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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전라도 어느 시골에서 태어난 그 남자는 3대독자였다.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상경하여 결혼이란걸 한게 28살쯤 이었나 보다.  사실, 결혼식도 못했다.  가난이 뼈를 깎던 시절 이었으니까...젊은 시절, 그 남자는 유난히 똑똑하여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란델 갔다.  하지만 졸업은 못했지.. 쌀독에 쌀 떨어지는 날이 훨씬 많았을 텐데 졸업을 어떻게??

결혼을 하고 나니 먹고 살일이 걱정이다.  같이 사는 여자는 할줄 아는게 밥아니면, 빨래 정도 였을까?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할 끼니 걱정을 하면서 살아 오면서도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물론 다 낳고 싶어서 낳은건 아니다.  중간에 두어번 중절 수술을 하라고 수술비를 구해 주기도 했건만, 철없는 아내는 남편이 3대 독자라는 압박에 시달리며 하나 낳은 아들에 죄스러워 중절수술 까지 감행하지는 못한다. 첫아이가 딸, 둘째가 아들이었건만... 



두번의 출산을 더 감행해야 하는 '희생'을 치렀건만, 그 두번은 모두 딸이다.  실망이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일단 낳아 놓은 아이들은 그저 예쁘기만 한것을 어쩌랴.. 툭하면 물고 빠는 그 남자는 어떻게든 아이들 넷을 먹이고 입혀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며 어느날 해외에 나가 돈을 벌 결심을 한다.  그때가 한창 중동붐이 일어 현대 중공업이 사업을 확장하던 때이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넷을 떼어놓고 머나먼 타국땅으로 갈 생각을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먹고 살아야 하는것을.. 두 눈을 질끈 감고 드디어 타향길에 오른 그 남자는 아내가 아이들을 잘 키울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아내는 오로지 남편만을 믿고 아이 넷을 떠맡아 한달에 한번씩 송금되는 급여로 생활을 이어갔다.  가끔씩 정갈한 글씨체로 편지를 보내오는 남편의 소식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아빠에게 편지 왔으니, 답장이라도 보내라고 하는 말도 잊지 않고.  그 중 큰 아이는 유독 아빠에게 정이 많아, 아빠가 보내오는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 편지를 써 보낸다.

 

몇년이 계속되는 해외 노동자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 남자는 어느새 현장 노동자가 아닌,  중견 간부직으로 진급하는 행운을 맞는다. 그도 그렇거니와 대졸중퇴의 학력과 꼼꼼한 일처리 자세가 있으니 좋게 볼만도 하지...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갈 즈음, 집에서 안좋은 소식이 날아 들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식으로..  몇년씩 집을 비우고, 거기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넷을 맡기고 남편없는 집에 별일이 없다는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소식을 듣고, 벼르고 벼르다 귀국한 그 남자는 결국 해외에서 가지게 된 안정된 직책과 직장을 잃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들 넷을 모두 혼자 도맡아 키울 생각을 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아내는 간통죄로 집어 넣고서...  

 

운이 지지리도 없는 이 남자는 그로부터 아이 넷을 혼자 키우는 졸지에 호래비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불쌍도 하여라... 세상의 시선은 이 남자를 그냥 불쌍한 남자로만 보지 않는다.  여자를 잘못 만나서 인생이 꼬였다고 보는게 가장 지배적이었을게다.  내가 보기에도 그 남자의 아내는 그 당시로치면 보통 여자는 아니었음이 분명하지만... 여자의 일생을 말하기에 앞서 여기서는 그 남자의 일생이 중요하니깐!  일단 제낀다.  하지만, 분명한건 남자는 한번 바람을 피워도 그냥 유야무야 넘어 가면서 전처럼 살기 마련인데, 심지어 본처 따로 첩따로 두면서 사는 경우도 흔하디 흔한 경우인데, 여자가 바람한번 피웠다고 아이 넷을 떼어가며 이혼을 당하는건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 남자는 그때부터 고생길로 접어 드는데...그 고생을 말로 하자면 장편소설책이 되고도 남음직 할거다.

 

30대 후반에 이혼남이 되어 아이 넷을 키우며 된통 고된 인생을 살기 시작한 그 남자는 남은 홀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꾸역꾸역 살아간다.  한창 커가는 아이들이라 먹는것은 오죽 하겠으며 넷이나 되다 보니 학비또한 장난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 왔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직 하다. 그런데도 그 남자는 아이들에게 한번도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인적이 없고, 다음날 아침, 아이들의 도시락 싸는것도 잊은적이 없다.  심지어 깜빡하고 도시락을 놓고 가기라도 하면, 행여라도 굶을까봐 학교 수위실까지 배달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그도 남자는 남자인지라  잠시 여자를 사귀기도 하여, 집에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 그것도 여의치만은 않은가보다. 만나는 여자들마다 집에 앉혀 놓지를 못하는것 보니깐.. 결국, 아이들이 장성할때까지 혼자 살면서 아이들 능력에 맞는 학교까지 다 보내놓고도 여전히 혼자다. 그 남자의 큰 딸은 어찌나 철이 없던지 아버지 혼자 꾸려가는 살림에 시집가기 전까지 아침밥 한번 지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마누라 복 없는 남자는 자식복도 없는건가 원~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남자의 네 아이는 막내만을 빼놓고 모두 결혼을 했다.  그렇게 고생고생 하면서 키워 놓은줄은 알기나 할까?  자식도 다 품안의 자식이지...이제, 그 남자는 가진것도 하나 없고 남은것은 육신 뿐이다.  어렵게 신청해서 운좋게 당첨이 된 임대 아파트10평짜리가 그의 거처이며, 여전히 자식들에게 아무 해준게 없다고 미안하다는 말만을 할 뿐이다.  인생, 정말 더럽게 안풀리는 그 남자!  그 남자와 살다가 바람 피워 이혼당한 그 여자는 연하의 남자랑 아주아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서른평이 넘는 아파트까지 분양받아서.. 아이 둘까지 낳고..

 

성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 죄 없는자가 돌을 던져라!'라고.. 누가 누구한테 돌을 던지랴, 내가 보기엔 재수 옴붙게도 안풀리게 살아온 그 남자의 인생도 어찌보면 팔자이고, 용솟음 치는 열정에 책임까지 나몰라라 했던 그 여자도 그 여자의 입장에선 어찌 편하기만 했으랴,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여자의 팔자가 아닌가 싶다.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뭘.  돌고 돌면서...

 

오늘은 그 남자의 생일이다.  그 남자의 큰딸은 잊지 않고 전화 하면서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부쳐 준다고 하는데 그 남자는 한사코 거절이다. 오히려, 아빠가 너희에게 아무것도 못해주어 미안하단다.  쳇~!  도대체 뛰어 넘을 수 없는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끈은 어디까지 일까..내가 아이를 키우는 입장인데도 나같은 사람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물론, 희연이가 과연 내 생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가 더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나 같으면 아마, "이왕 부칠거면 많이 부쳐! 오늘은 비싼 술이라도 먹어보자." 이랬을텐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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