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from 아무그리나 2006/08/01 16:56
'괴물'은 오랜만에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든 영화이다. 헐리우드식 괴수영화와는 다른 독창적인 괴수영화를 만들겠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간간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영화내용의 일부는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결국 지난 29일 개봉 사흘째되던 날 드디어 영화를 보았다. 롯데시네마 8관 0시10분.


근데 보고 난 느낌은 왠지 찝찝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화면과 소재, 대사의 디테일함 등에서는 분명 헐리우드 영화와 다른 한국영화의 강점이 잘 드러났다. 하지만 결국 남는 큰 뼈대는 '가족애의 승리'라는 헐리우드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희망은 가족뿐인가? 영화는 죽은 딸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소년을 주인공 가족이 새로운 가족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들은 티브이에서 나오는 '괴물'관련 뉴스조차 거들떠보지 않고 (혼란한) 세상과 격리된 자신들만의 보금자리(키오스크박스) 속으로 다시 들어가버린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감독은 한 평범한 가족의 불행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대하는 사회가 더 '괴물'스럽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부분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영화 내내 뒷짐지고 있는 또는 무기력해보이는 국가권력에 대한 묘사에 공감할 수 없었다. 감독이 말한대로 이 영화에 나오는 '괴수'는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괴수'와는 비교도 안되는 존재이다. 국가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현대과학을 이용한 첨단무기를 통해 금방이라도 사로 잡을 수 있는 '조금 희귀한 생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국가는 그러기보다는 바이러스 감염 위협만 앞세우고 정작 바이러스의 숙주인 '괴물'을 제거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없다. 영화 중반쯤에 국가권력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은 계속 바이러스에만 집착한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감독은 무능한 국가권력을 비꼬고자 했는 것 같다. 그리고 가족의 활약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국가권력이 강력하게 그려진다면 가족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이런 설정 어디서 많이 본 낯익은 것 아닌가? 헐리우드에서 만든 수많은 괴수영화, 재난영화 등이 재난앞에 무능한 국가/사회와 난관을 헤쳐나가는 가족(애)를 대비시켜왔다. 이런 영화들과 '괴물'은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괴물'은 많은 영화적 요소에서 기존 할리우드식 괴수영화와는 다른 독창성을 보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하는데까지 이른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도 할리우드키드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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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01 16:56 2006/08/01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