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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바람] 장애인야학에게 '참교육'은 무엇인가?

 

 

장애인야학에게 ‘참교육’은 무엇인가?

-<장애인야학 참교육실천대회>를 치르고 나서-

 

 

 

이야기 시작부터 샛길로 - ‘참교육이라는 한 단어에 대한 기억

 

‘참교육’. 대뜸 내가 이 단어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생각났다. 대학시절 동아리방에서 할 일 없이 노닥대고 있을 땐 항상 민중가요 여러 곡을 반복재생해서 듣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너무 웃긴 노래를 듣게 되었다. 가사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검색해보니, 제목은 <못생긴 얼굴>, 작곡가는 그 유명한 ‘개똥벌레’를 작곡했던 한돌씨.

 

열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 해

그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처음부터 / 못생긴걸 어떡해

 

너네는 큰집에서 네명이 살지 / 우리는 작은집에 일곱이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 너네는 집 많아서 좋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 우리집도 하얗지

 

모처럼에 동창회서 여잘만났네 / 말 한번 잘못했다 뺨을 맞았네

뺨 맞은건 괜찮지만 기분 나쁘다 / 말 안하면 그만이지 왜 때려

예쁜 눈 예쁜 코 아름다운 입 / 귀부인이 되었구나

 

몇 일후면 우리집이 헐리어진다 / 쌓아놓은 행복들도 무너지겠지

오늘도 그 사람이 겁주고 갔다 / 가엾은 우리엄마 한 숨만 쉬네

개xx 개xx 나쁜 사람들 / 엄마 울지 마세요

 

아버지를 따라서 일터 나갔네 / 처음잡은 삽자루에 손이 아파서

땀 흘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니까 / 나도 몰래 내눈에서 눈물이 난다

하늘에 태양아 잘난척 마라 / 자랑스런 우리 아버지

 

가사만 적어놓으니 조금 밋밋한데, 노래로 들어보면 정말 웃긴다. 얼마나 못 생겼길래 열 사람중에 아홉사람이나... 게다가 ‘난 못 생긴게 아니야!’라고 부인하지도 않고 ‘맨 처음부터 못생긴걸 어떡해’라니! 그러다 ‘혹시 이 노래 내 얘기하는건가?’라는 생각에 웃음이 싹 가셔버리는, 요새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웃픈’(웃기고 슬픈)노래.

 

하지만 4절, 5절까지 듣다보면 미묘한 반전이 느껴진다. 가엾은 엄마와 땀흘리는 아버지를 보며 가슴 속에 슬픔과 절규를 쌓아가고 있는 자식의 눈물이 느껴지는 노래. 사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못생긴 얼굴>은 얼굴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가난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도시빈민의 자기애환적인 독백의 단어이다. 그러나 이 절망은 절망의 심연에서 무릎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있지 않고, ‘엄마 울지 마세요’, ‘자랑스런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홀로 눈물을 닦는 의연함을 드러낸다. 이 의연함은 간주 부분에 두 아이의 대화를 담은 나레이션으로 더욱 생명력있게 나타난다.

 

다른 꽃은 예쁜데 콩나무는 못생겼어

못생겼지만 쑥쑥자라는 게 보기 좋지 않아?

꽃삽으로 잡초를 뽑아주자 잡초를 뽑아주자

콩나무가 쑥쑥 자라네

 

콩나무가 싹이 트고 잎이나서 참교육!

콩나무가 싹이 트고 잎이나서 참교육!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게 초창기 전교조의 슬로건인지, 그리고 이후 전교조 다수파를 상징하는 이름인지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말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 어쩌다 <장애인야학 참교육실천대회>를 하게 되었지?

 

올해 초,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나는 이 단체의 유일한 상근 활동가다! ^^;)와 함께 사무실을 쓰는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활동가들과 장애인야학들이 모여서 무슨 사업을 해 볼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다가 “전교조처럼 참교육실천대회를 해보는게 어떨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덜컥 “좋은 생각이네요”해 버렸고, 그 한마디 때문에 생전 처음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는 행사를 기획해보는 엄청난(-_-;;)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전교조처럼 참교육실천대회 해보자’라고 말은 했지만, 학령기-청소년기를 교육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모여서 하는 행사랑, 이미 성인이다 못해 노인들도 다니는 장애인야학의 교사들이 모여 하는 행사가 같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사이고 전교조 조합원인 친구의 아이디를 빌려서 전교조 참실(보통 ‘참교육실천’을 줄여서 ‘참실’이라고 한다) 게시판의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봤지만, 솔직히 도움 될 만한 자료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 같지 않아, 내 마음은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장애인야학들이 그 동안 장애성인 교육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위한 투쟁들은 많이 했지만, 자체적으로 축적했던 교육역량들을 공유하는 자리는 없었던 만큼 그런 첫 자리를 만드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쪽으로 말이다. 그래서 활동이 활발한 서울의 노들야학, 대구의 질라라비야학, 인천의 민들레야학에 각각 야심차게 진행해 왔던 교육사례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어쩌다보니 야학의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장애인야학의 발전방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까지 하게 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단체 지원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해서, 어쨌든 일단 열심히 준비했다.

 

그렇게 별 대책도, 뚜렷한 고민도 없이 준비하던 중에 ‘불편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행사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막 홍보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소식을 나누는 카카오톡 채팅방에 홍보 웹자보를 올리자, 경기지역의 한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동지가 질문을 던져왔다.

 

“참교육이라면 전교조에서 내걸어 왔던 것인데, 그러면 야학협의회에서 생각하는 참교육은 어떤 것인가요?”

 

예상치 못했던 당황스러운 질문이었고, 그래서 답할 길이 없었다. 고민 끝에 성실한 답변을 포기하고 다분히 ‘정치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글쎄요. 논의해 본적은 없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서 그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봐야겠죠.”

 

이런 나의 대답에 상대방도 ‘정치적인 대응’으로 마무리 해 주길 바랬지만, 그 분은 나를 상대로 끝내 공격 포인트 올리고 떠나셨다.

 

“참교육에 대한 개념정리도 없이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좀 당황스럽네요. 어쨌든 의미있는 행사 되시길 바랍니다.”

 

이 분, 두 번째 문장으로 나름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하지만, 첫 번째 문장의 지적이 너무 따가웠다. 한편으론 야학교사 경험도 일천하고 야학협의회 상근 활동 한지 이제 1년 조금 넘은 나에게 너무한 질문 아닌가 싶어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억울함과 함께 불편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불편한 고민 장애인야학에서 참교육은 어떤 의미일까?

 

참교육. 이 용어가 한국사회에 자리 잡게 된 것은 90년대 내내 불법단체였던 전교조가 합법화 투쟁을 하면서 부터이다. 그래서 이 단어가 풍기는 순수성과 무관하게, ‘참교육’은 한국 교육운동의 타협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나는 그런 역사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주최하는 첫 번째 전국단위 행사의 이름으로 <참교육실천대회>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데에는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전교조의 이러저러한 역사를 고려하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못생긴 얼굴>의 간주 나레이션을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곱씹어 생각해보건대,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이 나레이션만큼 잘 표현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콩나무가 싹이 트고 잎이 나서 참교육!”이 한 문장에서 나는 자라나는 한 생명에 대한 찬미를 느낀다. 다른 꽃들보다 못생긴 그 콩나무를 자라게 하기 위해 잡초를 뽑는 손길,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참된 교육의 손길이 아닐까?

 

우리는 생이 끝날 때까지, 자라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신체적 발육이 멈춘 성인기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자라야 한다.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능력에 있어서 끝없이 자라나야 한다. 이 ‘자람’이 멈추면, 사회적 생명으로서의 ‘나’는 죽는다. 우리가 배우는 과정에서 익히는 수많은 지식도 바로 이 ‘자람’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하라면 바로 ‘자람 없는 지식의 쌓음’에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가 자란다는 것은 언제나 ‘함께’자람이다. 논에 모든 벼들이 태풍을 맞아 쓰러졌는데, 나 홀로 웃자라 버티는 벼는 없다. 태풍맞아 쓰러질 때 같이 쓰러지고, 일어서며 힘낼 때도 같이 힘 낸다. 내가 얻은 ‘앎’을, ‘지식’을 그런 공감과 함께 힘을 내는 도구로 쓸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 나는 그것이 교육이라고, 믿는다.

 

나는 노들에서 1년 반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맴돌면서, 그런 교육의 의미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노들의 교사들은 항상 두려워한다. 오늘 수업에서 내가 학생들의 말을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 혹시 잘 알아듣지 못해 학생 분들이 상처받으면 어쩌나 하고... 그래서인지 자신이 가진 지식들로 철옹성을 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왠지 교사로서의 자신감이 없어 보인달까, 그런 느낌도 가끔 받는다. 학생분들 또한 그 흔한 ‘학생다움’이 없다. 수업시간에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아무 때나 하고, 집에 가고 싶을 때 간다. 그런데 학생 분들이 그러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서 가끔 화를 내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 함께 ‘자라고’있다고 느낀다. 두려움에 맞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갖은 차별과, 시설이라는 사회적 감옥 속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두려움이 있다. 교사들은 십 수년을 오로지 말 잘 듣는 학생으로만 살다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장애성인 학생을 만났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우리는 ‘삶’을 창조한다. 그래서 노들은 항상 시끄럽고 북적거린다. 그것이 노들야학만이 갖는 생명력이란 생각이 든다.

 

노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지난 6월에 한 인권교육에서 대구 질라라비야학 교장이신 박명애 대표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박명애 대표님은 야학 학생으로 들어와서 교장까지 하신 특출난 이력을 가지신 분이다. 박명애 대표님은 야학 학생으로 다니면서 가장 설레였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처음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었을 때,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도 몰라 두려웠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나보다 먼저 이용하던 ‘선배님’들을 따라 다니면서 그 두려움을 벗어나게 되었다. 질라라비야학은 나에게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 준 존재다.”

 

나는 대표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파울로 프레이리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하나의 모험적인 학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참여하고 창조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추측하고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삶을 긍정하는 것이 이 학교입니다.”(파울로 프레이리, 『프레이리의 교사론』中)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받는 학교교육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두려움을 끊임없이 각인시켜 줄 뿐이었다. 너의 부모님이, 선생님이, 미래의 상사와 사장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래서 그 두려운 존재들로부터 질책당하지 않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규칙을 따를 것을 강요했고, 그들이 정한 조작된 지식을 습득할 것을 강요했다.

 

야학 경험 일천한 내가 ‘참교육’이란 이름 아래, 전국의 야학 교사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야학 교사들이 느꼈을 수많은 두려움을, 망설임을, 그리고 용기들을. 듣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를 자라게하는 유일한 토양이니.

 

 

소감

 

하지만 실제 일이 이런 ‘이상적인’ 목표에 적합하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각 야학별 사례발표에 대한 원고 글을 받았을 때는, 두근거렸다. 인천 민들레야학과 작은자야학이 함께 준비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발표, 대구 질라라비야학에서 진행한 발달장애인 자립지원 사업에 대한 발표, 노들야학의 인문학 교육과 성평등 교육에 대한 발표. 특히 노들의 김유미 선생님이 준비한 인문학 교육에 대한 발표 글에는 유미 쌤이 매 학기 수업이 끝나고 쓴 수업평가서가 실려 있었다. 아, 이런 보물이!!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내가 생각했던 교사의 두려움, 망설임, 그리고 용기들, 그 모두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8월 24~25일, 이틀 간 행사를 진행하면서, 참 뿌듯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좋은 내용들을 많이 공유하게 되었다고 격려도 해 주셨다.

 

하지만 행사를 끝내고 몇몇 야학들로부터 평가를 들으니, 적잖은 분들이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어떤 분은 ‘상근교사들에게는 적합한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자원봉사로 오는 교사들에게는 지루하기만 했다.’고 했다하고, 또 다른 분은 ‘소수 몇몇 야학에 치중된 내용이어서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쉼 없이 이어지는 사례발표, 토론, 강의에 지칠 지경이었다는 말들이 가장 많았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나? 그랬다. 처음 하는 행사이고, 그래서 어떤 기획이 적합한 것일지 판단도 제대로 서지 못했는데, 그래도 다른 데 가서 자랑할 만한 행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욕심이 크면 탈도 큰 법이겠지.

 

하지만 이번 <참교육실천대회>와는 또 다른 방식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시도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야학은 움직이는 거니까. 여전히 두려워하고 망설이지만, 그럼에도 용기내어 말하고,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삶을 긍정하니까. 그런 과정들을 쉼없이 나누고 이야기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전국에 있는 장애인야학들을 괴롭히는 것이, 내 일이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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