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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5 | 서울시-산하기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 & 대우센터 투쟁
게다가 공공부문에서도 그 차이는 제도적으로 벌어지는 데,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06.8.9)에 따르면 직접고용의 경우 청소, 경비 등의 '단순업무'에 대해서 중기협이 발표하는 '보통인부노임단가'를 기준임금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접고용 용역의 경우에는 낙찰률을 87.7%까지 하락시키는 것을 인정하고 있죠. 이것은 임금차이로 직결됩니다.결국 같은 업무라도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제도적으로 12.3%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문제는 더 있습니다. 임금은 12.3%가 삭감되지만 용역 사업자가 차지할 이윤+일반관리비가 15% 가량 필요하기 때문에 소모품 사용과 인원을 줄이는 방식이 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부실한 노동조건과 과도한 노동강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히 공공부문에서도 사용자들은 간접고용을 선호하죠, 사용자 책임도 면하죠, 돈도 조금 줘도 되죠, 언제든지 업체하고 민법상 계약해지만 하면 자를 수 있죠.
한편,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은 그 외에도, 상시업무이지만 기간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sic!) 사유로 "⑤ 고령자고용촉진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한 고령자를 사용하는 경우, ⑥ 정부의 복지,실업대책 등에 의한 일자리 제공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등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일자리는 무한정의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 방식의 '용역' 고용이 청소하시는 노동자 당사자에게는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왜 좋은 일하자고 일자리 만든다면서 좋은 일자리 안 만들고 비정규직, 그것도 용역만 만드냐는 겁니다. 그것도 학부모(그러나 빈곤한)일 것이 뻔한 중고령 여성 노동자를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으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좋은 일자리 만들면 더 좋은 일 하는 것같고 기분도 좋을 텐데 말이죠. 흠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이라 해도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서비스, 사회복지의 확충을 이들 서비스의 사유화를 통해서 민간기업을 육성한다는 구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공공서비스라면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하면 될 것이고, 만약 그것이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의 '운영구조', '지배구조'를 지역의 노동자 민중, 수급자 빈곤층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방하면 될 문제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니 이런 식으로 사적 자본이 '투자'할 공간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회운동이 개입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서비스 확충이 가능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김대중-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들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와 깊이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에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확충하고, 여성인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시도들과도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은 제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더 잘 아실 것같으니 생략하죠. 다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식으로 아무리 '사회'라는 말을 수백번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여는 맥락일 뿐이라는 겁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간병, 보육 등 이런 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오래전부터 '사회공헌'을 빙자해서 해오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씨를 뿌렸으니 이제 수확하려고 하겠죠. 삼성방식으로 말이죠.
관련해서는 아래 글이 참고가 됩니다.
[월간 사회운동 2006년-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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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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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신씨의 글이 '청소를 꼭 아이들이 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주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용역'이라는 형태를 자연스런 대안으로 제출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점에서 겨울철쭉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그런데 용역사용에서 시작해 사회적 일자리 까지 이어지는 논의과정에서 몇가지 건너뛴 쟁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학교에서의 화장실 청소는 가정에서의 재생산노동-가사노동과 같은 것일텐데, 이걸 사회적인 노동으로 '외부화'시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듭니다. 가사노동의 경우 가급적 감축하고 꼭 필요한 것은 나눠서 하는게 나름의 대안일텐데, 사적영역인 가족과 다르게 공적영역인 학교는 이런 접근이 불가능한 것일지 고민이 됩니다. 이에 대해 현재는 '청소가 과연 교육적 효과가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은데, 사실 '교육적 효과'라는게 과연 뭘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과 연결되는 것이겠죠.
다음으로 사회적 일자리와 연관되어 고민되는 부분은, 사회적 일자리, 자활사업이 이래저래 비판할 부분이 많지만, 어쨋거나 일자리 정책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사회적 기업법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는 단계입니다. 그 확대, 제도화의 징표가 어쩌면 자활노조 같은 자기조직화 흐름일텐데, 사회적 일자리 하지말고 공공부문 정규일자리로 해라, 혹은 이미 시장에 인력풀 충분히 형성되었는데, 제대로 상품대접이라도 해라, 이와 같은 주장이(개인적으로는 물론 정답이고 이런 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일자리-자활사업 쪽과 어떻게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사실 좀 무책임하게 얘기하면 자활사업, 사회적 일자리 원칙적으로 비판하는 저 같은 사람이야 별로 고민 안해도 되는 문제이지만, 공공연맹의 경우 긴급하게 고민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적인 쟁점인 듯합니다(최근 사회적 기업법 제정관련 이미 보육노조, 의료노조와 자활노조 간에 쟁점이 형성된 듯 합니다만..). 이에 대한 답이 없이(즉 이미 존재하는 자활사업이라는 실체에 대한 입장 없이) 노동자성이나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성도 가지지 못하는 노동자 위계구조 하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다 할 수 있을 자활사업 참여자들에 비해)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노동자들의 이기주의(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쓰는 표현입니다)처럼 보일 수 있을 듯합니다.
사족처럼 달고 싶은 얘기는..평소에 가지고 있던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자 의문인데, 첫번째에서 했던 얘기, 재생산 노동을 어떻게 접근할껏인가에서 저는 가급적 감축하고 자기 재생산 자기가 알아서 하는 사회가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서 시장화되는 부분에서는 노동조합 등을 통해 자기조직화, 권리보장은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노동조합들, 총연맹이나 연맹을 중심으로 산하노조들이 모여있는 건물들에서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 고용하는 거 참 (게콘식 표현으로)'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여성노동자 분들 조건이 겨울철쭉 님께서 표현하신 '왜 용역인가'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청소직 같은 하인노동이 자꾸 확대되는 것이나, 소위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일자리 만든다는 명분하에 그걸 더욱 부채질 하는거나 문제 있다는거 다 동의하실 꺼 같습니다. 이런 문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아래서 서비스노동이 확대된다.. 뭐 이런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그 경제적 기반하에서 소비 자체가 양극화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텐데.. 너무 나간 얘긴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에서 하는 방식은 이런 문제들과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지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좀 오버일까요?
- 제집은 없이 여기저기 남의집 마실만 종종 다니는 사람인데, 지나다 좀 끼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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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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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재생산 노동을 외부화하는 것이 맞냐는 쟁점은 글쎄요, 저도 잘 모르는 부분입니다. 다만 ‘외부화’라는 것이 두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시장화이고 또 하나는 사회화일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화와 사회화는 사실상 구분되기 힘들기 때문에 다만 내포하는 의미가 양가적이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러한 재생산 노동이 ‘사적영역’에 맡겨질 경우에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대부분 여성이 떠맡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의 맥락을 ‘시장화’가 아닌 맥락에서 실현하고자 한다면 공동체가 함께 부담할 수는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총 건물의 청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일정한 조건이 되어야 가능할 것인데, 예를 들어 간병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환자(및 가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동현장에서 배려가 없다면 불가피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라면 공동체가 부담하라는 것도 별로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또 문제는 이미 현실에 노동시장이 형성된 경우는 이렇게만 말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건물을 통째로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청소할 경우에 기존에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느냐 문젭니다.(실제로는 우리 연맹 같은 경우에는 사무실과 우리가 사용하는 층의 로비 등 공용공간은 활동가들이 매주 청소하고, 건물의 다른 부분이나 화장실만 청소 노동자분이 하십니다.) 그런 경우에는 기존의 노동자가 계속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그것도 좋은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건 현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서비스 영역, 사회적 서비스가 확충되어야하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원칙이 아닐까 합니다. 간병, 보육 등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다면 그/녀들의 노동조건이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물론 이러한 재생산노동의 영역이나 보살핌노동도 장기적으로는 ‘공동체’가 책임져야하겠지만, 이것은 연합적 생산양식을 실현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변혁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이 노동력을 ‘상품대접이라도 제대로 해라’라는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판이 되려면 노동력을 상품으로 더 대접받게 하는 운동과, 노동력을 상품이 아니게 하려는 운동을 대별해야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쟁점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노동력 상품을 철페하는 방향이라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운동과 분리될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운동의 훨씬 정치적인 방향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요?
한편,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의 문제와 관련해서 자활기관들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또 다른 운동과는 어떻게 만날 것이냐는 문제. 여기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를 수 있고, 토론이 필요하고 어쩌면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다 좋으니 다 같이 열심히 하자”라고 얘기하기에는 쟁점이 크고 많다는 생각은 듭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 분야에서 결국 일하게 될 노동자(대부분은 저임금에 비정규직이 될 터인데)들의 관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 분들이 스스로 노동자로서 혹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자각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자활사업이든 뭐든 진행되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만 시혜적인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빈곤층을 운동주체로 조직하는 방식으로, 말 그대로 하나의 ‘운동’이 출현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생산-노동의 측면 모두에서 참여자-빈곤층이 주체가 되는 방식이어야할 것이라는 것이고, 만약 이 분야의 일자리가 저임금의 불안정노동으로 강요된다면 그것에 대한 투쟁을 함께 조직하는 방식으로 자활운동도 진행되어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지역에서 생산을 위한 공동체이자 사회운동의 한 기관이 될 수가 있겠죠. 그런데 그런 노력을 누락한 채로 사회적 일자리 확충이나 사회적 기업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기존에 참여자-빈곤층을 대상화한 방식을 더욱 심화시킬 뿐 아니라, 이제는 사회서비스 영역을 ‘시장화’의 영역으로 완전히 열어놓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운동사회 안에서도 제기되는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관련된 쟁점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 사족 :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노동자의 ‘이기주의’는 아닐 겁니다. 문제는 자활참여자들도 그것을 보장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시민적 권리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로서 노동권(법적인 노동3권을 포함하지만 그것을 초과하는)이 보장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시민권은 노동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노동권은 시민권의 핵심적인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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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 노동문제, 노동력 상품화 관련된 노동자 운동의 투쟁에 대해 겨울철쭉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전혀 이견 없습니다. 특히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라는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화라는 것과 구분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력을 제대로 상품대접 받는 투쟁에서 말하려했던 것도, 이것이 상품화를 폐절하는 운동과 던혀 다른 경로로 형성되는 운동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점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그를 전제로 몇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그런 노동들이 장기적으로는(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든 그를 넘어서는 사회에서는 마찬가지 일텐데), 시장적 해법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운동주체 차원에서 각인시키고 시장에서의 노동권을 확보하는 투쟁과 병행하여 계속 제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같은 문제의식이나 실천이 그동안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게 조직되는 방식을 보자면, 제가 시각이 좀 좁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회운동단체들은 (위의 최예륜씨 글처럼)재생산 노동의 사회적-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하지만, '좋은 얘기, 그러나 어쩌자고'라는 식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미 시장에 진출해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동권 확보를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운동의 대응이 중심적인 듯합니다(이런 면에서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또 다른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어찌보면 일종의 역할분담처럼 보이고, 좀 씨니컬 하게 얘기하면 사회운동단체들의 실천적 무능력, 노동자운동의 실용주의로 보입니다.
물론 현재 사회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주장하는 '국가책임'이라는 것도 사회의 개조나 공동체의 전화 같은 문제의식에 비춰보면 한참을 미달하는 것이고, 최근 사회공공성 논의 등과 연결시키면 쟁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하간 운동이 조직되는 구체적인 과정 안에 저런 기본적인 문제의식들이 계속 제기될 수 있도록 주장을 구성하고, 운동의 기제와 구조를 확보하는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자활사업 관련해서는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합니다. 겨울철쭉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회적 일자리 같은 웃긴 일자리가 ‘지양’되어야 하며, 이미 여기에 진출해있는 혹은 진출할 빈곤층 참여자들이 노동자로 조직되고 노동권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투쟁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적 기업법 관련 논의를 둘러싼 노동자운동 내의 쟁점 중 하나가 사회적 일자리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하향평준화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또한 타당한 분석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응인데, 이에 대해 보육노조, 간병인노조(의료노조)에서 (공식적인 입장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지만), 영역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활사업이 애초에 노동능력이 매우 취약한 극빈층(수급자)이 대상이었던 만큼 그 취지에 맞게 사회적 기업법이 적용될 일자리를 한정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알다시피 간병이나 보육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닌지라 사회적 일자리 대상 사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활사업 내부에도 이미 그런 노동들이 상당수 자리 잡혀 가고 있습니다. D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주장대로라면 자활사업의 경우 ‘취로사업’이라 불릴 만한, 사회적 일자리 내에서도 보다 밑바닥에 있는 일자리만이 해당이 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주장도 아주 설득력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자활사업(을 포함 워크페어 경향이 강화되는 빈곤층 지원제도)문제점이나 자활참여자들의 조건에 대한 비판이나 공동의 고민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앞에 쓴 글에서 (적합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기주의’라는 표현을 쓰며 노동조합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얘기한 것은, 그러한 전제가 없는 가운데서 나오는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겨울철쭉님 말씀대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라면 거기 있는 노동자들이 충분한 권리를 가지는 투쟁이 필요하며, 자활사업-사회적일자리 등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 참고로 제가 비판적으로 인용했던 사회적 일자리 관련 노동조합의 고민은 지난주 쯤 공공연맹에서 있었던 사회적 일자리 관련 워크샵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관련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고 자활노조 쪽은 논의 결합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들었습니다. 따라서 위에서도 얘기했듯 그날 논의 때 나왔던 발언들이 공공연맹이나 해당 노조의 공식적 입장은 아직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저는 그날 노동조합 참가자들의 고민 속에서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인 노동자들과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운동 내에서 어떤 직종에 대한 노동조합 간 이른바 ‘조직경쟁’이 많다는 얘기는 종종 들었는데, 이 문제는 그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워크샵 참가자 확인해보면 대충 누군지 알듯하여, 괜히 익명으로 썼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하간 그렇습니다.
* 사족처럼 또 하나 달고 싶은 얘기는, 노동조합에서 청소하는 노동자 고용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공공연맹의 경우 아주 일정 부분만 고용된 노동자가 담당한다 하셨는데, 이건 각 연맹이나 지역본부 마다 편차가 좀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미 형성된 노동시장과 결부시켜 말씀하시는 건 좀 지나치게 문제를 일반화 시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노총(운동조직)부터 나서서 그런 노동을 공동체 내부의 부담으로 전화시키자는 주장을 누군가 대놓고 한다면, 그것도 참 우스워 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는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셨듯이 근본적으로 사회의 전반적 개조라는 큰 틀에서 고민해 나갈 문제이만, 사회 개조에 이런 것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는 고민을 확대해 나가고 교육하는 차원에서라도 운동하는 공동체들이 이런 시도를 앞서서 하는 것은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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