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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한 살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졸고 있는데

 

방문 여는 소리가 딸깍 들리더니

주선생님이 나옵니다.

 

예의상 고개를 돌려서 한번 쳐다봤더니

갑자기 주선생님이 양손을 들어서 희한하게 흔듭니다.

"이야~~" 소리도 지르는데

얼굴은 좀 처럼 보지 못한 아주 특이한 표정입니다.

 

"현숙아. 왜 그래?"

 

"오늘이 미루 생일이잖아! 이야~"

 

소리는 환호성이었고

표정은 기쁨이었습니다.

 

"이야~~"

 

저도 같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부둥켜 안고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수고했어"

"고생 많았어"

 

저녁땐 셋이서 미루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낮에 나갈 일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케잌을 사러 빵집에 들렀습니다.

 

"초 몇 개 드릴까요?"

"한 개요"

 

순간 울컥했습니다.

눈물이 삐질삐질 나옵니다.

잔돈 계산하는데 괜히 밖을 쳐다봤습니다.

 

"미루야~~생일 축하해~!!!"

 

케잌을 사들고 왔는데

집이 난장판입니다.

놀이집에서 미루 생일이라고

사탕, 과자, 나비인형, 공책, 연필 등

당장은 못 먹고 못 쓰는

많은 선물을 줬는데 그게 집에 다 널려있습니다.

 

주선생님과 미루는 그 사이에 파묻혀서

놀고 있습니다.

 

"우리 케잌에 불도 붙이고 사진도 찍자"

 

카메라 타이머를 작동시켜서

10초 후에 셔터가 눌러지게 해 놓고

셋이서 이 자세 저 자세를 취했습니다.

멋있게 한장 찍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더 멋진 자세로 찍기 위해 자세를 취합니다.

건전지가 없습니다.

항상 이런 식입니다.

긴급히 건전지를 조달해서 다시 찍었습니다.

 

미루는 오늘이 자기 생일인 걸 아는 지

계속 활짝 활짝 웃습니다.

 

"이거 봐 ,이거 봐"

"어?!! 미루야, 생일 기념으로 인제 걸어다닐려고?"

 

집을 왔다갔다 하던 미루는

쇼파를 잡고 일어서더니 손을 떼고 다리로만 서 있습니다.

보행기를 잡더니 또 손을 안 대고 섭니다.

거실에 있는 미닫이 문을 잡고 서더니 손을 떼고

욕실 턱에 걸터서 목욕물 받는 제 등을 잡고 섰다가

혼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미루 낳기를 참 잘 한 것 같애"

"그런 생각이 들어?"

"응"

"구체적으로 왜?"

"참 좋잖아."

"또?"

"가만 있어봐, 말 시키지  말아봐"

"상구, 또 울려고 그러는 거지? 자기 말에 울컥해서?"

 

오늘 미루는 한 살이 되었습니다. 

 

 

<한 살 기념 포스터. 사진은 말걸기님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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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전야제

내일은 미루의 첫 생일입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오늘 미루 생일 전야를 맞아

방바닥에 누워서 생일축하 특별 토크쇼를 진행했습니다.

 

강: 벌써 일년이다.

주: 그러게

 

강: 그때 현숙이 니가 10신가 11신가에 운동갔었는데...

주: 9시에 갔을 걸? 그때 상구가 피곤하다고해서 나 혼자 갔다 왔지

 

강: 그리고 일찍 잤지?

주: 응...그러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깼는데, 자꾸 뭐가 나와서...

 

강: 그래서, 어차피 내일 아침에 병원 갈 거니까 ...

주: 일단 자자고 했었는데, 계속 피가 나오다가 양수가 터졌지. 애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강: 우리가 확신을 하고 나서 외친 말이 있지. '등심 구워!!'

주: 히히, 맞아. 근데 그땐 등심 다 먹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배가 빨리 아플까 생각했다니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강: 등심 한 입 물고, 으윽 아파하고 또 한 입 물고 그랬잖아.

주: 그랬지. 흐흐

 

강: 근데 난 그때 지금 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느낌이 확 오더라구.

주: 그랬어? 난 왜 벌써 옷 입으라고 하나. 아픈 거 좀 가시면 옷 입어도 되는데 빨리 옷 입으라고 해서 좀 귀찮았었는데...

강: 그때 옷 안 입었으면 큰 일 날뻔 했었어.

주: 맞아. 그때 안 나갔으면 미루 집에서 낳을 뻔 했다니까.

 

주: 엘리베이터 탔는데 그 땐 정말 누가 온 몸을 뒤트는 것 같더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는거야.

강; 내가 옆에서 보니까 니가 이 어떤 압도적인 힘에 밀려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내더라고.

주: 엘리베이터에서 그랬고, 또 아파트 바로 앞에서도 그랬지.

 

강: 아파트 앞에서 너 쓰러져 있고 내가 단지 앞으로 뛰어갔을때 차 한대가 들어왔었거든. 근데 그걸 잡을까 하다가 뒤에 오는 택시를 잡았었는데, 그러고 아파트 앞으로 오다 보니까 아까 내가 안 잡았던 차가 니가 쓰러져 있는 곳을 지나는 거야. 무슨 일 났을까봐 정말 죽고 싶더라.

주: 내가 아무리 그래도 의식은 있었지. 차가 오길래 피했지.

 

강: 택시 타고 갈 때에도 그런 식으로 신음을 두번인가 했지.

주: 맞어

강: 그 사이엔 이런 얘기도 했잖아. "상구 정신 차려"

주: 우히히. 그래 그래. 니가 지갑에 돈을 못 꺼내가지고 내가 그랬지.

 

주: 그리고 병원 앞에 가서도 아저씨 한테 병원 입구가 여기니까 세워달라고 막 그랬지.

강: 맞어, 산모가 자기 일만 할 것이지.

주: 근데 그 택시 아저씨가 또 마침 그 병원 구조를 잘 알아서 병원 뒤로 가서 2층 입구 앞에 딱 차를 대줘서 진짜 다행이었어. 그 밤에 정문 닫혀 있는데 내렸으면 어쩔뻔 했어.

강: 맞어. 문은 잠겨 있지. 나는 들어가는 문 찾을려고 막 이리뛰고 저리뛰고 했을거야.

주: 그 사이에 애 낳았을거야.

강: 맞어 맞어. 병원 도착하고 20분만에 낳았으니까 딱 헤맬시간이지. 애 들고 병원 들어갈 뻔 했다니까.

주: 그래 맞어. 히히.

 

강: 아휴...그때만 해도 이 배 속에 있던 애가 지금은 방에서 자고 있네

주: 지금도 생각난다. 미루가 처음 나와서 눈을 하나만 겨우 뜨고 나한테 안길 때...

강: 그러게. 미루가 막 나왔는데 간호사가 미루를 꺼꾸로 들어가지고 저울에 올려놓던 생각난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손가락 발가락 다섯개씩 인가 세어 봤다니까.

주: 미루 나오는 거 봤어? 나올때 느낌이 어땠어?

강: 그냥 무덤덤했는데...이런 생각은 들었지. "아...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구나" 하는 느낌

주: 나는 미루 처음 안고 젖을 물렸는데 미루가 젖을 세번 정도 빨았었던 기억이 나.

강: 나도 기억나.

 

주: 휴...하여튼 그때 죽을 뻔 했어. 출혈이 심해서

강: 그러게 말야. 나는 미루 나오고 나서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데 니가 하도 안 나와서 걱정했다니까

주: 미루가 나오자 마자 확 춥더라고. 피도 많이 흘리고. 의사도 출혈이 계속되니까 찾느라고 한참 고생하고...하여튼 미루 낳고 나서 많이 힘들었어.

 

강: 그랬는데 벌써 1년이 지나버렸네....근데 방바닥이 왜 이렇게 뜨겁냐?

주: 5월에도 한번씩 불을 틀어주나봐. 오늘 비오니까 이런 날은 한번씩 틀어줘야 돼.

 

딱 1년이 흘렀습니다.

1년 전 오늘 이 시간 주선생님은 운동을 하러 나갔고

저는 쉬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미루를 낳았습니다.

 

내일 미루 생일에는

기념으로 미역국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미역국을 해서 미루는 안 먹을거니까

주선생님이랑 저랑 둘이 먹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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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잔치

미루 돌잔치에

식구들 10명만 모이기로 했는데

소문이 퍼져서 17명이 모였습니다.

 

17명이 앉을 수 있는 방은

꽤 그럴 듯한 규모입니다.

 

앞쪽 가운데에는

돌잡이를 위한 상이 놓여있고

 

그 뒷 벽엔

주선생님과 제가 심혈만 기울인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런 날 아니면

못 먹는 음식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어쨌거나 이럴 땐

많이 먹는 게 남는 겁니다.

 

미루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싱글 거리다가

가져온 이유식을 잘 받아 먹고 놉니다.

 

무슨 특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도 아니라서

우리는 그냥 밥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 사이 작은 아버지들께서

봉투를 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치신 후에는 할아버지께서

봉투를 꺼내서 주시는데 엄청 두껍습니다.

 

"이건 미루한테만 써라"

 

이걸로 미루 통장을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액수가 정말 큽니다.

 

이것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돈도 없는 분이 증손자한테 마음을 크게 쓰셨습니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자연스럽게 돌잡이를 합니다.

 

상 앞에 앉은 미루는

맞은 편에서 열 몇명 되는 어른이

다들 자기를 보니까 멈칫합니다.

 

그러다 공책에 손을 댑니다.

 

"상구 형은 미루가 뭐 집었으면 좋겠어?"

"나? 돈!"

 

누군가가 돈과 공책의 위치를 바꿔놨습니다.

제 소원이 이뤄지도록 한 배려입니다.

 

자, 이제 미루가

손을 쭉 뻗습니다.

 

쌀그릇에 손을 푹 집어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집으라고

연호했지만

미루는 쌀만 가지고 놉니다.

쌀을 집어서 돈 위에 뿌립니다.

 

제가 외쳤습니다.

"그래~미루야. 밥 많이 먹어라!!"

 

사람들한테

쌀을 집으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뜻이야. 잘 살라는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이런 대답을 애매모호한 대답이라고 합니다.

 

"자, 인제 갑시다"

 

정말 밥만 먹고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인사를 하고 헤어집니다.

사촌동생은 쉬는 날이라서 그냥 시골에 내려왔다가

얼떨결에 합류했다는데 실컷 먹고 나더니

천냥 빚을 갚을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합니다.

 

"형수님, 1년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형님, 1년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1년 동안 수고 많았던 건 맞습니다.

그 말이 듣고 싶기도 했습니다.

 

고생스러웠던 것만 치면

육아휴직을 또는 못하겠다 싶습니다.

 

근데 요즘 들어서는

앞으로 한 동안

지난 1년이 무척 그리울 것 같습니다.

 

요새 주선생님이랑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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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 준비 2

<지난 5월 5일 미루 돌잔치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 종이에 적어놨던 일기인데 지금 올립니다.^^>

 

"요새 돌잡이 할 때는 마이크도 올린대~"

"왜요?"

"아나운서가 잘 나가잖아"

 

미루 돌잔치를 3일 앞두고

마이크를 우리가 준비하기로 한 게

기억이 났습니다.

 

"아..그리고 현수막 하나 해라"

 

어머니는 마이크 말고

미루 사진 이쁘게 들어간

현수막도 원하셨습니다.

 

10명 모여서 조용히 밥만 먹기로 한 자리에

50명 쯤 모일 때 필요한 걸 원하십니다.

 

마이크는 주선생님 카메라에 붙이는 걸로 하기로 했습니다.

현수막이 문제입니다.

 

"현숙아, 편집 오전 중으로 할 수 있지?"

 

세명이 같이 찍은 사진 중에서

제일 잘 나온 걸로

포토샵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어? 기억이 안 나"

 

하도 오랜만에 포토샵을 써서

사용법이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답니다.

 

"꼼수를 발휘해 봐. 너 그거 전공이잖아."

"알았어"

 

주선생님은 제가 자기보다

디자인 감각이 있으니까

무조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답니다.

 

"아니, 그렇게 말고...글자 색깔을 연두색으로 바꾸는 건 어때?"

"이렇게?"

"응...그리고, 사진 위에는 '미루의 한 살' 이라고 쓰자.."

 

2시간 동안

이렇게 고치고 저렇게 고치면서

엄청 작업을 했습니다. 마음이 급하니까 잘 안됩니다.

 

"그래, 그래..그 박스만 빨간 색으로 하면 되겠다"

 

마지막 요구사항을 처리한 주선생님이

갑자기 "푸하하하하" 웃기 시작합니다.

 

"왜 그래?"

"이거 선거 포스터 같잖아!!!"

 

미치겠습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그 박스를 파란색으로 바꾸면 어때?"

"그러면 선거 홍보물 맨 뒷면이잖아!!"

 

아무튼 시간 없으니까

이걸로 맡기기로 했습니다.

 

돌 잔치가

유세장 분위기가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현수막 업체에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큰 일 났습니다.

당장 맡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급할 수록 냉정해야 하는 법

주선생님과 저는 열심히 다른 집을 알아봤고

결국 새로운 현수막 업체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거기서 그럽니다.

"저희가 도안해서 보내드릴테니까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만 말씀해주세요"

 

고생한 주선생님 눈치를 봐서

그냥 선거 포스터로 갈까 생각하는데

주선생님이 자기는 괜찮답니다.

괜히 2시간 고생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 결국

업체에서 해준 도안대로

현수막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깔끔하고 이쁩니다.

 

현수막 아랫부분에는

이렇게 적어놨습니다.

 

'고맙습니다!

미루가 이 만큼 자랐어요.

앞으로 더 재미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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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기념

"어머니, 어버이날 기념 전화 되겠습니다~"

 

어버이날 해가 뜨고

점심 시간 다 지나서 배가 좀 부르니까

부모님한테 전화할 생각이 났습니다.

 

"응..고맙다. 미루한테도 어버이날 축하한다는 얘기 들어라"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도 어버이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놀이집 정문에는

색종이로 접은 꽃이

매달려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엄마, 아빠 사랑해요. -미루-'라고

적혀 있습니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라고 쓴

종이 카네이션도 놀이집에서 보냈습니다.

 

미루는 글씨를 못 쓰니까

선생님이 미루 손에 크레파스를 쥐어준 다음에

자기가 막 썼답니다.

 

정말 새로운 느낌입니다.

 

놀이집에서 돌아온 미루는

유난히 혼자 잘 놉니다.

 

부엌에서 저녁 식사와 실랑이 중인 주선생님한테도 안 매달리고

책상에 앉아서 매우 바쁜 척 하는 저도 안 괴롭힙니다.

 

그냥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장난감 상자 앞에서 여러 장난감과 대화를 나눕니다.

 

소리도 '끼악~' 지르지 않고

전혀 보채지도 않고

그저 신나게 놉니다.

 

"상구~미루 오늘은 왜 이렇게 잘 놀지?"

 

근래 들어서는

정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글쎄"

 

"저렇게 노니까 우리가 진짜 편하네"

"어버이날이라서 우리한테 잘 해주는 건가?"

 

미루의 센스가

벌써 어버이날까지 챙길 정도가 됐습니다.

 

미루 덕분에

어버이날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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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름

메일을 확인하는 주선생님 옆에서

뒹굴고 있는데 메일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접힌 살 트러블~'

 

첫 문장 만으로도

확 공감이 갑니다.

 

"이거야~이거~"

 

손으로 옆구리 살을 꽉 잡아서

보여줬습니다.

 

"이거 봐 ..이거. 접힌 살"

 

주선생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를 합니다.

 

"그건 잡힌 살이지..."

 

이메일 내용을 좀 더 보니까

'지루성 피부염, 기저귀 피부염, 땀띠...'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기 피부관련 메일이었습니다.

 

느닷없이 5월에 여름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미루가 땀띠가 났습니다.

 

빨리 여름 준비를 하고

땀띠도 해결해야 합니다.

 

작년에 미루가

여름을 처음 맞았을 때는

 

이것 저것 준비해서 "이제 준비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달력을 보니까

9월이었습니다.

 

이번엔 미리미리 준비를 할 겁니다.

전 못 해도 주선생님이 이런 건 잘 합니다.

 

벌써 주선생님은

미루 반팔 티를 꺼내놓고

옆집에 가서 안 입는 반팔, 반바지도 얻어 왔습니다.

 

"상구, 인터넷에서 이 옷 준비했는데, 어때?"

 

혹시 추운 날 입기 좋은

얇은 잠바도 벌써 하나 주문해놨습니다.

 

"물기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래..

물티슈로 닦았으면 마른 수건으로 한번 닦아주고.."

 

땀띠를 없애기 위해서는

잘 말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작년 여름엔 다 알았을 얘긴데

처음 듣는 얘기 같습니다.

제 인생은 이런 식으로 늘 새로웠습니다.

 

이제 다시 여름입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미루에게 두 번째 맞는 계절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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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

"미루 어딨냐?"

 

어머니는 미루랑 통화하는 걸

좋아하십니다.

 

주로 어머니는 "미루야~미루야~"를 외치시고

미루는 딴 짓을 합니다.

 

딴 짓 하기 몇 달 만에

그래도 요즘은 미루가 어머니 목소리에 반응을 보입니다.

 

"응..에..헤에"

 

이 정도의 대꾸만으로도

어머니는 아주 좋아하십니다.

뭘 대화도 안 되는 데 그렇게 좋아하시나 싶습니다.

 

어쩌다가 미루랑 떨어져 있게 됐습니다.

 

"상구~미루 바꿔줄께~"

 

저랑 통화하던 주선생님은

미루를 바꿔줬습니다.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조용합니다.

계속 기다렸습니다.

 

"왜 암말도 안 해?"

"응?"

"상구가 얘기해야 미루가 반응을 보이든가 하지"

 

건너편에서 먼저 "여보세요"를 안 해서

바꿔준 줄 몰랐습니다.

 

"알았어...미루야~~미루~"

 

반응이 없습니다.

 

"미루야~아빠야, 아빠~~미루야~안녕~"

 

무반응입니다.

어머니는 왜 이런 걸 좋아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미루야~아빠, 아빠. 쿵쿵작작쿵작작"

 

어떤 핸드폰 CF에 나오는 음을 흉내냈습니다.

평소에 이걸 하면 미루가 춤을 춥니다.

 

"쿵쿵작작~쿵작작"

 

다른 지하철 승객들이 집단적으로

저를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하철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큰 소리를 냈습니다.

 

"쿵쿵작작~쿵작작"

 

멀리서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왔습니다.

 

"미루가 막 손뼉 치고 좋아해~"

 

얼마나 기다리던 소식인가.

공공장소에서의 시민윤리를 져버리고

막 소리를 낸 보람이 있습니다.

 

어머니도 이 맛에

미루하고 통화를 하시는가 봅니다.

 

주선생님도 제 기분을 알았던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또 해 봐~~"

 

안 한다고 하면 변덕이 심한 아빠로 찍힐까봐

그냥 다시 아까 그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더 했을까

주선생님 목소리가 들립니다.

 

"으악~미루가 자꾸 입 속에 손 넣어서 통화 더 못 하겠어. 끊을께~"

 

마지막 몇 번은

안 하는 게 좋을 뻔 했습니다.

괜히 얼굴만 화끈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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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일어나더니

미루가 잠이 드는

저녁 8시 이후는 우리의 자유시간입니다.

 

근데 요새는 미루가 자다 깨는 날이 많아서

별로 자유롭지 않습니다.

 

"끼잉~" 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달려가느라고

항상 대기 상태입니다.

 

두 달 전 일입니다.

 

"끼잉~"

"미루 깼다"

 

젖 먹을 시간은 아니고

토닥 거리면 금방 잠 들 것 같을 때는

제가 달려갑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미루가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졸려서 눈은 못 뜨는 게

두 손을 열심히 부딪힙니다.

 

"현숙아~미루가 일어나서 박수 쳐..."

"히히. 정말? 어디어디"

 

주선생님은 좋은 구경거리 났다고 좋아하고

미루는 인상을 쓰면서 계속 박수를 쳤습니다.

 

한 달 전 일입니다.

 

"미루 깼다"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미루가 방에서 기어 나오고 있습니다.

눈은 여전히 감고 있습니다.

 

보름 전쯤 일입니다.

 

"미루 깬 거 같애"

"현숙아 문 조심해서 열어"

 

주선생님이 달려 갔습니다.

문을 조심 조심 엽니다.

미루가 기어 오다가 부딪히면 큰 일 납니다.

 

문을 열던 주선생님이

깜짝 놀랍니다.

 

미루는 진작에 다 기어와서

문을 잡고 서서 문을 긁고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했던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루가 자다가 깨서 하는 짓은 모두

그 시기에 한참 재미 붙인 것들입니다.

 

한참 박수 칠 때는 자다가 일어나서 박수 치고

한참 길 때는 자다 일어나서 깁니다.

 

열흘 쯤 전에는

미루가 깨서 갔더니

침대를 잡고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상구~미루 봐~"

 

주선생님의 외침에 안방에 달려간 저는

눈은 감고, 입은 울면서

침대에 막 올라가고 있는 미루를 발견했습니다.

 

눈 뜨고도 한참 용을 써야 올라가는 침대를

눈 감고 올라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발은 침대에 걸치고 있습니다.

 

나중에 걷기 시작했을 때

잠결에 막 걸어다니면 어쩌나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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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책

[***한 달 전쯤에 종이에 끄적여 놨던 글인데 인제 올립니다***]

 

주선생님이

미루를 엄청 이뻐합니다.

 

"으하하하하~"

 

미루를 안고 뒹굽니다.

 

미루도 소리를 냅니다.

"낑낑"

 

또 한 바퀴 뒹굽니다.

 

"낑낑...낑"

 

다시 한 바퀴 뒹굽니다.

미루가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이제 그만 하지'

 

속으로 생각하는데

딱 그때 주선생님이 말합니다.

 

"미루는 엄마가 이렇게 괴롭히는데 안 힘든가 보네..."

 

그러더니 또 계속 뒹굽니다.

 

미루는 너무 괴로워하고

주선생님은 혼자 신났습니다.

 

봄이 되니까 주선생님이 힘이 넘칩니다.

 

미루를 놀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집앞 공원에 들렀습니다.

 

미루를 낳고 처음 맞는 봄

살구꽃, 매화, 벚꽃이 사방에 뿌려져 있습니다.

 

세심한 집중력으로

공원을 정밀 탐구하는데

'복자기'라는 식물도 보입니다.

 

잎이 꽃봉오리처럼 모여 있는게

아주 신기합니다.

 

"어? 저쪽 봐..잎이 펼쳐져 있는 것도 있어"

 

남 집중탐구할 때

꼭 딴 데 보는 주선생님이

 

10미터 쯤 뒤에 잎이 활짝 핀

복자기를 발견했습니다.

 

꽃이 아니라 잎만으로도 너무 이쁩니다.

 

"역시 과정 하나하나가 다 이뻐~미루 키우는 것도 그럴거야"

 

언제나 생활 속에서

교훈을 찾기에 여념 없는

주선생님의 말입니다.

 

아침엔 괴롭히더니

봄을 보니까 미루가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미루한테도 꽃과 나무를 보여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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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곳만 좋아한다

미루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책상 밑과 식탁 밑입니다.

 

틈만 나면

꼭 그 좁은 데로

기어 들어갑니다.

 

책상에 앉아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미루가 오른쪽 밑으로 지나갑니다.

 

"미루야~또 책상 밑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기어 나옵니다.

의자 뒤로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책상 밑은 온갖 색깔의 전선이 엉켜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입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인터넷을 연결하는 어떤 장치에는

노랑색, 주황색 불빛이 계속 깜박입니다.

 

책상 밑이 환상의 세계인 반면

탁자 밑은 고통의 세계입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의자 옆을 지나 책상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 밑에서 주선생님이 깔아 놓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좋겠는데

미루는 꼭 우리 다리를 잡고 일어납니다.

 

"퍽"

 

탁자 아래 쪽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미루 괜찮어?"

 

괜찮습니다.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이

그냥 앉습니다.

 

"아프겠다"

"그러게..."

"퍽"

 

그새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정말 아픈 얼굴입니다.

 

"으아앙~"

 

그럼 그렇지

두 번이나 받았는데

안 울면 너무 독해서 싫습니다.

 

미루를 번쩍 안아서 달래주고

밥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조용해집니다.

 

좀 있다 보니까

미루 머리에 혹이 났습니다.

 

"현숙아, 미루 여기 만져 봐..혹 났어..."

 

주선생님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미루 머리 모양이 원래 이래..."

 

그 후로도

미루는 틈 날 때 마다

탁자 밑에 들어가서

여전히 머리를 부딪히고,

가끔 엄마 엄지 발가락을 물기도 합니다.

 

이유식 먹는 미루를 재밌게 해주기도 할 겸

미루 기분도 느껴볼 겸

오늘 아침엔 제가 탁자 밑에 들어가서 미루를 올려다봤습니다.

 

주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 거기서 뭐해~빨리 나와" 하며 구박했고,

 

미루는 이유식을 물고

저를 내려다 보다가 아주 크게

기침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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