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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20
    화들짝했던 순간(4)
    루냐
  2. 2007/01/17
    Q&A
    루냐
  3. 2007/01/17
    슬프지만 현실(2)
    루냐
  4. 2007/01/15
    온몸으로 저항하는 코스프레를 보여주세요!(4)
    루냐
  5. 2007/01/12
    야간비행(3)
    루냐
  6. 2007/01/11
    .... 미안해(5)
    루냐
  7. 2007/01/08
    일하기 싫어지는 이유(7)
    루냐
  8. 2007/01/08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4)
    루냐
  9. 2007/01/05
    거울 친구(3)
    루냐
  10. 2007/01/05
    충동 수강(6)
    루냐

화들짝했던 순간

화요일마다 민예총 문예 아카데미 <미학과 페미니즘>을 듣고 있다. 미학과 페미니즘의 불온한 동거에 찌릿찌릿 안테나를 세우고 수업을 들은 지 2주째. 미학은 미학이고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다ㅡ는 아니었고 뭐 이렇게 새로운 개념이 많고 이름들이며 배경이 많으냐!하면서 내 무식을 비웃고 있었다. 매주 두 시간씩 수업을 듣는 것은 막막하고도 신기한 느낌이다. 뭐랄까, 섬을 만들려고 바다에 돌맹이를 하나씩 던지는 기분?

 

좌우지간-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고.

빠르고 높게 질주하는 선생님 말씀 따라 새로운 개념들 되는 대로 삼키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다. 허이쿠야, 드디어 쉬는 시간. 좁은 강의실을 나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빨간 코트의 아가씨가 조심조심 선생님 앞으로 걸어가 도너츠를 수줍게 내민다. '착한 아가씨네'하면서 강의실 밖 정수기 앞에 섰는데,  어느새 오른편에서 아까 그 아가씨가 통화를 하고 있다.

 

"어, 어, 그래.. 전화 받기 괜찮니?"

"어, 어, 어, 음... 그냥 끊을까? 다음에 통화할래? 그냥 문자 보낼 걸.. 괜찮아? 아아. 으응."

 

뚝. 전화를 끊었다.

 

"아휴 바보 그냥 문자나 보낼 걸.."

하면서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다.

 

허허ㅡ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일세;;

그런데 이 '화들짝' 부끄러운 느낌은 뭐냐. (모른 척하기는!) 

 

 



+)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느낀다는 그 '답답함'을 좀 더 확실히 이해하겠더군요. 음음;;

++) 그나저나 혹시라도 그 아가씨가 이 글을 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줄 알면 어쩌나 살짝 걱정;;;  

+++) 0시 포스팅.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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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친구가 물었다.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야?"

나,

"지금"

 

또 친구가 물었다.

"너를 계속해서 고민하게 하는 것은 뭐인 것 같아?"

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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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현실

 

그래도 어떤 일이든지 끝이 있게 마련이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말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준대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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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저항하는 코스프레를 보여주세요!

돕헤드님의 [복면을 하고 FTA반대 집회에 간다] 에 관련된 글.

내일,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 (시작부터 변명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 전날, 무엇을 입을까를 고민하는 마음으로(그렇다고 실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그런 고민을 하진 않지만) 온몸으로 저항의 의지를 보여주는 코스프레나 복면을 하고, 한 사람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못 나가서 아쉽고, 이럴 때마다 회사를 나가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코끼리 같은 사회 앞에 개인은 개미 한 마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승리를 승리라 생각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며 하루하루 투쟁을!

+) 말만 잘하는구나. 그래도 언젠가 현실로 옮길 씨앗을 잘 살리고, 키워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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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오늘은 야근이다.

하루종일 고개를 푹 숙이고,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요즘 자책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 때문만은 아니다) 구겨져 있었지만, 내 기분이야 어찌되었든 일을 해야 한다. 평일 저녁마다 약속과 강의가 있어서 야근을 안 했으니 뭐 오늘 하루쯤 괜찮다지만, 나는 요즘 내 그림자에게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들께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6시 30분, 저녁을 먹는다는 핑계로 회사 밖으로 나갔다.

길 건너 샌드위치 가게에서 '에잇!'하고 호사스럽게 칠천 원이나 써버린다. (보통 혼자 먹으면 그렇게 안 먹죠.) 코코아와 감자샌드위치를 시켰다. 그런데 테이크 아웃도 아닌데 일회용컵에 담아주다니! 이런 이걸 무를 수도 없고... -_- 마음이 불편했다. 역시 컵을 들고 나왔어야 했나.

긴 코트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있지만 구두 신은 발이 시렵다. 그래도 걷는다.

내 맘대로 이 저녁 산책에 마음에 드는 단어를 갖다 붙여본다. '야간비행'이라고.

마포경찰서 뒷동네는 좁고 어두운 골목골목에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미로 같다. 집 안에서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허름한 슈퍼에서 계산하는 기계소리도 들린다. 셔터를 내리는 부동산 아저씨를 지나쳐 돌고 돌아 발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다시 회사로 향한다.

사실 독립할 집을 구하려고 전에 갔던 부동산에 들를 셈이었지만, 어둡기도 하고 애초에 들어갔던 방향이 달라 찾지 못했다. 다음에 와야지. 괜찮아 괜찮아.

걸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집도 서울이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엄마도 잘해주시는데 왜 난 굳이 독립을 하려 할까. 생각을 조근조근 씹다가 집이 서울인 것과 엄마가 잘해주시는 게 독립을 망설이는 데 이유가 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자답한다. 그냥 나는 조금 무서울 뿐이다. 혼자서 이 길들을 지나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팍팍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점점 더 푹 숙여진다. 나는 또 어느새 땅만 보고 걷고 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다시 생각을 고쳐본다.

'잘 살지 않아도 좋아. 어떻게든 살아보자.'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원고를 본다. (원고를 보다가 이 글을 쓴다;)

한 바퀴 걷고 오니 찬바람을 맞았는데도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머리도 쌩쌩 돌아가고 원고도 쑉쑉 들어오는 '느낌(일 뿐)'이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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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

자주 연락 못 해서 미안해

건강할 거라 믿어서 미안해

멀다고 자주 못 가서 미안해

너의 웃음에 마음 놓아서 미안해

더 많이 사랑해주고 손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지영아.

: 조용히 세상을 떠나버린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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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싫어지는 이유

 

미국과의 경제통합은 한국의 산업전반에 걸쳐 엄청난 구조조정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농업이다. 또한 서비스 산업도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복지의 양극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제조업의 경우는 대미수출 증대에 의한 다소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에서는 협상을 개시하기 이전부터 대규모의 한미 FTA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반적으로 패자는 강한 단결력으로 FTA 체결에 정치적으로 강하게 반발하는 반면, 승자의 산업과 국민(소비자)은 FTA의 경제적인 후생을 알면서도 정치적인 행동을 통해 패자 산업과 맞서 정부를 지지하는 데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만일 한미 FTA 반대에 여러 시민단체들이 연계되어 국민의 반미 감정을 자극하게 된다면 한국이 엄청난 사회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한 국내적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우선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국제 협상력을 가져야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반발과 저항을 완화시키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국내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 관계에서 한미 관계의 강화가 중국과의 관계를 소외시키는 우려도 낳고 있어 대중관계에 대한 외교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부끄럽지만,,, 내가 지금 편집하고 있는 책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차피 서점에 깔릴 책이 아니고 2000부 찍어서 정책관계자들만 볼 거라지만, 우울하다.

(이런 건 반사했어야 했어..ㅠ_ㅠ하고 우울해 하다가 나 아니어도 누가 맡았겠지 하기도 하고..)

오마이뉴스나 한겨레처럼 나도 비판받아야 하는 걸까;;; ㅠ_ㅠ

에에잇. 화나고 슬퍼.

+) 아직 발간도 안 한 책 내용 막 퍼올리는 건 나쁜 거? 그래도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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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난 애들을 물렁하게 키우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은 웃기는 소리다.

나이를 먹었다고, 인생 경험이 많다고 해서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키운다'고 말하는 발상에 반대한다. 아멜리 노통의 <이토록 아름다운 세살>을 보면 아이들은 이미 신과 같은 존재고, 모든 것을 감지하고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 그런데 그걸 '이건 해야만 한다, 저건 해서는 안 된다, 이건 좋고, 저건 나쁜 거다'라고 가르치는 어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고 있다'는 그 행위 자체를 통해서 자신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무지하고 자신들은 대단히 권위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때로는 자기만의 투철한 교육관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잘 알다시피 "나는 우리 애들을 강하게 키우지", "나는 우리 애들을 뒤쳐지지 않게 아낌없이 교육할 거야"와 같이 말하며, 보험의 라이프스타일 계획표대로 여기 저기에 척척 밀어넣고 '키운다'. 

췟, 웃기는 소리. 누가 누구를 키운다는 말인가? 착각하지 말라. 아이들은 방목하면 될 것이고, 어른은 자기 능력대로 아이들을 지원해 줄 뿐이다. 아이들은 결코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해도 그건 자기 인격이 아니듯이, 자기 소유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자기의 시간과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했다고 해서 그걸 두고두고 내가 너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 행사를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분개한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자극한다.

모든 어른들이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반쯤은 그런 어른 부류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타산지석이라고.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을 향해 화를 내는 대신 나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 권위적인 어른들 때문에 분풀이하듯 써버렸다. (나중에 보면 무지 웃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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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나의 거울이 된다.

어제는 그런 거울 같은 친구 Y를 만났다.

 



진지하고 다정하다.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것만큼 남의 삶도 사랑하려고 한다. 움직이기 전에 고민하고, Y만의 관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비춘다. 나를 바라볼 때의 그 또릿또릿한 눈빛 앞에서 무엇이든 '대충'해버릴 수 없다. 대답도 생각도 표정도... Y와 나 사이의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아직도 서로가 궁금해서 질문을 던진다.

Y는 어제도 그냥 루냐라는 작은 우주를 느끼려고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너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해?"

"너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뭐야?"

 

나는 물었고, Y도 나에게 물었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결국 울었다. 상담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몰랐던 내 고민의 지점을 알게 되었고, 겉으론 웃지만 사실은 냉소적인 나 자신이 그대로 드러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확 까발려지는 그 느낌이 당황스러워 잠시 Y 앞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그래도 사라질 순 없으니 대신 조금 덜 솔직해지려고 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Y에게 보여졌던 나는 이런이런 아이었는데, 어제는 그런 기존의 이미지에서 갑자기 벗어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기에 망설여졌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Y에게 망설여서 미안하고,

먼저 말해주고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 가득..

 

그리고...

어제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 내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이지러진 모습 그대로 나는 절룩거리며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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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수강

우공의 엔꾸엔뜨로에 갔다가

민예총 오프강좌 소식을 보고 충동 수강.

 

1월 9일부터 2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나는 인사동으로 간다.

 

오래간만에 설렌다. 이제서야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



<페미니즘과 미학, 그 불온한 동거>

 

살로메, 유디트, 클레오파트라… 수많은 서구 미술가들에게 뛰어난 예술적 영감을 선사했던 이 여성들의 공통점은? 치명적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파멸에 빠뜨리는 흡혈귀 같은 존재, 즉 팜므파탈이다. 가녀린 소녀로 묘사되던 살로메가 농염한 성적 매력을 지닌 팜므파탈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이 사회운동으로 대두되면서부터다. 가부장 사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외침이 남성들의 사회적 거세공포를 팜므파탈이라는 이미지로 드러내고 벌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서양의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왜 여성들은 하나같이 비스듬히 누워서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왜 서구의 미술사에서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또는 피카소와 같은 위대한 천재적인 여성 미술가를 찾아볼 수 없을까? 왜 오늘날 여성 미술가들은 똥이나 피를 이용한 끔찍하고 역겨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일까? 본 강의는 페미니즘 예술을 둘러싼 미학적 문제들과 이에 대한 다양한 해답들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페미니즘과 미학이 과연 행복하게 동거할 수 있을는지에 대해 조망해보고자 한다.

1 근대 미학의 전통을 넘어서 무관심성과 자율성의 미학 비판(1/9)
2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가?(1/16)
3 보는 쾌락 스펙타클로서의 여성과 응시의 담지자로서의 남성?(1/23)
4 남성적 응시(male gaze)로부터 여성 관객성(female spectatorship)으로의 모색(1/30)
5 포스트페미니즘과 대중문화 재현과 저항(2/6)
6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서
여성적 숭고(the feminine sublime)와 그로테스크(the grotesque)(2/13)
7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아서 역겨움(the disgust)과 비천함(the abject)(2/20)
8 하나의 페미니즘 미학은 가능한가? 페미니즘과 미학의 변증법(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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