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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밑에 포스트 <여성단체 활동가와 나눈 대화> 에서 언급했던 가족 내 불평등 호칭 바꾸기 켐페인이 있습니다.
아래
<조선일보의 여성혐오>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한 조선일보 등의 기사가 나간 이후에 켐페인 홈페이지가 난리입니다. '분노한 남성'들이 몰려왔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상상들이 되실 겁니다.
그래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차원에서 게시판에 글을 썼는데, 아래 글입니다.
원문은 여기
남성으로 남성들에게; 그녀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자.이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서 남성으로서 한편으로 (익숙하게 보아온 광경이면서도) 다시 한 번 놀라기도 하고 답답한 느낌이다. 여성에게 차별적인 호칭을 바꾸자고 시작한, 그것도 "여성이 여성에게 쓰는 호칭"을 여성들 스스로 바꾸자고 제안한 이 켐페인에 오히려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그런 남성들에게 같은 남성으로서 같이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고, 몇몇 주장들은 호칭의 언어학적 기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밝히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아냥, 조롱, 분노를 담은 글이다. 일부는 성폭력적인 글도 있다. 이 게시판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그래서
'남성들의 분노'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어원 등에 대한 의견이 다르면 그냥 깔끔하게 그에 대한 입장만 밝히면 될 일이다.) 여성민우회는 남성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만한 일을 한 것일까? 성평등한 호칭을 쓰자는 주장이 왜 남성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것일까?
여기에는 복잡한 이유들도 많겠지만, 주로
남성들의 사고가 여성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평등은 남성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어와 같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상징들은 물질적인 힘을 갖고, 언어의 평등은 관계의 평등으로 연결된다. 인간은 상징들 속에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들은 '왜 경제도 어려운데 호칭 따위를 갖고 '국론'을 분열시키냐"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진정으로 호칭과 상징이 정치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게시판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런 논쟁에 '경제'와 '국론분열'이라니, 히틀러와 스탈린도 혀를 내두를 전체주의 사회가 따로없다.)
이 켐페인에서 여성들의 주장은 우리 언어 속에 내재되어 있고, 따라서 여전히 상징으로 작동하고 우리 행동에 영향을 주는 호칭들을 반성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예 적극적인 대체 호칭을 제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열어두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성적 편견,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스스로 반성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부정하고 눈을 감는 순간 자기반성이란 불가능하며, 자신에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는 호칭과 상징에 대한 비판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자기반성이 불가능한 사람이란 타인과의 열린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게시판에서, 어쩌면 자신들과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문제에 열을 올리는 남성들을 보자면, 같은 남성으로서 씁쓸해진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차별에 대해서 눈을 감고, 적극적으로 부정할 뿐더러(이렇게 하려면 세상을 자신의 관념에 따라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야하는데, 그 개인들에게도 슬픈일이다), 성적 차별을 상징적인 수준에서부터라도 해결하자고 하는 여성들의 노력을 마치 자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인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남의 권리를 억압할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그에 따라 권리를 갖고 있다. 호칭에 있어서도 차별적인 언어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수천년 동안 (아마 수억명은 될) 여성들이 받았을, 이 호칭에 내재된 차별과 멸시로 인해 받았을 정신적 상처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따라서
여성들이 호칭에서조차 평등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든, 그것은 여성들의 권리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의바른 토론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남성들이 고려했으면 하는 것은,(나 자신도 남성으로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성들이 평등한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어떤 행위는 아니라는 점이다. 양성이 호혜-평등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때, 남성도 자신에게 부과된 억압을 깨고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국가가 부과하는 전쟁과 폭력의 의무(우리 모두에게 군대는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가. 나도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철원 6사단에서 화기중대 보병으로 26개월을 복무했다. 그것은 다른 남성들처럼, 말로는 뭐라 하더라도 자신은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 그런 폭력의 경험이다. 군대를 찬양하는 친구 중에도 군대 다시 가겠다고 하는 녀석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를 져야하고, 뼈골빠지게 생계부양자라는 의무를 져야한다. 가족의 대소사에서 부담되는 '어른'노릇, '남자'노릇을 해야하고, 또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린다. (정확하게는 결혼한 여성에게 '아들'을 강요하는 끔찍한 역할이다.)
도대체 이런 양성 차별과 억압 속에서 부여되는 남성으로서의 권리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호혜평등한 관계를 서로 편하게 만들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알량하고 사소한, 남의 권리를 침해해서 얻는 남성들의 '기득권'은 버리는 것이 속편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여성-남성의 권리를 제로섬게임인 것처럼 만든 데에는 군가산점 논쟁과 같은 것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마땅히 시정되어야하는 것이었지만, 남성과 여성의 권리를 상호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운동'으로서는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쟁점들, 그리고 남녀관계의 근본적인 측면에서 양성의 권리는 서로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호칭 문제로 촉발된 게시판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성민우회라는 단체, 혹은 다른 여성단체들도 이런 호칭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테니, '왜 호칭만 갖고 시비냐, 딴거나 해라'라는 말씀들은 그만하시길. (물론 그들이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며, 여성가족부의 '연말회식켐페인'처럼 진짜 뻘짓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호칭의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들이 수천년간 받아온 멸시와 상처를 치유하자는 제안이다. (언어 폭력을 포함해서) 폭력은 언제나 가하는 자들은 직접 느끼지 못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이다. (물론 폭력을 가하는 자들도 무의식과 영혼에 상처를 받고 인간성을 점차 상실해가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들도 성차별 구조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이 켐페인은 그런 상처를 여성들이 서로 치유하기 위한 '그녀들의 일'이니 당신들과 나 같은 남성들은 그냥 좀 지켜보자. 여성들의 자기치유에 조차 욕설과 성폭력 언어를 가하는 잔인함이 당신들은 즐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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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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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하던 문제점들을 아주 속 시원하게 정리해주셔서 눈이 탁 깨이는 느낌!!! 잘 배우고 갑니다 ^^ (음.. 저도 가서 읽어보고 좀 써야겠네요 ^^;)부가 정보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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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넘 멋져여! 이런 블로그 있었으면 진작에 좀 알려주구 그러지..부가 정보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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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겨울철쭉님의 용기 있고 진지한 주장에 많은 부분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겨울 님의 가장 주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이 평등한 권리를 찾아가는 것이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는 어떤 행위는 아니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데,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평등을 찾아 나가는 것이 남성들의 '특권'에 위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 님이 남성들이 자신의 "기득권"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득권 내지 특권 포기의 이유가 그에 따르는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의무들의 고통스러움으로부터 남성들 또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저에게는 조금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대부분의 남성들은 바로 그러한 의무들이 자신들의 특권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감내하고 또 그것들을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때는 심지어 어떤 기쁨까지 누리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통을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더 값진 훈장이 되는 것이겠지요. 남성들이 자신의 군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을때, 작동하는 논리가 이것일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기쁨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고통을 동반하지 않는 기쁨이라면 다른 하나는 고통을 동반하는 기쁨이지요. 정신분석학에서는 전자를 쾌락(pleasure)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쾌락원칙을 넘어선 것으로서 주이상스(향락)(jouissance)라고 부르지요. 이때 겨울 님께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정확히 주이상스를 포기하고 쾌락을 추구하라, 왜냐하면 주이상스는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주이상스(=죽음충동)의 문제를 그냥 맹목점에 놔두는 방식일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문제인 듯 합니다. 남성주의적 남성들이 이러한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것도 나름대로는 원인이 있는 것이겠지요. 사실 이 문제는 마지막에 겨울님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입니다. 즉, "여성들의 자기치유에 조차 욕설과 성폭력 언어를 가하는 잔인함이 당신들은 즐거운가?"라고 물을 때, 남성들이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즐거움이 정확히 죽음충동의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여성들이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남성들에게 어떤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할 때, 저는 과연 그런 것일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군가산점 폐지 운동이 '운동'으로서는 실패했다고 말씀하실 때 과연 그것이 그렇게 쉽게 평가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싸움의 곤란은 여성들의 주장과 요구들이 사실은 남성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것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여성들이 어떤 정세에서 사용하는 어떤 대항폭력들을 결국 비난하게 만드는 쪽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조금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즉 여성들의 투쟁을 비폭력으로 제한하게 만드는 쪽으로 말입니다. 물론 대항폭력의 도착이라는 문제와 우리가 대결해야 하지만, 이는 대항폭력의 전도로서 비폭력으로 나아감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군대 그 자체에 대해서 너무 쉽게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말씀하실 때도, 한 편으로 그러한 주장을 이해 못할 것 같지는 않지만 다른 한 편으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그런지....그렇게 쉬운지...
사실 겨울님도 이런 생각들을 속으로 이미 하고 계실 수도 있고, 게시판에 개입하기 위한 전술의 차원에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여기 쓴 건, 사실 그냥 우리끼리의 이야기지요.^^ 저도 게시판에 개입했다면 겨울님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기 쉬웠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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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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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밀리오/ 하하, 그런데 여러가지 쟁점이 많죠. 최원님이 올려주신 것처럼 말입니다.나우/ 그래도 게시판 분위기에 좀이라도 도움되었다면 다행. 신년회 한번 해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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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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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안녕하세요, 출국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네요. ^^; 말씀하신 것처럼, 일단 마초들이 나서서 분탕질하는 게시판 분위기에서 '남성으로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사실 쓸데없이 군대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도 그런 이유이구요..) 썼기 때문에 과잉되거나 쟁점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킨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저도 남성들이 가진 권력이라는 것이 (비록 그것이 남성으로서의 사회적 부담을 준다고 하더라도) '권력'자체만큼 그 권력이나 혹은 권력을 차별적으로 배분하는 체계를 폐지한다고 할 때 남성들도 더 행복해진다고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배타적으로 소유되는 권력인 이유, 유혹인 이유가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것이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말이죠.) 권력을 폐지하는 것을 통해서 남성들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권력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해질만큼' 남성들이 문명화되어야할 텐데, 그건 권력을 폐지한다는 것과 동어반복일 수도 있겠죠.
'더 행복한'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쟁점을 전위하는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그것이 주이상스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어야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다만 여성적인 주이상스에 대해서는 다른 것이 있는 지 모르겠는데, 그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 더 이야기하기 힘들군요)
또한 지적하신 것처럼, 여성들의 요구가 남성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만' 사실일 겁니다. (제 글에서 과도하게 강조된 측면이 있죠.) 다만 고민은 운동전략의 측면에서는 '권리들의 제로섬 게임'으로 드러날 경우 적대적 모순으로밖에 귀결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입니다. 노자 대립과도 또 다른 측면일 텐데요, 이런 과정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남성들의 개조를 요구하는 과정이 어떤 식으로든 함께 진행되어야하는 것같고.. 그래서 순수한 요구투쟁과 같은 방식만은 아닐 것같습니다. 부르조아를 교육시켜서 '교양있는 붉은 부르조아'를 만든다는 것은 무망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할 텐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가 더 고려되어야할 것같습니다.
논쟁에 개입하다보면 과잉되거나 과소하게 되고, 의도적인 단순화가 발생하는데, 논쟁에서 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해서 항상 좀 '오버'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좀 그런 케이스였던 듯.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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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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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달다 보니 자꾸 수정을 하게 되는군요^^)예 덕분에 잘 날아왔습니다.^^ 밤낮이 바뀌어서 한참 고생하다 이틀전부터 어느정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말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겨울철쭉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고, 어려운 지점이 분명한데, 성적 차이가 특수한 인종들 간의 인종전쟁인양 표상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성적 차이는 남성적인 성적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루지 않는 성 혹은 초역설적 계급으로서 여성 간의 적대로 표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점에서는 계급투쟁과도 상통하는 바가 없지 않지요. 많은 경우 페미니즘이 마르크스주의를 비난하면서도 결국 투쟁의 모델을 마르크스주의에서 빌려가는 것은 이 때문일텐데, 계급투쟁도 두 외재적 집단 간의 인종전쟁일 수 없으며 '노동의 구체성'에 의해 으깨어진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를 특수계급이 아닌 보편계급으로서, 혹은 "계급-비계급"으로서 표상하면서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이것이 실패할 때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동일성/정체성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가 발생하게 되겠지요--이것은 얼마전에 서관모 선생이 말씀하신 부분인데...). 성적 차이와 계급적대를 구별하는 것은 아마도 성적 차이는 계급적대처럼 폐지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아마도 말씀하신 성차화된 "권리들"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러한 성차화된 권리란 또한 '여성 자신들 사이의 차이들의 권리들'이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여성을 어떤 공동체로 만들지 않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약간 사변적인 맛이 있지만 정식화시키자면, 아마도 (두 외재적 집단으로서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표상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비공동체적인 어떤 것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공동체, 즉 민족 공동체의 해체라는 문제와 그 핵심적 국가장치의 해체라는 문제(특히 가족의 전화)를 우회할 수 없겠지요. (군대문제와 같은 경우, 아마도 그것의 단순한 파괴라기 보다는 그것의 변혁 내지 전화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할텐데, 이것이 필수적인 전제가 된다면 여성들의 군입대도 장차 미래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사실은 작금에 터져나오고 있는 모병제보다는 훨씬 나은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병제를 하게 되면 결국 군에 지원입대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지요. 기본적으로 민족 내 평등주의 마저 파괴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또 다른 한 편 그것은 대중들 자신으로부터 무장력을 철수하는 시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극히 반동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시 아마도 겨울님께서 대부분 이미 생각하고 계신 것을 바보처럼 중언부언한 것 같다는 우려가 갑자기 뇌리를!^^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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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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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말씀하신 부분 중에서 특히 "초역설적 계급으로서 여성 간의 적대"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시는군요. 여성이 남성 중심의 사고, 정신분석에서 사고-분석불가능한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저도 그런 한계에 묶여 있는 셈인데, 흠흠.다만, 군대의 경우에는 '전화'가 가능한지는 솔직히 좀 의문이긴 합니다. 물론 폭력을 '제도화'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겠지만, 그것을 철폐하는 사회운동을 더 밀고 나가는 것과 관련성은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혹은 인민의 무장이라는 관념과. 그러나, 현재의 군대는 말 그대로 파괴되어야할 국가장치의 1번이라는 점에서 전화-변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
ㅎㅎ 무엇보다 고민하지 못한 많은 부분에 대한 코멘트 감사드려요. 정말 그렇게도 사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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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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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문제는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현재의 군대"를 유지하자는 말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국제적 군사적 긴장들을 낮추는 초민족적인 대중운동들이 성공적으로 출현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통해 평화를 위한, 혹은 차라리 시빌리테를 위한 국제적인 제도들 및 대항제도들이 세워진다면 그 속에서 군의 성격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쨌든 폭력에 맞서는 우리의 투쟁이 (수단뿐만 아니라) 그 목표에 있어서도 '비폭력'을 추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폭력과 무장력의 필요성은 단순히 부인될 수 없으며 따라서 군대의 단순한 파괴라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현재의 군대가 파괴되고 그것을 대체할 어떤 모종의 "인민의 군대"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군대인 것이지요. 그것이 현재의 군대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 있는가, 말하자면 더 이상 장치가 아닌 장치 자체를 파괴하는 '반-장치'가 될 수 있는가는 그냥 '인민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준다고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테고요. 오히려 그러한 수식어는 그것이 행하는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맹목점에 가져다 놓기 쉽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사실 당이라는 것이 밟아간 길도 이런 것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인민의 군대는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우리가 논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군대의 변혁 내지 전화의 요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단순히 그것의 파괴를 주장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날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맑스나 레닌이나 이런 사람들도 군대가 어떤 식으로 변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또 그 원칙들을 천명했었지요(소환제 등등). 물론 이들의 시도가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말이지요. 아 참 그리고 초역설적 계급으로서 여성간의 "적대(antagonism)"라기 보다는 아마 "갈등"(agonism)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번에 사회운동 책 속의 책에서도 그 개념이 상당히 중심적으로 나왔던데... 저도 겨울철쭉님 글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산별노조 건설과정에 개입하시고 있는 부분은 예전부터 매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힘내십시요!부가 정보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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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군입대 문제가 나와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예전에 어떤 영화에선가(아마도 랜드 앤 프리덤이 아니었던가 싶은데 아닐수도 있습니다) 여성동지들이 총을 드니까 남성 간부인지가 밥이나 하라는 식으로 굴던 장면이 떠오르는군요.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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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초기의 붉은군대도 그렇고 '랜드 앤 프리덤'에 나오는 의용군도 그런데, 장교를 병사들이 선출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여성도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등 부르조아군대와는 전혀 다른 조직원리를 가졌다는 것이 생각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반폭력의 입장에서 군대를 사고한다고 할 때, 특히 그것은 군대 자체의 맹목에 대해서도 반대할 수 있어야한다고 할 때 무엇을 사고해야할지를 제기해주셨는데, 중요한 문제일 것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재의 군대의 파괴라기 보다는 현재의 군대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량시켜야한다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말이죠.) 또한 그것은 변혁조직에서 '반-장치'를 실현하는 문제와도 어떤 면에서는 관련될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더욱 현재적인 고민이기도 합니다.(물론 더 고민이 필요한 ^^;) 고맙습니다.부가 정보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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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개량'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사실 붉은 군대 등에서 부르주아 군대와 매우 다른 원칙을 기초로 조직하려고 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초기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 왜 다시 부르주아 군대와 유사한 것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면, 이게 단순히 군대 내부에만 어떤 다른 원리를 각인하면 되는 문제인가(직접민주주의적인)하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을 둘러싼 다른 물질적 조건들의 문제가 동시에 변화되지 않으면 군대의 급진적(^^) 전화라는 것을 사고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폭력의 초민족적 사회운동의 성공적인 출현 및 경계지대(borderland)에 시빌리테의 제도, 대항제도들의 구축이 굉장히 중요한 조건을 이룬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철쭉님과 제가 아마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비슷한 부분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나저나 저번에 박하순 님 모친상이라 경황이 없어서 안부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행복한 결혼생활하고 계시죠? 8년정도 기두리다가 저희는 덜컥 아기까지 낳아버렸는데, 어려움도 많지만 기쁨이 더 많습니다. 어쨌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부가 정보
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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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 사족같지만... 위에서 약간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저도 제대로 눈치를 못챘었고), 제가 "초역설적 계급으로서 여성들 간의 적대"라고 말한 것의 원래 문장은 "오히려 성적 차이는 남성적 성적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루지 않는 성 혹은 초역설적 계급으로서 여성 간의 적대로 표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였습니다. 여기서 "적대"란 여성간의 적대가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남성과 (비공동체로서의) 여성간의 적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초역설적 계급으로서의 여성간의 차이는 오히려 "갈등" 개념에 어울린다는 것이었고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문장을 간명하게 쓰지 못하다 보니 생긴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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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남성과 동등하게 대접받으려 하면서 왜 의무는 남성과 동등하게 지지않고 남녀에 차이 운운하는 모순된게 우리나라의 어설픈 꼴통 페미니즘 이다. 권리는 남성중심의 사고방식 전통에서 부정하고 벗어나게 해 남성과 동등하게 지려하는데 의무는 남성중심의 사고방식과 전통은 긍정하며 그걸 그대로 이어가려 하는것 이런게 바로 모순이란 것이다. 출산은 선택이고 군대는 의무다. 생리는 생물학적인 여성의 특징이고 군대는 사회적 으로 한국남성 들에게만 부담되는 특징중 하나이다. 이걸 명심해야 할것이다. 케네디 前미국 대통령 말처럼 한국의 여성들은 "조국이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수있는지 물어라."라고 말해야 할것이다. 대체 한국 여성이 의무적 으로 의무적 으로 국가와 조국을 위해 기여하는게 대체 뭐가있을까?...부가 정보
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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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여성이 가진 권리와 의무의 불균등에 대해서 심하게 편향적인 분이시군요. 남성들은 항상 '군대' 이야기만 하는데 그걸 제외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회적 모순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 알리바이로 사용하는건데, 정작 군대가 싫으면 그걸 거부하는 투쟁을 해야지 대신 그걸 여성을 공격하는데만 쓴다는 것이죠. 일관성이 전혀 없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