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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1/01

볼프강 주커만, <파국을 향해 가는 자동차> 中

 

헨리 포드가 최초로 자동차를 대량생산하여 ‘모든 집에 차 한 대’라는 꿈의 실현을 약속하였다면, 독일민족 구성원 모두가 자동차 소유자가 되는 ‘자동차 민족공동체’를 약속하면서 최초의 자동차 도로를 건설한 것은 히틀러였다. 현재 연방문서보관소와 코펜하겐 영화박물관에 있는 1930년대의 선전영화를 보면, 나치독일의 아스팔트 서정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동차를 찬양하는 시인, 화가들 이외에 자동차 영화들도 있는데, 그것들은 어떻게 고속도로를 장악하는 남자가 언제나 가장 예쁜 처녀를 차지하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히틀러도 포드도,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어떤 자동차 예찬론자들도, 정말 모든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고와 몽상에서 제외된 것은 - 도로와 주차장이 집어삼킬 거대한 공간, 자동차들로 인한 도시의 변질과 붕괴,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과 자동차를 묻을 공동묘지들, 그리고 공기를 가득 채울 독성물질들이었다.

 

 

- [녹색평론선집1] 에서 발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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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 <위건부두로 가는 길>(한겨레 출판) 1부 발췌독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쓴ㄴ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석탄을 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면 길어도 몇 주 이상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히털러가 거위걸음으로 행진하기 위해, 교황이 볼셰비키 사상을 지탄히기 위해, 로즈 경기장에 크리켓 관중이 몰리기 위해, 동성애자 시인들이 서로의 등을 글어주기 위해, 석탄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

탄광의 여건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젊을 때 땅속에서 허리에 마구 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차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그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 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 그것은 광부의 일이 더없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나 필요함에도 우리의 경험과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실제로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우리가 혈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잊듯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전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도 <타임스 문예 부록>의 편집인도, 동성애자 시인도 캔터베리 대주교도 아무개 동지도, <유아를 위한 맑시즘>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47-50쪽)

 

 

 

‘자산 조사’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그중에도 때로는 병석에 누워 있던 노인들이 지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이를테면 홀아비인 노년의 연금생활자는 대개 자녀들 중 하나의 집에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으며, 그가 매주 받는 10실링은 가계의 생계비로 쓰이고 그는 그럭저럭 보살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자산 조사’라는 제도는 그를 ‘하숙인’으로 보며, 그가 자녀의 집에서 함께 살면 자녀의 실업수당을 삭감해버린다. 때문에 일흔이 넘은 노인이 진짜 하숙집으로 나가 살면서 하숙집 주인에게 연금을 다 넘겨주고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여러번 직접 목격한 바 있다. ‘자산 조사’ 덕분에 그런 일이 지금 이 순간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7-108쪽)

 

 

 

나는 필력이 정말 뛰어난 실업자를 우연히 만나본 적이 있다. 그리고 만나보진 못했지만 이따금 잡지에서 작품으로 접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 아주 드문드문하긴 해도 그런 사람들은 종종 뛰어난 글 한 편이나 단편소설을 써내곤 하며, 그런 글은 추천사만 요란한 대부분의 작품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기 재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 걸까? 누구보다 시간이 많은 그들이 왜 차분히 앉아 글을 쓰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뿐 아니라(노동계급의 집에선 고독하기도 어렵다)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업이라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는, 무엇엔가 전념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기대감’을 발휘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 해도 책 읽는 게 편한 실업자는 어쨌든 책 읽기로 소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 읽는 게 도무지 편치 않은 사람은 어쩌겠는가? 어릴 적부터 갱도 안에서 일해오며 광부 아닌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도록 길들여져 온 사람을 생각해보자. 허구한 세월을 대체 무엇으로 다 채운단 말인가?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얼토당토않는 소리다. 알아볼 일거리도 없거니와 그런 사실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7년 내내 매일같이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대 채소밭이 있어 소일도 하고 가족의 먹을거리도 조금 기를 수 있겠다 싶지만 큰 도시에선 그런 채소밭을 임대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실업자를 도울 목적으로 몇 년 전부터 문을 연 직업센터들이 있긴 하다. 이 운동은 전반적으로 실패였지만 여전히 번창하는 센터들도 있다. 나는 그런 곳들 한두 곳에 가보았다. 춥지 않고 지낼 만한 공간이 있으며, 목공, 제화, 가죽공예, 베 짜기, 바구니 짜기, 짚공예 등의 정기 강좌가 열리는 곳이다. 팔 목적은 아니고 자기 집에 쓸 가구 등을 , 연장은 무료로 쓰고 재료도 싸게 구하여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인 것이다. 내가 만나 얘기해본 사회주의자들 대부분은 실업자들에게 농지를 주는 기획을 비난하듯이 이런 운동을 비난한다. 그들은 직업센터는 실업자들을 잠잠히 있게 만들고 실업자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숨은 동기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업자가 구두를 수선하느라 바빠지면 <데일리 워커>(영국 공산당이 1930년에 창간한 일간지)를 잘 읽지 않을 테니 말이다.

(...)

우리는 영국에서 수백만 명이 (또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이승에서는 절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낫다. 할 수도 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 하나는 , 원하는 모든 실업자에게 약간의 땅과 연장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생활보조위원회의 실업수당으로 연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채소라도 기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 (111-114쪽)

 

 

 

말하자면 여생을 실업수당에 의존하기로 작정한 듯한 사람들이 잔뜩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감탄스럽고 심지어 희망적이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정신적인 파탄을 겪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그렇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노동 계급은 중산층처럼 빈곤의 부담 때문에 망가지지 않는다. 예컨대 노동 계급은 실업수당을 받는 처지이면서도 결혼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남부의 브라이턴에 사는 노부인들에겐 당치도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노동계급의 분별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증거다. 즉,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만큼 사정이 나쁜게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럭저럭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그렇다. 수많은 가족이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사치를 끊고 꼭 필요한 것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한데, 잘 생각해보면 그게 더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례없는 공황기에 온갖 값싼 사치가 늘어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 전쟁 이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두 가지는 영화와 값싸고 맵시 있는 의류의 대량생산이다. 열네 살에 학교를 떠나 가망 없는 일자리를 얻은 청년이 스무 살 때 실직하여 어쩌면 평생 실업 상태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할부로 2파운드 10실링을 내는 조건으로, 슬쩍 보면 그리고 약간 떨어져서 보면 ‘새빌 로’(고급 양복점들로 유명한 런던의 거리)에서 맞춘 듯한 양복을 살 수가 있다. 아가씨들은 그보다 싼 값으로 최신 유행복을 입은 이처럼 보일 수가 있다. 주머니엔 반 페니 동전 세 닢뿐이고 이 세상에 아무 전망도 없으며 돌아갈 집이라곤 비가 새는 작은 골방뿐이라 해도, 새 옷 차림으로 길모퉁이에 서서 클라크 게이블이나 그레타 가르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

이 모든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나느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동 계급이 겉으로마나 보이고 있는 적응은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혁명적으로 변한 것도 자존심을 잃은 것도 아니다. 단지 노여움을 참고, ‘피시 앤드 칩스’ 수준에서 그럭저럭 견뎌 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안은 절망의 고통을 이어 가나는, 신만이 아는 무엇일 터이다. 아니면 영국처럼 통치력 강한 나라에서는 헛된 학살과 가혹한 억압의 체제로 이어지기 십상인 반란을 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118-122쪽)

 

 

 

한편 나는 실업자들이 돈을 보다 경제적으로 쓰는 법을 배운다 해서 궁극적으로 득을 볼지 의심스럽다. 그들이 경제적이지 ‘않은’ 까닭에 그들의 실업수당이 그만큼 높은 것이다. 매주 생활보호위원회의 실업수당이 15실링인 것은,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실업자 한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테면 쌀과 양파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인도인이나 일본인 쿨리라면 한 주에 15실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실업수당은 비참한 수준이지만 기준은 아주 높고 경제 관념은 별로 없는 시민들에게 맞춰 설계되어 있다. 실업자들이 씀씀이를 더 야무지게 하는 법을 배운다면 아마도 실림이 눈에 띄게 나아질 텐데,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실업수당도 그만큼 삭감되고 말 것이다.(135쪽)

 

 

 

그런데 내가 떠올린, 훈제 청어와 진한 차를 먹고 석탄 난로 주변에 둘러 앉은 노동 계급 가정의 정경은 우리 시대에만 속하는 것일 뿐, 미래의 것도 과거의 것도 아니다. 200년 뒤의 유토피아적 미래로 건너뛰어 가본다면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해 온 것들은 거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육체노동이 전혀 없고 모두가 ‘배운’ 사람인 시대엔 셔츠 차림으로 앉아 구수한 사투리로 한마디씩 할 투박하고 손 큼직한 아버지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다. 난로는 석탄불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태우는 것이리라. 가구는 고무나 유리나 강철로 만들 것이다. 석간신문 같은 게 아직 남아 있다 해도 경마 뉴스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다. 빈곤이 없어지고 말(馬)이 지상에사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도박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 말이다. 개도 위생 문제 때문에 키우는 게 금지되고 말 것이다. 산아 제한 주장이 기승을 부린다면 아이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

우리 시대가 살기에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근대 기술의 승리도, 라디오도, 영화도, 매년 5천 종씩 출간되는 소설도, 애스컷 경마장의인파도, 명문교 이튼과 해로의 크리켓 라이벌전도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묘하게도 내 기억에 남은 노동 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며, 그중에서도 아직 영국의 번영기이던 전쟁 이전의 내 어린 시절에 이따금 보았던 정경들이다.(158-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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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소비자주의

한국DPI 장애인청년학교 자료 中 <장애인 운동사>


현재의 장애인운동은 우선 서비스의 제도화를 넘어서서 환경의 제도화를 지향한다. 환경 제도화의 전형적인 형태가 이동권 투쟁이다. 장애인운동이 폭발한 계기들 중의 하나가 되는 이 이동권 투쟁에는 이동권연대의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 확보 투쟁, 전동연대의 전동휠체어 건강보험 적용 투쟁이 속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환경의 제도화와 관련해서 주거권 운동에 대한 담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PAS) 논의 또한 환경 제도화의 중심축이다. 다음으로 장애인운동은 사회적 자원의 직접전달체계 구축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장애관련 예산의 상당부분이 시설을 통해 집행되는 이런 형태의 자원의 흐름과 쓰임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 즉 간접전달체계를 직접전달체계로 바꾸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한 예가 사회적 수당으로서의 장애인연금 쟁취 투쟁이다. 장애인의 자기선택/결정권과 생활권 확보를 위한 이 투쟁은 장애인운동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물적 토대로 작용하리라 본다.

각주) 직접전달체계 구축은 시설 비리 척결의 열쇠이기도 하다. 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자인권확보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준)와 같은 단체의 활동 속에 시설 비리들이 최근 들어 활발히 밝혀지고 있다. 2005년 공대위에 의해 밝혀진 대표적인 시설비리는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장애아동시설 '솔잎원'의 비리일 것이다. (“특집: 옥탑방에서 벌어진 장애아 학대의 진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함께걸음. 2005.6) 시설비리문제 해소의 요체는 소비자가 구매력을 가지고 시설을 직접 선택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만이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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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자의 고민) 시설을 통한 자원의 간접전달체계에 대한 반대로 직접전달체계, 그것도 장애인을 소비자로서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기초생활보장법의 급여액을 현실화시키려는 요구가 정당한 것처럼, 장애인의 사회적 수당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할 수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의 방향을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단지 슈퍼마켓에서 입맛에 맞는 과자를 선택하는 것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님에도, 위와 같은 소비자주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를 그렇게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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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한다?

장애인은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한다?


인터넷 장애인 신문 <함께걸음>에서 충격적인(!) 글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장애인들은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한다"

 

얼마전 전장연 주최 <장애해방학교>에서 활동보조서비스의 이용자 직접지불방식(일명 '다이렉트 페이먼트'. 장애인이용자에게 활동보조 이용 시간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판정된 시간에 따른 현금을 직접 지급해 스스로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위의 글이 바로 이 쟁점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그 때 토론했던 내용을 정리해 볼 겸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일본과 유럽 여러나라에서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확대라는 측면을 강조하며 직접지불방식을 도입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그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복지병'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러지 않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 제공을 직접지불방식으로 하면 이용자가 그 돈으로 서비스를 이용할지 말지, 이용하면 얼마나 이용할지의 결정권은 이용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기에 오로지 '예산낭비'만을 걱정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 문제가 복지병에 대한 우려로 연결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복지병' 운운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과연 직접지불방식이 도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를 당황케 했던 <함께걸음>의 이 글에서는 정부의 활동보조지원제도가 장애인 지원이 아닌, 저소득층 일자리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그래서 필자는 사실상 정부의 4대강 정책과 활보의 목적은 같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장애인이 소비자로 사는 걸 끝끝내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단언한다. 장애인이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하냐 아니냐의 다소 '철학적인' 논점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 필자는 뭔가 개념적인 혼동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껌 값 수준의' 장애연금과 임금이 20만원 수준에 불과한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를 얘기하며, 이걸로는 장애인이 소비자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분명히 할 것은 이것은 '장애인 소득보장'과 관련된 정책의 문제이고, 활동보조서비스는 소득보장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는 말 그대로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조'하기 위한 제도 아닌가? 전혀 다른 차원의 제도에다 대고 소득보장이 안된다고 불평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여기서 바로 아까 제쳐두었던 다소 '철학적인' 논점으로 옮겨가보자. 장애인은 정말 '소비자'로서의 삶을 원하는가? 비장애인 활동보조인인 내가 함부로 얘기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건 장애인-비장애인을 떠나서 누구나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겠다. 내가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 내가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토요일 빼고 일주일 내내 활동보조 일을 뛰어야 겨우 한달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버는 저임금 노동자이다. 하지만 나의 활보 이용자분은 가족과 함께사는 꽤 좋은 아파트도 있고, 통장에 돈도 나보다 많다.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가진걸로 따지자면 내 이용자분이 나보다 많은 걸 가졌다. 하지만 나는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계단있는 건물을 쉽게 오를 수 있고 이렇게 혼자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고 혼자서 밥도 해먹는다. 하지만 우리 이용자분은 조그만 턱이 있는 1층 건물에도 들어갈 수 없고, 컴퓨터로 글을 쓰려면 옆에서 내가 타이핑을 해 줘야 하고,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땐 내가 조그만 앞 접시에 덜어주어야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이런 장애인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누리는 것은 소비자로서의 삶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1급 중증장애인에게 한달에 몇 억씩 준다고 한들 장애인의 권리보장은 이뤄지지 않는다. 툭 까놓고 말해서 내가 오줌이 마려울 때 화장실에 가고, 졸릴 때 이불깔고 잠을 자고, 심심할때 책꽂이에 꽂혀있는 소설책을 읽고, 답답할 때 외출해서 바람을 쐬는, 이 모든 행위들이 내가 소비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가? 나는 화장실 한 번 갈때마다 누군가에게 100원씩내고 가며, 잠을 잘때 1시간에 만원씩 지불하고 뭐 그러고 사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장애인에게도 당연히 주어져야 할 이런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은 절대 돈 얼마로 환산되어 이해되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는 '작금의 장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활동보조인지원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장애인의 삶에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소모성 논쟁'이라고 일축하는데, 실상은 젼혀 그렇지 않다. 내가 주말에 활동보조를 하는 한 장애인은 정부가 이번에 통과시킨 방식으로 활동보조제도가 시행되면(자부담을 15%로 인상시킨 안)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을 안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혼자서 거동과 신체 유지등이 가능한 그 분이야 크게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분과 같이 사는 형(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혼자 기어서 이동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은 내가 볼땐 그냥 다시 시설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정부가 중증장애인들에게 1인당 80여만원의 급여를 직접 지원하면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절약한 급여로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여지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한다. 내가 볼 땐 여기서 딱 한 단어, 즉 '주체적으로'만 빼면 맞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돈으로 지급된 상황에선 장애인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확실히 줄어든다. 가족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지원을 무슨 기초생활보장급여처럼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직접지불방식이 실시되지 않고 있는 지금도 이런 비슷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문제점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필자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백지상태라는 것이다. 내가 장애해방학교에서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할 때 가장 눈이 번쩍 했던 내용이 이건데, 사실상 활동보조서비스를 직접지불로 해버리게되면 활동보조인의 노동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은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와 개인적인 송사로 일어난 문제 즉 민사상의 사건이 되어버린다. 즉 일하다 다쳐도 산재적용을 받는게 아니라 개인적인 계약관계를 맺은 장애인당사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되는 것이고, 임금을 못받는 상황이 벌어지면 사기죄로 고소를 해야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들은 가정이긴 하지만, 직접지불방식에 따른 이용자의 활동보조인 직접고용(=개별고용)이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활동보조인은 사실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게 장애인에게는 좋은 일일까?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해 주는 활동보조인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면 장애인의 일상생활도 불안정해 질 수밖에 없다.

 

이건 정말, 장애인에게 소득보장을 얼마를 더 해주고,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얼마를 더 주고 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질과 차원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활동보조서비스는 너무너무나 중요하다. "중요한 건 활동보조인 지원이 아니라 장애인이 소비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라는 필자의 말은, 아 정말 못본걸로 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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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발췌독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 우리시대의 새로운 지적 대안담론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 우리시대의 새로운 지적 대안담론
자크 랑시에르
길, 2008

 

 

 

 

- 「옮긴이의 덧말」中 에서

 

가령 우리는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전체는 몫 없는 자들과의 적대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요청한다. “너희들이 전체에 기여하는, 너희들만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보여달라”고. 이에 대해 몫 없는 자들은 자신의 집단의 특수성이나 이해관계를 주장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특수성이 거부되든, 관용되든 그것은 이미 전체와 맺는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몫 없는 자들은 “우리는 공통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는 특정한 능력(competences)가 아니라, 말하는 존재들의 평등을 참조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몫 없는 자들은 그들의 집단을 공동체 전체와 같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체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면서, 고유하지 않은 고유함을 내세우면서 데모스는 그들을 (방)해했던 것들, 즉 출생과 부의 질서를 공동체의 부분들에 대한 셈 바깥에 둔다. 아르케의 논리와 단절하는 한, 공동체의 셈에서 기존의 공동체를 분리해내는 한, 그러한 틈이 존재하는 한, 정치가 있다. (50-1pp)

 

 

-「정치의 종언 혹은 현실주의 유토피아」 中 에서

 

좋은 참주의 모델은 페이시스트라토스다. 『아테네의 정체(政體)』에서 언급되는 그의 통치수단들은 농촌의 좋은 민주정의 규칙들과 혼동하리만큼 유사하다. 그는 빈자들이 땅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지갑에서 손수 돈을 꺼내 그들에게 주었다. 이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었는데, 하나는 빈자들이 도시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시골에 흩어져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빈자들이 자기 수준에 맞는 부를 가지고 자신들의 사적인 사무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함으로써, 그들이 공통된 것들에 종사할 욕망이나 여가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78p)

 

 

사실 평등의 고유함은 자연스럽다고 가정된 질서들을 결합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흐트러뜨리고, 해체하여, 결국 그것을 분할의 논쟁적 형상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 근대 민주주의 시대에 흐트러뜨리는 분할은 한 가지 특권적인 형태를 취했던바, 그 이름은 이제 완전히 신망을 잃기는 했지만, 우리가 현재 발 딛고 있는 곳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과 직면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특권적인 형태를 계급투쟁이라고 불렀다. (...)

투쟁하는 계급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먼저 더는 열등한 서열의 구성원이 아님을 뜻할 뿐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을 명명하는 것은 논쟁적 분할의 한 장소를 구성함으로써 모든 불평등한 배정의 면소(non-lieu)동물 종(種)들의 양상대로 사회적 종들을 고착시키는 모든 방식에 대한 면소를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계급투쟁 선언은 우선 두 가지 분리된,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대중들의 삶의 양식들 깊숙한 곳에 있는 비밀을 찾거나 노동자층을 의고적이거나 근대적인, 숙련3되었거나 비숙련된 것으로 구분하려는 동물학자들을 당황시키기에 적합한 다음의 두 분리된 형상들로 표현되었다. 첫째 형상의 정식은 계급이 없다는 단언을 투쟁의 깃발로 삼는 노동자 팸플릿의 ‘순진함’ 속에 나타나고, 둘째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의 비-계급으로, 곧 모든 계급의 소멸로 포고하는 이론가의 정교화 속에 나타난다.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들의 힘겨운 마주침은 몹시 위태롭게 다음의역설적인 질문을 다루었다. 이 탈계급화 행위의 작인(作因)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계급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면 그것을 어떻게 이름 지을 것인가? 따라서 이 이름은 모순적인 두 가지 것을 의미했다. 한편으로, 그것은 계급들의 현실태적 소멸, 또한 노동자 계급의 그 자체에 의한 소멸, 다시 말해 조합의 동물성과 무리의 동물성으로부터 동시에 노동자 계급을 뽑아내는 자기에 대한 노동을 가리켰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탈계급화를 작동시키는 계급을 그것의 실사성(substantivité)속에 고정시켰고, 그리하여 사회적 기능들을 잘 배정할 수 있다는 환상, 결국 잘 정렬된 일자에 대한 환상의 새로운 형상을 되살렸다. (95-7pp)

 

 

목적의 실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진보주의에 뒤이어 순수한 진보주의(시간의 힘들에 대한 순수한 믿음)가 온 것과 마찬가지로, 잊혀진 마르크스주의에 뒤이어 온 것은 퇴화한 헤겔주의다. 그것은 곧 소비적이고 합의적인 미디어정치의 바탕 위에서 전문가들이 통치함으로써 이성을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중우정치는 전문가들의 통치 형태로 실현되며, 그것만이 증식된 향락의 온상들의 조화롭지 않은 조화를 관리하기에 적합하다. 포스트민주주의는 아마도 중우정치와 그것의 반대로 가정되는 지식정치(épistémocratie) ― 크고 작은 향락의 무한한 온상들에 대해 정확히 계산된 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교육 제도의 규칙들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가장 지적인 자들의 통치 ― 의 정확한 일치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저 향락을 경영하는 자들의 한계는 양화하기 더 어렵고, 지수화하기 더 어려운 연결된 두세 가지 감정들(낙심, 공포, 그리고 증오)을 그들이 쉽사리 경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무능함은 좋은 왕, 민주주의적 왕이라는 의고적인 형상의 개입을 불러낸다. 그 왕은 두 몸짓을 하나로 실행하는 데 능숙할 뿐 아니라, 무리의 정념들을 진정시키고, 데모스를 이원성의 체류로 보존하는 데 필요한 정의로운 일자의 특질을 표시하는 데 능숙하다. (98p)

 

 

- 「정치, 동일시, 주체화」中에서

 

주체화 과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soi)가 아니라, 자기 사이의 관계인 하나(un)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겉보기에 정체성을 띤 이름을 그 본보기로 제시할 수 있다. 근대 프랑스에서 그 말이 처음 쓰인 사례 중 하나는 1832년 오귀스트 블랑키(Auguste Blanqui)에 대해 행해진 소송이다. 검사장이 그의 직업을 묻자, 블랑키는 “프롤레타리아”라고 대답한다. 검사장은 “그것은 직업이 아니잖아”라고 반박한다. 그러자 블랑키는 그에 이어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 인민 대다수의 직업이다”라고 응수한다. 치안의 관점에서 보면, 검사장이 옳았다. 프롤레타리아는 직업이 아니며, 블랑키도 우리가 흔히 노동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블랑키가 옳았다. 프롤레타리아는 사회학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한 사회 집단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셈-바깥을 가리키는 이름, 내쫓긴 자(outcast)의 이름인 것이다. 라틴어로, proletarii는 단지 다음의 것을 의미한다. 번식하는 자들, 이름 없이 살고, 그 이름을 남기지도 않으며, 도시국가의 상징적 구성 속에서 하나의 부분으로 셈해지지 않는, 그저 살고 번식하는 자들.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아무나의 이름, 내쫓긴 자들의 이름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어울리는 고유한 이름이었다. 우리는 그 단어를 천민들(parias)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계급 질서에 속하지 않는 자들, 따라서 이 질서의 잠재적인 소멸인 자들(마르크스가 말했던 모든 계급의 소멸인 계급)로 이해해야 한다. 주체화 과정은 이처럼 탈정체화 혹은 탈계급화 과정이다. (141-2pp)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또한 타자론, 곧 타자성에 대한 세 가지 규정에 따른 타자의 논리이기도 하다. 첫째,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결코 하나의 정체성에 대한 단순한 긍정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동시에 치안 논리에 따라서 고착된, 타자가 부과하는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실 치안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리와 그들의 일을 배정하는 것을 표시하는 ‘정확한’ 이름들을 원한다. 정치는 하나의 균열을 절합하고 하나의 피해를 현시하는 ‘고유하지 않은/적합하지 않은’ 이름들, 곧 잘못된 명칭들(misnomers)의 문제다. 둘째,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는 하나의 증명인바, 이 증명은 언제나 그것의 전달 대상인 하나의 타자를 전제한다. 비록 이 타자가 그 정명 결과를 거부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비록 그것은 하버마스식의 대화 혹은 합의 추구의 장소가 아닐지라도, 하나의 공통 장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합의는 없으며, 손해 없는 소통이라는 것도 없고, (방)해의 해결이라는 것도 없다. (방)해를 다루고, 평등을 증명하기 위한논쟁적인 공통 장소는 있다. 셋째, 주체화의 논리는 언제나 불가능한 동일시를 내포한다. (143p)

 

 

- 「타자의 입장」 中 에서

 

역사가들의 작업은 최근 우리에게 알제리 전쟁 말기 대규모 시위의 출발점이 1961년 10월 17일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날 알제리인들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호소에 따라 파리에서 시위를 벌였다가 야만적인 방식으로 진압되었다. 프랑스는 진압 희생자 수에 대해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날은 사실 그것이 현시되고 은폐된 이중적 측면과 함께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 순간에 나의 것과 타자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아포리아들은 타자성을 포함하는 관계의 정치적 주체화로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이날의 효과에서 중요했던 것은 억압의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문제들이 문제가 되는 세 관계 ― 알제리 투사들과 프랑스 국가의 관계, 프랑스 국가와 우리의 관계, 알제리 투사들과 우리의 관계 ― 와 뒤얽히게 되었던 방식이다. 프랑스 국가의 관점에서, 이 시위는 투쟁하는 알제리인들이 프랑스의 공적 공간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자들로서, 모종의 방식으로 프랑스 시민들로서 출현했던 것이다. 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의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몽둥이질과 야만적인 수사형(水死形)이었다. 한마디로 치안은 공적 공간을 청소했고, 정보에 대해 완전히 입을 닫음으로써 그 작전의 가시성 자체를 제거했다. 우리에게 그것은 무언가가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으로 일어났으며, 우리로부터 이중으로 제거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때는 실종자 수를 산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이 이중의 사라짐이 뜻했던 것을 어떤 의미에서 반대로(a contrario),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서문에 사르트르가 적었던 한 문자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오늘 고문의 눈부신 태양이 절정에 이르러 온 나라를 비춘다.” 하지만 사실 이 눈부신 태양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두드려 맞고 수장당한 몸들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우리는 최근 보스니아, 르완다 혹은 그 밖의 곳에서 온 이미지들의 진열 앞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덕적 분개를 일으키기에 가장 알맞게 만들어진 이 전시, 타자에게 도래한 것에 대한 고통, 고문하는 자에 맞선 공허한 증오. 이는 더 비밀스럽게 자주 이 타자으 l입장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만들고, 때때로 우리에게 고통 받는 존재를 조심성 없이 환기하는 자들에 대한 짜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공포와 연민은 정치적 정서들이 아니다. (...)

알제리 전쟁은 공식적으로 전쟁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대규모 치안 작전이었다. 따라서 정치적 답변은 해방 전쟁의 역사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전쟁의 이 치안적 본성에 대한 답변이었다. (221-3pp)

 

 

- 「민주주의의 용법들」 中 에서

 

1830년 프랑스 혁명 직후, 출판물과 팸플릿, 노동자 신문들이 만개했던바, 거기에서 제기된 공통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프랑스인들은 과연 평등한가 평등하지 않은가? 흔히 파업 운동이나 정치적 갈등과 함께 가던 이 텍스트들은 다소 어떤 삼단논법의 전개로 표현되었다.

삼단논법의 대전제는 간단하다. 1830년에 막 공포된 헌장 전문에는 모든 프랑스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적혀 있다. 이 평등이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된다.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즉각적인 경험에서 끌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1833년에 파리의 재단사들은 양복점 주인들이 급료, 노동 시간, 일부 노동 조건들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업을 시작했다. 따라서 삼단논법의 소전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그렇지만 양복점 주인 협회장인 슈바르츠씨는 우리의 근거들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그에게 급료를 재검토해야 할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근거들을 그는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검증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그와 평등한 자들로 대하고 있지 않다. 그는 헌장에 기입된 평등에 위배된다.

동일한 삼단논법의 다른 형태도 있다. 바로 그 슈바르츠씨는 그의 동료들과 모여서, 노동자들의 요구에 저항하기로 뜻을 모은다. 그래서 그는 사장들 간의 협회를 조직한다. 그렇지만 법에는 주인들 간의 협회는 노동자들의 협회와 같은 이유로 처벌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만 기소되었다. 거기에서 또다시 평등은 위배된다. (...)

삼단논법은 간단하다. 대전제에는 법이 말하는 바가 있다. 소전제에는 다른 관점에서 말해진 것과 행해진 것, 즉 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법-정치적 주장에 위배되는 사실이나 문장이 있다. 그렇지만 대전제와 소전제 간의 모순을 사고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다. 그것은 단순히 법-정치적 문장이 환영에 지나지 않으며, 그 문장이 주장하는 평등은 불평등의 현실을 가리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을 뿐인 외양이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탈신비화의 양식(良識)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추론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결코 노동자들의추론이 선택한 길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추론이 끌어낸 결론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대전제와 소전제를 일치시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대전제나 소전제를 바꿔야 한다. 만일 페르실 씨나 슈바르츠 씨가 말하는 것을 말할 근거가 있고, 또 그들이 하는 것을 행할 근거가 있다면, 헌장 전문을 삭제해야 한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반대로 만일 대전제, 즉 헌장 전문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페르실 씨나 슈바르츠 씨가 다르게 말하거나 행동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추론하는 것이 갖는 이점은 그것이 문장을 행적과 대립시키지 않고, 형식을 현실과 대립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문장과 문장을 대립시키고, 행적을 행적과 대립시킨다. 보통 틈 혹은 비-장소로 사고되는 것으로부터, 그것은 정확히 이중적인 의미―근거 체계 그리고 논쟁 공간―에서 하나의 장소를 만들어낸다. 평등을 말하는 문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하나의 문장은 우리가 그것에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은 우선 평등이 그 자체를 표방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디엔가 평등이 있다. 이것은 말해졌고, 씌어졌다. 따라서 이것은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실천은 바로 거기에 바탕을 둘 수 있으며, 이 평등을 입증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을 수 있다. (109-112pp)

 

 

아렌트는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첫 번째 권리로 설정한다. 우리는 거기에 다음의 것을 덧붙일 수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강제를 부과할 수 있는 자가 권리를 가진다고 말이다. 타인이 매우 자주 그것을 인정하기를 회피한다는 사실은 전혀 근본적으로 문제를 바꾸지 않는다. 원리상 타인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공통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권리를 인정하도록 만들 수 있는 토대마저 잃어버린다. 반대로 마치 타인이 언제나 자신의 담론을 알아들을 수 있는 듯 행동하는 자는 비단 담론의 구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115p)

 

 

민주주의적 학교는 사회 비판의 이중의 놀이에 따라 끊임없이 기대에 어긋난 약속, 끊임없이 기대를 저버린 약속의 장소로 생각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실패를 비판하고 이 실패에 대한 교육학적·심리학적·사회학적 치료법들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곧바로 증명은 둘로 나뉜다.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또한 그리고 특히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가 그것이 주장하는 평등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면, 이는 그것이 은밀하게 숨기는 불평등에 완전히 맞춰진 것이며, 불평등이야말로 그것의 근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교에 대한 부르디외와 파세롱의 작업들은 사회학자와 사회 비판가는 매번 이기고 민주주의는 매번 지는 이러한 논리를 예시한다. 그들이 사실 보이고자 하는 것은, 만일 학교가 그 평등의 약속들을 실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수단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 방식 자체 때문에, 그것을 정초하는 상징적 논리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상속자들』같은 책은 내가 의혹의 삼단논법이라고 부를 것을 완벽하게 실행한다. 그것은 사실 대전제(모두를 위한 평등한 학교)와 소전제(서민 계층 아이들의 학업 실패)를 대립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고발을 끌어내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교가 정확히 대문자 평등을 믿게 만들면서 불평등을 만들고 있음을 보이려고 한다. 빈자들의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오로지 재능에 따라서만, 곧 각자의 지능에 따라서만 학생들에게 점수를 주고, 그들을 분류하며, 선별한다고 믿게 만들면서, 학교는 빈자들의 아이들로 하여금 만일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재능이 없거나, 그들이 지적이지 않기 때문이므로, 따라서 다른 곳에 가는 게 낫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제한다. 학교는 이렇듯 평등에 대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 근본적인 상징 폭력의 장소로 나타난다. 성공은 오로지 학생의 재능과 관련 된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 학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는 모든 것, 학생의 인격과 독창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특권화 한다. 그러면서 학교는 존재 방식 ― 사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상속자들의 문화 수용 방식과 삶의 방식 ― 을 선별한다. 따라서 학교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숨겨진 본질에 대해서는 충실한 것으로 드러난다. 학교에 그 이름을 부여했던 그리스어 스콜레는 먼저 여가를 가진 자들, 여가를 가진 자들인 한에서 평등한 자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이 사회적 특권을 공부라는 훌륭한 쾌락에 할애하는 사람들의 조건을 뜻한다.

따라서 학교 형태는 완벽한 고리가 될 것이다. 사회-경제적 자본을 문화 자본으로 전환하는 고리, 그리고 이 전환을 현실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이 전환 수단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를 보이지 않는 만큼 효과적으로 분리하는 고리.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형태는 더 넓게는 평등에 대한 화영과 근본적인 불평등 ― 스콜레를 가진 인간들과 필요에 매달린 인간들 사이의 불평등, 상징적인 것의 사치를 지불할 수 있는 자와 할 수 없는 자의 불평등 ― 에 대한 몰이해를 동시에 유지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빈자들이 사치스러운 투자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하는 기만적 체제일 것이다. 이런 분석은 이처럼 극단적으로 민주주의적 인간을 분할을 은폐하면서 영속하게 하는 형태들에 속아 넘어간 인간으로 만드는 의혹의 사유를 품고 있다.

사실 의혹의 사유의 이런 허무주의적 해석에 대해 ‘불평등의 축소’라고 하는 실증적 해석이 응답한다. 부르디외와 파세롱의 비판에서 교육자들과 개혁 정치가들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 관념을 채택했다. 암묵적인 불평등 요인들을 명시할 필요, 대규모 학생들을 일률적으로 교육하는 형식주의에 맞서 싸워야 할 필요, 사회적인 것의 무게, 곧 빈곤 계급에 고유한 아비투스(habitus), 사회화 방식을 고려할 필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이 정책들의 결과에 더는 발론이 제기되지 않았으며, 결국 불평등을 명시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불평등을 견고하게 만들어버린 꼴이 되었다. 한편으로, 사회문화적 차이의 해명은 그 차이를 운명으로 전환하고, 학교 제도를 보조 제도의 의미로 바꾸곤 했다. 특히 그것은 이민자 자녀들을 학업 실패의 위험이 없는 하급 직업 전문 과정 쪽으로 진로 지도하고 그에 맞게 학급을 다시 편성하는 과 함께 간다. 다른 한편, ‘암묵적인’ 기준들의 색출은 가장 명시적인 기준들의 무게를 더했다. 즉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에게 내면화된 미친 경쟁, 그것은 좋은 초등학교 가도록 만들고, 또다시 좋은 중학교에 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마침내 수도 파리의 좋은 구역에 위치한 좋은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 있는 좋은 고등학교의 좋은 학급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따라서 학교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형태로 보는 허무주의적 시각 그리고 학교를 불평등 축소하는 도구로 보는 진보주의적 시각은 그것들의 원리에서난 효과에서나 서로 만난다. 둘 모두 불평등에서 출발해서, 불평등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필요에 맞춰진 학교를 요구하면사, 위 두 시각은 사회주의적 탈신비화에 대한 민주주의의 반혁명적 비판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투박한 전제, 즉 사회정치적 체제를 구성하는 형태들 사이의 불일치는 악 혹은 근본적인 속임수의 징표라는 관념을 재확인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이 근대 경제·국가 체계에 대한 민주주의의 표시다. 그것의 형태들의 이질발생성, 특히 교육 논리와 생산 논리의 수렴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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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싼 파디, <진흙으로 만든 궁전 - 민중과 함께하는 건축> 中

 

 

하느님은 식물과 동물세계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에는 아스팔트와 철, 알루미늄, 콘크리트밖에 없다. 우주의 방사선을 고려할 때 우리의 주위를 둘러쌀 수 있는 가장 좋은 물질은 나무이다. 가장 나쁜 것은 이로운 방사선을 차단하는 콘크리트이다. 물은 달에서 오는 우주선(宇宙線)에 영향을 받는데, 우리의 몸은 거의 물로 되어있으므로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이 없다. 현대인은 이런 우주적 의식을 잃어버렸다. 프랑스의 성당은 하늘의 처녀좌가 지구에 반영된 표시를 나타내는 위치에 건립되었다. 어째서인가? 우리는 하나의 체계의 부분이다. 만일 내가 자신을 그 체계 속에 통합시키면 그 체계 속의 모든 요소들이 나를 도울 것이다. 내가 손가락을 베이면 내 몸의 모든 요소들이 그것을 치유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하늘을 반영하는 사원건축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의 각도가 달라지면 그들은 사원을 철거하고 새로운 치수와 방위에 따라 다시 지었다!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참고로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현대과학, 물리학의 발견들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조차도 고려에 넣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사막에 짓는 '현대'식 가옥들에 커다한 창문을 내어 그 창문 하나마다 한 시간에 수천 킬로칼로리의 열량이 들어오게 한다. 거기에는 많은 냉방장치와 많은 현금이 필요한데 현금이 다 떨어지면 그 사람들은 자신과 그 집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은 단지 현대적이 되기 위해서 코를 입 위에 두었다가 목 뒤에 두었다가 하면서 얼굴의 설계를 바꾸지는 않았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는 천사들에게 아담에게 절을 하라고 하였다. 모두들 절을 하였는데 하느님이 콘크리트로 인간을 만들기를 원했던 사탄만은 절을 하지 않았다!

 

 

 

- <녹색평론선집1>의 230-236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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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자작시

아스팔트

 

 

끝없이 펼쳐지는 도시의 청사진
그 위를 내달리는
차갑고 단단한 아스팔트 덩이들이여.

 

수만년전 벌어진 죽음의 증거물들이
오늘날 생명의 숨통을 조여온다.

 

하천의 물줄기도
풀 한포기, 물고기 한마리 만나지 못하고
오직 죽음의 증거물일 뿐인
콘크리트 덩이만을
스치고 지나갈 뿐.

 

오직, 죽음의 증거물 위에서만
발딛고 선 우리는
대체 무엇의 증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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