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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21
    어떤 죽음, 로드킬(3)
    루냐

어떤 죽음, 로드킬

미끄덩-

엇 이건 뭐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돌아본다)

아아악!!! (다듬어지지 않은 소리를 내며 삼십 미터 정도 냅다 달린다)



똥도 아니고 바나나는 더욱더 아니고 시체를 밟았다. 작은 새의 시체를. 형태가 분명치 않았으나 아마도 참새?! ...... 햇살에 모든 것이 보송보송하게 느껴졌던 일요일 오전, 명동 한복판에서 묻히지 못한 참새와 나는 만났다. 피로 범벅된 미끄덩한 참새(아마도 참새).

오른쪽 뒤꿈치의 감촉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처음엔 물컹했다가 이윽고 무언가 바스러지며 미끄러지는 느낌. 오른쪽 발뒤꿈치를 질질 끌다시피 교회 앞까지 걸어가서 벽에 기대어 무서운 마음을 꾹 누르고 신발 뒤축을 보기 위해 다리를 접어 올린다. '깃털이 붙어 있으면 어쩌지, 피가 묻어 있으면...' 살인을 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 다행히, 신발 뒤축엔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았다. 직직 바닥에 그어대며 걸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신발바닥이 왼쪽보다 조금 더 닳아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고 놀랐던 가슴이 가라앉자 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떨어져 죽은 녀석, 무엇이 그 녀석을 그곳에서 숨지게 했을까.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의 발에 지금도 밟히고 있겠지. 지금쯤 사람들은 무언지도 잘 알아보지 못한 채 태연히 그 위를 웃으며 걸어갈 테지.

 

*     *     *     *     *

 

쓰레기 차가 오기 전에 먹잇감을 찾기 위해 혼자서 새벽 거리로 나섰다. 음식물쓰레기 전용 수거함이 들어오고 난 뒤로 쓰레기 봉투를 뒤져서는 먹을 게 잘 나오지 않는다. 먹이를 발견해도 방심할 수 없다. 고양이 녀석들과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피곤해도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은 도무지 먹잇감이 나타나질 않는다. 저놈의 쓰레기통.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다. 에잇. 몇 번이고 허탕을 치다가 지친 발걸음으로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길은 조금 넓었고 큰길가와 만나는 곳에 갈빗집이 있다. 그래, 저기엔 뭔가 먹을 게 있을 거야. 통유리에 돼지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갈빗집. 냄새는 분명히 나는데, 먹을 것은 어디에 있는지...... 음식물 전용 수거함은 높기만 하다. 유리창 앞을 서성인다. 바보 같은 돼지 녀석의 머리는 혀를 날름 내민 채 나를 약올리듯 웃고 있다.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큰길로 나가는 차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나는 급히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나를 보지 못한 차는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를 치고 지나갔다. "깽!" 날카로운 소리가 나왔지만 나와보는 사람도 없다. 나는 쓰러졌고 머리에선 피가 났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갈빗집 유리벽은 차갑고 두껍기만 하다. 배고픔도 이제 느껴지지 않는다. 아스팔트가 유난히 차다.

아침 7시 30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다가온다. 나를 보면 놀랄 텐데, 오지마, 오지마. 그러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보고 히히덕 거리다가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른 뒤 몇 걸음 뛰어간다. 다시 한 여학생이 걸어온다. 나를 보고 역시 흠칫 놀라더니 웃음을 머금은 듯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무 놀라서 그런 모양이다. 소녀는 입을 막고 뛰어가버렸다. 아저씨가 지나가다 나를 본다. "캬악, 퉤, 월요일부터 이게 뭐야, 재수 없어!" 슬프다. 흙바닥으로 파고들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썩어서 분해될 수도 없다. 나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조금만 참자. 오늘 내일 중으로 어딘가에 버려지겠지. 고약하다는 표정으로 오만 인상을 쓴 누군가가 나를 집어 쓰레기와 함께 버리겠지. 아마 갈빗집 주인이 종업원을 시켜서 버리든가 청소하시는 분이 나를 데려가 주시겠지. 나는 쓰레기와 함께 매립되겠지.

 

*     *     *     *     *

연이틀 동물의 죽음을 보고 나니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태어날 때와 죽을 때가 너무 달라서 슬프다. 사람들 때문에 살 공간을 잃어버린 채 썩은 음식을 찾아 먹고 살아야 하고 구걸해야 하는 동물들. 또 그런 동물들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빈민들. 아스팔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동물들, 그리고 그런 죽음을 똑같이 맞이하는 사람들. 같은 사람, 같은 동물이어도 너무 다른 인생들. 그리고 그런 동물의 죽음을 보고 놀라서 입을 막고 뛰어가 버렸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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