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네트워크다.

칼럼

 

“1964년 폴 배런은 인터넷에 맞는 최적의 구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는 네트워크의 구조를 세 가지 유형-중앙집중형·탈집중형·분산형으로 나누고, 그 당시 주류를 이루던 중앙집중형과 탈집중형 통신망은 공격에 대해 너무나 취약한 구조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기존의 통신망과는 달리 인터넷은 그물 모양의 분산 구조를 갖도록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링크 (2002) p.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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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현상도 폴 배런이 제시한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때 점은 경제주체를 나타내고 점과 점을 잇는 선은 돈의 흐름을 나타낸다. 집중형은 하나의 경제주체가 돈의 흐름을 독점하고, 탈집중형은 소수의 경제주체가 돈의 흐름을 과점하고, 분산형은 모든 경제주체가 돈의 흐름을 골고루 분점한다.

“액면가가 불변하는 돈”은 경제의 그림을 집중형이나 탈집중형으로 유도한다. 경제주체들의 목표가 단기간에 더 많은 이자를 뽑아내는 게 되므로 사업은 “규모의 경제” 효과를 얻으려고 거대화·집중화된다. 즉 막대한 돈이 거대사업에 집중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기업이 재벌로 성장한다. 거대사업을 위해서 거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거대한 발전소가 필요하고, 거대한 기계가 필요하고, 거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고, 거대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거주시키는 거대한 도시가 필요하고, 이 사람들을 이런 부자연스러운 환경에 적응시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중앙집중형의 교육·미디어가 필요하고, 소수의견을 합법적으로 묵살하기 위한 투표제가 필요하고, 부적응자를 걷어내기 위한 중앙집중형의 의료·법률·치안이 필요해진다. 이처럼 돈과 사람과 산업과 에너지가 한 곳에 집중되면서 전체 네트워크는 리스크가 커진다. 국내자본이 집중된 대기업이 외부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기업이 더 나은 입지조건을 찾아 이전할 때 또는 적대적 인수합병 등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이 통째로 외국자본에 종속될 때 공동체는 큰 타격을 받게 되므로 그런 흐름을 억제하려고 경제와 정치는 긴밀한 커넥션을 갖게 된다. 또, 외국의 군사적 공격을 당할 때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으므로 거대군대·거대무기가 필요해진다. 이것은 다시 다른 나라 정부를 자극해서 군비를 늘리게 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 뿐 아니라 사회·정치·문화·기술 등 모든 영역이 위의 첫 번째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주조되어 간다.

반면에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는 돈"은 분산형 경제로 유도한다. 잉여금을 쌓아두면 감가상각의 손실을 입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잉여금을 기꺼이 대출해 주려고 한다. 따라서 돈의 순환은 모든 영역에서 유지되고 돈이 많은 곳에서 돈이 적은 곳으로 흘러간다. 즉 돈은 분산된다. 돈이 분산되면 사업체도 분산된다. 돈의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므로 큰 자본을 보유하는 거대사업체(재벌·트러스트)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 따라서 사업체는 리스크를 분산하려고 적절한 규모로 쪼개진다.(10조 규모의 자금을 가진 회사는 돈 액면가의 연 감가상각률이 5%라고 할 때 그 돈을 쌓아두면 1년에 5000억의 손실을 입는다. 반면 100억 규모의 자금을 보유한 기업은 5억의 손실을 입는다. 따라서 거대기업은 그 규모를  쪼개는 것이 유리하게 된다. 따라서 대기업의 횡포나 독과점·담합 등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독과점방지법, 반트러스트법 따위가 전부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또 외국자본의 공격에 대하여 더 안전해진다. 국내자본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으면 외국자본은 단 몇 회의 공격으로 한 나라 경제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은 아마 밀실에서 서류 몇 장과 사인 몇 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기업이 작은 기업 수백 수천 개로 분산되었다고 하자. 외국자본이 한 나라 경제를 집어삼키려면 훨씬 더 많은 횟수의 공격을 하여야 하며 정부와 기업은 그 공격의 초기단계에서 이미 방어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자영업이 부활한다. 자영업이 살아나면 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올라간다. 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기업 노동자들은 자영업으로 이탈하게 되므로.

업체가 분산화되면 그 소규모 사업체에 맞게 테크놀로지도 분산화(노동집약적인 산업에 적합한 테크놀로지의 개발. 적정기술의 고도화)되고 그 산업과 테크놀로지를 지탱하는 에너지발전방식도 분산화되고(수동형태양열에너지의 개발·도입) 인구도 분산되고 도시구조도 분산화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갈등과 범죄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그것들을 처리하는데 필요했던 복잡한 문화와 제도 역시 단순해질 것이다.

돈이 분산되므로 공급은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게 된다. 이전처럼 거대기업이 미디어를 잠식하여 유행을 선도하는 일 따위는 사라진다. 따라서 현대의 천편일률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옛이야기가 되며 각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삶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돈이 분산되면 권력도 분산된다. 거대사업(예: 4대강 사업,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면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될 수 밖에 없고 소규모 사업체들의 투명한 경쟁·협동으로 작동될 것이다. 지금처럼 극소수가 밀실에서 쑥덕거리다가 밀어붙이는 식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늙어가는 돈”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자연스러운 네트워크가 된다. (이 네트워크의 부재가 현대문명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의 뿌리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점점 조밀해지고 정교해지면서 문명이 지금까지 이르지 못하였던 단계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돈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돈은 투기와 착취와 갑질의 수단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 "늙어가는 돈"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링크>에서 바라바시는 경제현상을 네트워크이론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는 경제현상을 구성하는 네트워크의 노드node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그 노드는 바로 돈이다. 그리고 그 노드는 지금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그 때문에 우리가 IMF사태로 기억하는 아시아경제위기처럼 세계경제는 언제라도 연쇄적인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화폐개혁은 그 노드를 보수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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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21:53 2015/04/0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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