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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콩나물에서 컴퓨터까지.. 전부 '삼성'이네!

두부·콩나물에서 컴퓨터까지.. 전부 '삼성'이네!

[단상] 한 전업주부의 일상으로 본 '삼성공화국'

 

양옥분 기자

 

나와 삼성은 무슨 관계?

삼성 임원들이 삼성을 '공화국'으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의식해서 대책회의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여러 매체가 삼성을 요모조모 다루고 있다. 아무튼 그 회의에서 나왔다는 대책들을 뒤집어보면 결국 삼성이 국가 경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전제 위에 그저 겸손한 언어로 몇 마디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한 듯했다. 더 커지려는 욕망을 줄이겠다는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삼성 붐'을 보며, 나와 내 식구는 삼성 또는 삼성 패밀리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가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내 소비 생활의 결과물, 그리고 내 일상적 소비 생활의 패턴을 반추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식구는 삼성 또는 삼성 패밀리라고 통칭되는 기업들에 깊이 매여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보고 그 매임은 날이 갈수록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먹고 입고 놀고... 다 그 집안 덕택

우리집 아침을 소개함으로써 삼성 패밀리와의 깊숙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보려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를 연다. 과일을 깎고, 두부를 4분의 1모쯤 잘라 양념간장을 곁들인다. 그리고 지난 밤 냉동고에서 꺼내 녹여놓은 빵을 한 조각 굽는다. 고등학생인 아이는 씻고 나와 교복을 입고 아침상에 앞에 앉는다. 귀에는 MP3가 꽂혀 있다. 아이의 엄지 손가락은 핸드폰의 자판 위를 더듬고 있다. 아이가 늦게 일어난 날은 차로 5분정도 걸리는 학교까지 자동차로 태워다 준다. 집으로 돌아오면 세탁기에 빨래를 털어넣고 세제를 보태 돌린다. 그 다음 청소기를 돌린다.

삼성 가전제품이 우리 부엌을 점령한 지는 이미 오래다. 세탁기에 넣은 세제와 내 아들이 먹은 빵은 이병철씨의 장손이 하는 CJ의 제품이며, 우리 아이의 교복은 삼성 제일모직의 아이비이다. 그리고 내 아들의 귀를 점령한 MP3도 삼성제. 당근 아이의 핸드폰도 삼성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는 아마도 학교에서 삼성 에버랜드나 CJ나 이병철씨 막내딸의 기업인 신세계, 그 셋 중의 하나가 배급하는 급식을 받아먹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하면 내 아이들은 어려서는 에버랜드(자연농원이었다)에 놀러 다녔으니까, 삼성 패밀리의 손에서 놀고 먹고 입고 자라고 있는 셈이다.

CJ의 고등어구이... 이제 두부·콩나물까지

우리집 부엌에는 CJ의 설탕과 콩기름, 올리브유, 밀가루, 식초, 요리당이 상비되어 있다. 나는 사지 않지만 그 기업에서는 고추장, 된장, 쌈장 장사도 하고, 찌개에 넣는 다대기도 판다. 때때로 나는 아이에게 CJ의 햄을 뚜레쥬르의 빵에 끼워 샌드위치를 해주며, 반찬이 없으면 CJ의 즉석국에 햇반을 말아먹게 한다. 편의성의 유혹이 아질산염, 보존제 등을 포함한 첨가물에 대한 한없는 의심과 찝찝함을 이긴 날이다. CJ의 동그랑땡과 너비아니는 도시락을 싸지 않기 때문에 안 산다. 이 역시 육가공품이다. 그 밖에도 끝없이 많다.

지금도 있을 테지만 그 기업은 고등어도 구워 팔았다. 반찬 장사를 하는 것이다. 재벌회사의 제품 목록으로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고등어구이는 내가 민망하여 아직 시식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CJ의 제품 목록에 공연히 내가 민망해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우리집 냉장고 속으로 들어온 적은 없지만 CJ가 두부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안다. 콩나물도 곧 나온다고 들었다. 좋게 말해 CJ의 '티끌 모아 태산'의 '철학'은 가히 극치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한해 매출이 수조원에 이르는 재벌 반열 대기업의 사업적 상상력이 하필이면 두부, 콩나물로 뻗쳐 갔는지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풀무원에 도전하여 두산이란 대기업도 들어가 있는 두부, 콩나물 시장에 CJ라고 못 들어가란 법은 없다. 그러나 아직은 영세업자들이 주로 하는 업종이라서 그런지 "재벌이 두부, 콩나물까지 해야 해?"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게다가 무첨가 두부, 뭐 그런 소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토피 아이를 둔 덕분에 첨가물의 도사가 된 내 친구 하나가 스프링처럼 튀며 내뱉었다.
"아니, 다른 데도 아니고 CJ가 무첨가 제품을 만든대?"

'제일제당 미풍', '제일제당 다시다'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CJ와 무첨가는 영원히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삼성 패밀리를 통해 만끽하라, 소비 카타르시스!

우리집은 삼성 래미안도 타워팰리스도 아니다. 그러나 차는 삼성 자동차이며, 삼성화재에 보험이 들어 있다. 남편은 가끔 제일모직 갤럭시 세일 제품을 입고 출근하며, 회사에서는 삼성 컴퓨터로 일한다. 그리고 일년에 한번 남편은 삼성 의료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끔 제일모직 빈폴의 옷을 사입힌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식구들은 언감생심 걸칠 엄두를 못내는 조오지 아르마니, 캘빈 클라이언, 세인트존, 돌체 가바나 같은 세계의 명품들을 신세계가 한국인들에게 첫선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청담동 길거리를 빛내는 그 가게들도 신세계의 것이라고 한다.

나갈 식구들이 다 나가면 잠깐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동시에 켜두고 귀로는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컴퓨터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대강 훑어본다. 다 삼성 제품이다. 가끔 우울한 날에는 CJ홈쇼핑을 하염없이 보다가 미친 듯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기도 한다. 소비의 카타르시스라고 혹시 아는지? 삼성 패밀리를 통하면 이것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삼성 애착증이 있는가? 아니다. 삼성을 특별히 사랑하여 삼성 제품만을 찾아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일상과 신변을 둘러보면 본의 아니게 나와 같은 '삼성 동호회'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리움'에는 못 가도, 스타벅스에는 간다

나도 이따금 친구들과 점심을 바깥에서 먹는다. 우리는 수수한 불고기집이나 아주 드물게 일식집에서 점심 정식을 먹는다. 생선회에는 아마도 CJ의 양어 사료를 먹고 자란 광어 살점도 있었을 것이다. CJ의 사업에는 사료도 있다.

나는 또 친구들과 일년에 한두 번 영화를 본다. CJ가 경영하는 극장에서 CJ가 들여온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줄리아 로버츠가 되어 로맨틱한 기분에 젖는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극장 가까이 있는 신세계의 스타벅스에서 까페라떼를 마시는 '사치'를 즐긴다. 삼성의 신라호텔과 신세계의 조선호텔은 내게 '너무나 먼 당신'이어서 구경한 적이 없다.

"리움에 예약하면 얼마나 기다려야는데?"
스타벅스에서는 스타벅스에 어울리는 화제여야 한다는 듯이 이렇게 교양을 떤다. '리움'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 관장인 미술관이며, 그 건축과 소장품이 대단하다더라는 정도에서 우리의 화제는 더 나아가지 못한다. 미술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문화적 여력이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재테크도 노후도 삼성 식구들에게 다 맡기고

화제가 재테크나 노후 대책으로 옮겨가도 삼성패밀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CJ투자증권, CJ자산운용이라는 회사만을 나열하겠다. 아, 최근에는 삼성이 은행을 가지려 했다던가? 나는 놀랍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무한 경쟁, 사업 다각화 이런 말들과 삼성 또는 삼성 패밀리가 이루는 기막힌 조화를 생각할 때, 그동안 삼성에 은행이 없었던 것이야말로 부자연스런 일이 아니었던가! 맙소사, 여론에 밀려서 대삼성이 이 계획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접어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삼성 패밀리 '덕분'에 잘 노닥거리느라면 반드시 우리 중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린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전화다. 삼성애니콜 휴대폰이 반드시 주종을 이룬다. 그때쯤 우리는 저녁 쇼핑을 어디서 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신세계와 이마트 그리고 홈플러스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사는지 알려면 강남 신세계의 식품관을 한바퀴 돌아보라고 하던가? 나도 거기 가보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사지는 않았다. 그 풍요로움에 기가 꺾여서 만원짜리 한장 쓸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패밀리는 계층 불문하고 다 만족시키는 울트라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는 점에서 일면 고맙기 그지없다.

신세계의 이마트나 삼성의 홈플러스가 모두 내 지갑을 활짝 열게 하는 대형할인점이다. '최저가'가 아니면 돈을 얹어서 물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곳을 두고 어디로 가랴. 거기서도 우리는 '덤'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 부지런히 수레를 끈다. '덤'과 최저가 등쌀에 동네 수퍼가 한숨짓는 사정까지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그 덤과 최저가의 최종적 보상은 결국 소비자가 치르게 되어 있음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삼성 패밀리의 물건은 공산품 매장에도, 식품 매장의 상온 매대에도, 냉장 매대에도, 냉동 매대에도 넘쳐난다. 이 매장에서, 그 집 핏줄의 회사가 만든 컴퓨터에서, 마침내는 두부, 콩나물까지를 소비하는 구조를 생각해 보라. 영세하면 영세할 수록 최저가와 '덤'에 멍들어 이 매장에서 퇴출당하고 큰 것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 피의 끌림에 따라 이 삼성 식구들이 그 거대한 기업군락을 움직인다면…. 가슴이 답답하고 섬찟하다.

삼성 패밀리의 브레이크 없는 욕망

내 필요보다 늘 더 많이 사도록 유도하는 할인점 매장에서 쇼핑 보따리를 끌다시피 하고 나오는 것으로 나는 삼성 패밀리와 헤어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해는 지고 다시 뜨기 때문에 나와 내 식구는 매일 아침을 삼성 또는 삼성 패밀리의 제품과 함께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내 일상만을 대강 훑어보아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과 함께 하지 않고 어떻게 살까 싶다. 삼성 패밀리의 막강 대군이 두부, 콩나물에서 반도체까지 이렇게 무차별로, 파죽지세로, 끝없이 진군하게 그냥 두어야 하나?

시장에 맡겨두어야 경제가 제대로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작은 것이 발붙이고 살 자리조차 앗아가는 큰 것 중심의 시장 경제가 과연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인지 묻고 싶다. 작은 것은 모두 삼성이 "현금 결제"의 은전을 베풀어주기로 한 것에 기뻐하며 하도급업체로 전락하여 납짝 엎드려서 살라는 말일까.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 큰 것에게 그 무한 식탐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 쇠귀에 경읽기인 줄 안다면, 큰 것이 넘을 수 없는 경계와 영역이 엄격히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삼성 패밀리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나 보다.
  2005-06-10 17:55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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