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3일(토요일, 21일차) : 하노이

 

- 아침에 일어나 어김없이 추옹극장(Chuong Theater) 앞 길거리 카페에서 카페스아다를 마셨다. 바나나 잎 같은 것에 싼 떡 같은 것과 함께 먹었다. (합 : 27,000VND)


- 택시를 타고 호치민 묘소로 향했다. 경계는 삼엄했다. 몇 번에 걸쳐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때마다 카메라가 있다는 표식을 받거나, 음료수 등을 맡기거나, 카메라를 맡기거나 했다. 그리고서 긴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하얀색 정복을 입은 의장대 군인들은 한국군처럼 절도 있거나 하지도 않았고 북한군이나 여느 사회주의 국가의 군인들처럼 동작이 크지도 않았다. 다소 군기가 빠진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호치민 묘소에 들어갔다. 계단과 복도를 걷는데 앞줄의 서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좀 잡담을 했고 정복을 착용한 군인들이 제지했다. 선글라스를, 모자를 벗으라 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군인들의 표정은 보다 경직돼 보였다.
 

-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에 들어섰을 때, 그 서늘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어두운 방, 호치민의 시신은 유리관 속에 있었다. 그 순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저기, 베트남이 누워 있다.” 그는 손을 모으고 있었고 눈은 조용히 감고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 행렬은 멈추지 않고 그의 시신에서 2~3미터 떨어진 채 걸어야 했다. 채 1분이나 보았을까? 그 짧은 시간, 그의 시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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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테면 그의 묘소는 왕릉 같은 것이었다. 연도를 지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호치민의 거대한 석실분인 셈이다.
 

- 그를 보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서고,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찾아온 서양인들. 그리고 오랜 여정 끝에 하노이에 당도했을 베트남인들. 베트남인들의 표정은 마치 관음보살을 친견하기라도 하는 듯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 짧은 그 시간이 지나고 밖으로 나왔다. 호치민 묘소 앞 거대한 광장에서는 관광객들이 묘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 이제는 베트남도 예전만큼 경계를 삼엄하게 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반바지를 입고 입장하는 서양인들도 없지는 않았다.
 

-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혁명가들, 레닌, 마오, 호치민을 박제했다. 그 혁명가들이 하지 말라고 했던 동상 만들기에도 나섰다. 이곳 하노이의 군사박물관에서도 아직 죽지 않은, 올해 100세를 맞이한 보 응웬 지압(元武甲) 장군의 흉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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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보관소에서 카메라를 찾고 호치민 박물관을 찾았다. 15,000VND×2명=30,000VND.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 있는 호치민 동상.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호치민이 썼던 타자기, 입었던 옷, 신었던 신발, 그가 썼던 문서 초고들, 그리고 수많은 사진들과 설명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 이 박물관은 관람 동선을 따라 여러 비쥬얼한 설치 작품들도 있었다. 이게 참 특이하긴 했는데, 작품들은 재미 있는 시도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 주제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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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관람을 하던 도중 점심시간이 됐다. 천천히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매점에서 커피와 조각케잌을 먹었다. 60,000VND. 좀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호치민의 집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매다가 웬 공원과 마주했다. 그곳 아줌마에게 호치민의 집 얘기를 했더니 안으로 들어가라며 공원 입장료 2,000VND×2명=4,000VND를 내라고 했다. 안에서는 호치민의 집을 찾을 수 없었고 온통 웨딩 촬영을 나온 신혼 커플들 뿐이었다. 이들도 점심시간이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국수를 먹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Bach Thao Park라는 곳이었고 그곳에 호치민의 집은 없었다. 우리에게 안으로 들어가라 했던 아줌마에게 한바탕 한소리를 하고 다시 나와 헤매다가 일주사로 향했다. 다큐멘터리와 TV에서 볼 때와 다르게 별 볼품 없는 절이었다. 사진을 찍고서 일주사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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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찍었다. 난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인기척이 나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여학생들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옆에 앉아도 되느냐고 해서 그러라 했다. 찍은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해 보여줬더니 다른 무리도 막 뛰어 왔다. 10명쯤 되는 아오자이 입은 여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사진 구경을 했다. 아찔했다. 나중엔 사진을 함께 찍고 싶단다. 그러라 했다. 10여 명이 나를 둘러쌌다. 나도 한 컷 남기고 싶다고 했고 카메라를 그들 일행인 남자에게 줬다. 하지만 마침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됐고 결국 나는 그 사진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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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사에서 나와 호치민이 살았던 집과 주석궁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가는 곳 안내문에는 한글로 적혀 있는 글줄도 있었다. 입구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곳은 주석궁이라 부르는 옛 프랑스총독 관저였는데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고 밖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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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따라 왼편으로 들어가다보면 호치민이 살았던 오두막이 나온다. 그는 주석궁에 살지 않고 이 오두막에 살았다고 한다. 그의 오두막은 잘 관리되고 있었지만 검박했다. 한 나라의 주석이 살 만한 곳은 아니었다. 책상과 책장 등이 1층 서재 같은 곳에 있었고, 2층에는 침실이 있었다. 1층에는 또 회의를 할 수 있는 간단한 응접시설이 있었다. 이곳은 소수민족의 건축 양식을 모방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타이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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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이 살았다는 이곳 곳곳에는 스리랑카 원산지인 나무들이 울창했는데, 나무 주변에는 죽순 같이 생긴 것들이 많이 솟아 있었다. 그것은 이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 하늘을 향해 자라는 뿌리. 그 생김새를 보고 베트남 사람들은 ‘고뇌하는 부처상’이라 부른다고 한다.
 

- 호치민의 집 주위엔 연못도 많다. 이곳을 나서면서 호치민의 생전 모습을 담은 기념 엽서들도 샀는데 거기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아마도 이곳의 연못에서) 낚시하고 있는 호치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사진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 평생을 전쟁 속에서 독립과 통일을 꿈꿨던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저 도교적인 노인이 그저 낚싯대를 드리우고 사색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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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을 나와 호치민 묘소가 있는 광장 쪽으로 내려와 군사박물관으로 향하다 보면 레닌공원(Le Nin Cong Vien)을 만난다. 레닌은 알다시피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독특한 사회주의 민족 이론을 펼친 바 있다. 그리고 전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했는데, 그것은 때로는 각 나라 민족해방운동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때로는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본국에서 1991년 이후 파괴되기도 하고 사람들에 의해 끌어내려지기도 했던 레닌, 그러나 그는 이역만리의 더운 나라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레닌 공원에는 아이들이 공을 갖고 놀거나 뛰어다니고 있었고, 레닌은 맞은편 깃발탑의 금성홍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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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닌이 바라보고 있는 깃발탑은 훼의 그것처럼 오래된 왕조의 유물인데 여전히 높고 건재했다. 규모와 형태는 사뭇 다른데 훼의 그것처럼 널찍하지 않고 높은 탑을 벽돌로 세우고 전망대처럼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등대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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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곁에는 군사박물관이 있었다. 유물이나 전시는 다른 박물관과 다르지 않았다. 혁명, 독립, 프랑스와의 전쟁과 디엔비엔푸, 뒤이은 미국과의 전쟁 등. 탱크와 포, 전투기와 헬기가 즐비하게 마당에 놓여져 있는 것 역시 다른 박물관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와의 전쟁 와중에 디엔비엔푸에 추락한 프랑스 전투기와 미국과의 전쟁 때 획득한 미국 전투기, 탱크 등의 잔해로 설치한 큰 설치물이 인상적이었다. 또 그 앞에는 그보다 더 인상적인 사진, 베트남 여성 전사가 미 공군의 마크가 선명한 잔해를 끌고 가는 사진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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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박물관에는 매우 중요한 유물 하나가 있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북베트남군에 의해 함락되던 날, 사이공의 통일궁으로 돌진해 들어갔던 북베트남의 탱크가 바로 이 박물관에 있다. 여행 안내서들에는 호치민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사이 하노이로 옮겨온 듯했다. 역사의 정통성은 하노이에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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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서 숙소 쪽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맥주를 마실까 물색하다가 어제 먹은 베트남 소세지를 팔던 가게로 갔다. 가족이 함께 일하는 가게였는데, 아버지, 어머니와 세 아들이 함께 일했다. 맏아들은 14살이었는데, 초저녁부터 꼬치에 쏘세지를 몇십 개씩 끼우고, 튀길 닭다리를 다듬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고, 귀엽고 예쁜 소년이었다. 11살 동생과 막내는 개구졌다. 저 아이들이 클 때까지 얼마나 많은 튀김닭과 쏘세지를 팔아야 할 것인가. 이날 비아 허이를 마시지 않고 비아 하노이를 마셨다. 170,000V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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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로 돌아와 잠들었는데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소음이 굉장해서 창문을 열어보니 바깥에 옆 건물에 불을 밝히고 공사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시간은 12시. 창문을 열고 한국어로 뭐라뭐라 소리쳤다. 영어로 해봐야 알아 들을 공사장 인부들도 아니었고, 베트남어는 내가 할 줄 몰랐다. 다만 내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가 치미는 기분을 어조로나마 전달하고 싶어 그냥 한국어로 소리쳤다. 공사하던 청년들은 꼼짝 않고 나를 올려다보며 눈만 씀벅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뭘 어쩌겠는가. 1층에 내려갔더니 호텔에서 일하는 애들 밖에 없었다. 걔네들은 자고 있었다. 깨워서 이게 도대체 뭔 일이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얘네라고 또 뭘 어찌하겠는가.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줄 수는 있는데 거기도 시끄러울 거라 했다. 수없이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붐비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로서도 밤 12시 말고는 공사할 적기를 찾을 수 없었을 거다. 그 시간 이외에 레미콘 차가 공사중인 건물에 근접할 수 있는 때는 없어 보였다.
 

- 결국 콘크리트를 다 부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2시간쯤 지나자 소리가 좀 잦아들었다. 밤은 깊어갔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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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9:02 2010/12/16 09:02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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