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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개혁 방해하는 지배세력-진주신문 5. 30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선배들과 모일 기회가 있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한 선배가 “우리 사회의 주요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이 모두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 선거에서 패배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노무현 후보가 이긴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은 사회로부터 이득을 취하려고만 하지 사회에 대해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자녀를 군대에 보내는 일,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일,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법을 지키는 일을 제대로 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과거에 1년에 10% 정도로 고도성장을 할 때는 어쨌든 일반서민들의 생활도 나아지니까 이러한 의무 기피와 부정부패가 심했더라도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이제 양극화와 실업, 고용 불안 등으로 생활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 요구가 높아진 서민들은 이러한 행태를 계속하는 기득권 세력을 지지할 리가 없다.”

최근 보도를 보면 이러한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에 소득격차는 커졌는데 조세부담률 차이는 오히려 줄어드는, 어이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1/4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의하면 도시가구의 소득 상·하위 20% 계층간 소득격차(1/4분기 기준)는 2003년 7.23배에서 2004년 7.28배, 2005년 7.6배로 확대되었다. 반면 상·하위 20% 계층간 조세부담률 격차는 2003년 5.16배에서 2004년 4.04배, 2005년 3.59배로 작아졌다.

또 의사, 변호사, 상인 등 자영업자들은 근로자들보다 소비지출은 더 많이 하면서도 세금은 턱없이 적게 내고 있다. 지난해 전국 가구의 소비지출은 월평균 소비지출은 196만원, 이 가운데 세금으로 7만 3천원을 냈다고 통계청은 발표했다. 조세부담률은 3.7%이다. 근로자 가장 가구의 경우 월평균 200만원을 소비하면서, 세금은 5%에 육박하는 9만 8천원을 부담했다. 사무직 근로자 가구는 월평균 소비지출 243만5천933만원의 6.74%인 16만4천139원을 세금으로 냈다. 하지만 의사와 변호사, 상인들을 포함한 자영업자의 경우 210만원으로 소비수준은 더 높은 데 반해, 세금은 고작 4만 3천원을 낸 것으로 조사돼 근로자의 44%수준에 불과했다.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부자들의 재산 보유와 재산소득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재산소득에 대한 정확한 과세에 힘을 쏟지 않고, 오히려 특별소비세 인하 등 부유층을 위한 간세정책을 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상경 대법관은 자신의 건물 임대소득을 월 400만원 가량에서 100만원 가량으로 대폭 적게 신고해 10년 동안 3억원 가량의 세금을 떼먹었다는 사실이 임차한 가게주인과의 갈등 속에서 드러났다. 이러니 정액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득권층은 이러한 모든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으니 자기만의 잘못도 아니고 혹 걸려도 추징세금 좀 내면 되므로 별로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우선 민주주의가 무섭도록 성장하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조차 합법화되기에 이르렀다. 공무원노조는 바로 이러한 탈법과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 힘을 쏟게 될 것이다.

또한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의무를 소홀히 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 자체의 유지마저 어려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후 노인들의 자살률이 급상승하여 2003년에는 65세 이상 10만 명 중 71명으로, 일본의 두 배, OECD 가입국가 1위를 기록했다. 어른을 잘 모신다는 우리의 전통 풍속에 비춰봐서 정말 부끄러운 기록이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노후보장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의 절망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다른 한편 자녀출산율은 1.17%로 세계 최하수준이다. 신규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비정규직 노동자 부부로 구성된 신혼 가족이 아이를 제대로 키울 경제적 힘이 없고 사회보장도 너무나 미약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세력의 의무 수행 강제하기를 위해 특별한 각오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세청과 전체 행정부의 힘을 총동원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소홀히 하는 것에 오늘날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위기의 뿌리가 있다.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장상환

진주신문 2005년 05월 30일 (7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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