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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비행

오늘은 야근이다.

하루종일 고개를 푹 숙이고,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럴까... (요즘 자책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 때문만은 아니다) 구겨져 있었지만, 내 기분이야 어찌되었든 일을 해야 한다. 평일 저녁마다 약속과 강의가 있어서 야근을 안 했으니 뭐 오늘 하루쯤 괜찮다지만, 나는 요즘 내 그림자에게서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들께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6시 30분, 저녁을 먹는다는 핑계로 회사 밖으로 나갔다.

길 건너 샌드위치 가게에서 '에잇!'하고 호사스럽게 칠천 원이나 써버린다. (보통 혼자 먹으면 그렇게 안 먹죠.) 코코아와 감자샌드위치를 시켰다. 그런데 테이크 아웃도 아닌데 일회용컵에 담아주다니! 이런 이걸 무를 수도 없고... -_- 마음이 불편했다. 역시 컵을 들고 나왔어야 했나.

긴 코트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있지만 구두 신은 발이 시렵다. 그래도 걷는다.

내 맘대로 이 저녁 산책에 마음에 드는 단어를 갖다 붙여본다. '야간비행'이라고.

마포경찰서 뒷동네는 좁고 어두운 골목골목에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미로 같다. 집 안에서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허름한 슈퍼에서 계산하는 기계소리도 들린다. 셔터를 내리는 부동산 아저씨를 지나쳐 돌고 돌아 발에 감각이 없어질 때쯤 다시 회사로 향한다.

사실 독립할 집을 구하려고 전에 갔던 부동산에 들를 셈이었지만, 어둡기도 하고 애초에 들어갔던 방향이 달라 찾지 못했다. 다음에 와야지. 괜찮아 괜찮아.

걸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집도 서울이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엄마도 잘해주시는데 왜 난 굳이 독립을 하려 할까. 생각을 조근조근 씹다가 집이 서울인 것과 엄마가 잘해주시는 게 독립을 망설이는 데 이유가 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자답한다. 그냥 나는 조금 무서울 뿐이다. 혼자서 이 길들을 지나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팍팍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고개가 점점 더 푹 숙여진다. 나는 또 어느새 땅만 보고 걷고 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다시 생각을 고쳐본다.

'잘 살지 않아도 좋아. 어떻게든 살아보자.'

다시 내 자리에 앉아 원고를 본다. (원고를 보다가 이 글을 쓴다;)

한 바퀴 걷고 오니 찬바람을 맞았는데도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머리도 쌩쌩 돌아가고 원고도 쑉쑉 들어오는 '느낌(일 뿐)'이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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