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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 미친고 투기에 목맨 우리 시대의 자화상 : 개발과 투기의 일상화 1

개발에 미치고 투기에 목맨 우리 시대의 자화상

: 개발과 투기의 일상화 1

 

## 개발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생성의 과정이지만, 필연적으로 폭력적 파괴를 수반한다. 과거에는 토건국가와 건설자본이 자연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의 주체였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들과 조용히 공모하여 스스로의 목을 죄기 시작했다. 스스로 나서 자연을 훼손시키고 서로의 삶을 파탄내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에 나온 가장 흥미로운 책 중의 하나는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책이다. 이 책의 가치는 부동산 투기와 개발의 관계를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보다도 자신의 모든 주장을 “통계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통계(statistics)라는 것이 그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국가의 (이해를 대변해주는) 학문(state + -tics)이라는 점에서 국가를 비판하기 보다는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능을 더 잘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손낙구는 그러한 통계를 기능전환시키고 있다. 특히 그는 국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새로운 통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토해양부와 행정안전부, 통계청, 국세청 등의 통계를 재구성해 활용하고 있다.

 

개발이나 부동산 투기와 관련하여,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지금까지 “정부나 기업이 만들어 온 통계는 대부분 부동산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이었다. “건설회사가 집을 많이 지어야 주택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 쓸 만한 통계”나 “주택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주택 사정이 좋아졌다는 통계는 많아도 지하실, 판잣집, 움막, 동굴과 같이 처참한 곳에서 몇 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가장 흥미로운 통계 중 하나는 부동산값 폭등기를 정부의 개발정책과 관련하여 4단계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1차 폭등기는 1965~69년으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을 계기로 이 시기의 부동산 투기는 정점에 달한다. 2차 폭등기는 1975~79년 사이이다. 이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선언한 박정희 정권의 대규모 개발 정책과 각종 특혜를 받으며 땅 개발과 주택 공급에 나선 민간 건설회사의 급성장, 중동 건술 붐에서 벌어들인 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부동산값 폭등을 야기한 것이다. 3차 폭등기는 1988~89년 사이로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위한 대규모 개발 사업, 서해안 개발, 3저 호황으로 발생한 여유 자금의 투기 자금화 등이 겹치면서 발생했다. 끝으로 4차 폭등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이다. 4차 폭등기는 아파트값 폭등, 강남 투기 열풍의 강북․수도권으로의 확산, 지역 도시 개발 정책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손낙구는 이러한 4차례의 부동산값 폭등의 주체를 부동산 5적이라 부르며 비판한다. 부동산 5적은 건설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 들을 가리키며, 그는 이들의 투기 동맹이 부동산값 폭등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결국 토건 국가 관료와 건설 재벌, 그리고 그들에게 빌붙은 언론과 학자들이 개발과 부동산 투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중요한 변화 하나를 놓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부와 재벌 그리고 그들과 공모한 일부 특권 계층 이외에) 개발과 부동산 투기 주체로 일반 시민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1966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의 방문과 함께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우방국들을 순례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그 방문국들 중 하나였다. 이 방문은 미국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때문에 존슨 대통령이 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모습부터 도착까지 모든 과정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생중계 되었다. 이 때 존슨 대통령의 환영식이 서울시청 근처에서 열렸고, 카메라에는 자연스레 주위 풍경이 담겨졌다. 당시 그곳 대부분은 판잣집이었다. 이 모습이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교포들에게까지 비쳐졌다. 이후 재미동포들이 청와대에 연판장을 보내왔는데, 여기에는 몇 천 명의 서명과 함께 서울 도심을 재개발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1966년은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이 사건은 정부나 투기 자본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개발을 독려한 최초의 사례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 사건 하나를 보편화 시켜서 개발과 부동산 투기가 민간의 욕망이 반영된 것이었다고 일반화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발이 단순히 국가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83년에는 도시 재개발의 새로운 형태로 ‘합동재개발’ 방식이 도입된다. 합동재개발은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과 민영회사가 함께 재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전까지 시행되었던, 정부와 주민추진위 그리고 민영 건설 업체가 함께 재개발을 진행하던 위탁개발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건설 업체의 역할이 증대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는 합동재개발 방식을 시행하며 민간 자본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조세경감과 공공지원 등 다양한 조건들을 제공했다. 정부는 이 방식을 조기 정착시키기 위해 1984년 1월에 ‘합동개발세부시행방침’을 마련하기도 했다. 정부가 나서서 민간 영역에서의 개발을 장려한 것이다. 또한 건설 업체는 자체적으로 개발을 시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주택 소유자로 구성된 재개발 조합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해 진다. 민-관 파트너십이 민-민 파트너십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손낙구의 분석에서 빠져 있는 민간 영역의 역할은 그가 4차 투기 시점이라고 이야기 한 외환위기 이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4차 투기 시점은 외환위기 직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김대중 정부는 위환위기 극복 수단으로 부동산 투기를 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시킨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1998년 5월 22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그리고 2000년 11월 1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두 시기 동안 신축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잔금 지급일로부터 5년 안에 되팔기만 하면 1가구 2주택이라도 조세특례제한조치로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었다. 이는 전용면적 50평 이하의 경우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주택을 소유한 이들이 다른 주택에 투기를 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보장해 주는 조치였다. 이러한 조치는 국가가 직접 민간 영역에서의 개발과 부동산 투기를 인정하는 것, 나아가 투기를 장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투기와 개발 열풍을 불러온 핵심적 대상은 아파트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정부와 민간 두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영역에서 보자면 외환위기 직후 단행된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조치를 아파트값 상승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다른 한편, 지금 주목하고 있는 민간 영역에서는 아파트 부녀회 등의 민간 자치회가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끈 주체로 등장한다. 그들은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 담합을 하고 아파트 입주자들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인다. 2006년 강북지역의 한 아파트 입구에는 “평당 1,500 이하로는 팔지 맙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아파트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주민 게시판에는 “지방도 평당 천만원인 넘습니다. 강북의 대치동, 아름다운 우리 아파트. 최고의 아파트를 만듭시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와 같은 선동적인 문구가 등장했다.

 

아파트 가격 담합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부녀회와 같은 아파트 자치회는 구체적인 거래 액수를 정해 그 액수 밑으로 매물을 내 놓는 집을 공개하겠다고 압박을 넣기도 하고(“시세 이하로 매물이 나올 경우 동호수를 실명공개하며, 이전에 내놓은 매물은 해당 세대와 협의해 매물가격을 고치도록 하겠다”), 그 매물을 받은 부동산 중개업소와는 거래를 하지 않도록 결의함으로써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부동산 업소에게는 매물 회수와 불매 운동에 들어갈 수 있음을 엄중히 경고해 주십시요”). 이 외에도 경기 부천시 중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결하라, 그리하면 오르리라”는 제목의 전단지가 신문에 끼워져 배포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2006년 여름 이러한 담합행위를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규정하고 법적으로 규제하려했다. 하지만 정부는 곧바로 태도를 바꿔 담합 자제를 유도하는 간단한 행정 조치로 마무리 지었다. 이후 자치회의 직접적인 아파트 가격 담합 행위는 자제되는 듯 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공공연하게 가격 담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개발과 부동산 투기는 토건 국가와 건설 자본의 고유한 영역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은 개발과 부동산 투기의 주체가 되었으며, 그들에게 투기는 일상이 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은 이러한 투기의 일상화와 강하게 유착되어 있다.

 

이제 일상의 투기꾼들은 재개발 뉴타운이 “MB시대 부동산 투자의 핵”이며, 이러한 투자를 통해 “강남부자 따라 잡기”가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들은 소액으로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며, “내집 마련 최고의 기회”가 재개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전 부동산 투자 교육”을 통해 그러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이 사회는 시민들에게 “뉴타운이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뉴타운 재개발에 미쳐라”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 외침들을 내화하여, 삶을 꾸려나가고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으로 받아들인다. [『재개발 뉴타운:MB시대 부동산 투자 핵, 금액대별 투자 비법. 알짜 투자지역 전격 공개 』(중앙일보조인스랜드, 2008); 『강남부자 따라잡기 재개발 뉴타운』(위더스콤, 20008); 『앞으로 5년, 내집 마련 최고의 기회 재개발에 있다: 소액으로 성공하는 뉴타운ㆍ재개발 투자의 모든 것』(더난출판사, 2008);『재개발.뉴타운 100% 정복하기: 실전 부동산 투자교육 』(예응, 2009); 『뉴타운이 희망이다』(제플린 북스, 2009);『뉴타운 재개발에 미쳐라』(제플린 북스, 2009)]

 

요컨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4차 투기와 개발의 열풍은 이전의 단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개인들이 개발과 투기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투기의 일상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토건)국가와 (건설)자본과 (투기) 시민은 개발과 부동산 투기라는 지점에 모여 있는 모종의 공모자가 된다.

 

그런데 시민이 개발과 투기의 공모자가 된다는 점은 여전히 미심쩍어 보인다. 투기하는 시민은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능력을 가진 이들과 일확천금을 노리고 없는 돈까지 끌어들여 투기자금으로 활용하는 일부 과잉 투기꾼에 한정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과 투기에 대한 열정은 중산층이나 과잉 투기꾼과 같은 일부의 욕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시민들의 동참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집이 없는 거주민과 뉴타운 재개발 때문에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마저도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을 지지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재개발 지역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20% 미만이다) 2008년 총선에서는 뉴타운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들이 당선되면서 ‘타운돌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신도시 건설과 같은 개발 사업에서도 역시 (재개발의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한)다수의 주거 약자들이 그것을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개발과 투기에 대한 열정이 단순히 경제적 이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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