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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까기!

   드디어 끝났다.. 즐겁지 않은 명절도 그 뒤치닥거리도.. 올해 추석은 애하고 둘이 지냈다.  명절날 제주가 빠진 차례를 지낸건 올해로 두번째다.  3년전 추석때도 제주 없이 차례를 지낸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혼자서 차례를 뭐하러 지내냐고 그냥 생까고 말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맞아~! 그렇지!!  하고선 올해는 그냥 생까보려고 했는데, 동거인이 그러더라.  애를 위해서 지내는거니까 그냥 간단히 차려라, 안 지내는것 보다는 낫지 않겠니?  '애를 위해서...'라는 말에 그만 생까겠다는 다짐을 무너뜨리고 그래, 간소하게 차리자, 고 맘을 먹고 장을 봤다. 간단히...라고 생각했는데 장을 보다보니 이것저것 산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물론 내 손을 거쳐야 할 음식도 여럿 있다.  전 두개하고 생선굽기하고 나물 한개 무친거하고 밥하고 국이 전부 이지만.. 절을 열두번쯤 하고 냉수 떠다 놓고 귀신들 먹던 숟가락 담그고 차례를 끝냈다.  상을 치우고 커피를 한잔 우아하게(?) 마셔주고 달콤한 낮잠을 한잠 자고 움직이기 싫은 몸을 이끌고 얼굴 도장 찍으러 나갔다.  사실 얼굴 도장 같은 것도 생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역시 애가 그거 보고 배우면 어쩌나 싶어서...애는 분명히 어른이 하는거 다 기억하고 그대로 한다라는걸 놀랍게도 다시 확인하는 즈음이라서(그거 일일히 밝히는건 쪽팔림으로 생략..).. 언제쯤이면 애도 신경 안쓰고 생깔 수 있는 날이 올까?

 

   명절은 술먹기에 핑계 삼기 딱 좋은 날이다.  늘어지게 마셔도 다음날 출근 같은거 안해도 되고 명절날 술한잔 마시는건 인지상정 아니냐, 이런 날 안마시면 언제 마시냐, 등등의 말로 합리화 시키기에도 여지없이 들어 먹히는 날 이니까..그야말로 술에 올인해서 마시기에는 명절 만큼 좋은 날은 없는 얘기..  술먹다 지겨우면 고스톱을 치거나 밖에 나가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당구나 볼링이라도 한판 하면 그만이고 그러다 기분 내키면 노래방까지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를 한다고 한들 어느누가 꼴불견이네 하며 흉을 볼까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면서 술을 마시느냐 이다.  아무리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대화의 내용 혹은 관심사 이런게 비슷해야 술맛도 나고 시간 가는줄 모르며 수다도 떨고 싶어지는 법.  그런게 없으면 술맛이 안나는건 당연지사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술 마시기도 생까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른 사람들은 새벽 4시까지 마셨다고 하더라.  그 정도야 기본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마시다면야 그거보다 더 길게도 마실 수 있는게 나니까.. 맛있는 안주와 종류별로 다 있는 술을 뒤로 하고 유혹을 뿌리쳐야 했던 그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생까기가 이렇게 힘든 것도 드문일이기는 하지...쩝~ 

 

   지금 이 시간부터는 자유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겠다.  명절인데 한잔 하자구! 하면서...그런데, 아뿔싸! 현재 내 문자를 생까는 사람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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