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야흐로 봄이다.

전라, 충청 지역으로 답사를 떠나던 길,

지하철로 갈아 타기 위해 독립문 앞을 지났다.

날씨가 하도 좋아 사진 몇 컷을 찍었다.

 

지금 이곳은 서대문형무소와 더불어

반일민족운동의 성지처럼 꾸며 놓았다.

그래서인지, 혹은 하도 반일 교육을 해온 탓인지

이 독립문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들 오해한다.

이 같은 사실은 '독립문' 얘기가 나올 때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이기도 하다.

 

독립문의 '독립'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서재필을 필두로 한 일본에 기대어 있던 개화세력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화하기 위해 세웠고 1897년 완공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영은문이 있던 자리로서

영은문을 없애고 세운지라, 그 영은문의 주초석이 지금도 독립문 앞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연세대 앞을 지나 성산대교로 이어지는 성산대로를 만들면서

고가도로를 놓게 되었다.

독립문은 거추장스러워졌고 그래서 70여미터 북쪽으로 옮겨 세웠다.

'독립'보다 '개발'과 '발전'이 우선시되던 시절의 일이었다.

 

어릴 적엔 이 독립문을 볼 때마다 초라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했었다.

파리의 에투알개선문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개선문의 아름답고도 웅장한 모습과 비교해 열등하기 그지없는 독립문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니 그리 수준이 떨어지는 문은 아닌데,

결정적인 문제는 역시 다시 재료의 문제였다.

화강암으로 에투알개선문처럼 만든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누가 "이게 최선입니까?" 묻는다면,

화강암으로 만든다는 전제로, "예, 이게 최선입니다"라고 답할 만큼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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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흔히들 전노협의 노선을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변혁지향성으로 요약한다.

그때의 자주성은 사측으로부터의 형식적 독립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조합원의 힘에 의거하여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경우 정권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또한 중요한 전제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사회운동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소위 '관변단체', '어용단체' 같은 것과는 달리

물적 토대부터 운영 주체, 결정 단위의 주체까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중요한 전제였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경유하면서

사회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은 최소한의 '독립성'마저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사회운동 단체에 

(과격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정부 보조금을 지급을 막는 조치가 취해졌는데

그 같은 '이유'라는 게 참 궁색하기는 하나,

10년 동안 그런 돈을 받아왔다는 것이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역시 그랬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힘이 있다면, 아래의 힘이 펄펄 살아 있다면,

그깟 돈 더 많이 뺏어올 수도 있는 거고 아예 통제할 권한까지 뺏어올 수도 있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운동과 정권(혹은 수권에 도전하는 정치세력)이 공공연하게 운명공동체처럼 얽힌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운동의 실제 힘이 배태되는 현장 단위가 분쇄된 것이다.

상부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중운동은 소멸되어 가고, 싸움은 지리멸렬해지는...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것과 같은...

그렇게 독립성을 잃어온 과정이 있었다.

"좌파 관변단체화" 되어온 과정이다.

 

화려한 독립문을 세우는 게 독립의 첫 걸음은 아니었을 거다.

인민의 힘이 살아 펄펄 뛴다면 그깟 독립문 따위야 언제든지 세울 수 있는 것을.

대선 승리, 총선 승리만을 바라보며 몰빵하는데,

그렇게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거다.

자칫 정권의 한 귀퉁이라도 할양 받는다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놓아야 할 것인지.

 

하지만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고 앞으로 2년 동안은 모두가 이 게임에 혈안이 될 거다.

그 2년이 지나간 다음에, 남아 있는 폐허에는

독립문보다 더 초라한 우리의 독립성, 자주성이 뒹구는 와편처럼 비를 맞고 있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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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 02:35 2011/04/20 02:3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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