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약속 안 지키는 이유.

역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번 포스팅엔 의미심장하게 다시 시작할 것을 맹세 했으면서도 블로그에 글 올리는게 쉽지 않았던 건, 같은 이유이다. 게으름과 페이스 북 때문.

 

이제 변명은 그만하자. 글 잘 쓰는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서 먹고 살 일이 걱정 되어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지지난주 토요일엔 처음으로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나갔는데 그날따라 비가 억수로 와서 모인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 프레시안 만큼은 아니었지만 안건모씨의 지적은 정확 했다. 써 가지고 간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지, 올려야지 하다가 시간만 보냈네.

 

장마가 끝나고 푹푹 찔것만 같은 날씨는 며칠 반짝 하더니 어제부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비가 퍼부은 때가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내린다. 진짜 무섭다. 비 핑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고 컴질 이라니.. 날씨가 이상하게 변덕이 심한 걸 보니 지구의 상태가 안좋긴한가보다. 지구를 아껴야 하는데. 아끼는 방법을 알면서 실천을 안하고 사니까 찔린다.

 

7월도 다가고... 삼복더위에 다시 해야 할 일은 '일'인데. 복더위 지나가고 다시 하면 안될까, 하는 게으름이 스멀스멀...글쓰기 학교의 에프터 스쿨이 이어지고 있어서 글을 쓰고 있다. 근데, 그거 쓰면서 진짜 못해먹겠는건 강의 좀 들었다고 너무 땍땍거린다는 거. 알면 얼마나 안다고 진짜. 덧글을 전문가도 아니면서 전문가처럼 다는 사람들 보면 진짜 신경질 나. 표현법 하나 존중할 줄 모르나?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말 많은 건 딱 질색인데. 글의 내용이 좋으면 된거 아닌가? 그래도 일단 배운거 써먹어야 하니까, 라고 위로 하려고 하는데 내 성격상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다 엇나가면 서로 기분만 상하고. 글 쓰기 싫어지고. 암튼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굳혀 가는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

 

이번주 주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출구

 

   동서울 터미널에서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어젯밤엔 한숨도 못 잤다.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 옆 신남이라는 곳.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고 낯선 곳이다. 겁도 없이 지인이 오란다고 나선 초행길. 전 날 잠을 잘 못 잤는데도 머리는 맑고 몸도 멀쩡하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기분에 설레여서 인가보다. 새벽 6시가 채 안된 시간임에도 터미널에는 피서를 가려고 나선 사람들이 많다. 커다란 가방에 짐을 한가득씩 채우고 얼굴엔 설레임과 기대가 섞여 한껏 고조된 모습들이다.

 

   첫 차가 출발할 시간은 6시 30분, 아직 40분 정도 남았다. 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한잔을 마시고 대기석에 앉아 책을 꺼내 들었다. 어제 막 도착한 작은 책 8월호. 내가 제일 먼저 보는 코너는 특집 코너이다. 작은 책에서는 올해 초부터 말까지 매달 한 번씩 특강을 여는데 주제는 ‘내 인생과 글쓰기’이다. 이번 달엔 오도엽시인의 ‘글쓰기는 정치다’라는 주제의 글이다. 지난 달 강연을 속기록 통해 풀어서 써 놓은 것이다. 나는 그 강연에 참석할 때도 있는데 참석 하더라도 강연소리를 완벽하게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작은 책 속기록을 본다. 오도엽씨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이름과 활동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괜히 친밀감이 드는 사람이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읽기 시작은 글은 버스가 출발하면서 다 읽어 버렸지만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와 많이 맞닿아 있었다.

 

   오도엽씨의 강연에서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진짜 살아 있는 글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인, 작가, 기자,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서 사실을 전하거나 비판을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써야 되는 것은 “내 이야기”라고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내가 살고 있는 내 가족의 이야기를 써야지 진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글이 나옵"니다. 라고 하는 데 더 이상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일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미 여러해 전부터 블로그라는 공간을 통해 내 얘기를 꺼내 놓았다.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생활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 글들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나, 또는 나는 어떤때 글을 쓰나 생각해 보니 답이 명확치 않다. 영향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기분 좋은 덧글이 달리는 경우는 많았으나 따로 검증할만한 수단을 찾지는 않았으니까. 어떤때 글을 쓰나 생각해보니 나는 화가 나고 무언가 정리할 것이 있으면 글을 쓰는 것 같다. 다시금 내 블로그의 글을 읽어봐도 그런 글이 많다. 시시콜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대로 끄적여 놓은 글이 있는가 하면 일상에서 또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하고 거기서 느꼈던 분노와 저항 그리고 기쁨과 슬픔의 메시지도 담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안에서 끓고 있는 분노와 솟구치는 감정들을 주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 진다. 때때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할 말이 있을 때도 글로써 말할 때가 많다. 그래야 정확하게 전달되니까.

 

   생각해보니 내 안에 있는 얽히고 섥힌 실타래를 풀기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글 쓰는 것 외에도 시덥잖게 마시는 술이나 수다 그리고 흡연이 있지만 그러한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것 보다는 나의 내면을 살찌워주고 성장시키는 일은 역시나 ‘글쓰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글은 잘 쓴 글이 아니었다. 잘 쓰고 싶어서 프레시안의 ‘글쓰기 학교’에 등록을 했고 작은 책의 ‘글쓰기 모임’에도 나간다. 이러한 노력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더 영향력 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것을 쓸 수 있는 용기도 가질 것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다가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기록할 것이고, 부양의무자제도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부터 탈락한 사례를 찾아 그 법의 부당함을 알릴 것이다. 오도엽씨는 15년 동안 조선소에서 페인트칠하는 일을 하다가 어느 날 기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테러리스트가 되었거나 자살을 했을 거라고 한다. 15년 동안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은 온갖 불평등과 모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면서 받은 상처들. 이러한 삶의 굴곡을 견뎌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이다. 그는 1997년도에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아무도 그가 글을 쓰고 상을 탄 것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면 그 당시엔 글 보다는 물리력으로 먼저 자본과 권력과 싸워야 했으므로. 오도엽씨 역시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 드는 일을 전문으로 했으니까. 지금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려 하고 기록하지 않은 것들을 기록하려고 밤낮으로 녹취록과 씨름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마음 한켠이 무거웠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미 나는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고,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 또 한 가지, 안 쓰고는 못 베기니까. 성격을 조금 죽이고 잘 들리지 않는 귀를 가졌지만 만날 것이다. 숨죽이고 있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하지 않은 얘기를 듣기 위해서.

 

   어느 새 목적지에 다다랐고 지인이 마중을 나왔다. 2시간여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말할 수 없는 ‘섬광’이 비친 것 같다. 짙은 초록색의 나뭇잎으로 둘러싸인 국도를 지인의 집으로 가는 승용차에서 내다보며, 헛살지 말아야지 나도 누군가에게 서광을 주는 글을 써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