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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동지 추모글 - 2012.10.29

페이스북에 썼음. - 201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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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은 날은 일요일이지만, 정말 맘 놓고 쉬면 안될 것 같은 날이었다. 하지만, 그냥 그래버렸다. 9시쯤 일어나 밥먹고 다시 자서는 12시에 일어나 대학로에 갔다. 여기저기를 혼자 돌아다녔고, 오랜만에 창경궁에도 갔다.

현관까지 다섯 발짝의 거리를 두고도,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던 장애여성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작년 420 농성장에서 처음 뵈었던 분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었던 그 분과 나는 어색하게 앉아있었는데, 세련되...게 차려입은 국회TV 기자라는 사람이 다가왔다. 최근 지하철 승강장과 객차사이의 거리를 좁혀 휠체어 탑승객의 안전문제가 개선되었다고 하는데,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서 개선된 승강장에 탑승하는 모습을 찍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분은 장애인의 현실에 대한 고민도 없이 의도된 장면만 찍으려는 기자에게 거칠게 항의했고, 기자는 똥 씹은 얼굴로 돌아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 분에 대한 기억은 이것 뿐이다. 그래서 사실 상투적인 추모의 말 말고는 할 게 없는, 그런 사이다. 하지만 그 분이 홀로 있던 새벽, 죽음 직전에 맞이해야만 했던 그 공포의 상황은 내가 감히 그 감정들을 예측해보기도 두렵고, 또 감히 상상도 안되는 것이어서 어줍잖은 몇 마디 슬픔을 표하기도 망설여졌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실감하고, 그 실감하는 만큼 온전히 슬퍼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온전하게 감정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겠냐만은... 그런데, 지난 이틀간 내 감정은, 함께했던 동지의 가슴 아픈 죽음에 이렇게 무덤덤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례식장에서 있으면서도 나는 지난 몇 주간 나에게 밀려들었던 스트레스들로 여전히 곤두서 있었고, 게다가 함께 왔던 명학형님의 고장난 전동 휠체어와 몇 시간째 잡히지 않는 콜택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발길 가는대로 걷다가 창경궁까지 갔다. 그런데. 창경궁 안의 풍경은 너무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끔 기분 나쁘지 않게 인상을 쓰게 하는 햇빛이 비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들이 함께 걷는 이 풍경이... 왜 이렇게 이국적으로 느껴지는지... 아니 이국적이라기보다는 삶으로부터 분리된 채 방송국 촬영을 위해 연출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버리고, 음소거 상태로 이 장면을 마주했기에 이질감은 더 했다.

사실, 진짜 삶의 현장에서는 며칠씩 곡기를 끊으며 항의하고, 송전탑 위에 몸을 묶은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람이 매달려 있고, 다섯 발자국만 앞으로 나아가면 유지할 수 있던 목숨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이 죽게되는데... 이 어색하고 황당한 생기발랄함이 넘치는 고궁의 풍경은 대체 뭐람... 30분 정도 산책을 하다 카톡으로 쏟아지는 장례식장 '리얼'한 소식과, 마치 픽션인것만 같은 고궁안의 풍경의 이질감을 견디다 못해 나와버렸다.

그리고 짜투리 시간을 떼우러 들어간 대학로 이음책방에서 우연히 김원영씨가 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의 절반정도로 읽었다.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그는 재활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치료되지는 않았지만, 치유되었다."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가 치유된 것은 남들이 선망하는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끌어안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구원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일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도 있었던 순간에 만났던 자립생활운동가, 편의시설이 전무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마주한 좌절감을 함께 공감해준 장애인권연대사업팀 덕분이었다.

그 분의 삶도 이렇게 치유되었던 것일까. 길지 않은 생이었지만 그녀가 함께했던 장애인운동 속에서 치유되었길 바래본다. 그녀가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10분에 살아남은 우리 중 어떤 누구도 함께 해 주지 못했지만, 그녀가 바랬던 세상을 위해서, 남은 이들이 그녀의 뜻과 의지를 붙잡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일은 일정이 좀 빠듯해지긴 하겠지만, 3시에 한양대병원에서 있을 고 김주영 동지의 추모식에 다녀와야 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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