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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기대.

장애인부모연대에서, 적어도 내가 보기에 꽤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활동가 한 명이 부모연대 조직을 떠나 자신이 가고픈, 활동하고 싶은 터전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 이는 부모연대 활동가 내에서 비교적 신망이 두터웠다. 나 역시 그와 (거리가 멀기에)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회의 공간이나 집회, 혹은 교육 등을 통해 살펴본 그의 행실을 보면서 매력있다고 생각하였다.

 

매력의 내용인즉, 아무리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했고, 또한 약속 시간보다 미리 나와서 기본적인 점검 정도는 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자신이 기대한 바가 좌절되는 상황 앞에서 남을 탓하기보다는 그 상황 자체를 묵묵히 견뎌내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신의 기획에 대한 성찰, 혹은 비판적 검토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화를 내거나 짜증 내지 않는 것도 운동판에서는 큰 미덕이자 장점이다)

 

어쨌든, 그런 그이기에 그가 그만둔다는 소리를 같은 공간 내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때, 약간의 놀람과 부모연대 조직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운동판이 대체로 그렇듯이, 그 이 한명 빠진다고 해서 조직이 휘청거린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의 미덕이 우리 조직이 운동판에서 뿌리내리는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전국부모연대 워크숍에서 그를 만났고, 몇몇의 지역 및 중앙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그의 거취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노라고 말했고, 그의 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별 다른 이견을 달지 않은 채, 약간의 아쉬움만을 드러낸 채, 전반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우리 조직이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난다는 그의 말 앞에서 그를 붙잡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는지도.

 

그런데, 중앙의 사무처장이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 모두들 서운해 하면서 떠나는 활동가를 붙잡을 생각을 왜 하지 않는거예요? 좀 더 함께 하자고 말할 수도 있지 않나요? 모두들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

 

처장을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 그래. 왜 잡는다는 생각을 전혀 안 했지. 떠나는 것을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앞서 말했듯이 '조직이 싫다기보다는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니깐 그렇지 않겠나' 뭐 이런 식의 말이었는데, 내 머릿 속은 내내 앞의 생각들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이 생각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강이나마 파악하였다.

 

어쩌면 나는, (혹은 그 자리의 대다수 활동가들은) 부모연대라는 장애인운동단체에 대한 책임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부모연대의 방향이나 정체성 등을 고민하기보다는 단지 현재 활동한다는 사실에만 매몰되어 있기에 그 활동가가 부모연대를 떠나는 것이 부모연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나 역시 언제 부모연대를 떠날지 모르기에 그 활동가를 잡으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활동가의 떠남 앞에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태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서글프거나 혹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조직에 대해 그 만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고,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조직을 쉽게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이기에

 

물론, 하나의 조직에서 일을 한다고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활동가라면, 조직에 대한 책임감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가 자신을 좀 더 건강하고 긴장된 상태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일을 그만둔다는 활동가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함께 하는 사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행자에 대한 기대는 결국 그 길을 행하고 있는 조직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의식하는가에 따라 가늠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환기한다.

 

'떠나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 라는 세간의 통념이, 요즘에는 쿨한 태도로 선호된다지만,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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