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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9
    안부,인사(6)
    루냐
  2. 2008/01/21
    가족 만찬(2)
    루냐
  3. 2008/01/15
    음반 한 장(4)
    루냐
  4.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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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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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냐
  6. 2008/01/10
    일러스트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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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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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냐
  8. 2007/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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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냐
  9. 2007/12/18
    수요일(4)
    루냐
  10. 2007/11/26
    071126(2)
    루냐

안부,인사

설을 다들 잘 보내고 있나요.

저는 오랜만에 푹 쉬었습니다.

이번 주만 밤샘을 두 번했지만

연휴 때 쉬어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좋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엄마도 만나구요.

엄마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잠도 들고요.

2년 만엔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삼자대면'도 하고,

<빨간풍선>도 보구요, 덕분에 광화문 스폰지도 가고요.

 

그리고 다시 자췻방에 돌아와선

친구와 다정히 누워 이런저런 고민도 적당히 했습니다.

 

스무 시간쯤 푹 잠을 자고

깨어 있는 동안은, 라면과 김치찌개로 배를 채우고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은 채 방바닥을 뒹굴뒹굴 굴러다녔습니다.

 

그리고 심심하면 친구의 아이팟으로 일본 드라마 <장미가 없는 꽃집>을 보았고

소설도 찔끔찔끔 읽다가 다시 잠들곤 했습니다.

 

이런 명절이라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있으면 좋겠다고 친구와 이야기할 때는

기도하는 소녀들처럼 간절해졌습니다.

 

아, 그리고 내일은 출근이군요.

나쁘지 않습니다. 푹 쉬었으니까요-

 

사실은 그냥

조금 위로받고 싶어 끄적여 봅니다.

무엇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위로를 내놓으라니 고약한 심술 같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내가 이곳에서 과연 위로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스스로 쓰면서 받는 위로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괜찮을 겁니다.

 

이곳도 이제 빙하기가 왔나봅니다.

아무래도 일본에 가서 쓰려고 했던 '교토통신원' 이야기는 다른 곳에 만들질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그리고 다들 건강하기를.

 

문득 태양보다는 달에 감정이입이 되어버려 노래도 한 곡, 

 

 

토이 - 나는 달

 

노래와 가사: 이규호

유재하 가요제의 이규호, 여전하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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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만찬

이번주 화요일은 언니 생일이었다. 언니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는 나는, 언니가 서른을 맞은 이번 생일만큼은 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일보다 조금 이르지만, 오늘 모이기로 몇 주 전부터 약속을 해두었고, 언니-엄마-동생군-그리고 나, 모였다. 서울 한강의 네맘대로 섬, 여의도에.

무심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달랑달랑 들고 가선 언니에게 안겨주었다. 언니는, 너무 착한 언니는, '학교 졸업식 이후로 처음 받아보는 꽃인 것 같아'라고 기쁘게 받아준다.

 

막내인 여동생과 아빠를 제외한 가족 만찬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볼살을 빼앗긴, 그러나 머리는 크고 수염도 제법 기른, 요약하면 차두리를 닮은 나의 동생군과 밥을 먹기는 거의 2년이 다 된 듯. 나의 가족이란 이런 식이지만, 그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왜 좀 더 자주 만나지 못했을까 아쉬울 뿐이었다.

 

생일이라는데, 사진 한 장 안 남기고, 동생군이 사온 케이크도 배불러서 못 먹고, 그냥 그렇게 한가로운 여의도를 나왔다. 오늘은 일요일 밤이었다.

 

불 꺼진 오피스를 지나, 한산한 지하철로 들어가, 상일동과 방화행으로 나뉘는 지하철 계단에서 엄마를 한 번 안는다. 언니에게도 안아달라고 한다. 여세를 몰아(?) 동생군에게 안기려하니 동생이 케이크 상자로 내 앞을 막는다. 췟췟쳇- 공평하게 안아주려고 했더니만, 짜식 튕기긴- (안기려는 게 아니고?)

 

자고 일어나면 또 분주하게 움직여 하루가 저물 때까지 머리 싸매야겠지.

평소 같으면 지금쯤 슬슬 마음이 졸아들고 있을 터이다. 소심한 심장은, 작동이 둔해지겠지.

그러나 그들을 보고 난 지금은 조금 담담하다. 아니, 좀 오버하면 담대한 것 같기도.

그러니까, 내가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반짝,했다는 거. 물론 내 기준의 잘살자,이긴 하지만-

조금 부지런해질 것 같은 예감. 사는 게 도무지 귀찮았던 지난주는 어디로 가버렸다. (어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아, 그리고 마무리로서는 좀 뜬금없지만,

일본에 가면 사투리 배우기에 전념하련다. 그게 교토 사투리든, 오사카 사투리든.

 

음하하. 괜히 기분이 좋다(라고 쓰다가 '정말?'이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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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한 장

이런 포스팅은 그냥 복사해서 붙이기 정도에 포스팅이라 말하기도 민망하고, 소재 또한 뒷북인 걸 나도 알지만, 그냥 '너도 알고 있었니-' 하고 묻혀진(혹은 잊혀진) 이 아저씨들을 톡톡 두드려 깨우고 싶은 마음으로 긁어붙인다-_-;

 

나는 최근에야 '빛과 소금'이라는 그룹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우연히 노래를 들었고, 제목을 찾아봤는데, 그룹 이름을 보니 '빛과 소금'이란다. 무슨 가스펠(CCM) 그룹인 줄 알았는데, (그런 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아저씨들은 멋진 밴드였다. 그리고 나의 72년생 아저씨께 물어보니, 당연히 안다는 반응. 

 

처음 내 귀를 잡아 끈 건 노래였지만, 아저씨들의 뒷이야기가 나를 또 한 번 끌었다. 음악에 쏟은 정성에 비해 화려한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묵묵히 노력해서 은은한 빛을 내는 놋그릇 같은 밴드였다는 것. 

1집을 들으면 노래만 듣지 말고, 1990년대 방배동 지하방에서 연주했을 청년 세 명을 떠올려야겠다. 자세한 지식은 검색해서 얻었다. 임진모의 홈페이지에서 본 글을 아래에 옮긴다.

 

시내에 나가거든 '빛과 소금'의 CD를 사야겠다.

 

 

 


빛과 소금 <1집>(1990)

불광불급(不狂不及)!

빛과 소금은 미련한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결과를 어딘가 모를 응원군에게 맡긴 채 초지일관 음악만 팠다. 김현식의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함께 연주했던 유재하가 솔로 데뷔작(1987년) 발표에 이어 사후(死後) 영웅 대접을 받고, 김종진과 전태관도 '봄여름가을겨울'이란 이름으로 1집(1988)을 내 퓨전음악의 선구자로 떠오를 때, 그들은 더 기다려야 했다.

이후 '사랑과 평화'의 멤버로 들어갔던 장기호와 박성식은 한경훈을 맞아 '빛과 소금'을 결성하고, 상기한 동료 뮤지션들보다 더 몇 년이 흐른 1990년이 되어서야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에 포기했을 법도 하지만, 음악적 성과물이 절실했던 그들은 끈을 놓지 않았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치지 못한다(不及).”라는 문구는 그래서 이런 경우에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김종진과 전태관의 봄여름가을겨울은 퓨전재즈 대중화의 선두에 서서 대중적 영광을 누렸던 반면, 빛과 소금은 후발주자의 멍에를 지우지 못했다. 기타 중심의 봄여름가을겨울 음악과 달리, 빛과 소금은 박성식의 키보드를 내세워 스타일의 차별화를 기했지만 그들만큼 '큰' 밴드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 5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동료들이 받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누리지 못했다.

데뷔 시절엔 누구나 그렇겠지만, 빛과 소금의 1집 라이너노트에 쓰인 글은 서럽다. “방배동의 어느 초라한 지하 월세방에서 우리 셋은 이 앨범을 계획했고 모든 작업을 했습니다. 녹음을 끝낸 우리들은 그 지하실의 냄새나던 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먼 훗날 이 앨범을 듣게 되면 분명히 그 지하실의 어수선 했던 작은방 하나가 기억날 겁니다. 이 앨범을 그 작은방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앨범에 들인 정성과 그로 얻은 음악적 성과에 비해 돌아온 영예는 작았지만, 이 글은 가난과 어려운 과거에 대한 긍정이요,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팀명처럼 실제로도 기독교인이었던 그들은 CCM 색채가 짙은 '내겐 노래있어'를 통해 그런 노래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시킨다. '난 아름다운 노래와 작은 시로 이 세상 끝까지 노래하리 / 나 아름다운 노래와 작은 시로 모든 사람 사랑하겠네 / 노래하자 사랑의 노래를...'

당시에도 하덕규, 조하문과 같은 CCM 진영의 가수들과 공연을 하곤 했던 그들은 성가곡인 'Beautiful'을 수록해 자신들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다. 3집의 '주기도문', 5집의 '감사드려요' 등에서도 그들의 최종 가치라고 할 선교(宣敎)를 이어간다. (현재도 장기호는 <장기호의 CCM 캠프>라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춘천 가는 기차'의 김현철, 버클리 4인방 정원영 한상원 한충완 김광민 등과 더불어 한국 퓨전재즈 초창기 밴드였던 그들은 '질'에 대한 자존이 있었다. 궁극적으로 '웰 메이드' 뮤직을 추구했던 것이다. 라디오 전파를 곧잘 탔던 '샴푸의 요정'과 '그대 떠난 뒤'는 질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주선율이 인상적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전개에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사랑과 평화 4집에 먼저 실렸었던 '샴푸의 요정'은 빛과 소금의 데뷔작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어 지금까지 애청되고 있으며, 김진표가 최근 샘플링을 하기도 했다.

완성도를 뒷받침한 것은 연주력이었다. 가수라기보다 연주인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연주곡인 '아침', '그녀를 위해', '빛 1990' 등에서 그들의 연주는 발군이었다. 특히 '그녀를 위해'와 '빛 1990'은 한국 퓨전재즈의 질적 상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빛과 소금이 결성되고 데뷔작이 나오기까지 그들은 오랜 변방 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이 앨범이 1990년대의 명반 대열에 편입되면서 작게나마 보상을 받았다. 경량(輕量)한 태도도 용서가 되고, 자극으로 얻어낸 인기에 눈길이 쏠리는 부박한 가치관의 시대에 그들의 묵묵한 외길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세련된 음악을 향해 치열하게 피와 땀을 쏟아낸, 이것은 음악 혼의 침전물이다.


-수록곡-
1. 아침 (instrumental) (작곡 : 박성식)
2. 슬픈 인형 (작사 : 한경훈 / 작곡 : 한경훈)
3. 샴푸의 요정 (장기호 / 장기호)
4. Beautiful (외국성가곡)
5. 돌아와 줘 (한경훈 / 한경훈)
6. 빛 1990 (instrumental) (작곡 : 장기호)
7. 그대 떠난 뒤 (장기호 / 장기호)
8. 내겐 노래있어 (박성식 / 박성식)
9. 그녀를 위해 (instrumental) (작곡 : 한경훈)

편곡 : 빛과 소금

- 엄재덕 (ledbest@hanmail.net )

 

 

 

빛과 소금 3집(1992) 중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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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장

 

Marc Chagall (1938)

 

: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일부러 찾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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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기

사로잡힌 듯 일하고 있다

하루종일 바닷바람 맞은 해녀처럼

이마를 닦으면 소금기 대신 피곤이 묻어날 것 같다

 

백수로 살아도 백수가 아닌 것 같은 하루하루

자췻방의 사소하고도 잦은 고장들

원고와의 싸움

인간관계의 긴장

은근한 서러움

 

전시장

전시장

전시장

자원활동

전시장

외주

 

이것이 나의 일주일

 

자원활동은 즐겁고

전시장 아르바이트는 힘겹고

외주는 해야 되는데 못하고 있고

 

고달파도

몸이 고달픈 건

차라리 낫다

 

人生的味道好象是酸甜苦苦苦苦辣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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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한 장

 

1898년 Le Petit Journal에 실렸던 삽화를 <부산일보>(051122)에서 재인용.

 

근대화 시기에 관한 자료 찾다가 우연히 보고 실소. 

청나라 뒤에서 "안 돼애~" 하고 있다.

 

이래서 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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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도 뉴스도 보기 싫어

정치,에 별로 관심 없었다 치자.

뭐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없잖아?

뉴스에서 읊는 것, 귀동냥으로 들은 것, 그리고 웹서핑하다 스쳐읽은 몇 줄. 그게 다니까.

귀찮으니까 두루뭉실하게 얘기하다가 결국 '나뻐' , '싫어'로 끝내버리곤 했던 정치/대선 대화.

 

요 며칠 친구네서 텔레비전을 봤는데 뉴스를 앞부분도 다 못보고 꺼버렸다.

당선 직후라지만 명박이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싫어. 벌써부터 땡전뉴스 부활할까 두렵다.

여튼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에이씨!

 

세율조정이니 대학입시제도니 아파트 뭐시기니, 아아아 다 맘에 안 들지만

무엇보다 내년에 운하 착공하겠다는 말에는 '미치겠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지구특공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_ㅜ)

 

대선 날 집에 혼자 들어가서 인터넷으로 대선 중계를 지켜볼 때보다 더더더더더 우울하다.

어쩜 좋냐.  ㅠ_ㅠ

신당도 깨갱하고, 언론들도 벌써부타 명박이 눈치보는 것 같다.

 

총선은 또 어떻게 될랑가. ㅠ_ㅠ

민노당도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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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내일은

"자췻집-엄마네 동네로 가서 투표하기-12시까지 한강진역-네모선장과 저녁약속"

 

 

-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들이대고 혼자 걷고 혼자 돌아다니는 자유

자유로운 만큼 외로운 시간

 

그리고 겨울 바람에 오들거리는 몸만큼

쿵쾅리는 심장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게냐

 

혼자 결정하고 움직이면서도,

지금 어딘가에 기댈 구석이 있다는 걸 감지하는 순간

든든함을 느끼느니 차라리 무너져버리는 나.

 

일어서기보다는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

 

나에게 좀 가혹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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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126

 

미셸 르미유,  <천둥치는 밤>(비룡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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