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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나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다. 4공단과 미군부대가 우리동네의 주 취업장소였고 대부분 가난했다. 4공단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70년대 중반 기계제작업을 시작했고 낙농업을 부업으로 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격상 사업은 어머니가 추진한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성장기와 맞물려 상대적으로 사업은 그런대로 잘됬고 안정된 경제생활을 성장기에 보냈다 이러한 상대적 부유함이 기독교의 윤리와 어울려 나에게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원칙(강박)을 주었던것 같다.

한 친구를 10여년전에 블로그에서 우연히 다시 보게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고립을 즐기고(?)있던 때였다. 그 친구랑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20대 30대 삶의 과정이 나랑 비슷한점이 많아 많이 반가왔었다. 20대 초반 같이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중에 졸업하고 현장에 뛰어든 사람도 드물었지만 이후 장애인들과 관련있는 삶을 사는이는 거의 없을것이다. 특히 장애인운동에서도 밀려나있던 지적장애인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것도 놀라왔다.
최근에 정신장애인과 함께하는 일을 하는것을 보고 서로 이야기한적도 없는데 어떻게 마음가는 부분이 이리 비슷할 수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상황은 그냥 마음만 있고 공부정도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친구의 모습에 자극도 받고 힘도 받는다.

그냥 그 친구의 마음씨와 삶의 모습이 멋지고 여러 힘겨운 과정을 잘 헤쳐나온 모습이 훌륭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 또 앞으로 그의 삶에 평안이 깃들기를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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