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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슈어방크와 방크슈랑스/ 정홍주

어슈어방크와 방크슈랑스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정홍주   

 

  어슈어방크(Assurbank). 보험회사가 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의 보험업 진출을 의미하는 방카슈랑스(Bancassurance)의 반대말이다. 방카슈랑스는 국내에서 연전에 실시됐고 어슈어방크는 최근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방카슈랑스로 뼈아픈 외침을 당한 보험업계가 이번에 어슈어방크로 반격을 도모하고 이에 은행권이 반발중이다.
  
  국내에서 금융산업에 관한 정책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장기적이고 발전지향적인 것보다는 단기의 문제 해결 성격이 더 강하다. 방카슈랑스는 금융 이용자의 편익 증대와 금융산업의 중장기 발전보다는 부실해진 은행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어슈어방크 논의는 방카슈랑스 도입의 후속탄이다. 방카슈랑스로 위축된 보험업계의 실지 회복 및 수익성 개선을 위한 조치로 검토중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이런 정책은 동북아 허브를 추진하는 우리 금융업의 청사진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은 이 문제를 은행과 보험업계의 힘겨루기 내지 밥그릇 싸움으로 표현하는 한편, 정부와 감독당국은 양 업계의 수익성 및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정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더욱 더 중요한 일반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검토되지 않고 있다.
  
  방카슈랑스나 어슈어방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진 소위 양날을 가진 칼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및 비효율적 자금배분 문제 외에도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및 금융시스템 불안 등의 여러 문제가 있다. 특히 금융 겸업화로 금융기관의 부실 파급 및 연쇄도산 가능성을 의미하는 시스템 리스크 증가에 대해 외국에서는 매우 주목한다.
  
  물론 외국에도 방카슈랑스와 어슈어방크는 있다. 다만 우리와는 몇 가지 다른 여건의 차이가 있다. 첫째, 금융산업의 경쟁구조다. 은행, 보험회사 등 금융기관의 수가 많고 지배적인 사업자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처럼 국내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은행이나 보험회사를 외국에서는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은행이 보험업에 진출하건 반대로 보험회사가 은행업에 진출하건 대세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둘째, 정부와 감독당국의 태도다.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타 업종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매우 우량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만 타 업종 진출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은행의 보험회사 소유 및 보험회사의 은행 소유는 모두 시스템 리스크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해당 금융기관의 규모가 큰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또한 과점적 구조가 아닌 한 본업도 아닌 타 업종에서 이익을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셋째, 금융기관의 태도다. 수익성과 주주가치를 중심으로 타 업종 진출 여부를 결정한다. 규모와 지배력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로지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경제적 부가가치(EVA)가 판단기준이 될 뿐이다. 지난 99년 미국의 씨티은행이 트레블러스 보험그룹을 합병한 후 최근 보험사업을 모두 매각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수익성을 경시하는 국내 금융기관의 방만한 태도는 재무건전성 감독이 엄정하지 않을 때 형성, 유지된다.
  
  넷째,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와 감독당국의 통제력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산업내 금융기관의 수가 증가할수록 공권력의 힘은 커진다. 반대로 금융기관의 수가 적고 집중될수록 정부와 감독당국의 통제력은 제한된다. 대형 금융기관의 인력 및 정보력에 의존하거나 유사시 대마불사의 원리가 통용된다. 공무원과 감독자들이 퇴임 후 금융기관에 재취업할 필요성이나 가능성이 크면 그들은 더욱 위축된다.
  
  다섯째, 금융기관의 재무상태와 경쟁력이다. 국내 은행과 보험회사들은 대체로 선진 금융기관에 비해 재무상태와 경쟁력이 취약한 상태다. 국내 최대 은행도 국제화전략을 재검토할 정도라고 한다. 고유 업종에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금융기관이 다른 업종으로 사업 확대를 시도하고 이를 정부가 방관, 조장하는 것은 무모하다. 고유의 핵심 역량을 확보한 후 타 사업이 아니라 타 국가로 진출하는 것이 선진국 금융기관의 일반적 경영전략이다. 어슈어방크와 방카슈랑스. 국내 금융산업의 더 큰 그림과 구도에서 검토하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파이낸셜 뉴스 200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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