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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당한 개미떼들의 꿈 4.5-9 제4장 촛불주체론, 제5장 맺는말 pp147-196


들어가며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에 대하여, 은수미는 중산층이라고 하고, 이택광은 중간계급이었다고 하고, 조정환은 다중이었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촛불 네티즌이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주장하고, 혹자는 네티즌들이 항쟁에 나선 이유가 탈물질주의적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촛불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회경제적인 처지에 대한 실증조사와 그들의 요구와 행동,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은 이용 가능한 실증자료와 촛불들의 여러 모습과 실천을 통하여 이 주장들이 지지될 수 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필자의 주장을 개진하려고 한다.

촛불의 슬로건과 실천들

이명박은 당선된 후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부자 감세 및 ‘어륀쥐’ 교육 등으로 서민적 정서를 크게 자극하였다.
2008년 4월 6일 고등학생인 안단테는 아고라에 이명박 탄핵 청원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대운하, 영어 몰입식 교육, 보험 민영화, 고소영, 물가정책, 천황, 공권력 동원한 강제연행, 쇠고기 고시, 독도… 국민과 국가와 자존심을 갖다 버리신 대통령님, 이런 대통령을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고 주장하였고,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5월 2일 탄핵 서명이 60만 명을 돌파했다.1)
안티엠비가 4월 26일 탄핵 집회의 공지문에서 밝힌 ‘기본 비판 사항’은, ‘민영화 서민 말살, 대운하 국토 절단, 대기업 규제 완화, 자사고 100개, 부도덕, 고소영 강부자 내각, 대북 위기 고조’였다. 이 웹자보는 이명박이 일본 국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굴욕 외교, 국혼 말살, 허구 실용, 미친 소’ 등을 타이틀로 내걸었다.2)
5월 3일 한겨레에 실린 마이클럽의 전면광고 내용은 ‘6대 현안(쇠고기,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의료민영화, 정부 언론통제, 공교육 자율화)’이었다. 이 광고는 ‘잘 들어라! 국민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라는 타이틀 하에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머슴은 필요없습니다’라는 소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윤현희, 2008)
촛불을 처음 들고 나온 여학생들은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피켓과 함께 ‘미친 소, 미친 교육’을 반대했고, 5월 3일 제2차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20,000명 중 60-70%가 청소년들이었다.(김철규 외, 2008) 이날 청소년이 들고 나온 피켓은 ‘미친 소 먹고, 민영 의료보험으로 돈 없어 죽거든 대운하에 뿌려주오!’였다.
5월 17일 안티엠비가 주관한 여의도집회의 공식 구호(현수막과 피켓)는 ‘국민 기만, 서민 말살, 이명박을 탄핵하라!’였고, 5월 26일 공지문에 예시된 구호는 ‘명박 지옥, 탄핵 천국!!’, ‘국민 배신, 민족 배신, 매국노를 처단하자!!’, ‘서민 압살, 특권 정부, 탄핵으로 끝장내자!!’였다.3)
권태로운창은 5월 23일 격문에서 스스로를 ‘애국열사의 핏줄 권태로운창 드림’4)으로 끝맺고 있고, 5월 22일의 격문에서는 “국민의 힘으로 친일 종미 매국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처단해야 한다. 민주에 의한, 자주적 국가의 자랑스러움을 반드시 이루자.”5)고 선동하고 있다. 한편 민족반역자처단협의회가 정한 구호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한나라당을 해체하라!’, ‘조중동을 폐간하라!’, ‘뉴라이트 박살내자!’였다.6)

안단테의 주장은 영어 몰입식 교육, 보험 민영화, 고소영, 물가정책 등 서민적 감수성 즉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감이 주를 이루면서도, 독도나 천황 호칭 등 민족주의 혹은 애국주의적 정서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서명은 4.9 총선과 상관없이 이명박에 대한 광범한 불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만이 촛불집회의 폭발적 확산을 이룬 배경이었다.
안티엠비의 4월 26일 공지문도 민영화, 서민 말살 등 서민적 반감이 주를 이루면서 민족적 자존심이 깔려 있고, 마이클럽의 광고는 전형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위기감을 표현하고 있다.7) 흔히 얘기하는 돈 없고 빽 없는 ‘서민’이란 억압되고 수탈당하는 정체성인 ‘민중’의 또 다른 표현이다.
대책회의가 ‘고시 철회, 협상 무효’의 슬로건을 고집할 때 촛불시민들은 ‘명박 퇴진’의 구호를 외쳤고, ‘식코’ 상연 등의 효과로 의료민영화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가 형성되었지만 구호화되지는 않았다. 7월 4일 대책회의 운영위에서 의제 확장(1+5, 미친 소 반대 외에, 교육 자율화,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공영방송 장악기도 등에 대한 반대)이 이루어졌지만,(유영주, 2009: 75) 미친 소 이외의 의제는 병렬적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슬로건에 불과하였고 그마저도 구호화되지 못했다.

이상으로 볼 때, 이명박의 반서민적 행보(결국 신자유주의적인 행보)가 광범위한 불만을 야기한 정세 속에서, 미친 소와 미친 교육을 도화선으로 청소년과 여성을 포함한 네티즌들이 시작한 촛불집회는, 여대생 군홧발 사건 등 공권력의 탄압이 (서민적이거나 계급적이 아닌) 시민적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386 세대를 끌어들였고, 대책회의의 기만적인 억압으로 의료민영화와 공기업사유화 반대 등 신자유주의적인 의제가 부차화되거나 유실되면서, 촛불들은 이명박의 감상적 악마화를 동반한 비정상적 통치자의 배제를 통해 자신들이 정상국가라고 믿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회복을 갈망하게 되었다. 즉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비정상적 대통령만 제거하면 정상국가가 회복될 것으로 믿었다.
촛불항쟁 속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노래인 ‘헌법1조’의 가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였다. 이것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머슴은 필요없습니다’는 의식과 동일한 것이다. 이 가사는 주권자로서의 자각이면서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즉각적 열망이 아니라, 국민을 배반한 정권에 대한 분노 따라서 민의를 배반하지 않을 훌륭한 정권에 대한 바람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 정서가 노무현 서거 시의 추모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열망과 함께 이명박 한나라당 조중동 뉴라이트 등 주적의 성격이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우파임에도,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로 보는 386 세대의 애국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정서가 결합하였다. 촛불애국시민전국연대와 촛불시민연석회의의 창립선언문 역시 민족주의적 기조로 되어 있었다.(참고자료 3, 5)
촛불들의 이러한 슬로건과 정서 그리고 실천들을 살펴 볼 때, “제가 알기론 탄핵집회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언론들은 미국산 쇠고기반대집회로만 조명을 하는 건가요? 이명박의 정책 중 미국산 쇠고기 말고도 의료보험민영화, 수도세민영화, 공기업민영화, 대운하, 간접세 등등··· 너무나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8)에서 보는 것처럼, 촛불항쟁의 시작은 분명 반민중적(반서민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총체적 불만의 귀결로서 ‘명박탄핵’과 ‘명박퇴진’이었지만, 운동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지 못한 채 대책회의의 억압과 386세대의 등장으로 민중적이거나 서민적인 감수성이 희석되면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위기에 대한 불만이 공권력의 노골적인 탄압과 맞물려 국민과 시민의 정체성이 앞서게 되었다. 촛불항쟁 속에서 외쳐진 ‘명박퇴진’의 구호는 이처럼 신자유주의 반대와 민주주의의 회복과, 민족주의적 감수성의 3자가 교묘하게 합쳐진 것이고, 그 중의 으뜸이 반독재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러므로 촛불항쟁은 초기의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처지에 기반한) 서민적(민중적 혹은 계급적) 정체성이, 대책회의가 대중들의 자발성을 억압하면서,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시민적 정체성이 압도하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하겠다. 바로 이 점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위협받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 대중들이 노동자계급이나 민중의 정체성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조기숙의 반신자유주의 성격 부정론 검토
이처럼 촛불항쟁의 반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음에도, 촛불투쟁이 단순히 광우병 협상에 대한 반대나 이명박정권의 비민주성에 대한 투쟁이었다는 주장은 널리 퍼져 있다.

“우선 6월의 조사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 금지를 주장하는 응답자는 34.1%에 불과했다. 이들은 주로 저연령층, 저학력층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 대다수 응답자(55.9%)가 참여정부의 수입조건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기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촛불집회 참여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학력, 수도권, 고소득자9)에서 한미 FTA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대다수가 수도권 거주자이며 일반 국민에 비해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조기숙?박혜윤, 2008)
만일 촛불집회가 반신자유주의 시위였다면 한미 FTA를 체결한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부정적으로 나와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지난 5년간의 국정운영평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11.5%, 62.1%가 각각 ‘매우 잘했다’, ‘잘한 편이다’라고 응답해 73.6%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평가에 대해서는 13.6%, 85.3%가 잘못하는 편,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해 응답자의 98.9%가 이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좌파 지식인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직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이명박 대통령으로 이어졌다며 촛불집회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참여당사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민주성에 대한 평가에서 민주적인 편이라는 응답자가 0.7%, 보통 2.6%로 나타났다. 이로부터 이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나 단순한 먹거리에 대한 걱정보다는 비민주적인 쇠고기 협상에 대해 항의하는 데에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집회 내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진 것에서도 집회의 핵심이유가 ‘절차적 비민주성’에 대한 항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조기숙, 2008: 140)

그러나 조기숙의 이러한 주장은 한미 FTA 즉 세계화나 개방화만을 신자유주의의 본질로 착각하는 데서 나온 잘못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선 장에서 말했듯이 신자유주의란 자본의 천국을 만들기 위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에 대한 철면피한 공격이다. 그리고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노무현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대중의 한미 FTA에 대한 어중간한 인식만으로, 촛불항쟁의 핵심이유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단지 절차적 비민주성에 대한 반대였다고 단언하는 것은, 항쟁의 초기 의제인 6대 현안의 대부분이 신자유주의적인 의제였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촛불항쟁 내내 신자유주의 좌파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20%를 넘지 못한 사실도 설명할 수 없다. 촛불항쟁은 신자유주의에 유린당하는 민중들의 항쟁이었지만 타락한 운동 때문에 그 발전이 억압당하고 왜곡되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반대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이다.
조기숙처럼 특정 시점의 결과적 현상만으로 사태를 단언하는 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 의사가 올바른 처방을 하려면, 환자에 대한 진단이 모든 객관적 증세를 종합하고 원인과 결과를 ‘총체적’10)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특정시점의 일부의 증세만을 설명할 수 있는 진단이나 변화(운동)를 설명할 수 없는 진단은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다.

대선과 총선 자료로 본 촛불

이명박은 2007년 12월 18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영어몰입교육, 강부자 내각, 고소영 참모진, 의료민영화 정책 등으로 서민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그럼에도 4.9 총선에서는 수구보수들이 개헌선이 넘는 200석 이상의 대승을 거두고 국회를 장악했다.
국민들이 열 받았는데 왜 그들은 사상최대의 압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흔히 노무현에게 실망한 중산층들이 경제를 살릴 것 같은 이명박을 선택했다가 국정을 너무 개판치기 때문에 촛불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위기에 처한 보수화된 중산층이나 중간계급의 양면성 때문에 대선에서는 쾌락에의 동참을 위해 이명박을 찍었다가, 분배의 참여를 위해 촛불을 든 것일까?(이택광c, 2009)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4월 6일 안단테의 탄원과, 4월 9일 한나라당의 압승과, 4월 19일 안티엠비의 탄핵집회가 어떻게 동시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가?
<표 1>에서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을 비교하면, 유권자는 265만 명이 늘었음에도 투표자는 100만 명이 줄었고,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얻은 1,201만 표는 17대 대선의 정동영의 617만 표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이 날아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표 2>의 투표율 변동을 보면, 친노무현이었던 광주/전남은 이탈율이 평균 12.7%로 가장 높고, 친한나라당 성향인 대구/경북은 평균 3.7%로 가장 낮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의 득표수에 이 수치를 곱하면 노무현 152만 표, 이회창 42만 표이다. 즉 이탈자의 78.4%는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04년 17대 총선의 투표율은 60.6%인데, 08년 18대 총선은 46.1%로 급감했다. 선관위의 자료는 20대 후반의 투표율이 가장 낮고, 30대 전반의 투표율이 가장 많이 감소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11) 결국 청년실업을 비롯하여 경제위기의 고통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의 반발인 것이다.


<표 3>은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의 급속한 증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러한 선거 결과는 노무현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위기에 처하거나 몰락한 계층들이 신자유주의 좌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584만 표=노무현 1,201만 표-정동영의 617만 표), 절반(새로운 선거 이탈자의 365만 명의 78.4%=285만 표)은 투표를 거부하고, 절반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에게 표를 던졌음을 보여준다.
촛불항쟁 직전에 실시된 2008년 4월 9일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을 포함한 수구보수가 개헌선을 넘는 당선자를 내었다. 그렇다면 대중은 4.9 총선에는 한나라당에 몰표를 주고, 불과 20일도 안 되어 반한나라당으로 돌아선 것일까? <표 1>를 면밀히 보면 수구보수가 17대 대선에서 얻은 1,505만 표는 불과 4개월 만에 520만 표가 줄었고, 민주/진보의 842만 표는 248만 표가 줄었다. 결국 한나라당의 압승은 승자독식제도에 기인한 것이지만,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에 환멸을 느낀 대중들은 일부가 이명박을 지지했다가, 이명박의 반서민적 정책에 따라 대거 이탈한 것이고,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 철회한 것이다. 따라서 4.9 총선은 수구보수의 압승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좌파와 우파에 대한 대중의 절망이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단지 표의 충성도와 결집도가 높은 수구보수가 선거제도 때문에 득을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진보대연합이 아닌 (반한나라당/반독재) 민주대연합을 운운하며, 대중은 이미 버려버린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은 대중의 참다운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다.12) 87년 허구적 민주주의 체제의 성립 이후, 혹은 98년 신자유주의 체제의 성립 이후, 이 땅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본원인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인데도, 이에 맞서 진보세력을 강화할 생각은 포기하고 87년 이전의 낡은 틀로 돌아가자는 것은 역사를 20년 이상 후퇴시키는 것이다.

흔히 이명박 당선의 일등 공신은 노무현이라고 얘기하듯이, 노무현은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들고 노동에 대한 배제와 공격으로 840만 명의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이것은 전체 취업인구의 1/3이고 전체 급여생활자의 53%에 해당되며, 그들의 평균임금은 123만원이다. 평소에 삼성의 이전무를 친형님처럼 모시던 노무현은 삼성의 매뉴얼대로 통치했다.13) 경쟁과 효율을 내세우면서 교육의 서열화와 시장화, 의료민영화, 공공재의 사유화, 한미 FTA의 추진, 전 국토의 투기장화 등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파탄시켰다.14) 임기 말에 대연정을 추진했던 노무현의 고백처럼 “그들(한나라당)과 우리(열린우리당)는 별로 다르지 않다.” 매일 매일 신문을 보기가 짜증이 날 지경에 이르러 대중은 좌측 깜박이를 켜며 우회전을 하는 노무현과 민주당을 버렸다. 이것이 07년 대선과 08년 총선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압승한 배경이다. 표의 결집력과 충성도가 높은 수구와 보수들은 단결했지만, 노무현과 민주당을 살려냈던 서민들은 지지를 철회하고 투표를 포기했다. 이것이 두 선거의 의미이다.
결국 2008년 촛불항쟁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에 배반당하고, 이명박의 반서민 정책에 절망하고 위기감을 느낀 중류하층 이하 결국 소외된 대중의 반감이 주된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 본대로 촛불의 계급적 성격은 억압되었던 것이다. 만약 타락한 운동이 대중의 요구와 열망을 억압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항쟁 초기 5월 2일부터 5월 24일까지 ‘고시철회’와 ‘협상무효’만 외치지 않고 다양한 의제를 슬로건화했다면, 대중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통계자료로 본 촛불

조기숙과 박혜윤의 연구15)와 검토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일반 국민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80%가 대학 재학 이상으로 높은 학력보유자임이 밝혀졌다. 일반국민이 TV와 라디오에서 주로 정보를 얻는 데 비해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대다수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
표 4_ 촛불집회 설문 응답자와 전체 국민의 소득, 학력, 연령별 분포 비교 (%)

 

다는 점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집회 참가자는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 때문에 일반 국민과는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갖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집단주의적이기보다는 개인주의적이며, 물질주의적이기보다는 탈물질주의적이라는 것이다. 탈물질주의는 전후 오랜 경제적 호황을 경험한 유럽과 미국의 젊은 세대에서 주로 발견되는 가치관으로, 물질적 가치보다는 삶의 질이나 인권, 환경 등의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투표와 같은 전통적 정치 참여뿐만 아니라 항의, 집회, 농성과 같은 비전통적인 정치참여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서구의 탈물질주의자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보였으며, 정치적 참여에 있어서도 매우 유사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조기숙?박혜윤, 2008: 250)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탈물질주의적이었다는 조기숙의 이러한 주장은, 항쟁의 초기부터 일관되게 회자된 6대 현안(쇠고기,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의료민영화, 정부 언론통제, 공교육 자율화) 중 언론통제를 제외한 나머지 현안이 모두 물질주의적이었던 사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촛불은 인권, 환경 등의 탈물질주의적 가치관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민적 삶 그 자체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큰 불만과 위협을 느꼈던 것이고, 그 불만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아무도 피해가기 어려운 미친 소와 미친 교육을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다. 또한 공권력의 폭행과 대운하 반대를 인권과 환경에 민감한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도 일면적인 것이다. 특히 대운하는 환경과 관련한 의제이기도 하지만, 국가예산의 터무니없는 낭비와 투기 등과 관련한 의제이기도 하다. 미친 소 역시 생명에 대한 감수성보다는 국민을 배반하고 국민들의 삶 그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이명박의 말도 안 되는 처사에 대한 분노가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질 그 자체가 참으로 사회경제적이고 물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촛불들이 탈물질주의적 문화적 속성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부차적 속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들이나 현실의 삶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지, 무슨 “TV나 라디오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다”고 해서 정의감이 넘치게 되거나 고상한 탈물질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중에 삶의 문제나 삶의 질에 관심없는 탈물질주의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갑윤의 연구16)와 검토
“촛불집회 참여자는 기본적으로 호남 출신 지역, 젊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 민주당과 진보정당과 같은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 이명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요약하면 촛불집회 참가자는 지난 10년간 지속되어 왔던 지역, 세대, 이념 균열의 축에서 한 쪽을 대표하는 호남, 젊은 세대, 진보 성향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촛불집회는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의 균열과 같은 새로운 생활과 문화적 균열을 대표한다기보다 기존의 정치균열이 생활과 문화에까지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의사조차 기존의 정치균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를 잘 나타내는 증거이다.”(이갑윤, 2008)

이갑윤의 주장 중 주목할 점은, 촛불집회 참가자는 지난 10년간 지속되어 왔던 지역, 세대, 이념 균열의 축에서 한 쪽을 대표하는 호남, 젊은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인데, 먼저 이갑윤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반드시 젊은 세대(30대 이하와 40대 이상이 거의 반반임)가 많다고 볼 수 없고, 촛불집회가 주로 호남사람들의 비중이 특히 높은 서울과 수도권 거주자들이 참여한 점을 감안한다면 통계상 크게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 표의 총 응답자의 정당지지율을 보면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진보신당의 비중이 각각 32.7%, 18.8%, 10.0%이고 무응답자가 38.4%로 당시(2008년 8월 초)의 정당 지지도로 보아 신뢰할 만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조사에 따르면, 촛불시민 100명 중에는 한나라당에 투표했던 사람이 13.5명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고, 나머지 86.5명은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은 28.9%이고, 신자유주의 세력(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지지한 사람은 42.4%이다. 즉 촛불집회 참여자의 57.6%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갑윤이 (조기숙 등이 주장하듯) “촛불집회는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의 균열과 같은 새로운 생활과 문화적 균열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지만, 단순히 세대와 지역을 근거로 ‘기존의 정치균열의 확장’으로 파악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촛불집회 참가자 중 71.1%를 (기존의 정치균열과 다르게) 노무현과 민주당의 신자유주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로 해석할 때에만, 촛불집회 중에 나타난 민주당에 대한 혐오감이나 일반 시민의 낮은 지지율(18.8%)을 바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존의 ‘호남사람=민주당 지지’의 공식으로는 신자유주의에 유린당하는 대중의 정서를 적절하게 이해할 수가 없다. 즉 대중은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의 대립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좌/우파 대 민중으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연행자 자료
필자는 2008년 말 촛불연행자모임의 정회원 750명 중 파악이 가능한 90명의 사례 통계를 구하였다. 이들은 연행자모임의 회합이나 실천에 한번 이상 결합한 사람들이다.17)

 

세 통계의 신뢰도 및 특징
필자는 조기숙과 이갑윤 그리고 필자의 통계 중 연령과 학력 및 소득을 하나의 표로 만들어 보았다.
조기숙 등의 조사가 이루어진 6월 6일은 촛불집회 참가자의 확장이 거의 끝난 최고조의 시점에서 현장 참여자 1,300여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것이고, 이갑윤의 조사는 촛불항쟁이 거의 종료한 8월 4일과 5일에 전국의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것이다.
이 통계에서 이갑윤의 경우 응답자의 54.4%가 대재 이상으로 조기숙의 33.71%보다 훨씬 높은 점이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아마 저학력층의 응답 거부율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집회 참여자 중 대재 이상의 비중이 조기숙 76.9%, 이갑윤 77.1, 연행자 68.9%로 70% 이상이 평균 이상의 학력자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18) 이 점은 촛불집회가 인터넷을 통한 동원 혹은 네티즌적인 감수성을 가진 점과 연관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세대별 비중을 보면, 촛불집회 중반의 조사인 조기숙의 조사에서는 20대와 30대의 비중이 두드러지고, 이갑윤의 조사에서는 30대만 약간 높고 나머지 세대는 고르게 참여하고 있으며, 연행자 조사에서는 40대가 약진하고 있다.
조기숙의 조사는 항쟁의 고양기의 끝부분인 6월 6일의 현장조사이고, 이후 새로운 유입은 없었다. 그럼에도 항쟁의 소멸기인 8월 4일과 5일에 이루어진 이갑윤의 조사가 특히 50대 이상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참여의 빈도를 감안하지 않고 1회 이상 참여자를 모두 포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항쟁의 주역인 촛불시민의 정체성은 ‘6.10 100만 대회’에 한번 참여하기 위해서 절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오신 할머님들과는 다르다. 한편 연행자의 조사대상은 참여율이 높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참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5월 2일(3일)까지의 1차 고양기와, 5월 24일-31일의 공세기를 포함한 6월 10일까지의 2차 고양기, 그리고 6월 25일~28일의 대치를 겪은 7월 5일까지의 회복기의 기간 중, 초기의 청소년과 네티즌들이 5월 24일을 기점으로 386 세대의 대거 유입을 거치면서 구성원의 성격이 변화하였고, 6월 10일과 7월 5일 이후에도 남은 구성원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5월 24일까지는 초기 정체성이고, 5월말부터 예비군, 유모차, 386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구성원의 확장과 변화가 있었고, 7월 5일 국민승리선언을 기점으로 강경파만 남아, 이후 지역촛불과 용산투쟁까지 이어진다고 봤을 때, 각 시점별 참가자와 빈도수를 감안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항쟁의 초기에 청소년에 비해서 대학생들(20대 초중반)의 참여가 적었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는데, 항쟁 중반에 이루어진 조기숙의 조사는 20대의 비중이 38%로 지나치게 높으면서도,19) 소득 구간에서는 500만 원 이상의 비중이 23.2%나 되고, 101-200만원의 비중이 15.7%밖에 안 되는 점은 수긍하기 어렵다. 20대 참여자가 부모소득이나 가구소득으로 응답했을지도 모르지만, 세 자료 모두 한계가 있다고 할 것이고, 전체적으로 볼 때에 촛불항쟁은 특정 세대가 주도했다고 하기보다는 청소년을 포함하여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세대가 고르게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

소득별 계급별 분석의 시도
정권퇴진운동이었던 촛불항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자의 소득별 계급별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신광영은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와 종사상의 위치 등을 감안하여, 자본가계급, 쁘띠 부르주아지, 중간계급, 노동자계급 등 4개의 계급으로 분류하면서, 소득수준을 감안하여, 쁘띠 부르주아지와 중간계급을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있다.20)


<표 10>의 직업별 자료를 보면, 노동자계급(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무직/기타)의 비중이 6월 55.91%, 7월 68.70%, 연행자 68.89%로 2/3에 달한다는 점과, 주부와 학생의 비중이 줄어든 점과 자영업자도 상당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연행자 자료의 계급?계층별 구분은, 자본가 4%, 중간계급 8%(500만 원 이상 소득의 자영업자와 전문/관리직), 중간하층 12%, 노동자계급 76.5%이
다. 또한 소득구간을 필자의 추정으로 판단하면, 500만 원 이상 소득자는 8.4%, 401-500만원 구간은 12%, 일용직과 청년실업, 실직자, 활동가들을 200만 원 이하로 볼 때 38.3%이다. 그리고 여성의 비중이 20%이다. 그런데 연행자 자료에서 특이한 점은, 30대 이상(83명) 중 기혼자는 17명(20.4%)뿐으로, 싱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기혼자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가투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21)

 

<표 11>의 소득별 분포를 보면, 월 소득 100만 원 이하의 참여자가 현저하게 낮고, 101-200만원 구간은 전체 국민의 평균과 같으며, 나머지 소득구간은 모두 평균구성비보다 높다. 한편 300만 원 이하의 비중은 43.91%, 400만 원 이하는 63.4%(전체 국민은 각 49.25%, 68.48%)로, 100만 원 이하 결국 비정규직이나 불안정 고용층의 참여가 현저하게 낮은 점 외에는 전체 국민의 비중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표 11>의 소득별 비중을 50만원 단위로 쪼갠 뒤 OECD의 분류법22)으로 계산하면, 촛불집회 참가자 중 빈곤층(150만 원 이하)은 13.3%, 중산층은 57.2%[중하층(151-200만원) 9.3%+중상층(201-450만원) 47.9%], 상류층(450만 원 이상)은 29.5%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계급적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월 소득이 200만원이라고 하더라도 20대 후반이라면 적당한 급여일 수 있겠지만 40대 초반의 가장은 심하게 쪼들릴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신광영이 정의하는 “노동자나 농민들의 수준을 훨씬 넘는 여가 및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집단”인 중산층은 어느 정도의 소득구간에 해당될 것인가? 평균 가구원수 3.5인 이상의 도시 생계비를 감안할 때, 최소한 월소득 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3)
여기에서 과도하게 자본가계급과 중간계급의 소득을 500만 원 이상으로 설정한다면, 22.4%이다. 결국 이 통계는 불완전하지만 노동자계급이 2/3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중간계급이나 중산층도 상당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항쟁의 주역을 노동자계급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독자적 요구를 내걸고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석해도 아주 쪼들리지는 않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500만 원 이상의 소득자도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항쟁의 주역에는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이 섞여있고, 노동자계급도 시민이기를 강요당하였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소시민이나 중간계급적 모습이 보여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촛불은 국민과 시민의 정체성과, 중간계급이나 중산층의 정체성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서민의 정체성이 혼재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정체성 가운데 어떤 정체성이 압도하게 되느냐는 운동의 전개과정에 달려 있는 문제다.
‘대~한민국’이라는 엇박자 구호 속에서는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강요되면서 기륭의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고통은 잊혀질 수밖에 없고, 민족이나 시민이라는 정체성 하에선 청년백수의 고통이나, ‘해고가 살인이다’는 구조조정의 아픔이나, 세입자이기 때문에 학살당해야 하는 철거민의 고통은 설 자리가 없다. ‘반독재 민주 대연합’의 구호 하에서는 노동자계급은 시민이기를 강요받는다.24)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로부터의 이탈과 왜곡을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 초기에 “이명박의 정책 중 미국산 쇠고기 말고도 의료보험민영화, 수도세민영화, 공기업민영화, 대운하, 간접세 등등… 너무나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25)라고 말했던 정체성은 분명 ‘돈 없고 빽 없는 서민’ 즉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위협당하고 있는 민중의 정체성이다. 또한 서민이란 계급적 자각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감수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감수성이 대책회의에 의해 억압당하면서, 초기부터 혼재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적 감수성과 함께 계급으로의 분화 이전의 보편적 시민의 정체성이 압도하게 되었다.26) 한 사람의 노동자는 출근하면 직장인이고, 퇴근하면 시민이고, 마트에 가면 소비자이고, 학교에 가면 학부형이다. 직장인과 시민, 학부형 등 여러 정체성 중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정체성이 억압당하면서 점차 시민의 정체성으로 광장에 나서게 된 것이다. 값싼 수입 농산물이나 쇠고기 수입이 문제가 될 때는 농민들에게만 즉각적인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광우병 발발의 위험이나 부당한 협정 체결은 전 국민이 느끼는 문제이다. 또한 여대생이 전경의 군홧발에 짓밟힐 때에는, 한나라당을 제외한 민주시민이라면 누구나 분노를 느끼는 사안이기 때문에, 계급으로 분화하기 이전의 시민이라는 정체성만으로 항의에 동참하고 나서는 것도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촛불항쟁 초기에 제기된 의제들과 배경은 분명 사회경제적 처지에 기반한 즉 계급적인 감수성이지만, 계급적 성격이 억압되고 희석되면서, 계급으로의 분화 이전의 국민이나 시민의 감수성이 강해졌고, 그 때문에 계급이나 계층 혹은 소득이나 연령의 차이를 넘어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계급과 중산층론의 검토
“한국사회는 이런 부르주아의 욕망과 ‘서민들’의 욕망이 동일한 나라다. 이명박 대통령에 분노하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이중성은 중간계급의 의식세계에서 발생한다. 1997년 이후 한국의 중간계급은 지속적으로 몰락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부동산 거품이 이들의 정체성을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촛불은 이명박 정부와 부르주아를 향한 쾌락의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중간계급의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불을 붙인 존재는 바로 이들 중간계급의 아들딸들이었다.”(이택광c, 2009: 66-67)

그러나 이러한 이택광의 주장은 예리한 통찰은 있지만, 통계에 의해 지지되지는 않는 것 같다. 먼저 이갑윤의 조사에서 보듯 쾌락의 동참에 참여하고자 했던 한나라당 지지자는 13.5%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은 쾌락의 동참을 위해 이명박을 찍었다가 쾌락의 평등이나 정상국가에 대한 욕망 때문에 반이명박으로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명박을 안 찍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는 점을 볼 때, 한국의 중간계급이 양면적이라고 해서 촛불집회 참여자들도 양면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이 57.7%인 것을 보면, 처음부터 쾌락의 평등주의를 주장하거나 쾌락에 동참할 수 없는 서민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촛불이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적인 의제에 대해 무감각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인 양면적 중간계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오히려 쾌락에 동참하기 어려운 중간하층 즉 서민층(서민적 감수성을 가진 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회주의적인 양면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정권퇴진의 항쟁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촛불의 주체는 분명 신자유주의에 유린당하는 민중이었지만, 시민적 감수성을 강요당함으로써 그 요구와 행태에 있어서 탈계급적 특성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중간계급의 정상국가에 대한 욕망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탈계급적) 욕망은 강요당하고 왜곡된 결과이지 항쟁을 시작하고 지속시킨 본래적인 동력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중산층일 것으로 가설을 세우고… 촛불을 들고 내 새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여성은 누구일까? 내 새끼에게조차 그 쇠고기를 먹여야 하는 여성 집단은 최소한 아닐 것이다. … 최소한 중산층 여성은 되어야 그 시간에 촛불을 들 수 있으며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 IMF를 겪으면서 생활상의 어려움에 직면하였던 중산층은 보수화되었다. … 대부분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중심으로 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한국사회의 중산층의 지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시민운동을 지지하는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고학력이고,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형성된 중산층은 고졸 생산직이었으며… 시민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비정규직이나 사회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다.”(은수미, 2009: 222, 226-30)

은수미가 주장하듯, 노동자들의 보수화는 인정될 수 있고(조돈문, 2006), 중산층이 비정규직이나 사회취약계층에 관심이 적다는 것도 인정될 수 있다. 또한 항쟁 참여자의 소득별 분포를 보면 빈곤층이 극히 적은 사실도 통계에 의해 지지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은수미가 말하는 중산층이란 그냥 보수화된 노동자계급의 상층의 모습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에 억압당하고 수탈당하는 이 땅의 민중의 정체성은 설령 계급적 자각은 부족하더라도 의료보험 인상을 걱정하고, 전기세와 수도세 인상에 반응하는 계층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정규문제나 소외계층에게 대한 관심이 적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운동의 미발달로 인한 계급의식의 억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27)
현대사회 혹은 한국사회의 계급분석은 종사상의 지위만이 아니라 소득과 자산까지 함께 고려할 때 행위동기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면, 단지 빈곤층이 아닌 중산층이라는 소득수준만으로 촛불운동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전후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포디즘적 축적체제 이후 성립된 신자유주의 축적체제 하에서 진행된 노동자계급의 분절화와 위계화는 은연중에 형성되어 있는 노동자계급=빈곤층이라는 인식을 탈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계급 내부에는 빈곤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층만이 아니라 상대적인 배려를 받는 정규직도 있고 전문직도 있다. 그러나 소위 신중간계급이나 전문직과 정규직 역시 구조조정 등으로 존재가 위협받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복지에 대한 각종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대적인 안정을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들에게 강요하는 끊임없는 위협과 불안이 조합주의적이고 타협적인 의식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이들을 보수적이라고 배제할 경우 일면적인 실천에 빠질 위험이 있다. 분절화된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계급으로서의 통일성을 획득하게 할 것인가는 주체의 실천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감수성은 뉴라이트가 아무리 설쳐도 ‘중산층 의식’보다는 ‘서민의식’이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슬로건조차 ‘서민이 행복한 나라’였다. 서민이란 쾌락에 동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쾌락의 불평등에 불만을 품는 정체성이다. 그리고 100만 원 이하의 빈곤층을 제외한 전 소득계층이 참여한 것만을 보면, 특정계층의 욕망이라기보다는 분노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시민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산층이라고 보기 힘든 400만 원 이하가 63.4%(500만 원 이하는 77.6%)나 되는 것으로 보면, 그들은 또한 의료민영화와 공기업 사유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의제에 공감을 보여주는 서민적 대중 즉 신자유주의 하에서 유린당하고 수탈당하는 소외된 대중이고 민중이었다. 촛불항쟁의 주체는 결코 보수화된 중산층이 아니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 보수적인 중산층이 항쟁에 나설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처럼 촛불을 민중이면서 소외된 대중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는, 촛불의 또 다른 특성인 여성적 감수성(여학생, 유모차,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등)과 네티즌적인 특성이 만날 수 있는 영역이 소외(alienation)이기 때문이다.28) 자본주의 특히 삶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신자유주의는 비단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삶과 여가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소외를 강요하고 있고, 이러한 소외에 대한 대중의 대응이 발달한 인터넷 문화를 기반으로 네티즌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괴롭거나 즐겁지 않으면 종교나 사이버 세계가 도피처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인들이 비단 정보의 습득만이 아니라 개인 홈피, 컴퓨터 게임, 인터넷 동호회, 트위터 등에 탐닉하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소외에 대한 대중의 대응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항쟁이 끝난 후 많은 지역촛불들은 ‘명박퇴진’과 ‘촛불이 정의다’라는 정체성 하에 이명박의 감상적 악마화를 통하여 형식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회복을 갈구하는 듯하다. 그러나 촛불카페들을 살펴보면, 친일파와 뉴라이트 청산에 열을 올리는 카페도 있지만, 강남의 직장인들이 많이 참여한 강남촛불은 대운하 반대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고 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에도 일부가 결합하였다. 진알시는 의료민영화 반대운동과 꾸준히 연대하고 있다. 화장발/삼국은 달동네 주민들에게 김장나누기 행사를 하기도 한다. 어떤 카페는 언노련과 연대사업을 하고 있고, 공공연맹이 네티즌과 함께 만든 공감 2010은 사유화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또 많은 촛불은 유시민이 만든 시민주권모임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카페가 여러 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촛불시민들은 구성원이 다양하였듯이 감수성도 다양하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분명 ‘명박퇴진’이지만 그 명박퇴진 속에는 민주시민의 감수성이 압도적인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반발하는 감수성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의료보험료와 전기세 수도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중산층일 수 있겠는가? 연예계나 드라마에 대한 대화를 주로 나누는 마이클럽을 비롯해서, 싱글인 직장여성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소울드레서 혹은 화장발/삼국, 쌍코(성형수술 카페) 등등은 언뜻 보아 쪼들리는 삶과는 관계없는 중산층일 것 같지만, 촛불항쟁 시 촛불이 제기한 여러 의제에 공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실존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위협당하는 민중이고 소외당하는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성형도 반드시 돈 많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지어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도 월 10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쌍꺼풀 수술을 하고 치아교정을 한다. 물론 성형외과는 이들 고객을 위해서 10%만 받고 할부거래를 하고 있다. 외모마저도 경쟁과 상품화를 강요당하는 게 탈모던한 신자유주의 하의 젊은 여성들의 처지이다. 네티즌 문화라는 것도 소외된 대중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청소년들 역시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으로 시달리는 자신들의 억압받고 소외된 일상과 비교하여, 모든 고통을 벗어던진 듯한 동 세대에 대한 열광과 동경이 들어있다. 문화라는 것은 인터넷이든 어떤 것이든 현실 대중의 삶의 반영이고 반응이다. 이들은 결코 디지털 유목민이 아니다.
모든 정치적 행동에는 사회경제적인 처지 즉 계급적인 배경이 있겠지만, 모든 사회적 현상을 계급적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기계적인 반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관철되는 것이고, 계급투쟁이 치열하지 않고 계급운동이 덜 발달된 상황에서는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의식과 헤게모니를 내면화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때, 촛불항쟁이 결과론적으로 계급적인 운동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의미한 지적일 수밖에 없다. 촛불항쟁은 계급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운동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운동의 헤게모니가 관철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제도 내 존법주의자들과 운동에 기생하는 관료들에게 억압당했을 뿐이다. 비록 타락한 운동에 의해 그 정체성이 억압당했을지라도, 촛불은 분명 그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의 파렴치한 공세 하에 위협당하고 유린당하는 민중이고 소외된 대중이다.

민중인가? 다중인가?

<<미네르바의 촛불>>의 저자인 조정환은, 촛불이 다중이고, 다중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주의자인 비르노에 따르면, “위대한 저술가였던 홉스는 다중이 얼마나 반-국가적인가를,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얼마나 반-민중인가를 존경스러울 정도로 세련되게 강조했다. … 말하자면 민중이 있다면 다중은 없다. 또한 다중이 있다면 민중은 없다.”(비르노, 2004: 41) 그래서 이득재는 “국가라는 일자(one), 국가라는 중심으로 구심력 운동을 하는 것이 민중 개념이라면, 다중은 국가로부터 멀어지는 원심력 운동을 하는 개념이다.”(이득재, 2008: 102)고 세련되게 정리하였다.
즉 민중은 중앙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이고, 다중은 중앙정치에는 관심이 없거나 벗어나려는 집시나 유목민과 같은 존재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명박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민은, 중앙정치에 관심이 없는 원심력적인 다중이 아니라, 국민국가와 투쟁하고 중앙정치의 변혁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민중이다.
그런데 조정환의 스승인 네그리는 “국지적인 기획으로는 제국에 저항할 수 없으니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하지 말고 가속화해야 하고, 국민에 의거하는 전략 혹은 민중에 기초하여 국가권력을 잡는 국지적인 기획은 목표가 아니고, 잘못되고 해롭고 반동적”이라고 주장한다.(네그리?하트, 2001: 81, 276-77 등)

“2008 촛불의 도화선이 된 광우병 쇠고기의 수입은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 중의 하나였다. 미국의 사료자본과 축산자본의 이익을 위해 한국국민에게 미친 소를 먹이기 위한 것이 광우병 협상이다. 즉 자본의 이익을 위한 전지구화이다. 여기에 저항하여 한국국민은 이명박에게 재협상과 퇴진을 요구했다. 즉 국민국가에 기반한 국지적 기획이다. 그리고 촛불시민들이 이명박의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을 때 국민국가의 공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네그리와 조정환은, ‘한국국민 여러분! 국민국가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미친 소 수입과 같은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해서는 안 됩니다. 촛불시민들이 국민에 의거하거나 민중에 기초하는 전략인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명박퇴진의 투쟁을 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되고 해롭고 반동적인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박석삼c, 2010)

결국 조정환이 촛불은 다중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촛불시민들이 ‘재협상’이나 ‘명박퇴진’ 같은 반동적인 투쟁을 하지 말고, ‘탈출(exodos)’이나 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단지 이런 주장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과 변혁운동에 대한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책의 보론 ‘다중 물신론 비판’에서 보다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실증조사로 본 청소년 연구의 함의

김철규 등의 연구 소개
청소년에 대하여는 김철규 등의 연구결과29)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여기서는 필자가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조사자료와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기왕의 쟁점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를 밝히도록 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전체 학생 수는 333명이었으며, 그 중 여학생이 70.4%, 남학생이 29.6%로 여학생이 남학생의 두 배 이상이었다. 학교별로는 중학생이 33.8%, 고등학생이 66.2%로 고등학생이 중학생의 두 배 정도였다. 학교별 성별 분포로는 중학생의 경우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이 3 : 1 정도로 고등학생에 비해 여학생 비율이 높았다. 전체 평균 연령은 만 15.9세로서 대략 고등학교 1학년 초반에 해당하는 나이이다.
부모의 교육수준은 참여 빈도와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가정의 경제적 계층에 따른 차이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가정의 경제적 계층이 중하 이하인 경우에 3회 이상 자주 참여하는 비율이 30.3%로 중간계층의 18.1%, 중상 이상의 13.8%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 평균 참여 횟수도 중하 이하는 3.2회로 중간층의 2.19회, 중상 이상층 2.16회에 비해 1회 정도 높게 나타났다. 우선 계층과 상관없이 많은 청소년이 촛불집회에 관심을 가지고 한 번쯤은 참여하지만, 이후 지속적 참여 여부는 학생에 대한 ‘통제’ 기제 강도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제 기제란 부모를 비롯한 가족의 관여 정도와 학업으로 인한 참여에 대한 부담을 말한다. 중상 이상 계층은 상대적으로 사교육이나 성적에 대한 부담이 더 클 가능성이 높은 반면 중하 이하의 계층은 부모가 맞벌이일 가능성이 더 높고, 개인
시간을 통제하는 학원이나 과외의 부담이 적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하 이하 계층의 학생들은 촛불집회 참여의 욕구를 더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중하층 이하에서 3회 이상 참여율이 다른 계층보다 크게 높다는 것은 적어도 촛불집회에 대한 지속적 참여 동기는 사회나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
동기화 기제를 성, 학교, 성?학교별로 교차 분석한 결과 분노는 여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특히 여자 고등학생에서 높다. 이러한 결과는 공포를 더 많이 느꼈기 때문에 여학생의 참여가 많았다는 일부 진단과 거리가 있다. 여자 고등학생이 단순한 공포심보다는 공격적 분노를 더 많이 느낀 것이 집회에 더 많이 참여한 이유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 통계적인 차이를 보여준 것은 오히려 비참여 학생 사이에서 나타난 성별 차이였다. 즉, 먹을거리 안전과 외모에 대한 관심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참여 학생의 관심 정도는 성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경향은 학업성적에 대한 관심이 많을수록 참여 빈도가 낮으며, 참여 시 활동도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학업성적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참여 빈도와 행동성을 제약하는 요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학업성적에 대한 심리적 부담의 무게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
두 번째로는 기존의 참여나 활동의 조직적 기반이나 네트워크가 작동하여 촛불집회에서도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이끌어냈다는 조직적 동원화의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촛불집회 참여자는 집회 참여 이전에 여러 단체 활동이나 집회 참여율이 높고 활동 양상도 적극적이었다. ‘사회활동’의 범주에 포함한 모든 항목에서 집회 참여 청소년이 비참여 청소년에 비해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김철규?김선업?이철, 2008)

김철규, 이해진 등의 연구 소개30)
“3차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96.2%에 달했고, ‘학력에 의한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학생 역시 90.2%로 매우 높았다. 이 결과가 촛불집회 참여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촛불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원래 그랬던 것인지에 대해서 직접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동일 응답자의 비교를 통해(106명) 1차 조사 시점 당시의 소득불평등 인식에 비해(평균=3.81) 3차 조사의 경제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며 훨씬 높게 나온 점(평균=4.49)에서, 촛불집회 참여를 통해 불평등의식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높은 평등의식을 지닌 10대들이 바람직한 사회상에 대해서는 평등주의(47.0%)와 능력주의(53.0%)로 양분된 입장을 보였다. 불평등에 대한 사회 비판적 인식과 개인주의적 지향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3차 조사 응답자(n=111)의 74.7%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미디어법 개정(85.7%), 4대강 살리기(62.5%)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와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10대 청소년 참여자들의 높은 관심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촛불 10대들은 우리 사회의 공적 문제와 관련하여 공공성의 정치의식을 갖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촛불집회를 실패한 사회운동이자 새로울 것 없는 중산층 시민계급의 욕망을 드러낸 사회운동으로 해석하는 논의들은, 그 근거로 촛불 주체들이 노동이나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사회구조적 쟁점들을 연계시키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당대비평 기획위원회, 2009) 우리 조사에서 보이는 촛불 10대 참여자들의 공공적 관심과 정치의식은 이러한 섣부른 예단에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김철규?이해진?김선업?이철, 2010)

필자의 소견
청소년들이 공포(14%)보다 분노(56%) 때문에 나왔다는 것과,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훨씬 더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 비참여 학생 사이에서도 나타난 먹을거리 안전과 외모에 대한 관심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점,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96.2%에 달했고, ‘학력에 의한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학생 역시 90.2%로 매우 높았다는 점, “응답자의 74.7%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응답했으며, 미디어법 개정(85.7%), 4대강 살리기 (62.5%)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 등은, 반드시 청소년과 여학생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성인들 역시 공포보다는 분노의 감정이 압도적이었고, 5대 의제에 대한 촛불시민들의 감수성을 고려할 때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자각 또한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학생의 높은 참가 역시 촛불항쟁에서 나타난 아줌마, 요리, 화장, 성형수술 카페 등의 여성적 특성과 관련하여 여성 일반의 감수성이 풍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촛불항쟁은 청소년과 여성들이 앞장선 것은 맞지만, “특정 세대가 주도했다고 하기보다는 청소년을 포함하여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세대가 고르게 참여했다고 할 수 있다.”는 필자의 주장처럼, 세대별 특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5월 3일 집회의 60-70%가 청소년이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혹자는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친화적이고, 무슨 네티즌 혹은 디지털 유목민 운운하며 탈물질적인 문화적 감수성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마이클럽이나 소울드레서와 같은 카페에서조차 5대 의제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진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터넷 공간의 네티즌 역시 신자유주의 하에 수탈당하고 위협당하는 소외된 대중의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네티즌이 더 감수성이 풍부하고 정의감이 강하여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것은 허구다. 인터넷 공간은 이미 현대인의 삶의 일부분이다. 그 공간에서 소통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은 현실의 물질적 삶과 동떨어진 존재가 결코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혹은 청소년이 성인보다, 혹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네티즌이 비네티즌보다 더 감수성이 풍부하고 더 정의감이 강하다는 주장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5월 2일 집회는 단지 네티즌들이 먼저 알고,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분노를 느꼈다는 것과 관련이 되는 문제이다. 그것은 무슨 소통과 개방을 운운하는 네티즌들의 특성이 아니다. 미친 소를 비롯한 여러 의제들의 공유가 인터넷의 도구적 편리함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현대인들을 네티즌과 비네티즌으로 따로 구분할 이유가 없다. 구분으로 유의미한 것은 허구적인 유목적 감수성이 아니라 현실의 사회경제적 처지이다.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10대들의 경제적 계층이 ‘중하 이하’인 경우가 많다는 점과, 경제적 불평등과 학력 불평등을 심하게 느끼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응답이 바로 그들이 느끼는 현실의 사회경제적 처지의 반영인 것이다.
그렇다면 5월 2일 당시 60만 명의 서명이 이루어지고, 2만 명이 집회에 나왔는데,31) 그 중의 60-70%가 왜 청소년이었는가를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청소년 혹은 10대 학생들이 교육의 서열화와 시장화로 동물적인 학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좌절과 억압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라는 점이 유효한 해석일 듯하다. 2009년 1월 용산학살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뛰쳐나오지 않은 것은 2008년 여름에 겪었던 탄압과 좌절의 상처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기성세대는 5월 2일 집회에 나가기에 주저해야 할 세대적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무슨 문화적 감수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느니, 소통과 개방에 친화적인 특성을 가진 네티즌들이었다느니, 디지털 유목민적인 감수성이라느니, 생명과 인권 등 탈물질적인 감수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분적이고 부차적인 현상으로 전체를 호도하는 얘기일 뿐이다. 촛불집회의 참여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 속에서 수탈당하고 위협당하는 민중이고 소외된 대중이다. 청소년 역시 그 일부이고, 여성도 그 일부이고, 네티즌도 그 일부이다. 그들은 새로운 주체가 아니라 소외된 대중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 사회가 학력과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세상이라고 느끼고 비정규직에 관심을 갖는 촛불 청소년들은, 결코 중간계급의 아들딸들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위협당하는 민중의 딸과 아들들이고, 그 자신이 신자유주의적인 미친 교육에 심각하게 학대당하는 소외된 대중이다.

소결

이명박의 반서민적 행보에 분노하는 촛불은 전형적으로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수탈당하고 고통당하는 민중이다. 촛불이 제기한 의제와 불만은 신자유주의 하에 신음하는 전 세계 민중들의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다. 17대 대선은 신자유주의 좌파에 실망한 대중들의 의사였다면, 18대 총선은 신자유주의 우파와 좌파에 대한 대중의 절망이 표현된 것이다.
그들은 실증연구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결코 중간계급의 양면성 때문에 왔다갔다한 대중이 아니라, 쾌락의 동참을 바랄 수 없는 서민들이었다. 또한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무관심한 계층도 아니었다. 촛불집회에 앞장서서 기성세대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청소년들은 결코 쾌락의 동참을 바라는 중간계급의 아들딸들이 아니라, 지옥 같은 경쟁으로 동물적 학대를 강요당하면서 자신들의 부모들과 똑같이 이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피부로 느끼고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이 땅의 민중들의 자식들이었다.
고소영에 분노하고 의료보험과 전기세와 수도세를 걱정해야만 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삶을 위협당하는 소외된 대중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디지털 유목민을 운운하며 탈모던한 네티즌들이 탈물질주의적인 문화적 속성을 보였다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재협상’을 요구하고 이명박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민은, 중앙정치에 관심이 없는 원심력적인 다중이 아니라, 국민국가와 투쟁하고 중앙정치의 변혁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민중이다.
비록 타락한 운동에 의해 그 정체성이 억압당했을지라도, 촛불은 분명 그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의 파렴치한 공세 하에 위협당하고 유린당하는 민중이고, 정치와 경제와 문화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당하는 대중이었다.



5

맺는 말

 

 

 

 

 

촛불은 끊임없이 변화하였다. 깃발도 들지 말고 구호도 외치지 말자던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깃발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 한때는 ‘무조건 비폭력’을 외쳤지만 용산투쟁에서는 돌멩이를 던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되었다. 항쟁 초기의 소심함은 투쟁이 발전되고 탄압이 격화됨에 따라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그리고 재기발랄함과 해학도 점차 비장한 적대감으로 바뀌었다. 강고한 공권력이 강요하는 억압은 법질서의 존중과 순수와 비폭력의 탈을 쓰고 현대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강요되는 체제의 본질이 적대적인 한, 권력과 민중 간의 모순은 저항과 투쟁을 부르고, 그 때에 공권력은 적대적 질서의 유지자로서 그 폭력적 본질을 드러낸다. 시민의 지팡이는 민중에 대한 몽둥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항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되지 않은 자생적인 투쟁이었고, 기층조직운동이 침체하고 침묵하였기에 혼자 힘만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투쟁이었다. 항쟁 초기의 다양한 의제들이 대책회의에 의해 억압당하면서, 촛불시민들은 투쟁하고 저항하는 민중이기보다 평화적인 시민과 수동적인 국민이 되기를 강요당하였다.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을 유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질과의 투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이명박에 대한 감상적 악마화를 통해 비정상적인 통치자 혹은 통치방식에 대한 증오가 앞서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싸웠고, 훌륭하게 싸웠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깨뜨리고 넘어서는 것이 필요했다. 촛불항쟁은 똑같은 신자유주의 경찰독재에 유린당하는 다른 나라 민중들의 투쟁들처럼 독재자를 몰아내거나 새로운 이념이나 운동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코 위대하거나 영원한 투쟁은 아니었다.

촛불은 누구였을까? 의료민영화를 걱정하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걱정하는 그들은 분명 신자유주의 하에서 수탈당하고 위협당하는 민중이었고, 정치와 경제와 문화 혹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당하는 대중이었다. 항쟁을 촉발시키고 앞장섰던 여성과 청소년은 현실 속에서 가장 억압받으면서도 감수성이 풍부한 소외된 대중이었다. 네티즌 혹은 아고리언은 이러한 현실의 대중이 발달한 인터넷 문화와 공간을 배경으로 이 사회가 강요하는 소외에 대응하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중간계급이나 중산층처럼 쾌락에 동참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부동산 값이 오르기를 바라기보다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명박의 반서민적 정책에 분노하는 그들은 축적위기에 몰린 현대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유린당하는 전형적인 민중이고 소외된 대중이었다. 서민이나 네티즌이란 소외된 대중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2008년 촛불항쟁은 신자유주의 하에 유린당하고 위협당하는 민중들의 또 다른 모습인 소외된 대중들이 일으킨 즉자적 반란이었다. 그것은 비단 일터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억압당하고 소외된 대중들이 일으킨 개미떼들의 반란이었다. 촛불항쟁은 운동이 침체하고 힘을 잃은 공간 속에서, 변혁성과 전투성을 기대할 수 없는 시민압력운동을 하는 제도 내 존법주의자들과 기생관료들에게 억압당하면서 공권력의 폭압에 맞서 외롭게 싸우다가 끝내 패퇴한 운동이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항쟁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의식을 변화시켰다. 새문안교회 안에서 파편화된 줄만 알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희열을 맛보았다. 인간은 원래 함께하고 하나가 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촛불이 맛보았던 그 희열은 광장을 해방했던 역사상의 모든 민중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바꾸는 ‘진리적 사건’은 못되었지만, 잠시라도 해방시켰던 그 광장은 진리적 사건의 체험에 가까운 희열과 경험들을 공유시켰다.
그리고 그 희열과 행복을 위협하고 짓밟는 존재에 대해 하나씩 깨우쳐 나갔다. 왜 이 땅의 10대들이 그토록 학대당해야 되는지, 왜 의료보험을 민영화해서 서민의 삶을 위협하려는지, 왜 말도 안 되는 수작으로 생명의 강을 파헤치려는지도 알게 되었다. 과거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천안함 진실공방과 같은 남과 북 정권의 다툼에 대하여, 조사결과가 미처 나오기도 전에 한줌도 안 되는 정권의 이익을 위해 이를 이용하는 세력과, 그 정권과 결탁하여 전쟁의 위협을 강요하는 미국의 본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자국의 축산자본과 사료자본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 민중에게 미친 소와 유전자변형식품이라는 독극물을 먹이려는 미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사악한 본성에 대해서도 점차 깨우치게 될 것이다. 촛불들이 제기한 여러 의제 즉 의료민영화, 물, 전기, 수도 등 공공재의 사유화, 교육의 시장화와 서열화 등 이 모든 것들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민중들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이다.
삶을 위협할 수밖에 없는 이 체제의 본질을 알게 되면 될수록 우리들의 실천과 투쟁도 체제의 심장을 향하게 될 것이다. 승리하는 그날까지 아직 스스로를 위대하고 영원하다고 미화하고 예찬하지 말자. 이기기 위해서는 촛불은 위대했다는 예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못 이겼는지를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승리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겸허한 반성이다.
수많은 촛불이 집으로 돌아갔던 것은 비가 많이 와서도 아니고 날이 추워져서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경찰독재가 가하는 탄압에 짓밟히면서, 제도 내 존법주의자들과 기생관료들의 배신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희망을 잃고 돌아간 것이다. 촛불을 끄지 않는다고 하여 조만간 다시 타오를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타오를 것이었다면 용산투쟁에서 타올랐을 것이다. 분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공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져버린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타오르는 그날의 모습은 2008년의 모습과는 다를 것이고 달라져야 한다.

민중을 배반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배반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정상배들과 허구적 민주주의의 이 체제를 필연으로 하는 ‘깨어있는 시민’1은, ‘단결과 연대 속에서 투쟁하는 대중’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미 2008년 촛불은 ‘깨어있는 시민’을 넘어 자기 힘으로 정의를 관철하고자 했던 ‘대중의 직접행동’이었다. 왜 온 국민이 반대하는 미친 소와 4대강과 같은 중요한 문제의 결정권이 한 줌도 안 되는 정상배들에게 맡겨져 있는가? 왜 국민의 머슴이어야 할 그들이 국민의 주인이고 지배자가 되어 있는가? 이제 주인을 배반할 수밖에 없는 허구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그들만의 국가가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국가 혹은 민중의 국가로 변모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설 수 없다면, 독자적인 투쟁과 이념과 운동론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 운동은 기존의 질서에 양극분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촛불은 지금 그 길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들은 지금 촛불항쟁 때 ‘명박퇴진’도 외치지 못한 자들이 잠시 들먹였던 ‘명박심판론’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주권자이어야 할 국민은 수동적인 유권자가 되어간다. 20년도 전에 극복되었어야 할 ‘반독재 민주대연합’의 망령이 활개를 친다. 하지만 이명박은 87년에 성립된 허구적 민주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그는 87년 체제를 배반한 독재자가 아니다. 이명박이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 87년 체제의 적자로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요하는 그들의 역할은 똑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신자유주의적인 모순이 격화되고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이 격화될수록 저항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저항이 격해질수록 공권력의 탈을 쓴 조폭들의 출동시간이 빨라졌다는 점뿐이다. 아무리 심판하여도 그들만의 리그다. 거기에 이 땅의 민중들의 목소리는 없다.

왜 이 땅의 민중들이 미친 소라는 독극물을 먹어야만 하는가? 왜 생명의 강이 파헤쳐져야만 하는가? 왜 의료보험이 민영화되고 전기와 수도가 사유화되어야만 하는가? 왜 청소년들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학대당해야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런 미친 짓을 강요당해야만 하는가? 왜 매년 대학 졸업생의 절반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왜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월 123만원도 못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동물적 삶을 강요당해야만 하는가? 왜 똑같은 시민이면서 철거민은 경찰에 의해 학살당해야 하고, 왜 똑같은 국민이면서 쌍차 노동자들은 해고의 위협을 받아야 되고 쇠파이프를 들 수밖에 없는가? 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죽어나가야만 하고, 노조를 결성하려 했다고 식칼 테러를 당해야 하는가? 왜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면서 동희오토의 노동자들은 파견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이 땅의 민중들이 이처럼 삶을 유린당해야만 하는가? 이보다 더 야만적인 사회가 있을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의 천국을 만들기 위해 민중의 삶을 유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인 것이다. 미친 소의 도화선이 되었던 한미 FTA나 세계화란 각국 자본들이 야합하여 국익의 탈을 쓰고 자행하는 전 세계 민중에 대한 공격이다. 이 땅의 민중들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유린하고 위협하는 이 체제를 끝장내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이제는 이 체제에 대하여 정면으로 대결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 야만적인 체제에 대하여 반자본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건설하고 성장시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이 시대가 부여한 민중들의 과제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정상배들에게 억압당하고 지배당할 것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민중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체제의 본질을 향해 저항과 투쟁을 조직해야만 한다. 우리를 소외시켰던 온갖 대리주의와 허구적인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대중의 직접행동에 기초하여, 단결과 연대를 제1의 덕목으로 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저항체를 건설하고 투쟁해야만 한다. 체제의 본질과 모순은 관념 속에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부딪칠 때 그 적대적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촛불시민들이 도로에 나섰을 때 공권력의 폭압적 본질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은 비록 이 투쟁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폭압을 멈출 수 없고 배반을 멈출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땅의 민중들의 저항과 투쟁도 멈출 수 없다.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그날까지 이 땅의 민중들의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각주)-----------------
 

1)_ 안단테, <[1천만 명 서명]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 08.04.06.

2)_ 아름다운 청년, <[안티2mb토요집회] 함께하지 않으시렵니까??>, 08.04.25.

3)_ 사람사는 세상, [탄핵]5.21 탄핵집회, 무조건 모입시다!!! 08.05.21.

4)_ 권태로운창, “결전의 날!! 토요일 여의도와 청계천에서 분노의 불길로~”, 08.05.23.

5)_ 권태로운창, “결전의 때가 왔다. 오늘 7시 청계천, 토요일 청계천”, 08.05.22.

6)_ “광복투사들을 존경하고 그 분들의 뜻을 이어받아, 아직도 부일민족반역자는 떵떵거리며 살고 자신을 희생시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은 핍박 속에서 숨어 사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자는 것이 민처협의 정신이다. 대중들에게 뉴라이트의 망언을 폭로하고 그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암덩어리이며 악의 축이고 그들이 부일민족반역자들의 후손이며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이고 그 세력을 몰아 내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결코 보장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나가기 시작했다”(민족반역자처단협의회, 2008). 자료의 이용에 도움을 준 최규엽 소장과 장창규 연구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7)_ 기혼여성이 주를 이루는 마이클럽이 6대 현안을 얘기했다면, 미혼여성이 주를 이루는 소울드레서는 미친 소 반대 광고에 치중하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8)_ katy, <오늘 청계천 집회 후기>, 08.05.03.

9)_ 촛불시민들이 고소득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통계에 의해서도 지지될 수 없는 전혀 근거없는 얘기이다.

10)_ 맑스주의적 방법론은, 현상을 인정하지만 현상에 굴복하지 않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 연관을 찾아내어 ‘총체성’을 추구한다. 올바른 인식과 설명은 기왕의 현상이나 사실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견될 증거와도 충돌해서는 안 된다. 즉 사물이 변화하고 운동하게 만드는 본질적 연관과 모순을 바르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총체성은 통찰력과 관련이 있다.

11)_ “○ 연령대별 투표율은 60세 이상이 65.5%로 가장 높고, 20대 후반이 24.2%로 가장 낮았음. 20대 후반부터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투표율이 높아지는 특징을 보임. ○ 한편 20대의 경우, 20대 후반이 20대 전반보다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음. 이는 20대 전반 군 복무자의 부재자 투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임. ○ 2006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선거권이 부여된 19세의 투표율은 33.2%로 투표율이 가장 낮은 연령대인 20대 후반(24.2%)보다 9.0%p 높은 것으로 나타남. ○ 제17대 국회의원선거와 비교 시 전 연령대에서 투표율이 감소하였으며, 투표율이 가장 많이 감소한 연령대는 30대 전반으로 22.2%p가 감소한 반면, 60세 이상은 6.0%p 감소하였음”(중앙선관위, <18대 국선 투표율 분석>, 11-12쪽).

12)_ “이명박정권이 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저지르고 있는 횡포를 똑똑히 지켜본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권을 바꿔야겠다는 간절함을 남몰래 가슴 속 깊이 새겨둔다. 그런 이들에게는 2년 뒤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 ‘섹시 치어리더 군단’ 야권 단일 정당론은 그 논리를 어떻게 전개하든 현실적으로 진보정당을 포함한 비민주당을 민주당과 합치는 흡수통합론 혹은 민주당 확대 강화론이 될 수밖에 없다. ⋯ 정권교체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재집권만 막으면 좋은 일이 절로 생길 거라고 믿는 건 그야말로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이다. 그런 식의 묻지마 정권교체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집권의 구체적인 구상이나 방향, 정책을 따져보지 않을 경우 “이러려고 정권 잡았나” 하는 소리가 또 나온다. ⋯ 문성근도 민주당 바로 세우기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다. 야권 통합은 실현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정권교체를 위해 불가피한 것도, 한국정치를 위해 좋은 일도, 옳은 일도 아니다. 사실 정치발전을 생각하면 통합보다 분화가 더 낫다. 비정규직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민주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나라당, 자유선진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이라면 비정규직 문제는 벌써 해결됐어야 한다. ⋯ 그런데 진보정당이 민주당에 흡수돼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비정규직 문제는 좀처럼 관심사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치는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두를 대변하기 때문에 대변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이제 그만 섞여야 한다. ⋯ 정당들은 대표되지 않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따로 존재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 이대근, <[이대근 칼럼]야권 단일 정당, 그 위험한 상상>, 경향신문, 10.11.26.

13)_ 2003년 말 개인정보의 집적과 국가통제로 큰 논란을 빚었던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는 삼성의 작품이고, 최근에는 전자주민카드에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2010.10.5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작품이다. 이 방안에는 건강보험의 예산으로 삼성의 의료분야 진출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국가정책에 대한 삼성의 공작은 공공재의 시장화와 사유화에 맞물려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14)_ “1990년대에는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을 하위 20퍼센트로 나눈 비율이 5배 미만이었는데,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5.43배로 증가했고, 노무현 정부가 임기를 마친 직후에는 8.41배로 치솟았다. 2007년 현재 (노무현 정부가 열심히 만들어낸-필자 첨가)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평균임금은 연간 644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장호종b, 2010).

15)_ “6월 6일 서강대학교와 이화여대 대학원생 등 10여명의 조사원이 정오와 늦은 오후(370명), 초저녁(1,130명)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500 개의 설문지를 배포하고 수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낮에는 시청과 청계천 일대의 시민 중에서 촛불집회에 나왔는지를 확인한 후, 임의의 5번째의 사람을 선택하는 계통표본추출방식을 사용하고, 초저녁에는 시청과 대한문 사이의 거리에 앉은 시민 중에서 앞, 중간, 뒷부분의 블록을 선정한 후 매 10번째 사람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표본추출이 이루어졌다. 이 중, 설문조사 대상자가 아닌 중학생들이 참여한 설문 150여부와 미완성 설문 일부가 배제되고 남은 응답지가 이번 분석에 활용되었다. 총 표본은 1,300여 개로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2.7%이다”(조기숙․박혜윤, 2008).

16)_ 이갑윤은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촛불집회가 거의 끝난 2008년 8월 4일과 5일, 양일간 전국 19세 이상 1,000명의 성인남녀를 무작위 추출하여 전화로 면접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촛불집회 참여자의 인구․사회학적 특성 및 정치적 정향과 태도를 분석하였다(이갑윤, 2008).

17)_ 한편 2008.5.30. 민변 보도자료 통계(촛불에게 다시 길을 묻다.-촛불 2주년 민변 촛불토론회)에 의하면, “5.28.까지의 연행자 113명 중 1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행된 사람의 직업은 학생, 재수생, 일반 회사원, 대학(원)생, 취업준비생, 영어강사, 부동산 중개인, 대리운전기사, 자영업자, 사진동호회 회원, 무직 등 매우 다양하였고, 전체 99명 중 중고생 8명, 대학생 36명, 직장인 26명, 자영업 5명, 일용직 3명, 시민단체 6명이었으며,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1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18)_ 80% 이상이 대학진학을 하는 한국에서 ‘대재 이상’의 학력이 반드시 고학력자임을 의미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19)_ 조사 전날인 6월 4일과 5일에 시작된 대학생들의 동맹파업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20)_ 신광영은,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와 타인 노동력의 고용여부에 따라서 자본가계급과 쁘띠 부르주아지로 구분하고, (종사상의 지위와 전문성의 소유 여부를 감안하여) 비소유 계급을 경영이나 감독의 권위를 행사하거나 조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소유한 사람들인 중간계급과 이외의 모든 피고용자인 노동계급으로 구분하면서, 노동계급은 비감독직 육체노동자와 일상적인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포함”한다고 정의한다(신광영, 2004: 137). 또 “중산층이란 ‘계급’이라는 사회과학 개념이 정치적으로 탄압받았던 시기에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에, 개념이 매우 혼란스럽고 사용자들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소득이 일정수준에 달하여 경제생활이 안정되었고, 노동자나 농민들의 수준을 훨씬 넘는 여가 및 소비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집단이고, …대체로 중간계급과 소득이 높은 쁘띠 부르주아지인 자영업자가 이러한 집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앞의 책, 247).

21)_ 2008년 가을 이후 촛불카페 등에 결합하여 완강한 실천을 보인 사람들의 70%는 싱글로 보였다. 그리고 연행자의 40% 혹은 40대 이상의 대부분은 과거에 운동이나 데모의 참여경험이 있고, 이 점에서 20-30대와 차이가 있었다. 또한 소득수준은 80%가 중류하층으로 보였다. 이러한 점은 항쟁의 후기 정체성(가투파)을 규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2)_ OECD는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를 중산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한다. 2010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를 제외한 도시가구의 중위소득은 302만 2,000원이다. 따라서 빈곤층은 150만 원 이하, 중산층은 150-450만원, 고소득층은 450만 원 이상이다. 그런데 중위 소득의 50-70%를 중하층으로 할 경우 150-210만원에 해당한다.

23)_ 2010년 민주노총이 발표한 3.9인 가족 기준 표준 생계비는 4,825,934원, 노동자 평균임금은 2,153,541원 이었다.

24)_ ‘반MB연합’이니, ‘민주대연합’을 운운한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수백만 명의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유린했던 신자유주의 세력인 민주당과 손을 잡았고, 민주노총에서는 소속 조합원들에게 의료민영화를 꿋꿋하게 밀어붙인 유시민과,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시위와 한미 FTA 반대 시위를 폭력진압한 후 불법폭력 시위 참여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하여 이명박에게 귀감을 준 한명숙을 지지하라는 촌극이 벌어졌다.

25)_ katy, <오늘 청계천 집회 후기>, 08.05.03.

26)_ 촛불시민들이 사회경제적 처지에 기반한 계급적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의료민영화나 공공재의 사유화 혹은 비정규 투쟁에 반응하기보다는, 시민적 의제라고 할 수 있는 언론문제와 4대강 문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비정규투쟁에는 ‘비정규직없는 세상(비없세)’과 ‘함께맞는비’와 같은 카페가 결합하였지만 큰 힘을 못 얻은 듯하다.

27)_ 연행자들의 자료를 보면 80%가 중류하층이었다. 필자가 보기에 촛불카페에 결합한 투쟁파의 상당수 혹은 앞장선 사람들의 상당수가 대부분 실직 상태였거나 도시하층민에 가까운 층으로 보였는데, 촛불투쟁의 탈계급적 성격만으로 주체를 중산층으로 추정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하겠다(2008.8.11 연행자모임의 첫 정모 때에 직장이 없는 사람이나 부담스러운 사람은 10,000원인 회비를 안 내도 좋다고 했더니, 총 45명 중 25명만 회비를 낸 사례도 있다).

28)_ 여학생, 유모차,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등은 생산의 영역에서 얻어지는 노동자계급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

29)_ 이들의 조사는 2008.6.16 시청 앞 집회장에 참가한 청소년들의 거의 전부에 대한 현장조사와, 6월 19일부터 비참여학생 441명을 비교 조사한 것이다(김철규․김선업․이철, 2008).

30)_ 이 연구는 앞의 김철규 등의 피조사자들을 3개월 후인 2008년 9월 2차 조사와 2009년 8월 3차 조사를 통한 총112명에 대한 통계조사이다(김철규․이해진․김선업․이철, 2010).

31)_ 온라인상의 동참자 중 오프라인의 직접행동 참여자가 4%에 달했다는 것은 굉장히 높은 참여율이다.

32)_ ‘깨어있는 시민’이란 정치를 하는 사람을 따로 상정한다는 의미에서 소외된 개념이고, 자신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상정하는 대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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