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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비정규직을 왜 만들어야하죠?

체게바라님의 [학교 청소사업에 대한 또다른 견해] 에 관련된 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차원에서 학교 청소용역 관련 내용이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맥락을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런 맥락은 잘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군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예를 들어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한다면, 학교 단위로 지원해서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안되는 건가요? 아니면 더 좋은 방법은 (지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각 개별 학교장을 엉터리로 법적 사용자라고 우길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직접 고용이 되어야겠죠. 교무보조, 과학보조, 조리원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교육부/교육청 지침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학교장이 '법적인' 사용자로 되어 있는 바람에 제대로된 노동3권을 보장받고 있지도 못합니다. (교육부나 교육청은 절대로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우기고 있고, 노동위원회도 그렇게 인정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노조 만들면 뭐합니까, 실질적인 사용자들은 나몰라라하고 권한없고 힘없는 학교장 앞에 놓고 교섭하고 하소연해봤자 거든요.(교섭하러가면 학교장이 오히려 노조에 하소연합니다. 자기는 지침대로만 움직이고 권한이 없는데 왜 자기를 괴롭히냐는 거죠, 거참, 사용자의 하소연 듣는 황당한 상황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여기서 간접고용까지 가기 시작하면 그나마 실권없는 학교장마저 자기는 교섭상대가 아니라고 빼겠죠. 우리나라 노동법이 그들 사용자 모두를 노동자들의 교섭요구와 투쟁으로부터 보호해주거든요.

사회적 기업이라고 노동자의 요구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간접고용 구조 속에서 저임금을 강요하는 사용자로 노동자들은 사회적 기업을 직접 대면하게 될 겁니다. 이것을 자활참여자의 노동권을 박탈한 방식으로 막으려고 하거나 혹은 '선량한 의도'를 앞세워 억누르려고 하면 더 큰 모순이 폭발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회복지기관에서 벌어지는 투쟁들이 이런 식이죠.)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용역)

이런 말도 사실 좀 그렇지만,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차이는 큽니다. 최근 투쟁이 터진 대우센터빌딩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 용역제도라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건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올라온 이 블로그의 글 몇개를 참고하세요.)

2006.11.25 | 서울시-산하기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 & 대우센터 투쟁

게다가 공공부문에서도 그 차이는 제도적으로 벌어지는 데, 최근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06.8.9)에 따르면 직접고용의 경우 청소, 경비 등의 '단순업무'에 대해서 중기협이 발표하는 '보통인부노임단가'를 기준임금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접고용 용역의 경우에는 낙찰률을 87.7%까지 하락시키는 것을 인정하고 있죠. 이것은 임금차이로 직결됩니다.결국 같은 업무라도 공공부문에서 직접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임금차이는 제도적으로 12.3%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문제는 더 있습니다. 임금은 12.3%가 삭감되지만 용역 사업자가 차지할 이윤+일반관리비가 15% 가량 필요하기 때문에 소모품 사용과 인원을 줄이는 방식이 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부실한 노동조건과 과도한 노동강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당연히 공공부문에서도 사용자들은 간접고용을 선호하죠, 사용자 책임도 면하죠, 돈도 조금 줘도 되죠, 언제든지 업체하고 민법상 계약해지만 하면 자를 수 있죠.


한편, 정부의 "공공부문비정규직종합대책"은 그 외에도, 상시업무이지만 기간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sic!) 사유로 "⑤ 고령자고용촉진법 제2조 제1호의 규정에 의한 고령자를 사용하는 경우, ⑥ 정부의 복지,실업대책 등에 의한 일자리 제공으로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등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일자리는 무한정의 비정규직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적 일자리 방식의 '용역' 고용이 청소하시는 노동자 당사자에게는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왜 좋은 일하자고 일자리 만든다면서 좋은 일자리 안 만들고 비정규직, 그것도 용역만 만드냐는 겁니다. 그것도 학부모(그러나 빈곤한)일 것이 뻔한 중고령 여성 노동자를 최저임금 수준의 비정규직으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좋은 일자리 만들면 더 좋은 일 하는 것같고 기분도 좋을 텐데 말이죠. 흠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 기업이라 해도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적으로는 공공서비스, 사회복지의 확충을 이들 서비스의 사유화를 통해서 민간기업을 육성한다는 구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겠죠. 공공서비스라면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하면 될 것이고, 만약 그것이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문제라면 그것의 '운영구조', '지배구조'를 지역의 노동자 민중, 수급자 빈곤층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개방하면 될 문제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니 이런 식으로 사적 자본이 '투자'할 공간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회운동이 개입하는 방식의 사회복지 서비스 확충이 가능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건 김대중-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들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와 깊이 관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에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확충하고, 여성인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시도들과도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은 제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더 잘 아실 것같으니 생략하죠. 다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식으로 아무리 '사회'라는 말을 수백번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사적 자본의 투자공간을 여는 맥락일 뿐이라는 겁니다. 삼성 같은 기업이 간병, 보육 등 이런 분야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오래전부터 '사회공헌'을 빙자해서 해오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씨를 뿌렸으니 이제 수확하려고 하겠죠. 삼성방식으로 말이죠.

관련해서는 아래 글이 참고가 됩니다.
[월간 사회운동 2006년-9월호]

빈곤과 불안정 노동의 악순환 구조를 철폐하자

-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정책의 위험성


좋은 일자리 만들기

일자리 만들기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자리 만들어봤자, 이들 업종과 이 업종에 주로 종사하는 주로 저임금에, 주로 여성에, 주로 중고령인 노동자들의 처지는 항상 그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오히려 같은 일이라도 정규직으로, 제대로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공공부문에서부터 확인이 되어야 좋은 일자리가 민간부문에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학자들이 외국 사례를 들어 말하는 것처럼 공공부문이 '모범적 사용자good employer'가 되어야한다는 말입니다.

쓰다보니 좀 장황하게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보호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면 국가가 '괜찮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게 해야한다는 것이고, 사회운동적인 방식이 되려면 이러한 공공서비스 운영에 지역의 노동자-민중-빈곤층이 사회운동과 함께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요구해야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처음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청소 노동자들을 굳이 '용역'으로 할 이유가 전혀없습니다. 같은 돈 들여서 왜 '용역'으로 씁니까? 그런 용역 받아서 '사회적 기업'의 기반을 만들어봤자, 맨날 그런 일자리만 만들고 다닐 것같습니다.


** 글이 다소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쓰다보니 그냥 글이 나가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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