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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시간 없다고 맨날 쩔쩔 매면서도 할거 다하고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사는 나는 정말이지 모순의 극치를 달리면서 사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도망'을 실시했다. 그래봤자, 하루 반나절 할일 미룬채 어딘가를 쏘다니거나 어디선가에서 술이나 푸고 있는게 다일테지만...

 

   어제는 요새 항간에 오르내리는 '엄뿔' 마지막회를 봐주시고, 정말 시시해서 못견디겠다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린후, 집에 있는 맥주를 벌컥벌컥 있는대로 들이 마시고는 뻗었다. 그럼 그렇지! 김수현의 한계가...그러면서 제목은 그게 뭔가? 엄뿔이라니...뿔이 났으면 제대로 나덩가~ 아님 나지를 말덩가~ 근데, 정말로 자식들은 엄마의 인생을 너무 모른다.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와 배우자, 그리고 자식들 밖에 모를까? 엄마는 자식들 중 어느 누구도 차별하며 키운적 없다고 하는데...컴플렉스 있는대로 가지고 사는 아들은 드디어 엄마에게 대들기까지 하고, 자기 마누라 유산기미 보인다는데서 더더욱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마지막회이기 망정이지...정말 못봐주겠더라. 그리고 엄마는 그 말듣고 1년 휴가 다 쓰지도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야만 하나?? 그냥 생까고 1년 꽉꽉 채우고 들어가면 안되나?? 짜증이 나서 죽을뻔했다..

 

   애하고 나는 그걸 보면서 그랬다.  "너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성인이니까 니 인생 알아서 잘 살아봐." " 알어~! 난, 그때되면 집 나가서 독립할거야. 그리고 엄마 집에는 가끔 놀러 올거고...그리고 나는 결혼은 절대 안할거거든.." " 왜 결혼 안할건데?" " 그거야 뭐...남자들이 별로 맘에 안들기 때문이지." "니가 벌써 남자를 아냐?" " 왜 몰라?? 하튼, 남자들은 별로야..." "@@ (속으로는 그래, 잘 생각 했어...근데 과연 니가 결혼을 안할까??)" 뭐, 대충 이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전형적인 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인지 갑자기 마음이 진정이 안된다.  어떻게든 마음을 잡자고 다잡아 보고 또 잡아 보는대도 마음은 자꾸만 황량한 들판을 향해 도망치고 있다. 역시, 계절중에 가을이 제일 잔인하다는걸 또다시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엉덩이 붙인지 3시간만에 그 간절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엉덩이를 뗐다.. 정처 없는 발걸음...어디를 가도 책상이 아닌 곳에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나도 모르게 다다른곳은 어느 짜장면 집이다.  그곳은 내 절친한 지인과 자주 들리던 곳...얼큰한 짬뽕과 입에서 살살 녹는 탕수육이 맛있는 집. 거기다 여럿이 모이면 해물 누룽지라는 메뉴도 최고의 맛을 자랑 하는 집.. 거기 한곳에 자리를 잡고 무작정 짬뽕을 시켰다. 그리고, 소주 한병을 시킬까 하다가....차마, 그거 까지 할만한 용기는 나지 않더라. 가을인데, 이 황량한 마음을 달래주려고 도망까지 쳤는데 혼자서 처량하게 소주까지 들이 붓는다면 그건 완전히 '죽음의 문턱'(??)에 닿는거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내가 이렇게까지 소심해 질 줄이야...

 

   간절한 소주 생각을 뒤로 하고 맵디 매운 짬뽕을 우아하고 용기 있게 먹고 나서는,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 한캔을 샀다. 그렇게라도 해주어야 소주에 대한 미련이 없어질것 같아서...ㅎ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소주를 안마신 이유는 그거 먹으면 무슨짓을 할지 몰라서였다.  소주 한병 먹고 설마 얼마나 망가지겠냐만...한두번 실수 한 일이 떠올라서 이제는 그러면 안될것 같아서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사는 날까지 품위는 지키면서 살아야지...젠장~!  

 

   문뜩,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제에 무슨 시를?? 이라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죽기 전에 한편의 시를 남겨 놓고 죽는다면 그것 또한 '우아한 삶' 이라는 내 인생의 목표 중 한개를 해결 하는 셈이니까...근데, 안도현 왈, "시는 머리와 가슴으로 쓰는게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거"라고 하더라...과연 내가 온몸으로 시를 쓰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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