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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지다? 장애가 있다?

전현일(미국 IFDD 대표) 대표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 장애인을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부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아래가 그 메일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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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인, 발달/지적장애인, 장애아동, 학습장애학생, 자폐아....

 

이런 단어에는 그러한 장애를 갖인 사람을 일괄적으로 규정지어 버리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칭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그들을 일반 비장애 사회와 구별하며. 그러므로 무의식중에 차별을 불러오고, 따라서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격하된 차별이 자연히 있게 됩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을 폄하해서 부르는 말들이 우리사회에도 많지요. 하지만 발달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격, 존엄성을 무시하는 말이라고는 흔히들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자사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일찍이 People First라는 단체를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이기 전에 먼저 사람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지요. 그 결과 미국의 모든 법령, 해당 관공서, 신문 등 모든 곳에 용어가 바뀌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아니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이것은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고 진정으로 차별을 없애고 당사자의 인격과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통합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장애를 가진 미국인 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라고 번역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그까짓 말이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이냐”고 반응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불러오는 영향은 의외로 강력하며 커다란 사회적 오해를 불러온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제 치하에 “죠센징”이 그랬지요.

 

장애인 보다는 장애를 가진 사람, 지적장애인 보다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 장애아동 보다는 장애를 가진 아동, 학습장애학생 보다는 학습장애를 가진 학생, 자폐아 보다는 자폐증을 가진 아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 한국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의 중요한 한 발자욱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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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일 대표님의 메일에 장애인계에서 활동하는 몇몇 사람이 답멜을 보냈는데, 내용이 아래와 같다.  

 

2. 보내주신 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고 저 또한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때도 좀 길지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장애우'란 용어에 대한 논란이 있었을 때 제가 함께걸음에서 긴 장문의 글을 2회에 걸쳐 썼기 때문에 그 때 고민을 좀 했었죠. 일부 사람들은 영어식 표현 아니냐고 했지만 전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됐습니다. 장애는 특징이죠.

 

3. People First 운동의 의미와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서 누가 장애를 의도적으로 가진 사람이 있나요? '가지다'라는 동사는 자발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볼 때 '장애를 가지다'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더 낫지 않을까요? 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여 차별적인 언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말에서는 모든 수식어가 피수식어 앞에 온다는 점에서 '시각장애인'에서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당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또한 굳이 People First 운동의 취지에 따르더라도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언어와우리말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무작정 people first 방식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4. 사실 장차법을 만들 때 그 표현을 가지고 논란을 했었거든요. "장애를 가진"이란 능동적,주체적 표현과 "장애가 있는" 이라는 현상적 혹은 존재적 표현 결국은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되었답니다.

제2조 (장애와 장애인) ①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②장애인이라 함은 제1항에 따른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5.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생각할 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오면서 당연히 나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가 장애인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장애를 특혜와 면제의 조건 쯤으로 여기면서 장애를 강조하는 것이 요즘의 우리 모습입니다. 특히 장애인단체에서는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특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데 이 사회에서 장애인단체는 정치적 힘을 더욱 얻어가면서 비장애인과 다른 점만을 더욱 강조합니다. 보편보다는 특별을 강조하는 풍토가 가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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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보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보는 게 좀 더 타당하다는 의견 같다(지운 내용 2-3가지가 있는데, 모두 이와 같았다)

 

근데, 나는 의견이 약간 다르다. '장애를 가진'이란 표현보다, '장애가 있는'이란 표현이 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유는 '가지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유의 의미이고, 장애인에게 장애는 그 사람의 정체성의 일부분이란 점에서 '소유'가 될 수 있긴 하나,(오늘날 사회에서) 근본적으론 장애인이 된 원인을 두고볼 때, 자신이 원한 것이기보다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등록장애인의 90% 이상이 이른바 후천적 장애인이다) 

 

반면 '장애가 있는'이란 표현은 어느 분의 답글에서처럼 존재론적 차원에서 규정되는, 따라서 '장애가 있는 상태'가 강조된다. 그러나 각각의 사회적 지원 체계의 수준/방식에 따라 그 장애 상태는 덜해질 수 있거나 혹은 장애 상태 그 대로일 수 있다. 때문에 '장애인'에 대해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게 오늘날 '장애' 개념에 견줘볼 때 좀 더 타당하지 않나 라는 것이다.

 

물론, 가진 것도 하나의 상태일 순 있지만, '있다'라는 동사와 견줘볼 때, 전자가 정태적 뉘앙스라면 후자는 동태적 뉘앙스가 좀 더 드러난다  

 

가지다/안가지다 있다/없다라는 축은 동일하지만,

<장애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장애인콜택시가 있음으로 인해, 장애를 덜 가지다/더 가지다>

<장애인이 살아가는데 있어 장애인콜택시가 있음으로 인해, 장애가 덜 있다(하다)/더 있다(하다)'>

 

생각하면 좀 더 분명하게 구분된다. 앞의 문장은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뒤의 문장은 장애인콜택시가 있어 장애인의 외출이 그 만큼 자유로워졌다 (장애가 덜하다) 것을 말해준다.

 

 

한편, '장애가 있는 사람'과 '장애인'에 대한 구분하면서 '장애가 있는(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다는데, 이는 한국어와 미국어의 특징을 좀 더 비교해봄직한 대목이다. 가령 전현일 대표님이쓰신 "미국 장애인 차별금지법은 “장애를 가진 미국인 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고 하지만, 한국어로서 이 문장은 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이는 지금껏 장애를 가진/있는 사람과 장애인을 구분하지 않은데서 오는 낯설음일 수도 있다)

 

 

 요컨대, 이렇게 구분한 의도가 결국 (장애보다는) '사람'을 강조하자는 것인데, 한국어에서 '장애를(가) 가진(있는)사람'과 '장애인'으로 구분했을 때, 실제 '사람'이 강조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는 좀 더 숙고해봄직하다. 장애와 존재(사람)을 구분하자는 의도는, 일견 타당한 듯 하지만, 정작 장애인 당사자(존재)에게 장애는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이를 구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좀 더 논의되어야 할 대목이기 때문이다.  

 

 

전현일 대표님은 미국에서의 이러한 구분이, "진정으로 차별을 없애고 당사자의 인격과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통합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나, 요는 한국 현실에서 '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미국과는 좀 더 차이날 법한 대목이 있다. 가령 우리는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권에서 자라왔고, 때문에 건강한 몸과 신체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문화적 패러다임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등은 장애인운동을 한다는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예외일 수 없을 만큼 강고하다.  때문에 '장애를(가) 가진(있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이 실제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장애'가 강조될 것인지 아니면 의도하신 것처럼 '사람' 이 강조될 것인지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전현일 대표님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장애담론에 대한 한국 사회에서 의견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실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장애담론이란 것은 선진국의 이른바 '장애학'을 소개하는 정도이고, 장애운동에 대한 이론화도 무족하다. 물론 장애운동 한 귀퉁이에서 발을 담구고 있는 나 역시도 이런 부족한 현실에 대한 책임이 없진 않기에 대놓고 불평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_-;

 

 

전현일 대표님의 메일 내용을 계기로 한국 사회 장애담론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보아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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