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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으로 남성들에게; 그녀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자.

내가 밑에 포스트 <여성단체 활동가와 나눈 대화> 에서 언급했던 가족 내  불평등 호칭 바꾸기 켐페인이 있습니다.


아래 <조선일보의 여성혐오>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한 조선일보 등의 기사가 나간 이후에 켐페인 홈페이지가 난리입니다. '분노한 남성'들이 몰려왔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상상들이 되실 겁니다.

그래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차원에서 게시판에 글을 썼는데, 아래 글입니다. 원문은 여기



남성으로 남성들에게; 그녀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자.

이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남성으로서 한편으로 (익숙하게 보아온 광경이면서도) 다시 한 번 놀라기도 하고 답답한 느낌이다. 여성에게 차별적인 호칭을 바꾸자고 시작한, 그것도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을 여성들 스스로 바꾸자고 제안한 이 켐페인에 오히려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그런 남성들에게 같은 남성으로서 같이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고, 몇몇 주장들은 호칭의 언어학적 기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밝히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아냥, 조롱, 분노를 담은 글이다. 일부는 성폭력적인 글도 있다. 이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그래서 '남성들의 분노'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어원 등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그냥 깔끔하게 그에 대한 입장만 밝히면 될 일이다.) 여성민우회는 남성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만한 일을 한 것일까? 성평등한 호칭을 쓰자는 주장이 왜 남성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일까?
 
여기에는 복잡한 이유들도 많겠지만, 주로 남성들의 사고가 여성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평등은 남성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어와 같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상징들은 물질적인 힘을 갖고, 언어의 평등은 관계의 평등으로 연결된다. 인간은 상징들 속에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들은 '왜 경제도 어려운데 호칭 따위를 갖고 '국론'을 분열시키냐"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진정으로 호칭과 상징이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게시판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논쟁에 '경제'와 '국론분열'이라니, 히틀러와 스탈린도 혀를 내두를 전체주의 사회가 따로없다.)
 
이 켐페인에서 여성들의 주장은 우리 언어 속에 내재되어 있고, 따라서 여전히 상징으로 작동하고 우리 행동에 영향을 주는 호칭들을 반성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적극적인 대체 호칭을 제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열어두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성적 편견,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스스로 반성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부정하고 눈을 감는 순간 자기반성이란 불가능하며, 자신에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는 호칭과 상징에 대한 비판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자기반성이 불가능한 사람이란 타인과의 열린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게시판에서, 어쩌면 자신들과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문제에 열을 올리는 남성들을 보자면, 같은 남성으로서 씁쓸해진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차별에 대해서 눈을 감고, 적극적으로 부정할 뿐더러(이렇게 하려면 세상을 자신의 관념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야하는데, 그 개인들에게도 슬픈일이다), 성적 차별을 상징적인 수준에서부터라도 해결하자고 하는 여성들의 노력을 마치 자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인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남의 권리를 억압할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그에 따라 권리를 갖고 있다. 호칭에 있어서도 차별적인 언어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수천년 동안 (아마 수억명은 될) 여성들이 받았을, 이 호칭에 내재된 차별과 멸시로 인해 받았을 정신적 상처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따라서 여성들이 호칭에서조차 평등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든, 그것은 여성들의 권리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의바른 토론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성들이 고려했으면 하는 것은,(나 자신도 남성으로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성들이 평등한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어떤 행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양성이 호혜-평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때, 남성도 자신에게 부과된 억압을 깨고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부과하는 전쟁과 폭력의 의무(우리 모두에게 군대는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가. 나도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철원 6사단에서 화기중대 보병으로 26개월을 복무했다. 그것은 다른 남성들처럼, 말로는 뭐라 하더라도 자신은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 그런 폭력의 경험이다. 군대를 찬양하는 친구 중에도 군대 다시 가겠다고 하는 녀석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를 져야하고, 뼈골빠지게 생계부양자라는 의무를 져야한다. 가족의 대소사에서 부담되는 '어른'노릇, '남자'노릇을 해야하고, 또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정확하게는 결혼한 여성에게 '아들'을 강요하는 끔찍한 역할이다.) 도대체 이런 양성 차별과 억압 속에서 부여되는 남성으로서의 권리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호혜평등한 관계를 서로 편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알량하고 사소한, 남의 권리를 침해해서 얻는 남성들의 '기득권'은 버리는 것이 속편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여성-남성의 권리를 제로섬게임인 것처럼 만든 데에는 군가산점 논쟁과 같은 것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마땅히 시정되어야하는 것이었지만, 남성과 여성의 권리를 상호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운동'으로서는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쟁점들, 그리고 남녀관계의 근본적인 측면에서 양성의 권리는 서로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호칭 문제로 촉발된 게시판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성민우회라는 단체, 혹은 다른 여성단체들도 이런 호칭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테니, '왜 호칭만 갖고 시비냐, 딴거나 해라'라는 말씀들은 그만하시길. (물론 그들이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며, 여성가족부의 '연말회식켐페인'처럼 진짜 뻘짓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호칭의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들이 수천년간 받아온 멸시와 상처를 치유하자는 제안이다. (언어 폭력을 포함해서) 폭력은 언제나 가하는 자들은 직접 느끼지 못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물론 폭력을 가하는 자들도 무의식과 영혼에 상처를 받고 인간성을 점차 상실해가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들도 성차별 구조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이 켐페인은 그런 상처를 여성들이 서로 치유하기 위한 '그녀들의 일'이니 당신들과 나 같은 남성들은 그냥 좀 지켜보자. 여성들의 자기치유에 조차 욕설과 성폭력 언어를 가하는 잔인함이 당신들은 즐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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