짓으로 줄었다. 최근엔 일부 민간잠수사도 사고 현장을 떠났고, 사고 이후부터 진도에 머물던 배의철 변호사(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까지 소속된 대한변호사협회의 사정에 따라 복귀했다.

올 가을 들어 가장 기온이 낮았던 이날, 실종자 양승진(단원고 교사)씨의 아내 유백형씨는 몸져누웠다. 날이 급격히 추워진 며칠 전부터 유씨는 포도당 주사에 의지해 잠을 청하고 있다. 유씨는 편두통약 두 알을 입에 털어 넣었다. 유씨 팔뚝의 여러 주사바늘 자국이 눈에 띄었다. 유씨는 "남편이 수습되더라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죽었더라도 바로 찾았으면 예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잖아. 지금은 그런데…. 나오더라도 형체도 못 알아볼 거 아니야. 점점 날짜가 지날수록 내 남편의 모습이 점점 사라진다는 게 참 마음을 힘들게 해. 유골이라도 찾으려고 지금 버티고 있는 거지."

몸도 춥지만 마음 역시 춥다. 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는 "추위를 엄청 탄다. 발도 시리고, 손도 시리지만 마음이 가장 춥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에 다윤양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나흘 전 찍은 가족사진을 가장 먼저 올렸다. 박씨는 사진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너무 예쁜 딸.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편안하게, 행복하게 있으라고 (다윤이에게 말하고 싶어요)…. 다윤아 사랑해."

"1분, 1초라도 빨리... 어서 물밖으로 나왔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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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막 속 체육관, 해수부 국감 현장 방송 15일 실종자 권재근씨, 권혁규군 그림 너머의 진도체육관 대형 모니터에서 해양수산부 국정감사가 방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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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리본, 그리고 태극기 15일 '어서 돌아와, 친구들아'라고 적힌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리본 너머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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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째, 매일 아침 팽목항을 찾아 딸 황지현(단원고 학생)양의 아침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심명섭씨(관련기사 : "추석까지 이럴 줄이야" 딸 아침밥 챙겨 매일 팽목항으로)는 이날도 차로 30분을 달려 팽목항에 지현양의 밥상을 차렸다. 심씨에겐 지난 6개월만큼, 앞으로의 시간도 걱정이다.

"이 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그게 제일 힘들어. 길이 안 보이니까.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고. 수색도 시원찮고, 이게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답답하지."

지현양 아버지 황인열씨를 포함해, 단원고 학생 실종자의 아버지들은 수색이 중단되지 않는 한 쉬지 않고 사고 현장 바지선에 나간다. 팽목항에서 사고 현장까진 배로 약 1시간. 심씨는 "(남편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 1박 2일 동안 사고현장에 다녀오는데 그리고 나면 기운이 쭉 빠져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한다"며 "1분, 1초라도 빨리 실종자 10명이 어서 물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의 절반이 흘렀지만 이달 중 세월호 내부를 수색한 시간은 채 5시간이 못 된다. 이날, 10월 들어 처음 이틀 연속 세월호 수색 작업이 진행됐지만 수습 소식 대신, 세월호 선체 곳곳이 붕괴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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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에 담긴 단란한 가족사진 15일 실종자 황지연(단원고 학생)양의 어머니 심명섭씨가 진도체육관에서 휴대폰의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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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목항 방파제의 노란리본 15일 노란리본이 묶여 있는 팽목항 방파제 너머로 해경 함정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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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들과 한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 16일 편에서도 들을 수 있다.

☞ 아이튠즈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 오마이TV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 팟빵에서 <장윤선의 팟짱>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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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가슴 시린 1,000번째 '목요집회'

민가협, 가슴 시린 1,000번째 '목요집회'변함없는 구호 '국보법 폐지, 양심수 석방'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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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6  2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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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가협 목요집회가 16일 1,000회를 맞아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50여 사회단체, 300여 명의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상임의장 조순덕)가 지난 1993년 9월 23일부터 매주 목요일 진행해 온 '목요집회'가 16일 1,000회를 맞았다.

민가협은 16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국정원내란음모정치공안탄압규탄대책위 등 50여 단체, 300여 명의 인사들과 함께 1,000회 목요집회를 개최하고 이날도 변함없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을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한 국가 인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양심수가 없고 반민주적 악법들과 제도들이 폐지되며, 정의가 사회의 우선 가치가 되는 세상이 올때까지 목요집회는 그 역할과 사명을 다할 것"이라며, 양심수 전원 석방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악법의 철폐, 그리고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목요집회는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없는 사회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이 첫 양심수 사면에서 만기출소를 앞둔 일부 양심수만을 석방시키고 석탄일과 광복절에는 사면조치없이 건너뛰는 기만적 태도를 보이자 이에 맞서 민가협이 그해 9월23일부터 시작한 '목요일의 외침'이었다.

장소는 통행이 많고 역사적 상징성이 있는 탑골공원.

민가협은 당초 목요집회를 12월 23일까지만 계획했으나 김영삼 정부에서 5년동안 4,263명이나 발생한 양심수의 존재를 감추고 '문민정부에 양심수는 없으며 따라서 양심수 사면도 없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강산을 두 번씩이나 변하게 했을 시간이었고,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 목요집회는 사회적 약자의 신문고로, 정의·평화·인권을 지키는 파수대로, 반전평화와 자주통일을 외치는 종루가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 1,000회를 맞는 목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의 바램을 담아 보라색 풍선을 날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지난 21년간 매주 진행된 목요집회 1,000회를 맞이한 참가자들은 어머니나 부인, 또는 본인이 민가협과 맺은 인연을 저마다 소개하면서 2시간 동안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 왼쪽부터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은 "남편과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 내 딸, 내 아들의 석방운동을 벌이던 것이 억울하게 구속된 모든 양심수들의 석방운동으로 발전됐고 사회의 법과 제도가 정의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져 '양심수를 만드는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그간의 민가협 활동을 압축해 설명했다.

조순덕 의장은 "단 한명이라도 양심수가 남아있다면 목요집회를 중단할 수 없다"며, 21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지만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어머니들은 계속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여기까지 이 운동을 끌고 온 어머니들을 존경한다고 인사를 전하고 1,001회 목요집회부터는 감옥을 텅텅 비게하자고 목청을 돋웠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가슴 시린 오늘 축사를 해야 할 자리인가"라고 말문을 뗀 후, 긴 세월 꾸준히 집회를 계속해 온 위대한 모성에 경의를 표시했다.

권낙기 대표는 "회의시간에 김장 담그고 된장 담그는 수다가 대부분인 이 어머니들은 사랑하는 자식들이 출소했어도 여전히 민가협을 지키고 있다"며, 대단한 이론이 아니라 어머니들의 따뜻한 피흐름, 그런 마음이 민가협을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반북 대결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빗대 "사람이나 단체나 수명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요즘 상황을 보면 민가협 어머니들이 그만 두고 쉬기는 커녕 '회춘'할 판"이라고 탄식했다. 이어서 "함께 슬퍼하고 격려해 주는 어머니들이 있다는 영광을 함께 하자"며 참가자들이 더 분발할 것을 당부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이유진 녹색당 공동대표, 이정미 정의당 부대표 등은 축사에서 지난 21년간 목요집회를 지켜온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목요집회를 끝내도 좋을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왼쪽부터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윤기진 민권연대 대표,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5번에 걸쳐 감옥살이를 하면서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신세를 많이 진 사람 중 한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감옥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달려와 준 분들이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87세의 노모는 민가협에서 활동한 것을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기억하고 아들과 자신이 같은 가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3년 징역을 사는 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고 생활했던 노모의 마음이 곧 민가협 어머니들의 마음일 것"이라고 인사했다.

한충목 대표는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참가자들과 힘껏 외치며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감히 그 존재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양심수로 호명해 1999년 2월 전원 석방시키고 북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한 것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둔 최고의 성과"였으며,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투쟁에서 비록 소기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국가보안법 적용에서 폐해를 많이 줄여 나간 것도 일정한 성과라고 언급했다.

박래군 이사는 "10년 전부터 목요집회를 찾는 발걸음과 관심이 많이 줄었다"고 우려하고, 숫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양심수가 생기고 있는 상황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기진 민권연대 대표는 "21년의 세월동안 1,000번의 집회에 녹아있는 한숨과 눈물, 오열을 기억해 달라"며, "'웬수'같은 자식이 아니라 동지같은 자식으로 만들어 준 민가협"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목요집회에는 '전직' 뿐만 아니라 '현직' 양심수들인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누구도 들어오길 원치 않는 민가협 신입회원의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어머니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1,000번째 목요집회는 장기수 출신으로 백발이 성성한 통일광장 회원들이 고난과 희망을 상징하는 보랏빛 머리수건을 쓴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고 참가자들과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합창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01번째 목요집회도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예고됐다.

   
▲ '현직' 양심수들인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누구도 들어오길 원치 않는 민가협 신입회원의 자격으로 무대에 올라 어머니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고난을 상징하는 보랏빛 머리수건을 쓴 민가협 어머니들이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가슴 시린 1,000회 목요집회.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위로하고 격려했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노래패 '꽃다지'와 '우리나라'가 민가협 어머니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헌정공연을 펼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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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되는 남북군사당국자 접촉

 
 
<분석과전망> 남의 ‘북방한계선’과 북의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
 
한성 자유기고가 
기사입력: 2014/10/16 [22:2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SBS에서 캡쳐

 

  

군사현안을 다 다룬 남북당국자 접촉

 

15일 판문점에서 가진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은 남북 군부 간에 대두해있는 현안의 대부분이 다루어졌다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대북전단 살포상호비방 중지 등이 주요의제였다.

비록 비공개접촉이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았다. 2차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는데 있어서 그 길을 닦는 의미가 있는 만큼 더 그랬다물론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치부해도 될 터였다양상만으로만 보면 팽팽했다.

 

북측은 접촉에서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중단시킬 것을 요구했다. 2004년 남북 간에 합의한 심리전 중단 합의를 상기시키고 강조하는 등 강력했다항의성 요구라 할만했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특성상 전단 살포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했다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를 막을 법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정치적 문제인 것을 한껏 좁혀서는 법적인 문제로 접근한 것이었다대표단의 권한을 뛰어넘는 즉정부의 정치적 소관사항임을 밝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언론을 포함한 비방중상 중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측은 비슷한 논리를 동원했다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북한의 요구에 동원되고 있는 우리측의 그 논리들에 대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식상해했다익히 수도 없이 접했던 것들이어서였다그렇다고 사람들이 군사당국자들의 접촉 자체에 대해서까지 식상해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1년 2월 군사실무회담 이후 3년 8개월 만에 이루어진 접촉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더구나 지금의 접촉이 단순히 제기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2차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성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그 주목성은 더욱더 높아져있었다.

 

‘NLL’ 대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

 

그에 걸맞게 이날 접촉은 크게 주목할 만한 내용 하나를 포함하고 있다북한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소위 '서해 경비계선내에 우리 측 함정이 진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서해 경비계선은 북한이 지난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분계선이다북한이 칭하는 정식 이름은 '조선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이다.

북측의 '서해 경비계선준수 요구에 우리 측은 "북측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맞섰다.

 

우리정부는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북한 역시 우리정부의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이번 접촉은 남북군사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측의 입장이 정면으로 맞닥뜨린 셈이다대단히 중요하다. NLL 대 서해 경비계선'의 대립전선이 쳐지고 있는 것이다.

 

 

▲ 사진, 취키백과에서 펌


 

NLL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은 위기백과에 잘 설명되어있다이에 따르면 NLL은 남북 간에 합의된 해상경계선이 아니다마크 웨인 클라크 UN군 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인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UN군과 북한 인민군이 정전협정을 발효했을 때 육상경계선은 합의되었지만 해상경계선은 합의되지 못했다해상 경계선에 대해 UN군과 북한군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연안수역의 범위를 둘러싼 문제였다. UN군은 3해리를 인민군은 12해리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UN군은 '연해의 섬 및 해면'에 관한 통제권은 1950년 6월 24일 이전을 기준으로 하되서해5(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UN군 사령관 관할 아래 둔다는 단서규정을 두었다북한과 합의된 단서규정은 물론 아니었다일방적이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한달 뒤인 8월 30클라크가 직접 나섰다그때 NLL은 설정되었다이 또한 설정일 뿐 합의가 아닌 일방적인 것이었다그 일방성은 북한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행태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휴전협정이 조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북한 황해도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이는 NLL이 이 대통령의 황해도 침공을 막기 위해 클라크가 취한 군사적 조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NLL이 설정된 뒤 그것이 우리 해군에게만 전달되었을 뿐 북한에 대해서는 통보조차도 되지 않았던 이유이다.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문제 제기는 남북관계개선 전망 속에서 나온 것인가?

 

NLL의 남쪽까지도 포괄하고 있는 것이 '서해 경비계선'이다서해 5개 도서의 광범위한 남단 해상 모두가 이 분계선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우리정부가 '서해 경비계선'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이다서해 5개 도서의 남단 수역을 고스란히 북한에 내어주는 꼴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서해경비계선문제는 이번 접촉에서야 처음으로 나온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익숙한 문제로 되어있다. "남측 함정이 경비계선 안으로 진입하면 발포하겠다"라는 부당한 무선통신을 북한은 올해들어 계속 보냈다고 군 당국자가 언론을 통해 밝혔던 것이다.

 

알려진 것에 따르면 이번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서해 경비계선'에 남측 함정이 진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두고 볼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고 했다.

이는 지난 7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에 대해 즉각 응사를 해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데에 있다이후 북한군이 NLL 일대에서 더욱 공세적으로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SBS의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군 당국에서는 NLL 일대에서의 북한 경비정 화기 사용이 잦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이 서해 경비계선문제를 부각시킨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른바, NLL 무력화 전술로 보고 있다이어 북한이 이번 접촉을 통해 '서해 경비계선'을 이슈화하려는 것으로 보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한 이슈화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북한이 지난 2007년 11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평화수역 지정 문제를 제기했을 때 내놓았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NLL과 서해 경비계선을 아우르는 범위 내에서의 해상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하자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들은 북한에서 남북군사당국자 접촉을 제안했던 것 그리고 북측의 김영철 수석대표가 서해 경비계선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던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북한의 서해 경비계선문제는 단순히 NLL침범 중지를 제기하는 우리정부의 주장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2차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그에 기초해서 진전되게 될 남북관계개선사업에 대한 전망 속에서 제출된 것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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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숙 수녀, 징역 5월, 집행유예 1년 선고

소희숙 수녀, 징역 5월, 집행유예 1년 선고한국교회 첫 수녀 형사재판, 제주 해군기지 반대활동 중 기소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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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15  15: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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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활동으로 기소된 소희숙 수녀에게 법원이 징역 5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소희숙 수녀(스텔라, 66)는 2013년에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차량 진입을 막고, 여경의 손을 물어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소희숙 수녀의 재판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여성 수도자가 기소돼 재판을 받은 첫 사례여서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소 수녀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소속이다.

담당 변호인인 백신옥 변호사는 15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 통화에서 이날 오후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6단독 재판부가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백 변호사는 피해를 입었다는 여경이 전치 2주 진단을 받아 상해로,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미사에 참여하며 차량 진입을 막은 것이 업무방해로 기소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소 수녀의 나이가 많고, 경찰이 입은 손등 상해가 가벼우며, 업무방해 정도도 경미하다는 점이 참작 사유가 됐다”고 덧붙였다.

소 수녀 측은 항소할 계획이다.

   
▲ 소희숙 수녀 ⓒ정현진 기자


백신옥 변호사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위법이었으며, 공사 과정에서도 불법공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는 사회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당한 공사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 정당한 업무가 아니라면 업무방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백 변호사는 “소 수녀는 (여경의 손을 물었을 때, 경찰들에 의해) 오른쪽 팔은 뒤로 꺾여 있었고 왼쪽 팔을 비틀린 상태였다. 따라서 아픔을 모면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이에 관한 증거를 보충해 재판부를 설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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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입니다"

[리멤버 0416-①] 세월호 대변인 유경근씨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14.10.15 22:03l최종 업데이트 14.10.15 22:03l

 

 

대한민국은 6개월째 '4월16일'에 멈춰있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이제 거리에서 추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세월호 참사 발생 6개월을 맞아, 유가족과 실종자가족, 생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편집자말]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들, 하나도 안 버리고 집에 그대로 뒀어요. 아이 방에는... 지금까지 딱 두 번 들어갔는데 5월쯤 장례식 끝나고, 혹시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 있을까 싶어 가봤어요.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그거라도 갖고 있다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이불을 들추고 해도 한 올도 없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던 유경근(45)씨의 목소리가 잠긴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지난 4월 23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로 돌아온 딸 유예은(18)양과,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들에 관해 언급할 때였다.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됐고, 눈물도 잔뜩 고였다. 그러나 그 눈물은 100여 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끝내 흘러내리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미술관에서 유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어렵사리 성사됐다. "죽어서 딸 곁으로 갔을 때 떳떳하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참사 초기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대변인을 자임했던 유씨는, 9월 말부터 지금껏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그는 "그간 정치인들이 유가족을 이용해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왔는데, 언론이 마치 유족들을 정치인 대하듯 하는 게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족 연루 폭행 사건 언론보도 보면서 "언론 기피증 생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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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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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됐다. 유씨는 유가족들의 상황에 대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각오는 변함없지만, 날짜가 길어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잠시 자체적으로 치유와 회복을 하며 숨을 고르는 단계이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한 유족 아버지는 최근 병원에서 말기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지만 소중한 딸을 잃은 아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대변인이라는 역할 탓에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유씨는 최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한동안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진심으로 죄송하다, 유족이 연루된 폭행사건 후 자중하자는 뜻도 있었고 이후 언론 보도 및 방향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아 일종의 기피증이 생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충고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저를 예은아빠가 아닌 프로정치인처럼 대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며 "저나 위원장 모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다, 세월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공인' 취급 받을 일은 평생 없었을 평범한 서민들"이라 썼다. 또 "제가 아무런 계산 없이 하는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에 무슨 큰 의미나 복선이 있는 듯 해석하고, 심지어는 그걸 강요하는 듯 보이는 언론이 너무나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15일 현재 국회 본청 앞(96일째)과 광화문 광장(94일째), 청와대 앞(55일째)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한편 매일 대학 학생회·지역 단체 등에 직접 찾아가 국민간담회를 열고 있다. 유씨는 "앞으로는 아이들이 있는 안산 분향소를 중심으로 국민들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며 "저희도 지치지 않을 테니, 부디 국민들도 끝까지 지치지 말아주시라"고 부탁했다.

15일은 예은이의 18번째 생일날이다. 유씨는 딸의 봉안함이 안치된 평택 서호추모공원으로 가기 앞서 이날 오전 1시께 딸에게 쓴 편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아빠 딸로 태어나 17년 동안 자랑스러운 딸로 살아줘서, 영원히 예은이 아빠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또 아직도 4월 16일이라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더니 매일 쓰러져서, 안산으로 이사 와서… 모든 게 미안하다"고 썼다(관련기사: "그간 내 딸로 살아줘서 고마워").

다음은 유경근씨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말기암 판정 등 한계 다다른 유족들... 안 지칠 테니, 국민들도 힘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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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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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여야의 3차 합의안이 나왔지만, 유족들이 주장해온 것과 거리가 있다. 
"언론들은 '거부'와 '찬성', '조건부 수용' 중 분명한 걸 원하는데 사실 애매하다. 한편으론 앞서 두 번 거부를 한 상태라 국민들과 유가족 내부로부터 받는 부담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끌려가듯 결정할 수는 없잖나. 현재 공식적이고 정확한 입장은 3차 합의안에 대한 '거부'가 맞다. 그러나 백지부터 하자는 게 아니라, 향후 재논의하기로 한 '특검후보 추천에 대한 유가족 참여'를 애초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약속했던 대로 합의문에 담으란 거다."

- 지난 6일 대검찰청이 발표한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결과와 10일 감사원이 내놓은 최종 감사결과에 대한 평가는?
"검찰 결과에는 해경 차장이 최고 처벌 대상으로 돼 있던데, 제가 봤을 땐 그 윗선인 청와대나 해경청장은 빼놓고 한 거다. 수사를 한 후 '혐의가 있다', '없다'도 아니고 아예 배제를 하고 시작한 것이다. 이건 누가 봐도 사전에 범위를 정해놓고 한 '꼬리 자르기 식'이 아닌가. (입건된) 사람 숫자만 몇 백 명이라고 했을 뿐 해경청장도 아닌 해경차장까지만 딱 해 놨으니 성역 없이 수사했다고 보기 어렵다(※실제로 감사원·검찰 발표에는 '청와대'에 관한 언급이 없음-기자 주). 저는 그래서 더욱 진상조사위와 특검의 필요성이 부각됐다고 본다."

-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 연루 사건으로 여론의 온도가 달라진 것 같다. 최근 유가족이 직접 '찾아가는 국민간담회' 등을 하고 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지금까지 해온 간담회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다. 하루에도 10건 이상 신청이 들어와서 전부 소화하기가 벅찰 정도다. 주로 세월호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하고 있는데,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학 간담회라고 해도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온 '수업시간'에 초청받아 가면 더 민감한 질문들이 나온다. 그래도 우리는 덜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들과 만나 유족에 대한 오해를 풀려고 노력 중이다."

- 지난달 말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이 안산 분향소에서 영정을 뺐다. 유 대변인의 직접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등 사실상 두 유가족 대책위가 갈라진 상황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건에 대해 한 번도 제 입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사실관계가 어쨌건 내용이 자극적이라, 자칫 대리기사 건과 마찬가지로 저희가 말하려고 했던 본질과 어긋나서 보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가 당시 착각해서 얘기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고, 여기에 일반인 희생자 유족에 대한 비하나 폄훼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반응은 피해자 가족끼리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아쉽다는 정도였다." 

- 참사 후 6개월이 흘렀다. 안산분향소 조문객이 하루 300명 정도로 감소한 상황이다.
"사실 (잊히는 건) 물리적으로 당연한 일 아니겠나. 우리에게 6개월은 길지 않았지만 다른 분들에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또 저희가 불가피한 상황 탓에 서울에 자주 가면서 여기(안산분향소)를 많이 비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분향소 중심으로, 안산시민·국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 중이고, 이번 주말 유가족들 간의 워크숍을 거친 후 곧 그런 내용을 알릴 계획이다.

유족들은 6개월이 다 돼가면서 심리적·육체적으로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 지금까진 '이 상황에 무슨 병원이냐'면서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요즘 병원 가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아빠'들은 집안에서 가장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버티다 보니 요즘 부쩍 우울해해서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별법 논란이 너무 길어지면서 유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아 고민이다.

우리 아빠들 중에는 참사 이후에 없던 병이 생겨서 얼마 전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분도 있다. 참사 전에 그런 징조가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전혀 없다가, 최근에 몸이 좀 이상해서 가봤더니 말기 암이었던 거다. 저희가 보기엔 뻔하다. 암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았을 때에는 굉장히 빠르게 증식하니까. 한 달 남았다고는 하는데…."

"딸 사진이 너무 생생해서, 눈물이 나 보질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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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고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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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끼리 함께 지내면서 친척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하던데.
"친척보다 가까워진 게 아니고, 그냥 유가족 밖에 없다. 내 동생들이나 조카, 이모들에게는 굉장히 미안한 얘기지만, 제게 '괜찮냐'고 신경써주고 물어봐주는 게 너무 힘이 든다. 특히 우리 집은 명절이나 아이들 생일 때 가족모임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그게 너무나 부담이 되더라. 그렇다 보니 잘 안 보게 되고 더 미안해지고…. 결국 이런 얘길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유가족들과 제일 가까워졌다.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아이들도 쉽지 않다. 엄마아빠가 이 일 때문에 항상 매달려있고 고생하고 우는 걸 보니까, 언론을 통해 어떤 상황인지를 아니까, 아이들이 대부분 이 일에 대해서 아예 언급을 꺼린다. 문제는 그렇게 속으로 참고 곪다보니 병이 생긴다는 거다. 그리곤 엄마들이 어쩌다 집에 와 음식을 해주면, '맛있다'면서 두 세 그릇씩 먹으니 엄마들 속이 얼마나 뒤집어지겠나. 또 요리를 해도 먹어줄 자식이 없는 엄마들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십대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동생들을 챙기겠다'면서 팔을 걷고 나섰다. 지금까진 개인적으로 연락되는 사람끼리만 아이들 공부 시켜주고, 대신 돌봐주고 그랬는데 앞으로는 체계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다. 그렇게라도 서로 위로한다니, 우리로서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최근 페이스북 등에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유가족이고 예은아빠'라는 글을 올렸다. 그간 언론 보도에 대한 억울함도 피력했는데. 
"그 글을 쓴 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재원 부대표가 분향소에 왔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제게 기자들이 던지는 모든 질문이 같았다. '유가족과 여당 간에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했는데, 그 뒤에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전제를 깔고 있는 거다. 결국 제가 굉장히 폭발했다. 상갓집에서 오는 사람 막는 거 봤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흘리는 눈물이 진짜건 아니건 우리 애를 위해 조문 왔다는 데 왜 막겠나. 

오신 손님을 배웅하는 건 당연한 예의 아닌가. 그걸 두고 '위원장이 바뀌더니 뒤에 뭔가 있다'면서 아니라고 해도 믿지를 않기에, 그 글을 쓰게 됐다. 어쨌건 우리에겐 특별법을 만들어줄 사람들이다. 거기에 충실하게 했을 뿐인데 정치인들과 똑같이 취급하고 바라보는 게 기분이 나빴다. 사실 우리도 국회의원 만나면 '특권' 얘기 나오겠다 싶어 위축이 되곤 한다. 그래도 진상규명을 해야 되니 어쩔 수 없이 상처를 겪어내는 거다."

- 15일은 예은이 생일인데, 예은이가 제일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 
"예은이가 쓰던 책상, 배(세월호)에서 나온 물건, 하나도 안 치우고 집에 그대로 다 두고 있다. 아이 방이 2층인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애 엄마는 늘 예은이 방에서 자는데, 저는 지금까지 딱 두 번 가봤다. 못 가겠더라. 한번은 장례식 끝나고, 혹시 아이 침대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있을까 싶어 갔다. '(예은이를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이라도 한 움큼 잘라놓을 걸, 갖고 있다가 쓰다듬으면 그것도 예은이 만지는 건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 (예은이) 방에 갔는데, 아무리 들춰봐도 한 올도 없더라. 

(유골함이 안치된) 추모공원도 삼우제 때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 그땐 '최소한 특별법이라도 만든 뒤 갈게, 진상규명 준비 해 놓고 갈게' 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보통 우리 엄마아빠들이 휴대폰 배경화면을 아이 사진으로 해 두는데, 저는 아이 사진으로 해놓으니 도저히 못 보겠더라.

애들 사진…보고 싶은데 보면 안 된다. 보면… 어… (눈물을 애써 참으며) 그냥 울게 된다. 초기에 제가 '예은이 없는 상황을 이겨낼 자신은 없고,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 아이가 너무 생생히 떠오르니까. 전에는 그냥 사진 한 장이었던 것이, 지금은 그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표정을 했는지가 다 기억 나니까 미치겠는 거다. 사진을 보면 그 속에서 애가 살아 움직여서… 도저히 못 보겠다."

-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는 10명의 실종자들이, 진도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남아있다. 유가족들이 종종 진도체육관을 찾는다고 하던데.
"(한숨) 하…. 저도 가능한 한 한 주에 한 번씩은 내려가려고 하는데, 사실 유족들이 진도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너무 힘들다. 그 분들 앞에만 서면 죄스럽거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정말 필요한 건 아이들을 찾아오는 건데 그걸 저희는 못 하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분들이 그 분들이다. 그런데 특별법을 만들자면서 '인양'을 얘기한다? 이건 위선이다."

- 사실상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상황인데. 
"유족들 각오는 변함없지만 주변 여건이나 심리·육체적인 한계를 부정할 수가 없다. 저희는 그간 경험에 비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최소 2~3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자체적인 치유와 회복 등 지금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가장 힘든 건, 유가족들이 가는 이 길이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잘하는 건지 매번 불안하다는 거다.  

결국 '약속'이다. 참사 후 정치인, 대통령,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약속했지 않나. 지키기 위해 하는 게 약속인데 지금 그런 사람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서도 못 지킨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심지어 약속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애초부터 안 지킬 걸 예상한 '사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당시에 내가 어떤 약속을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뭘 했는지 이제 되돌아봐야 한다." 

-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족들은 늘 내일 더 나아지길 바라며 잠들지만 매일이 어제와 같다. 11월 1일이 (참사 후) 200일이라던데 저희에겐 200번째 4월 16일 뿐이니까. 그 동안 계절이 두 번 바뀌고 세 번째 계절이 왔는데, 여기까지 온 건 절대적으로 국민들의 힘이었다. 스스로 돌아볼 때 유가족들이 부족한 점도 있고, 잘한 점도 있지만, 국민들께는 수백 번 절을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 

많은 분께서 저희에게 '지치지 말고 버텨 달라'고 말하시는데,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국민들도 지치지 마십시오'. 세월호 같은 해상참사가 짧게는 10년, 20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지 않나. 지금 그대로 가면 단순 계산해도 20년 후 참사가 또 재발된다. 그 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 손자들이 (희생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건 막아야지. 이번에 그걸 저희가 너무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 함께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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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 못하는 미사일, 잠항 불가 잠수함 ‘고장난 국방’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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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10/16 10:36
  • 수정일
    2014/10/16 10: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나라
 
임병도 | 2014-10-16 08:31:0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4년 국정감사가 시작됐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의미의 국정감사, 다양한 지적 사항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국방 관련 문제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에 항상 완벽한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할 국방력, 도대체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 고장 난 대한민국 국방력'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현재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후된 장비와 고장이 난 무기는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정부와 국방부는 북한의 특수부대나 전투기, 미사일 등이 한국의 도심지역을 공격할 경우의 위험성을 늘 강조합니다. 도심 지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 중에는 20mm 대공 발칸포가 있습니다. 현재 서울, 수원,원주,강릉 등에서 운용 중인 20mm 대공 발칸포에는 야간조준경이 있는데, 이것은 지상 표적 탐지용으로 대공 표적 탐지 및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야간에는 방공망이 뚫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새정치연합 안규백 의원에 따르면 잠수하면 몇 주일 연속으로 심해 작전이 가능한 줄 알고 있는 손원일함, 정지함,안중근함 등 최신예 잠수함 3척이 사실 연속 잠수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수중에서 엔진을 가동할 수 있는 연료전지가 102차례나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해군은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연속 잠수가 불가능한 잠수함을 잠수함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2008년 공군은 많은 반대에도 독일에서 15년 이상 사용했던 중고패트리어트 미사일 50여기를 구매했습니다. 현재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부품 단종은 총 6종으로 그중 레이더 부품이 83.5% (5종)이나 됩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고장이 나서 사용 못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레이더 결함 때문입니다. 1 레이더가 작동 못 하는 미사일이 과연 요격을 할 수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 당시 수중 구조 등에 활용할 수 있었던 해군 무인탐사기 ROV는 도입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63개월 동안 48개월을 수리만 하고 있습니다. 의무후송헬기는 조종사들이 NFL(비행금지선)를 운항할 수 있는 자격이 없어 GP와 GOP지역은 가지도 못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방력은 고장나서 전쟁이 일어나도 큰 문제입니다. 


'함장님, 어뢰가 발사되지 않습니다.'

NLL 부근에서 벌어졌던 연평해전 등 한국과 북한은 항상 해상에서 교전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만약 해상에서 국지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이지스 구축함 율곡이이함에 배치된 어뢰 기만탄 24발 중 18발이 바닷물에 의한 부식으로 발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해상전에서 중요한 어뢰의 탐지기를 속이는 기만탄은 이지스 구축함 중요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율곡이이함은 2012년 이후 단 한 번도 기만탄이 작동하는지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만탄 1발당 2만 8천 원짜리 후방마개를 설치하면 됩니다. 그러나 해군은 9천억짜리 이지스 구축함을 운용하면서 이런 보완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2만 8천 원이 없어 적의 어뢰 공격에 9천억짜리 최신 구축함이 날아갈 뻔했습니다. 
 

 

 

해군이 김광진 의원실에 제출한 '해군함정 전투체계 장비현황'을 보면 지휘함으로 이용되는구축함에서 486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DDH-1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은 펜티엄1에 메모리 16MB, 하드드라이브는 고작 4GB에 불과합니다. 이런 컴퓨터는 요새 내놔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컴퓨터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예하 함정들이 레이더와 영상, 오디오 데이터 등의 정보를 보내와도 분석할 수가 없습니다. 지휘함이 작전 상황을 모르니 명령을 내릴 수가 없게 됩니다. 

2천억짜리 장비에 486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해상전을 치르겠다는 나라가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가 또다시 되풀이되는 나라' 

현재 대한민국 육해공군은 전쟁이 발생해도 탄약이 부족해서 전쟁을 치르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60일 동안 사용할 탄약이 있어야만 하지만 일주일 밖에 사용할 분량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K-9 자주포에 사용하는 고폭탄은 8일분, KF-16 공대지 유도탄은 16일분, F-15K 공대공 유도탄은 7일분밖에 없습니다. 잠수함에 탑재해 사용하는 잠대함 유도탄도 불과 7일이고 적 잠수함을 공격하는 함포탄 홍상어도 불과 3~4일이면 떨어집니다. 

현대전은 경제력과 기술력의 전쟁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력은 장비도 고장났고, 경제력도 없어 예비탄약을 보유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진 장군들은 태연하기만 합니다. 

 

최신예 함정과 잠수함이 매번 고장을 일으키는데도 해군은 '당장 싸워도 이기도록 전투 중심 사고를 확립하겠다'고 합니다. 대공망이 뚫려 있는데도 공군은 '북한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서 실질적 억제력을 확보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신성모 국방장관과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각하께서 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각오가 돼 있다. 점심은 개성에서 먹고, 저녁은 평양에서 먹고, 단 7일이면 북진통일을 완수할 수 있다"는 허풍가 너무나 비슷합니다. 


이런 말뿐인 장군들의 자신감은 그저 자신들의 안위에만 급급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무기와 장비는 고장이 났는데, 도대체 어떻게 전쟁을 치르겠다고 저렇게 자신 있어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안보만큼은 보수대통령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북한이 도발하면 어떻게 대응을 합니까? 장비도 고장이 났고 무기도 발사할 수도 없는데....

북한에 있어야 할 탄피가 한국까지 날라오는 이상한 나라입니다.
종편만 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전쟁이 벌어져 남북이 교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한국전쟁 때도 그랬고,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나라는 진짜 전쟁이 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그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점심을 개성이 아니라 대전에서 먹었던 이승만이 떠오르는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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