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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계급성을 잃는 순간 희망은 없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4/07/31 13:33
  • 수정일
    2014/07/31 14:1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작년 가을 현대중공업에 2002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파 집행부가 들어섰다. 지난 달 임단투 결의대회에는 오랜 만에 수 천 명의 조합원들이 모이는 등 조금씩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죽음의 공장을 넘어 다시 노동계급의 진지가 되기 위한 관건은 무엇보다 이미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공장 내 비정규직노동자들에 있을 것이다. 민주파 집권 이후 현대중공업과 하청노동자들의 변화된 상황을 알기 위해 사노신은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전 지회장인 조성웅 동지와 현 하창민 지회장의 만남을 기획했다. 흔쾌히 응해주신 두 동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편집자]



모든 것들이 시들해질 때에도 누군가는 무모할 정도로 묵묵히 자신의 싸움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누구 하나 관심 가져 주지 않았어도 노동자들의 죽음 곁에서 사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침묵했을 때조차 자본가에게 항의하고 단결의 문제를 끈질기게 발언하고 현장으로 보급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사람들이다.

2014년 임단협 투쟁을 조직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을 지난 6월말 울산과학대 파업농성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 지난 6월19일 하청업체와의 임단협 상견례를 가졌다. 하청노조 만들고 나서 11년만의 처음이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하청노조 임단협 상황을 설명해달라.
 

2014년 하청노조 임단협 처음 시작은 기존 조합원들이 업체에서 힘들어 했고 전망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기 업체별 조직화에서 다수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조직화의 시야를 넓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작년 7월에 조합원 공개를 했다. 공개조합원 활동을 시작했다. 공개조합원들이 정문 밖 피케팅 선전전에 참가했다. 많이 자신감을 회복했다. 묶어 두지 말고 성장을 시켜야 할 시점이었다. 하청노조가 하청노동자들에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어둡고 실패한 자들의 모습들이었다. 안되고 할 수 있는 것 없다는 인식을 바꾸면서 우리 조합원들의 투쟁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숙제가 있었다.

올해 초 현대중공업의 변화된 노무관리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유인물을 돌리기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진행하면서 올해는 교섭을 하고 임단협을 하자고 정리를 했다. 이러한 준비가 있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노조하고 하청노동자 실태 공동조사 사업을 바탕으로 요구안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교섭을 알리는 전 공장 선전전을 진행했다. 조합원들이 식당에 조끼를 입고 집결하고 요구안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선동을 했다. 한 달 넘게 진행됐다.

5월말 즈음에 현대중공업에서 경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고장이 계속 날아들고 한번만 더하면 출입증 빼앗겠다는 공문이 왔다. 살짝 치고 빠지기로 했다. 다른 방식으로 현장 활동(선전과 선동)을 지속하기로 하고 식당 중식 선동은 잠정중단하기로 했다.

6월 19일 하청업체와 임단협 상견례가 이뤄졌다. 각 업체들이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여론에 떠밀린다고 할까, 법 테두리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청업체 대표들은 중공업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앵무새처럼 이야기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만들어 나가자고 제안했다.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주인 현대중공업은 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 2014년 하청노조 임단협에 대한 현장하청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임단협 목표를 설정할 때 대규모 조직화를 위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을 널리 알리고 주체 역량의 강화에 올 임단협의 목적을 뒀다. 조직화가 예상보다 안 되더라도 낙담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청노동자들의 중대재해 사망을 추모하는 분향소 투쟁, 18일 동안 하면서 조합원들의 자신감이 성장한 것은 큰 성과였다. 연대도 자발적으로 가자고 열의가 올라왔다.

식당에서 교섭 보고 대회를 할 때는 놀랄 정도로 호응이 있었다. 박수 치고 맞다 맞다고 함성도 지르고 했다. 하지만 식당 앞에 가판을 차리고 조합가입 캠페인을 할 때는 확연히 달랐다. 현장 하청노동자들에게 하청노조 가입은 어쩌면 자기 생의 명운을 건 선택의 문제였다. 집단적인 조합 가입은 이뤄지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임단협 보고대회에서 하청노조 집단가입 캠페인으로 전환한 것은 현실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장기적인 목표를 잡고 하청노조와 하청노동자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나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청노조 집단 가입 문제는 우리가 뚫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본다. 노조를 통해서 한 번도 뭔가 희망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스스로 단결해서 성취해본 것이 없었다. 하청노조가 투쟁을 통해서 이뤄낸 것을 본 적이 없는, 그래서 기대 심리는 있되, 자신이 참여해서 활동하거나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는 냉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조금씩 하청노조 활동의 성과를 보여주고 조합원들이 안 짤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들을 대중적인 경험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서히 녹아가는 동토, 그러나...


● 현대중공업은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 해왔다. 2014년 하청노조 임단협 과정에서 하청노조를 대하는 현대중공업의 태도가 변했다고 보는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상견례는 시대적 흐름의 일부분이다. 하청노조의 힘이 강해져서 인정 하는 것은 아니다. 하청노조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처를 잘해왔다. 그동안 업체 폐업되고 조합원들 들려나가고 해고 되고 이러한 두려움에 너무 갇혀 있었다.

조합원 공개하고 현장 선전전 시작하려 할 때 많이 반대했다. 과거처럼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역사적 흐름은 변화하고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10여 년 전의 그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그러나 해보니 현장 밖으로 들려나지 않은 것이 확인된 것이고 그만큼 진행되어 왔다.
 




● “현장 밖에서는 뭘 하든 하되 현장 안에서만 하지 마라”이것이 변화된 현대중공업의 노무관리 방침의 가이드라인이었는가?
 

작년 여름 6~7월, 그때 확인된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조합원들을 알고 있더라도 그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공개 활동을 하면서 아, 이 공간 정도는 열렸구나 판단했고 확인한 것이다. 확인한 만큼 멈출 수는 없었고 조금씩 하청노조 유인물 배포, 출퇴근 선전전도 했다. 예전 같으면 한 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한두 명 걸리면 바로 들어냈을 텐데 경고장 등 절차를 지켰다. 두 번째 경고장에 식당이 아닌 다른 장소의 협의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과거처럼 대 놓고 탄압은 안하겠다, 꺼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부터 울산법원의 노동조합활동 방해 가처분 결정문에 따라 현장에서 선전전 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은 막혔다.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했고 내가 못 들어가도 현장 조합원이 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대중공업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설마 그렇게 할까라는 부분을 치고 들어갔고 그들은 당황해했다. 조합원이 현장 활동을 시작하니까 이제 와서는 오히려 울산법원 가처분 결정문에 위반된다고, 하청노조 마음대로 하고 있다고 트집을 잡고 있다. 법원 판결문이라는 것이 오히려 노조활동을 가두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정규직 임단협 출정식에 96년 이후 처음으로 40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모였고 조합원들의 열기 또한 대단했다고 들었다. 정규직노조와 하청노조의 임단협 투쟁 공간이 만나고 있는데,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나?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고 판단된다. 정규직 노조와의 서너 번의 간담회를 통해 간극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니까 사업들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맞출 수 있어야 하는데, 대중적이지 못한 하청노조의 사업들을 함께 못하겠다고 했다. 하청노조의 활동 극히 제한적이다. 서로 다른 입장이지만 엄호 지지하고 연대하려는 마음들이 안 보였다. 기존 어용 집행부는 ‘당신네들은 가만히 있어라, 해주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다’라는 시혜적인 관점이 보였다. 그런데 (간담회를 통해) 민주파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현대중공업과의 공동사업은 실태조사 사업밖에는 없었다. 민주노총울산본부가 제안해서 시작했다. 30여개 문항을 기초로 실태조사 끝나기 전에 정규직노조는 먼저 4대요구안을 정하고 임시대대에서 통과시켰다. 실태조사 결과 나와도 바뀌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먼저 정해서 나왔고 우리 입장에서 잘못된 거다. 무시하고 갈 수 없는 것이었다. 공동으로 뭔가 투쟁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한 건데 공동 실태조사 사업이 형식적인 사업이 됐다. 그리고 4대 요구안 다 금전적인 요구들이다. 물론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조직화도 안 될 뿐더러 기대심리만 올려준다.


● 조합가입 캠페인이 중단되었던 이유가 있나
 

실태조사는 무기명인데다 정규직 노조가 탈의실로 찾아오기도 하니까 쉬웠다. 조합가입 캠페인은 무게감 이라는 게 전혀 다르다. 정규직이 나서도 쉽지가 않다. 조합원들이 느끼는 실망과 패배감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준비가 부족했다. 임단협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빨리 사업을 잡아서 기운 빠질 필요는 없었다. 이런 생각에서 잠정 중단시켰다. 다수 하청노동자의 조직화도 중요하지만 교섭 시기만큼이라도 업체조직화로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전술적 변화도 필요하다. 


● 2014년 임단협 투쟁을 통해 어떤 성과를 바라고 있는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처음에 목표했던 것은 임단협의 결과로 11개 업체 공개 조합원이 해고되지 않고 업체에서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만 해도 성과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를 바탕으로 내년엔 20개, 30개 업체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


● 현대중공업은 죽음의 공장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의 사유가 남다를 것 같은데, 최근 하청노동자들의 죽음과 관련해서 하청노조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감당이 안됐다. 연이어 상황이 발생하고, 할 수 있고 해줄 수 있는 것이 특별하게 없었다. 참 답답했다. 중대재해 당한 업체 동료들 만나면 아는 사람이 몇 몇 있었다. 그러나 사고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 안 해줬다. 그들의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대재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대표이사를 구속 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고발장을 접수하고 산재 은폐 폭로하고 방송으로도 많이 나왔는데 스스로 위험작업에 대해 거부할 수 있고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의 대책이란 것이 무의미하다.

이제 네 번째 산재은폐 고발장을 접수했는데 산재 은폐 해소 못하면 죽음을 막을 수가 없다. 현대중공업은 저가 수주를 하고 갈수록 단기 물량팀이 늘어났다. 어떤 이가 현대중공업은 도살장이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정말 정확한 것 같다. 


● 현대중공업은 산재은폐 공화국이다. 최근 현장에서의 산재은폐에 대해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산재은폐 고발 건 중의 한 사례인데, 한 젊은 친구가 일하다 다쳤다. 고발이 들어가니까 업체에서는 집에서 다쳤다 하라고 했다. 노동부에서도 그렇게 진술하도록 강요했다. 그런데 후유증이 남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산재 하겠다고 했을 때 업체에서는 나 몰라라 했다. 이러한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현장에서 일하다 다쳐 119 구급차에 실려 울산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도 은폐를 시키고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저가 수주는 공정들이 더욱 타이트해줄 수밖에 없다. 공정 앞 당겨서 생산기간 줄이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제일 위험스러운 일, 물량팀 수시로 확대시켜서 작업시키고 있고, 그 사람들은 안전이라는 말조차 못한다.

얼마 전 LPG선 화재 사고 나서 두 분 돌아가셨을 때도 혼재작업 때문이다. 위에서 보온재 작업하고 있었고 아무런 화재 예방 조치도 안하고 감시자도 없이 용접절단 작업이 진행됐다. 검사는 검사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화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데, 죽음을 각오하고 한 것이다.

이번에 미포 조선 질식 사고도 똑같은 것이다. 페인트 마르고 난 뒤에 몇일 양생시키고 붓도장 작업을 하는데 전날에 페인트 작업하고 나서 다음날 붓도장 작업하러 들어가니까 톨루렌에 질식된 것이고 구조하러 간 사람도 산소측정도 안하고 구조장비도 없이 들어갔다 질식해서 5명이 실려 나온 것이다.

지난 5월달 분향소 투쟁을 진행했다. 중대재해로 돌아가신 다섯 명의 하청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분노, 애도의 뜻이 담겨져 있었다. 원청에 대한 폭로도 담겨 있었다. 분향소 투쟁은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현장에서 위험작업 차단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니까 밖에서 분향소 차린 것이다. 이것이 아쉬운 점이고 앞으로 우리에게 과제로 남겨져 있다.

18일 동안 분향소 설치하고 투쟁하면서 성과라면 정규직들, 시민들, 하청들 그 가족들이 많이 찾아오더라, 방명록 기록도 남기고 헌화도 하고 밤늦게 와서 정규직들이 손잡아 주고 가는 사람도 있고 술 한 잔하라고 주머니에 꼬깃꼬깃 돈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 당시 죽음 앞에 사람들이 말은 못했지만 함께 공감하는 부분이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분향소를 지키는 조합원들이 이러한 기운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18일 동안 노숙투쟁 하면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의미 있게 진행 했다. 임단협 개시 직전이었는데 좋은 영향을 끼쳤다.

교섭으로 전환하기 전에 마지막 택으로 잡은 것이 정몽준 상경투쟁이었다. 이슈화시킨 것 같다. 대학로 유세하는 현장에서 손 피켓 들고 서 있는데, 정몽준 극성 지지자들의 격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피켓 들고 서 있는 모습 보고 아, 진짜 싸우면서 성장할 수 있구나, 말로서 하는 것이 아니구, 사복 경찰이 둘러싸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고 나는 감동스러웠다. 내려올 때도 소풍 갔다가 울산 가는 것처럼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처음엔 걱정을 했다 그런데 경찰도 처음 직접 겪어보고 극성 정몽준 지지 팬들에 맞서 이길 수 있을까 걱정 했는데 의외로 조합원들이 너무 잘했다. 한 조합원은 ‘당신들 아들이 죽어도 그런 소리 할 것이냐’고 항의하는데 현장에서 억눌린 분노들이 그렇게 표출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려오면서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이제는 점거다. 밝게 웃는데 그 모습 보면서 충분히 점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신분제도가 변화해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정규직과 하청업체로 단순화되어 있었고 물량 일당제는 예외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물량의 50% 이상을 단기 물량팀에 의해서 처 나간다고 들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내부의 구성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업체 t/o, 매달 정규직 노조에 보고가 되는데, 하청만 3만6천명이다. 10년 만 해도 만5천이었는데 10년 만에 2만 명이 늘었다. 지금 현대중공업에는 식수인원이 사무직 포함, 6만 명이다.

해양사업부 같은 경우는 1차 사내하청 업체가 공장 밖 외부 파견 업체에 인력을 요청하면 외부 파견 업체에서 사람들을 사내업체로 투입시키고 이들을 데려 온 팀장들이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안에서는 실질적인 사장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일당 중의 5%를 공제하고 임금을 준다. 소규모 물량팀이 300명 업체에서 250명이나 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사장인지도 잘 모른다. 한 업체 다니는데 그 업체 소속이 아닌 것이다. 돈(기성)은 사내 하청업체에서 파견업체로 나가는데 5% 공제하고 파견업체에서는 또 다시 5% 공제하고 팀장들에게 준다. 3단계로 기형화되어 있다. 도대체 자기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하청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일 끝나면 언제든지 떠나니까 어디 소속 개념이 없다. 하루 어디 가서 일하라고 하면 하고 딴 데 가라면 가고 이러한 다단계 불법파견이 해양사업부에는 일반화되어 있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해양사업부가 있는 꽃바위 쪽에는 들어 갈 원룸이 없다고 한다. 워낙 이런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들어갈 때가 없다고 한다.

하청문제는 정규직 고용과 밀접하게 관계있고, 물량팀 확대되는 건 싸움이 필요한 문제인데 사내하청 업체 문제로 국한시키니까 잘 안 풀리고 풀릴 수가 없다. 산재 문제 가지고 자본과 피터지게 싸움을 준비 하듯이 물량팀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문제가 아니니까 방관하고 있다.

조선사업부는 두 가지 형태의 물랑팀이 있다. 업체 고정으로 생산을 담당하는 팀이 있고 몇 일 블록 몇 개 해 주고 가는 팀, 즉 단기 물량팀이 있다. 한 업체로 따지면 적게는 물량팀이 40% 차지하고 있고 100% 물량팀인 업체도 있다. 그런데 겉으로는 물량팀이 본공(1차 하청) t/o로 잡혀 있다. 본공 100 t/o에 80명이 물량팀인데 20명이 관리직, 검사하는 인원들은 본공이고 80명 정도는 물량이고 이 전체가 100 t/o에 다 들어가 있다. 인원으로 보면 누가 본공인지, 물량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화들이 이질감을 키우고 있고 조직화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년 정도 이상을 근무를 해야지 해고를 당하든 싸움을 하든 기반이 생기는데 그러한 것조차도 이젠 안된다. 물량팀장과 형식적인 근로계약을 쓰고(팀장이 책임질 것이 뭐가 있는가?) 일 끝나면 바로 떠난다.

이제 1차 사내업체에서 사용자성을 인정받는 것도 힘들게 됐다.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는데 이것을 뚫고 나갈 조직화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나 해양사업부는. 이들에게는 학자금, 성과금도 해당 사항이 없다. 1년 이상 일하지 않았으니까. 
 

계급성을 잃는 순간 희망은 없다


● 하청노조는 현장 밖으로 밀려난 해고자-활동가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지회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임원들과 상집간부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다. 지난 몇 년간의 하청노조의 변화와 조직사업에게 대해 말해 달라.
 

처음에 하청노조 찾아 갔을 때는 어려웠다. 사람들이 어려웠고 이 사람들은 준비된 사람들이구나 이러한 인상이 깊었다. 내가 해봐야겠다. 현장 정서에 맞게 주체들을 만들어서 해봐야겠다고 결의하고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 당(민주노동당)을 통해서라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십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이 있었는데 결국 착각이었다. 정당을 통해서는 절대로 조직화가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무조건 뿌리박아야 한다. 하청노동자로 살아온 분노를 가지고 작은 투쟁을 만들어나갈 때 기초가 마련될 수 있고 흐름을 바꿀 수가 있다. 지금까지 끈질기게 노력 해왔다. 현장과 소통하고 주체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작지만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은 되었다고 본다.

나의 해고 생활 길어지고 관료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직책을 오래도록 맞다 보니까 내가 어려웠던 것은 활동가로서의 분노도 식고 현장의 사소한 감각들을 잃어가는 듯 한 생각이 든다. 현장 주체를 세워서 이 사람들이 스스로 지회를 이끌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내가 물러나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걱정도 되지만 만들어야 한다.

지지모임은 잘 안되는데, 조합원들 통해서 느슨하게 틀을 유지하고 있다. 하청노조 지지모임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급선무다. 


● 현대중공업에서의 운동의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나?
 

꿈은 꾸는데, 하청의 반만이라도 조직되면 현대중공업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현장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해고된 것, 지금 조합원들이 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못 해보고 나온 것이 후회가 된다.

만약에 해고되지 않고 기존 업체에 있었다면 여기까지는 안 왔을 것 같다. 해고가 되고 삶을 바치자고 결의했고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도 처절하게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다. 해고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용접하는 하청노동자로 조합 활동을 했을 것이다.

공개 조합 활동할 수 있는 100명의 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이 내 임기동안 꼭 만들고 싶은 것이다.

교섭의 핵심이 업체 너 댓 명이라도 노조로 가입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임단협이 진행되면서 교섭 업체에서 조합 가입도 이뤄졌다. 임단협 투쟁을 통해서 이렇게 업체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하청노조가 현장에 뿌리내린다면 지금의 상집 간부 중심의 체계를 대의원 체계로 전환하고 조합원이 그 업체 조합원들을 대표해서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하청노조 처음 왔을 때 어려웠다고 하는데 현장에 어렵지 않게, 쉽게 다가가고 현장과의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대화할 공간이 적고 없으니까 특별한 계획은 없는데,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 불만들, 분노들을 표출했을 때 사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어떤 원인이 있고 조건은 어떻고 결과는 이렇다는 등 사무적인 반응보다도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씨발 개발 같이 욕도 할 수 있고 그런 현장의 정서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같은 감수성, 현장의 분노를 가지고 대해야 안 되겠나? 


● 해고되고 노조 대표자 생활을 3년째 하고 있는데, 현장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나?
 

어떤 사안이든 항상 경계에 놓인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조합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겠다는 위기감도 들었다. 계급적 관점을 유지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크고 개인적인 학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계급적 대의를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지회장인 나부터 계급적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학습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조합원들에게 흡수될 수 있도록 대화하고 토론할 것이다. 


● 하청노조 대표자로서 전국 비정규직 대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계급성을 잃는 순간, 정규직 운동이든 비정규직 운동이든 희망이 없다. 침체된 정규직 운동, 자체 힘으로, 그 정화력으로 정규직 운동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소 비정규직이, 철강 비정규직이 투쟁으로 일어설 때 재편될 것이다. 물이 바뀌고 흐름이 바뀔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가져본다. 계급성을 잃지 않고 꾸준히 투쟁해 나가면 희망이 찾아진다고 본다.

글 : 조성웅 siwano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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