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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가 우리집에 미친 영향

내 블로그에는 일기장에나 적을만한 사적인 이야기들은 적지 않으려 했는데, 이건 뭐 지금 내 심리적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이 얘기는 적어야 겠다.

 

지난 주,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세계 증시가 곤두박질 치고, 약 4일에 걸쳐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을 멀미나게 만들었었다. 평소에 주식,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돈 문제와는 담을 쌓고 있었던 나 조차 이것 때문에 올 해 들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물론 이정도 가지고 내 인생의 최대의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인생 최대의 위기는 06년 평택 투쟁 갔다가 연행된 사실이 집에 발각된 것이었으니... 그거에 비해면 이건 그나마 견딜만 하다.)

 

 

스토리는 이번 달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시작할 수 있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가족들을 다 불러모으셨다. 보통 아버지가 가족들을 불러 모을때는 아주 무서운 표정을 하고 누나와 나를 번갈아가며 혼쭐을 내 줄때나 부르셨는데, 이번에 달랐다. 나름의 가족회의를 소집하신 것이다. 문제는 바로 주식이었다.

 

사실 가족회의가 소집되기 며칠 전에 나는 집에서 아버지의 주식투자 실적표를 우연히 발견한 적이 있었다.

한 평생 그야말로 '육체노동자'로만 살아오셨던 우리 아버지가 벌어들인 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보다 꽤 많은 금액이었다는 거다. (물론 평균적으로 봤을때는 그거 가지고는 돈 있다고 말할 껀덕지도 안되는 거다. 그 돈가지고는 서울에서 4식구 살 변변한 전세집 하나 얻기 힘들꺼다.)

 

그런데 최근에 주식이 많이 떨어지면서 불안해 지셨는지, 가족들을 모아 대책을 묻기 시작하셨다.

그 즈음에서 나름 최근 금융위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세계화 문제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있던 나는 줄곧 자신있게 말했다. "빨리 빼세요."

 

내가 주식투자를 해본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행의 시기를 준비하는 남한 사회운동의 일원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던가? 07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시작된 주식시장의 불안이 한국으로까지 덮칠 위험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는 거고, 그러면 주식에서 손을 때는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엄마나 누나도 같은 생각을 이야기 했고, 아버지 또한 원금 까인 것이 아깝긴 하지만, 대체로 동의했다. 아버지의 대답. "알았다. 그럼 좀 지켜보면서 순리적으로다가("천천히"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우리 아버지가 자주 쓰는 용어다.) 빼는 것으로 하자."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는 아버지의 '순리적으로다가'라는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문맥상으로 그 말은 곧 "너희들의 의견은 참고사항으로만 해 두고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라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고 지난 주 터진 미국發 금융위기...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한국 코스피 지수 90포인트 급락...

 

그날 부터 나는 아버지를 닥달하기 시작했다. "왜 빨리 안뺐어요? 지금부터 위기가 시작이라는데... 그러니까 추석전에 뺐어야 돼요..." 나는 그래서 조금 지켜 보고 조금 오르면 바로 주식을 다 빼자고 얘기했다. 아버지도 내 말의 취지는 이해했으나, 그것이 이미 잃어버린 원금에 대한 아쉬움을 누를수는 없었다. "야, 그래도 좀 지켜보자. 지난 해 처럼 다시 높은 지수로 회복될지 누가 아냐?"

 

그러나 그런 말은 내 상식선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쏟아지는 기사들만 봐도,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종말이 다가왔느니, 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느니 하는 소리가 팽배한데, 어떻게 그런 낙관적인 말씀을 하시는지...

 

결국 17일 37인트 이상 회복되었을 때도 돈을 안 찾으시더니, 결국 다음날 또 다시 32포인트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 때부터 나는 이성을 잃었다. 미국 정부의 AIG구제금융의 약발도 하루밖에 못가는 최악의 위기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아버지는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 해 주는 펀드매니저의 말에만 기대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번주 안에 돌려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19일) 다시 종합 주가 지수가 50포인트나 상승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난 그때 약간 미쳐있던게 분명했다. 사실 나는 좌파 경제학자들이 쓴 책에 나오는 "미국의 이중적자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 가속화가 진행중" 이라는 말과 최근 금융위기가 비가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정도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투자'의 기본도 모르고 있는 '투자 문외한'인데, 학력이 낮은 아버지보다 뉴스에 나오는 말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그걸 따라서 지껄일 수 있는 정도만 가지고 건방지게 굴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그 날 오후 2시경에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 몇개의 주식만을 빼고 모두 매도하셨다.

 

 

그런데...

 

 

 

그 전까지 차분하게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주식 매도를 결정하신 아버지가 펀드 매니저와 전화를 끊고 나서 표정이 굳어지셨다. "X발, 그 돈을 벌려면 내가 몇 년을 더 일해야 되는데..." 그 한마디를 남기시고는 잠이 드셨다. 그리고 5시경에 밖엘 나가서 소주 한잔을 하고 들어오셔서는 완전히 태도가 돌변하셨다.

 

그날 밤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굳이 적지 않겠다. 간단히 얘기하면 잃어버린 원금에 대한 아쉬움이 결정을 내린 후에 갑자기 밀려왔던 것이고, 그것에 대한 불만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너 다음주에 주가 오르면 어떻게 할래? 넌 그런 경우까지 생각해 봤어 임마!!"

 

그 말을 듣고 나 또한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고, 주말 내도록 인터넷에 올라오는 경제기사들만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미 재무당국이 RTC를 만들어 부실 채권 정리에 나서겠다고 하는 한편,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금요일에도 그런 류의 기사가 간간히 뜨긴 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AIG구제금융에 850억 달러를 갖다 부어도 겨우 이틀도 안 되서 다시 폭락했던 장세였다. 이제 정세는 미국이 무슨 짓을 해도 안통하는 정세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전 세계 증시가 그 여파로 이틀 연속 급등세로 변했단다. 물론 금요일에 63포인트 상승한 것도 그 영향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게 다음주가 되면 흐물흐물 해질 것으로 봤다. 그런데 외국 증시가 이틀 연속 급등세라니...

 

왠만한 기사들은 낙관론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한 주간의 불안한 장세를 끝내고 당분간 증시가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다. 신용 위기의 불안 요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투자 심리를 꺾을 타이밍은 아니다. 이와 함께 뒤늦게 (정말 뒤늦게!!) 개인 투자자들을 위한 투자 조언을 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부분은 지난 주 급락세에 휘둘려 한꺼번에 매도를 하면 손실을 확정 짓는 것이기 때문에, 투자의 정석을 지켜라. 10월 초 중국 펀드의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에 갑작스런 환매가 몰려들 것이므로 일단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둥...

 

 

그런 기사들에 둘러쌓여 주말을 보내면서, 나의 섣부른 행동에 대해 자책하고, 괜히 어설픈 지식을 현실에 응용해 보겠다는 자만심이 아버지 뿐만 아니라 나의 심리적 상태까지 공황에 몰아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문득, "다음주 월요일부터 계속 증시가 상승하면 어떻게 하지? 아, 그럼 난 죽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주말을 우울하게 보내고, 오늘 아침.

젠장!! mbn뉴스를 보는 순간 나는 TV를 부셔버리고 싶었다. 개장한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 24포인트가 오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1시를 넘긴 지금 시각 현재 상승 폭은 5~6포인트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그나마 안심.

 

 

곧 있으면 미국의 주택시장, 고용지수 경기 지표가 발표된다고 한다. 나는 그 지표가 완전 개차반이기만을 바란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팔았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 수 있도록... 주식이 더 떨어졌으면 좋겠다. 아, 명박이도 계속 헛발질만 해주렴. 지금도 미분양 주택이 쌓여있는데 주택을 더 공급하시겠다고? 좋아좋아. 그러면 주택버블을 더 키우고, 주택담보대출 위기를 가속화시키시겠지...  그렇게 해서 내가 집에서 역적으로 몰리지 않도록 해줘라~~~

 

 

정말, 이렇게 전 세계 금융 위기가 나에게 가까이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아, 정말 위기는 위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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