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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땜에 정신없단 포스트가 마지막이군...
이미 연말정산한 거 받은 지도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정신이 없다.
요즘엔 주말조차 일정이 잡히는 날이 많아, 하루종일 집에서 늘어지게 쉬어본지도 가물가물하다.
회사에선 한두 주 한가해지나 싶으면 또다시 일이 들어오는 식이라서,
2년 전처럼 업무 시간에 블로깅을 한다던지 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주말의 일정 중에는 특히 결혼식이 많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이 결혼 러쉬는 올 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인데,
이전의 결혼식들과 차이가 있다면 내 나이 대의 친구/동료들이 결혼 행렬에 동참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둘씩 기혼자가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벌써 대략 그런 나이가 되어버린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일이 많은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주니어보다 시니어에 가까운 연차가 되었고,
일상에서는 더 이상 20대만의 자유가 사라진지 오래이지 않은가.
그래서,
요즘 포스팅이 밀리는 것도,
약속을 부도내는 일이 잦은 것도,
몇몇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대략 그런 시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 저의 불성실함에 대한 변명이었습니다. ㄳ (-_-) (_ _) (-_-)
요즘 무척 바쁘다.
...연말 정산 땜에-_-;;;
연말 정산 서류 땜에 동사무소와 구청을 오가다 보면
(일부) 공무원들의 불친절함에 치를 떨게 되는데 (특히 구청)
내가 낸 세금이 그네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려서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더 돌려받으리라는 결의를 새로이 다지게 된다.
...여튼 각설하고-_-
주민등록등본 상으로 부모님의 따스한-_- 품 안에 들어가 있다가
올해 별도 세대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특정한 수입이 없는 부모님까지 공제를 받기 위해
호적등본이라는 정체불명의 서류가 필요해졌다.
출근하기 전에 동사무소에 들려 이 서류를 발급받아 오는데,
가만히 보니 이 서류에 눈에 띄는 사항이 있는 것이었다.
혼인 신고일 : 19XX년 04월 08일
배우자 : XXX
참고로 내 생일은 같은 해 6월 16일이다-_-
...뭔가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아버린 듯한데;;;
있다가 전화해서 한 번 물어봐야겠다.
나의 출생의 비밀을-_-
얼마 전 포스트에서 지브리의 완성도 지지리도-_- 낮은 <게드전기>에 대해 혹평을 했었는데, 원작도 안 읽어보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게 좀 민망스러워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기 시작했더랬다. <빼앗긴 자들>과 <바람의 열두 방향>에서 르 귄이라는 작가의 책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엔 마음 단단히 먹고 스타트를 끊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생각보다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4권인 <테하누> 전까지의 얘기였지만-_-
(네오스크럼님이 알려주신대로)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는 5권의 장편과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내에는 <테하누Tehanu: The Last Book of Earthsea>까지 장편 4권만 번역되어 들어와 있다. 단편 중 두 편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려있는데, 나머지 단편들은 아직 번역 안된 듯하다.
주의 : 이하 스포일러성입니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새매"라 불리우는 "게드"다. <게드전기>를 보면서 상당히 궁금했던 점 중 하나가 주인공은 아렌인데 왜 작품 이름은 "게드전기"인가...하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게드의 활약상은 3권인 <머나먼 바닷가The Farthest Shore>까지가 마지막이다. 4권인 <테하누>에서 게드는 마법사로의 힘을 잃고 자신감까지 잃어버려 존재감이 매우 희박해진다. 대신 2권인 <아투안의 무덤The Tombs of Atuan>에서의 "아르하"가 성장한 "테나"와 화상입은 꼬마아이 "테루"가 <테하누>의 스토리를 끌어가게 된다.
위의 설명만 봐도 <어스시> 시리즈가 상당히 방대한 스토리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미덕은 스토리의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스시>라는 또 하나의 세계는 "칼과 마법과 용"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진부한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어스시>의 이름의 법칙을 들 수 있겠다. <게드전기>에도 이 내용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닥 중요하단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게드가 로크에서 거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들콩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줄 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행위인지 느낌이 팍 온다. 또한 용의 존재 역시 여타 판타지 소설들과 다르다. <어스시> 시리즈에서 용은 인간의 적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존재다. 하지만 <테하누>에서 용과 인간이 사실은 한 종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러한 발상들 자체가 <어스시> 시리즈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인이 아닌가 한다.
<어스시> 시리즈의 평을 검색해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3권인 <머나먼 바닷가>를 최고의 작품으로 친다. <머나먼 바닷가>는 악의 화신인 거미과 맞선 게드의 이야기이도 하고,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소년 아렌의 성장기이도 하다. 어떻게 보면 <머나먼 바닷가>는 판타지 소설의 공식에 상당히 충실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보면 르 귄의 작품치고는 상당히 의아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에서 <테하누>를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 <테하누>에서 르 귄은 마법사 세계의 뿌리깊은 가부장적 가치관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의 위치를 게드가 아닌 테나와 테루가 담당하고 있는데, <테하누>는 이들이 마초스런 남성들-마법사, 불량배, 심지어는 테나의 아들까지-에게 당하는 고난이 스토리의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서 테나는 가부장적인 부조리한 세상을 인식하게 되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3편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었던 게드마저도 자신이 지닌 가부장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재미있다.
<테하누>에서는 분명 전편이 지닌 경쾌함-주인공이 악의 무리를 해치우는-은 발견할 수 없다. 대신 테나와 테루가 여성-장애인으로 겪게되는 갖은 고난을 따라가며 분노와 함께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답답함의 시간이 길어서였는지, 마지막에 칼레신이 등장하여 악당들을 쓸어버렸을 때의 통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_-ㅋ
스포일러 끝
이건 달군의 이야기였지만, <게드전기>의 개봉을 계기로 <어스시> 시리즈의 나머지 번역판이 나와주길 바랬는데, 흥행 실패 때문인지-_- 영 소식이 없는 듯 하다. <테하누> 이후의 이야기인
* 번역안된 단편들과
뒷북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제목에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The Meatrix".
약간 교육적이긴 한데, 그래도 재밌다.
한국어 자막도 있다는.ㅎㅎ
The Meatrix : http://www.themeatrix.com/intl/korean/
The Meatrix 2 : http://www.themeatrix2.com/korean/subtitled/
미스터 "햄더슨"에서 뒤집어졌음.ㅋㅋ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은 드물다. 제작 전부터 전작의 경계 안에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제한을 안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작의 아우라가 대단하면 대단할수록 오히려 그 아우라에 짓눌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우리가 보아온 숱한 후속작들이 그렇게 제작되었고, <에일리언>, <매트릭스>, <스크림>, 그리고 갖가지 "맨" 시리즈들이 그랬듯이 참신했던 전작의 설정과 캐릭터를 다른 스토리로 한 번 더 반복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공각기동대 S.A.C GIG>(이하 우익 성향의 오시이 마모루 군국주의 성향의 시로 마사무네가 참여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이해가 갈 만한 설정이기도 하다.
여튼, 난민 문제를 둘러싼 스토리는 매우 복잡하다. 크게는 "난민을 배척하려는 일본 정부 + 개별 11인을 위시한 우익적인 일본 국민" vs "한 때는 개별 11인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난민의 지도자가 된 쿠제 히데오 + 아시아 난민"의 대립구도이면서, 쿠제, 그를 추적하는 공안 9과,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프로듀스하려는 고다 카즌도와의 쫒기고 쫒는 관계가 핵심이다. 만약 현실 세계에서 일어났더라도 큰 정치적/사회적 이슈인 난민 문제를 다루다 보니까 얘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중에는 미국과 중국의 개입이 나오고 핵을 쏘네마네하는 민감한 주제까지 등장하는 등,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UCC라는 단어를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분명히 1년 전만 해도 이 단어는 "업계 용어"였습니다. 작년에 팀장이 뜬금없이 "혹시 UCC라는 말 아나?"라고 저한테 물었을 정도로,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단어였죠. 일본에서 UCC 커피를 발견하고 속으로 킥킥댔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군요-_- 블로그나 게시판, 그리고 일부 기사 등에서 반드시 부연 설명과 함께 쓰여지던 이 말이, 어느날 갑자기 신문과 TV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엔 아예 부연 설명도 달아주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로 UCC라는 단어는 상당히 일반화되었죠.
참으로 허무한 것은-아마 다들 아시겠지만-UCC가 User-Created Contents의 약자라는 겁니다. 영미권에서는 UGC(User-Generated Content)로 많이 불리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사용자에 의해 생산한 컨텐츠"라는 것으로, 최근에 생긴 개념이 아니라 피씨통신의 게시판 시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UCC라는 개념은 전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Web 2.0과 비슷하게,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개념을 포장만 바꿔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UCC라는 단어 자체도 마케팅 용어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죠.
여기서 주목할 것은 UCC라는 단어 자체가 아니라 이 단어가 널리 뜨게 된 배경입니다. UCC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검색해 보면 아시겠지만, 상당수가 동영상 UCC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검색의 최대 이슈가 동영상 검색이라는 점과 최근 구글에 인수된 유튜브(YouTube)를 생각해 볼 때, 예전에 비해 동영상이라는 포맷의 비중이 매우 커졌음을 알 수 있죠.
동영상의 급부상은 충분히 수긍갈만한 현상입니다.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 할 때 동영상만큼 직관적이고 분명한 수단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영상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환경적인 제약이 존재했는데, 첫째는 동영상을 부담없이 끊기지 않게 볼 수 있는 충분한 네트워크 환경의 조성되어야 했었고, 둘째는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캠코더 같은 장비와 프리미어 등의 동영상 편집툴을 다룰 수 있는 상당한 고급기술이 필요한 것이라 생산자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자의 제약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네트워크 기술에 의해 극복되고 있었지만, 후자의 제약만큼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죠.
동영상 UCC가 각광받는다는 것은 이런 제약들을 넘어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말로 이해 가능합니다. 멀티미디어 작업에 능숙한 유저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쉽고 간단한 동영상 제작툴도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들이 가능한 것이겠죠. 이런 변화는 비단 동영상 뿐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이미지 등 전반적인 UCC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데요, UCC가 주목받게 된 데는 이렇게 두터워진 생산자 층이 큰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VI 에디터 만큼이나 어려웠던 하이텔의 문서작성기(당시 글 하나 올리는데는 상당한 난관을 돌파해야 했습니다)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지금의 문서/이미지/동영상 편집기들은 분명히 보다 많은 사람들을 생산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테니깐요.
이러한 UCC 시대에는 생산자들의 자발적인 참여 구조가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든,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든, 또는 한 몫 잡아보기 위해서든, 동기가 어떻든 간에 생산하고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고, 생산된 UCC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펌글이 넘쳐나고 있는 한국의 블로그들과 자신의 마당 안에서만 자유로이 놀 것을 허용하는 닫힌 포털의 구조에서 이러한 참여 구조가 제대로 정착될 지는 의문입니다. 임정현 씨가 YouTube에 캐논을 올려놓지 않고 국내 포털의 한 블로그에 올렸다면, 이 컨텐츠는 해당 포털 안에서는 유명해질 수 있겠지만 외부로 알려지는데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알려지더라도 펌에 펌을 거쳐 원작자가 누군지도 불명확한 채 네트워크에서 떠돌 가능성이 크겠죠. 따지고 보면 포털들은 UCC 시대의 화려한 만개를 꿈꾸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UCC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용어 자체를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그랬듯이 업체들은 새로운 수익모델로서 UCC를 밀려 할 것이고, 이는 사용자에게 컨텐츠 생산 비용을 전가함과 동시에 UCC 풀의 닫힌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또한 강화되어가는 저작권의 개념과 UCC 생산자의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는 부분에 있어서 역시 UCC 열풍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UCC에 대한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약간은 자조적인 설명과 UGC에 대한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희망섞인 설명이 이루는 대조가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는 것 같군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이래봐야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그리고 <귀향>밖에 못봤지만)은 참 특이하다. 남부 유럽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화려한 색채와 라틴 음악,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난 인물들이 벌이는 해프닝들은 물론 그의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알모도바르는 매우 일관성있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혹자는 "감독이라면 당연히 일관적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명작이 있는가 하면 졸작도 있고, 그녀/그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네 작품들에서는 "알모도바르 코드"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알모도바르가 그려내는 여성상이 그렇다. <귀향>를 같이 본 친구는 알모도바르에 대해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른 분들이 많을 수도 있지만) "여자만큼 여자들의 심리를 잘 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남성인 알모도바르가 그리는 여성상은, 뭐라고 딱히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매우 일관성이 있다. 특히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드러나는, 힘든 삶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약해 보이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여성, 스테레오 타입화된 강한 어머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 이런 점이 알모도바르의 여성상을 더욱 차별화되어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귀향>의 카피로 많이 쓰이는 "위대한 모성"은 흔히 쓰이는 말 뜻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귀향>의 어머니는 극한의 어려움들을 "모성"으로 이겨내는 위대한-그래서 특별하고 영웅적인-어머니가 아니라, 주위의 형편없는 남자들에게 디이고 모진 세상에 시달리며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누군가의 어머니이다.
<귀향>에서 라이문다의 어머니인 이렌느 역시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딸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딸들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죽은 사람으로 지낸다. 라이문다는 자신을 겁탈하려는 의붓아버지를 찔려죽인 딸을 감싸주고 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꿋꿋한 여성으로 나오지만, 애증이 얽힌 감정의 대상인 어머니를 만났을 때 단지 위로받고 싶었던 딸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귀향>의 여성들은 혼자서도 잘 살 것 같지만 결국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여성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머니와 딸로 이어지는 모계 속에서 유대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위안받는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귀향>의 곳곳에서 유쾌한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유머가 알모도바르 영화들의 묘미인 것 같은데, 그의 코미디는 장진의 작품같이 톡톡 튀는 코미디도 아니고, 박찬욱이나 봉준호의 블랙코미디도 아니다.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웃음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따뜻한 종류의 것으로서, 알모도바르는 분명 다른 영화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특이한 코미디를 그려내는 재능이 있다.
알모도바르는 <귀향>의 의미를 코미디로의 귀환, 여성들의 관계를 다룬 영화로의 귀환,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라 만차로의 귀환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귀환은 제다이의 귀환-_- 못지 않게 성공적이지 않나 싶다. 헐리웃에서 봤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유령처럼 살아야 했던 어머니를 소화한 카르멘 마우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아구스티나 역의 블랑카 포스티요 등의 캐릭터들도 매우 훌륭하다.
알모도바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망설임없이 <귀향>을 보고 말았지만, 아마도 이런 알모도바르는 일관적인 모습이 그의 이름만으로 영화를 골라도 별로 실패하지 않는 이유가 아니까...라는 생각이다.
가을엔 왠지 Kent를 들어줘야 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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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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