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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으로 가는 길목/ 김우찬

[시평]삼성공화국으로 가는 길목
[머니투데이   2005-05-26 13:19:02]  

김우찬KDI국제정책대학원교수

 

민주화 투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면 기대했던 민주사회가 도래하기 보다는 권위의 공백으로 인해 인기영합주의와 기업으로의 권력이동이 초래된다고 한다.

 

요즘의 우리나라 세태를 묘사하는 정확한 예측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날로 커지고 있는 삼성의 힘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는 분명 자랑스러운 기업이다. 해외에서 삼성전자 광고판을 보고 가슴 뭉클했던 경험을 많은 국민들이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에서 삼성의 힘은 견제되어야 할 힘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삼성의 성패는 더 이상 일개 기업의 성패가 아니라 국가경제의 성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론기사들에 따르면 삼성의 매출액은 국가총생산의 17%,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2%, 국가 수출액의 2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는 주주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삼성의 성패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삼성전자와 같은 초우량기업이 총수일가의 지나친 지배욕구로 인해 그 소유 및 지배구조가 왜곡되고, 결국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지배의 핵심연결고리인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카드가 부실해지면 삼성전자가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동반부실이 초래될 수 있다. 

 

우리가 삼성의 힘을 경계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법치주의의 수호에 있다. 잘 알다시피 삼성의 힘은 사회의 각 분야에 퍼져있다. 그러나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적용하는 국회의원, 경제관료 그리고 심지어는 법관들이 삼성의 힘 앞에서 서서히 그 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 징후들을 짚어보자.

 

먼저, 2002년 1월 재벌계열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이 허용되었다. 원래는 금융보험사의 고객재산이 그룹지배에 이용된다는 문제 때문에 동일계열회사에 대한 의결권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지만 금융보험사 지분이 많은 삼성의 강력한 로비로 말미암아 의결권이 30%까지 허용된 것이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서 의결권을 다시 금지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삼성의 힘은 역시 강했다. 2년에 걸친 공방 끝에 지난 해 가까스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2008년에 겨우 15%까지 줄이는데 합의했다. 

 

둘째,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일명 금산법) 제24조에 따르면 금융보험회사는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 5% 이상을 가지면서 다른 계열사 지분을 합쳐 해당 회사를 지배할 경우 금감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역시 고객재산이 그룹지배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런데 삼성카드는 금감위 사전승인 없이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보유함으로써 명확하게 법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아무런 제재도 받고 있지 않다. 최근에 상정된 금산법 개정안은 삼성 등 과거 법위반 기업들에 대해서 면죄부까지 주고 있다. 

 

셋째,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어떤 회사가 금융기관의 주식을 보유하고, 그 보유액이 해당회사 자산의 50%를 초과하게 되면 해당회사는 금융지주회사가 되어 손자회사를 지배할 수 없게 된다. 이 역시 고객재산을 이용한 그룹지배를 막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 삼성에버랜드는 2003년 말부터 금융지주회사의 요건을 갖추어 손자회사격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다. 이를 모면하기 위해 삼성은 최근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평가방법을 지분법에서 원가법으로 변경한다고 공표하였다. 법의 근본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편법이라고 하겠다.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묵인할지 아니면 시정을 요구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는 현재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특정 재벌일가가 법 위에 군림하는 사회로 갈 것인지 아니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로 갈 것인지. 당국자들의 슬기로운 판단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김우찬KDI국제정책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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