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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공동체 내 성폭력사건 해결, 어떤 변화를 꿈꿀 것인가?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4/07/31 19:30
  • 수정일
    2014/07/31 19:3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최근 들어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들이 제기되고 해결되는 양상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100인위원회의 문제제기 이후, 다양한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고, ‘해결’되었다고 할 만한 사건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해자, 혹은 2차가해자가 적극적으로 명예훼손 관련 소송을 제기하거나, 피해자를 지지하는 운동단위 사무실 앞에서 농성을 하는 등, 적극적인 반발이 감지되고 있다.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서 원칙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은 현실에서 가해자들의 적극적 반발로 더 이상 효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반감이 전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것은 2011년 서울대에서 성폭력이라고 제기된 사건이 온라인과 언론매체를 타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는 2013년, 9월 말 이뤄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칙의 개정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기도 하다. 2011년, 서울대의 한 여학생이 이별을 통보하던 같은 학교 남학생의 줄담배를 포함한 여타의 태도를 성폭력으로 규정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 해결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로 인해 사건 제소를 받은 사회대 학생회장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언론은 이 사건을 기존 반성폭력 운동, 페미니즘의 문제로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제기했던 여성은 언론의 직격타를 맞았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그 당시의 일을 검색해보면, ‘담배 핀 것이 왜 성폭력인가’라는 식의 문제제기, 피해자에 대한 비난, 더 나아가서 피해자의 권력화에 대해 규탄하는 글과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이 사건의 공론화를 위해 열렸던 토론회 자리에서도 주요 쟁점은 담배 핀 것이 성폭력인지 아닌지, 피해자의 ‘대항폭력’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로 한정되었다. 즉, 성폭력의 범위, 피해자 중심주의의 유효성 여부, 피해자 권력화에 대한 공론화만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토론회 자료집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도대체 왜 피해자가 이 상황을 ‘사건’으로 제기하고 싶었는지, 왜 피해자는 그 상황이 폭력적이라고 느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사건이 제기되었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했던 것 중 하나는 무엇이 피해자로 하여금 이를 폭력적이라고 느끼게 했는지, 그리고 그 폭력의 내용이 공동체의 일상적 문화, 관계 맺기 방식에 기인하는 건 아닌지 성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반성폭력 운동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부의 공론화는 물론이고, 사건을 제기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3년 9월 말, 개정된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칙(이하 ‘개정회칙’)은 위와 같은 사건해결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소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원칙, 성폭력 개념틀을 부정하며 ‘객관적’ 기준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객관성 확보로 귀결된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의 반성폭력 운동, 운동사회 내 여성 활동가들의 성폭력 사건 문제제기가 있은 지 10년이 지났다. 이러한 운동들은 학내에서 학칙 개정 운동, 학생회 회칙 및 각종 운동단체의 반성폭력 규약 제정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규정된 ‘성폭력’은 기존의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칙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성차에 기반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언행도 포함하는 것이었고, 이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공동체 문화에 대한 급진적인 문제제기 방식이었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반성폭력 학생회칙, 혹은 각 사회단체 내 규약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매뉴얼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와 같은 개념들은 그러한 운동과정에서 가부장적인 반발에 대항하기 위한 개념들이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각 학교에는 양성평등센터, 인권센터와 같은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학교 기관들이 생겨났고, 대학 내에서 자치활동의 쇠락과 함께 공동체 내에서 성폭력 사건을 제기하고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 되었다. 학내에서 성폭력 사건을 제기하면서 공동체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졌다. 이는 대학 내에서 반성폭력 규약의 내용과 필요성에 대한 고민이 일정정도 단절되었음을 의미했다. 이에 2000년대 후반 이후, 과반 내에서는 반성폭력 학생회칙에 대한 공유를 찾아볼 수 없거나, 반성폭력 학생회칙이 각종 과반 학생회 행사에서 공유된다고 하더라도 학생회 구성원들 중에도 예전부터 전해내려 오기에 공유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가해자 취급하는’ 불쾌한 무언가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하던 여성주의자들 역시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진행하기도 했다. 피해자중심주의가 피해자의 말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만 여겨지면서 더 이상 공동체 내 변화를 추동하지 못하게 되는 지점, 오히려 피해자가 공동체 내에서 고립되고 떠나게 되는 현실, 대책위 중심의 획일적인 사건화 방식이 오히려 다양한 해결방식을 고민하지 못하게 하는 지점에 대한 구체적 현실에 대한 고민들이 존재했다. 

이번의 회칙 개정은 그간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해서 반성폭력 운동 내․외부의 비판적 평가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등장했으며, 일견 여성주의자들의 비판적 평가를 반영한 것이었다. 개정된 회칙은 기존의 성폭력 사건해결과정에서 공동체의 역할이 부재하고, 가해자-피해자의 갈등구도로만 여겨졌다는 점, 대책위 중심의 획일적 사건 해결방식 등을 지적하는 등, 기존 반성폭력 운동의 유의미한 한계점을 포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정 회칙은 무엇보다도 ‘피해자중심주의’의 주관성을 핵심적으로 비판하며 성폭력 판단 기준에 객관성을 다시 도입하는 것으로 기존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객관적 판단을 위해 성별권력관계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삭제하고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성폭력을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개정회칙은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진지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 해결을 바라보는 시각,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반발과 객관적 판단 기준 강조로의 회귀 등에 있어 최근 보이는 성폭력 사건 제기에 대한 반발과 유사한 논리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부장적 공동체 문화 비판에서, 개인의 인권보호로
 

서울대 사회대의 개정된 학생회칙은 기존의 반성폭력 학생회칙에 비해 성폭력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성폭력이 성차별적인 언동을 포괄하게 되면서,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졌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것으로서의 ‘공동체의 합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때 ‘공동체의 합의’는 감정적인 피해자의 주관이 아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가해자의 인권과 관련된 부분이 추가되어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을 모두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구도만 보자면, 개정회칙은 이전의 사건해결매뉴얼과 같은 형식에 비해서 국가의 법제도적 틀과 유사해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판사의 판결을 ‘공동체의 합의’라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회칙은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여성운동의 문제의식을 일부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점도 일부 있으나 결국 기존의 반성폭력 회칙에 비해 운동성을 탈각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반성폭력 회칙이 기존의 가부장적 공동체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던 것에 반해, 개정회칙은 개인적 권리의 충돌과 그것을 조율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동체의 합의를 전제하고 있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을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는 점, 공동체의 합의가 객관적이며, 그것을 통해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재단하려고 한다는 점, 동등한 권리와 권리의 충돌로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 등을 통해 드러난다. 

기존의 회칙은 공동체의 변화라는 운동의 목적과 회칙이라는 수단을 밀접히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여 사건제기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원칙들을 설정했다. 이에 반해 개정회칙은 분명 공동체 문화의 변화를 회칙의 목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 기준만이 강조되는 회칙 구성 속에서 그러한 목적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개정회칙이 피해자중심주의가 오히려 공동체 내 논의를 막고 있음을 지적하며, ‘피해자의 주관’ 대신 공동체적 합의를 주장하지만, 피해자의 감정과 주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어떠한 수단과 관점도 없이 이뤄지는 공동체적 합의는 어떤 것인가. 기존의 인식을 답습하는 그러한 합의는 아닌가? 

개정회칙의 서두에서는 분명히 ‘성차별주의적인 문화’가 문제이며 이를 변화시켜나가려고 한다고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에는 일탈적 상황으로서의 성폭력과 ‘정상성’의 회복으로서의 성폭력 사건 해결이라는 틀에 갇혀있는 것이다.1)

 

‘성적자기결정권’의 축소
 

개정된 회칙은 기본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서 성폭력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침해 여부야말로, 성폭력 사건을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자신의 성적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구성해나갈 권리”로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는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이는 성폭력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기본적인 기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반성폭력 운동 내에서도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제기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개정회칙은 기존의 회칙이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너무나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어, 결국 그 판단이 피해자의 주관에 맡겨졌다고 본다. 이에 따라 개정회칙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를 더욱 협소하게 정의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존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는, 그 이전으로 후퇴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반성폭력회칙은 ‘성적 자율권’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으나, 성폭력으로 규정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를 “상대방의 의지에 반하거나 의지와 관계없는, 성적이거나 성차에 기반을 둔 행위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기존 회칙 2조)”고 함으로써, 기존의 남성성, 여성성을 강요하고, 구분하는 행위까지도 문제시하고자 했다. 단순히 동의, 합의 없는 성적 언행뿐만 아니라, 성별에 따른 편견을 재생산하는 행위도, 성폭력으로 제기함으로써 문제시하려 한 것이다. 즉, 사소화 되는 기존의 가부장적 공동체 문화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는 시도였다. 따라서 성적자기결정권과 같이 일견 자유주의적으로 보이는 용어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가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존의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식에 문제제기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성폭력이라는 용어를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다양한 가부장적 문화를 문제제기하려던 것이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사용했던 ‘폭력’이라는 명명은 한편으로는 연속적으로 경험되던 다양한 성차별적, 위계적, 폭력적 경험을 ‘성폭력’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을 낳았고, 이는 공동체 구성원 간 다양한 위계와 차별을 문제제기하는 것보다는 ‘성폭력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갖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개정회칙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성폭력 개념을 축소시킨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보았을 때, 성폭력을 개인의 동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개정회칙에 대한 설명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개정회칙에서는 명시적 동의 여부가 문제시 되었을 때, 그 대안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폭력을 저지를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성적 언동이든 하기 전에 상대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건의 성격을 판정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고 하고 있다.2) 

즉, 개정회칙은 성폭력의 문제를 동의 여부로 축소시키고 있으며, 이때 사건은 그러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의미화 되며 사건의 해결은 기존에 존재했던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의미화 되기 쉽다. 이러한 관점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동일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구조적 억압을 보이지 않게 하는 자유주의적인 분석틀로써, 기존의 성별과 관련된 통념과 가부장적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만이 부각되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기존의 회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법제도적 합리화가 아니다. 성폭력 사건 제기가 공동체의 문화 변화를 위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성적인 언동의 내용이 어떤 인식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러한 경험이 피해로 인식되는가에 대해 문제제기가 필요하며, 이는 개인의 침해된 권리에 대한 구제가 아니라, 성별과 성적 지향, 성적 행동의 규칙 등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과정이다.



객관성에 대한 강조
 

개정 학생회칙의 저변에는 ‘객관성’에 대해 강조가 깔려있다. 이는 기존의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사건 해결이 가해자에게 사실관계의 확인도 거치지 않고, 소명기회도 주지 않는, ‘피해자제멋대로주의’로 이해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3) 개정회칙에서는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여부가 객관적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존재한다면 물증에 기반하여, 아니라면 진술의 일관성과 타당성에 기반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피해자의 평소 언행, 행실은 그 증거가 될 수 없음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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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각자가 기억하는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금까지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더라도 사실관계의 확인은 언제나 요구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각자가 이야기하는 서사가 다를 때, 특히 동의 여부와 관련하여 서사가 다를 때 문제가 되어왔다. 이때 물증은 주로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 보인 태도, 문자 등등이 되어왔다. 문제는 같은 피해자의 행동에 대해서도 그에 따른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피해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형화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를 빠져나오는 피해자도 존재하며, 빨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협상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때 물증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객관성이란 것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까? 피해자중심주의는 이렇게 다른 해석들 속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해석해봄으로써, 기존의 지배적인 해석방식에 균열을 내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객관성에 대한 회귀로 해결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통념을 몇몇 개 나열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고 해서, 객관성이 확보된다고 하기에는 우리 스스로의 시각도 가부장적 프레임에 갇혀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존의 피해자중심주의가 피해자의 진술을 형식적으로 ‘진실’로 승인하고, 수동적으로 ‘피해자의 요구’만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였을 수 있다. 정작, 사건에서 드러나고 있는 공동체의 차별적 문화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않은 채, 수동적 수용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성이라는 잣대로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재단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의 감정과 문제제기 지점에 대해서 함께 공동체와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피해자의 문제의식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감정적인 피해자와 객관적인 공동체?
 

객관성에 대한 강조는, 이후 조항들에서 피해자와 공동체의 관계를 ‘감정’, ‘직관’과 ‘객관’, ‘합리성’의 구도로 대비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회칙 개정의 이유를 서술하거나, 각 조항 해설에서는 기존의 성폭력 사건의 기준이 피해자의 ‘감정’ 혹은 ‘주장’이었던 것에 반해, 개정회칙은 ‘맥락과 상황을 고려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할 것임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4) 

이는 개정회칙이 기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사건해결과정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반영하는 것이다. 개정회칙에서는 피해자는 감정적이고, 합리성을 상실한 사람이기에 성폭력 사건 판단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는 합리적 공동체의 객관적 판단이 요구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개정회칙은 기존의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이 ‘피해자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처럼 삼았다고 간주한다. 이는 ‘피해를 호소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자의적 사유로 누군가를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고 재단할 권력을 쥐어주는’ 피해자중심주의를 통해 뒷받침되어 왔다고 본다. 

물론 피해자중심주의가 정말 피해자의 ‘감정’만을 중심으로, ‘피해를 호소하기만 하면’ 권력을 부여하는 그러한 개념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아야겠지만, 개정회칙이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는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피해자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공동체의 구도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공동체가 합리적이고 객관적 판단을 담보할 수 있는지, 혹은 피해자를 합리성에 대비되는 감정적 주체로 설정하는 것은 타당한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개정회칙에서 공동체의 합의는 피해자 문제제기의 타당성을 규정하는 기준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의 합의는 ‘감정적’인 피해자와는 달리 합리성을 담보하는 확고한 기준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 내부에는 권력관계와 위계, 정상성과 비정상성으로 나뉘는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사실상 ‘공동체적 합의’는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라 상당히 당파적이며, 서로의 이해가 맞부딪히는 장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개정회칙은 공동체적 합의의 객관성에 대한 신뢰 뿐 아니라 피해자의 감정에 대해서, 합리성을 결여한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감정은 공동체적 합의에 의해 판단되고 재단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맥락이 존재하며, 그러한 감정의 존재 자체가 무엇인가 부당함이 있다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집회현장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감정은, 비이성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저항의 원동력으로 의미부여 되지 않는가? 오히려 우리가 놓친 것은 피해자가 어떠한 맥락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설명해내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설명해나가려는 노력 속에서 사건, 혹은 상황에 대한 명명과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 

운동 사회 내에서 다양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제나 공동체 내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과 경험이 충돌했고 각각의 해석이 서로 설득력을 얻기 위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존재했다. 사건의 내용이 기존의 성폭력에 대한 통념에 맞아떨어져, 쉽게 가해자를 규탄하는 경우로 끝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기존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불평등한 관계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해왔기에 공동체 내 다양한 의견들의 충돌과 투쟁은 불가피한 과정이었다. ‘공동체적 합의’를 통해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재단한다면 많은 경우, 새로운 공동체적 합의가 형성된다기보다는 기존의 인식 내에서 사건은 재단되고 마무리될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적정한 선에서의 양비론(피해자도 잘못했고, 가해자도 잘못했다.)이나 ‘감정적’인 피해자의 무리한 요구라는 비난이 객관성으로 포장될 우려가 더욱 커 보인다. 공동체적 합의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합의 도출 과정에서 공동체 성원들이 다양한 억압과 차별에 민감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로의 회귀
 

서울대 회칙 개정은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의 한계를 지적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개정회칙에서 문제시한 피해자중심주의, 넓은 범위의 성폭력 개념 정의 등은 여러 여성학자들로부터 문제제기 되었던 개념이기도 하다. 피해자중심주의가 단순히 피해자의 서사를 승인하고 형식적인 사건 처리의 과정으로 여겨지는 상황, 이에 따라 공동체적 책임은 부재하고, 피해자에게 모든 사건 해결의 부담이 떠맡겨지는 상황 등은 분명히 새로운 접근을 요청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정회칙은 그 대안을 오히려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후퇴하는 것에서 찾았다. 공동체 내에서 사건이 제기된다는 것은 기존의 공동체 내에서 허용되던, 혹은 권장되던 특정 행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은 공동체 내에서 허용되는 행위의 기준, 특정 행위의 의미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을 확산시키기 위한 ‘의미 투쟁’을 해왔다. 그러나 개정회칙에서 공동체적 합의는 성폭력 사건 제기라는 ‘의미투쟁’의 결과로서 제시되기보다는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재단하는 기준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또한 일면 유의미한 시도일 수 있는 성폭력 범위 축소는 객관성으로의 회귀와 함께, 형식적 동의의 문제로만 한정되어 버렸다. 동의 여부만이 문제시되어서야 다양한 언어와 방식으로 공동체 내 성차별과 가부장성을 드러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성폭력의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며, 성차별적 문화의 문제라고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회칙의 내용이 그러한 관점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자유주의적 문제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개정된 회칙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란, 서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이들이 ‘명시적 동의’에 따른 성적 행동을 하는 ‘합리적’ 공동체에서 타인의 ‘권리’를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없이 침해한 ‘예외적’ 사건뿐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동의’와 ‘권리’의 정치 속에서 관계 속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라져버린 듯하다. 그렇다면 일상적 공동체 문화 속의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상실한 반성폭력 학생회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현재 공동체 문화 속의 불평등과 차별에 문제제기하는 운동성이 탈각된 것이자, 반성폭력운동이 극복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 관점’을 재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지원 jeewon@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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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정 학생회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남성 대 여성, 가해자 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참여를 요구하는 문제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양자간의 투쟁에서 후자에 힘을 실어주는 것에서 공동체의 정의와 신뢰를 지키는 것으로 재정의한다는 점입니다. 기존 학생회칙의 문제들은 많은 부분 성폭력을 공동체의 문제로 바라본다는 언명과 달리 문제를 남성 대 여성의 구도로 치환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토론과 참여를 배제하기 쉬운 대책위원회 모델을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데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3학생회칙개정 QnA’에서 인용.

강조는 인용자. 물론 위의 강조부분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자만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녹아있는 것일 수 있으며, 이는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투쟁’, ‘남성 대 여성의 구도에 대한 대안이 공동체의 정의와 신뢰라는 것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여성과 남성 간의 권력관계를 가시화시켜왔던 성폭력 사건 제기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정의와 신뢰라는 말은 앞뒤의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이 강조되는 맥락 속에서 여남 상관없는 각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를 문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때, 각 구성원 간의 권력관계(가부장성,이성애중심주의 등)는 어떻게 문제시되는지 알기 어렵다.
 

   2) 사회대학생회 반성폭력학생회칙(최종개정 2013.9.27.) 5조 항의 해설참고
 

3) 개정 학생회칙은 기준의 객관성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학생회칙은 사회 통념에 입각한 객관성은 왜곡되어 있으며 성폭력 사건의 규정은 너무나 맥락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고 지적하며 피해자의 주관을 그 대안으로 삼고 있으나,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가릴 수 없다면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정된 학생회칙은 왜곡된, 획일적인 객관성의 대안으로 주관성이 아니라 구체적 맥락과 상황을 고려한, 그리고 평등하고 진전된 인권 개념에 근거한, 수정된 객관성을 원칙적인 준거로 삼습니다.-‘2013 학생회칙 개정 QnA’ 인용

4) 이는 개정회칙의 5 2항에 대한 해설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 개정회칙에서는 이 회칙은 피해자의 진술과 해석, 의사를 우선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처를 주는 행동 폭력은 같지 않으며, 폭력에 관한 규약들이 보호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권리이다. 피해자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는 관점은 여성 또는 피해자의 직관이 언제나 올바르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것으로, 이에 기반한 정책은 피해를 호소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자의적 사유로 누군가를 성폭력 가해자로 낙인찍고 재단할 권력을 쥐어주는 명백히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결과를 낳는다.”라고 하여 피해자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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