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폭력

우리사회, 폭력의 양상들

얼마 전 <무법자>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에서 다뤄지는 소재가 흥미롭다. 묻지마 살인, 혹은 좀 더 그럴듯하게는 현실불만형 우발범죄가 그것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어떤 폭력의 양상들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두 가지 계기를 가지는데,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비열한 수단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위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묻지마 살인은 이 두가지 모두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행되는 것도 아니며, 권력의 위계 속에서 수직적으로 행사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목적을 상실한 폭력이며, 수직적이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발현되는 폭력처럼 보인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학교폭력이나 성폭력처럼 규정적인 폭력이 있는가 하면, ‘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라거나 ‘너의 말은 너무 폭력적이야’라고 할 때처럼 추상적인 수준의 폭력도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폭력이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에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도 있고, 동일자의 언설 속에서 타자를 배재하는 상징적 폭력도 있다. 이것들을 모두 똑같은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폭력은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사용되는 용례 속에는 상처, 말소, 파괴, 위해와 같은 것들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우리는 여기서 최근에 논란을 일으켰던 폭력의 사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김길태 사건말이다. 잔혹한 폭력의 가해자였던 그가 경찰에 붙잡혔고, 사형과 관련된 언설들이 흘러나왔다. 사형은 폭력에 대응하여 도입된 또 하나의 폭력이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사형제가 주는 범죄예방 효과,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꼭 증명된다고 할 수 없지만 범죄예방 효과하고는 또 관계없이 흉악한 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져야 한다는 징벌응보의 관점”에서 사형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이라는 논리는 칼 슈미트가 언급한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평화주의자들은 인간을 말살시키는 전쟁에 반대하는 궁극적인 전쟁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 어떤 전쟁보다 강렬하고 비인간적인 것이다. 그 전쟁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힘의 우위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멸시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하의 존재로(즉 괴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 전쟁에서 적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형은 한 인간에게 가하는 물리적 위해임과 동시에 그의 인간성 자체를 말소시키는 행위이다. 그는 인간 이하의 존재, 즉 괴물이 되어 법의 바깥으로 추방당한다. 법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이처럼 가장 잔혹한 형태의 폭력이 숨어 있다.

 

잠깐 다르게 질문 해보자. 폭력, 그것은 언제나 항상 부정적인 것인가, 때문에 폐기되어야 하 것인가? 대항폭력, 대안폭력이라는 언어 속에는 우리가 구출해야 하는 어떤 종류의 폭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억압에 맞선 피억압자의 폭력은 역사의 한 축을 구성해 왔다. 그것은 때로는 독립운동이라고, 또 때로는 파업이라고, 또 때로는 시민불복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폭력과 억압에 저항해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폭력이 똑같은 폭력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대안적인 새로운 개념을 발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개념적으로 분리될 수 있을지라도 많은 경우 현상적으로는 결합되어 있다.

 

폭력은 언제나 선정적이며, 흥행력 있는 뉴스거리를 제공해 준다.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폭력적이어서, 인간의 본성은 잔인한 악함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혹시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금기에 대한 도전과 위반이나 억압적 폭력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열망혹은 억압적이고 비참한 현실에 대한 폭로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규정할 수는 없다.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옹호할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사형제 합헌 결정이 있고난 이후의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유지를 옹호하는 여론의 확산이 사형제 자체에 대한 옹호인지, 김길태 사건 등이 이슈화되고 난 이후에 나타난 잔인한 폭력에 대한 거부의 발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현실불만형 우발범죄는 정말 어떤 권력의 위계도, 목적도 없는 폭력일까? 그들의 불만이 형성되는 지점은 바로 현실이다. 현실의 비참함 속에서 그들이 가지게 되는 심적 동요를 불만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는 지점이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쌓여가는 불만을 분출할 통로를 현실의 틀 안에서 찾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하는 개인들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문제삼고 있는 지점은 이러한 우발범죄가 극히 드문 예외가 아니라 사회적 범죄의 한 유형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개인의 정신 이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 항상 위기라고 호명되는 경제적 상황과 파국이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정치적 현실이 놓여 있다. 그 안에서 현실은 점점 비참해 지고 있으며, 그 비참한 상태에 놓은 개인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현실불만형 우발범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폭력이 ‘그’ 비참한 현실을 만든 권력자들이 아니라 아무런 경제적 자원도, 정치적 권력도 없는 자들을 향한다는 점이다. 폭력의 대상이 선택될 때, 가해자가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어떠한 의도도 목적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의도도 가지지 않는 것으로 정의될 때, 그 폭력이 내포한 적대의 전선은 완전히 은폐되어 버린다. 그러나 폭력이 발생할 때, 그 대상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며, 때로 방향전환을 통해 다른 희생물로 대체되기도 한다. 르네 지라르는 특정한 희생물이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가해자가 끔찍한 보복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시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우발범죄의 모호성이 아니라, 그것이 발생하는 원인과 폭력의 대상이 대체되는 매커니즘이며, 그 모호함이 은폐하는 적나라한 적대의 선이다. (사회적인 현상으로 등장할 때) 이 폭력은 희생물에 대한 폭력일뿐아니라, 파국으로 치닫는 현실에 대한 폭로이자 어떤 경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분출구가 없는 사회적 모순의 축적이라는 현실에 대한 폭로이자 경고 말이다. 분출구가 없다는 것은 무슨말인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권력 없는 자들이 개입해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선거이다. 그러나 수많은 선거를 해왔지만, 삶은 더 팍팍해져 간다. 답답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합법한 유일한 통로인 선거는 이제 더 이상 현실의 축적된 모순을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다.

 

선거는 합법적이라는 이유로 항상 현실 개혁의 최선의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현실은 어떤가.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권력자들을 재승인해 자신들을 착취하게 하는 괴이한 재생산의 통로였다. 우리 사회는 소통, 대화, 토론, 연대, 합의, 통합 등을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운다. 툭하면 여기저기서 이제 대화가 필요하다거나, 분열이 아닌 통합이 사회적 목표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댄다. 마치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완전한 합의나 통합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합의란 언제나 적대적인 다른 의견에 대한 묵살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내세우는 대화와 소통, 통합이라는 사회적 가치는 다름 자체를 억압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선거는 이 불일치를 다수결이라는 아주 경제적인 장치로 은폐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어쩌면 선거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권리를 박탈시키는,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가장 정교한 폭력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떤 폭력들은 이와 같은 장치들이 가진 억압적 기능을 다시 폭로한다.

......................................................

미디어스 기고 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원순 고소가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의 통치 원칙

절대군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 박원순 고소가 보여주는 이명박 정권의 통치 원칙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지난 6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위클리 경향과 인터뷰를 가졌다. 여기서 그는 국정원의 민간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올 여름을 휩쓴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는 이메일 압수수색, 인터넷 패킷 감청 등 국가 감시의 문제였다. 일정정도의 위기의식을 느낀 국가는 느닷없이 수개월이 지난 일을 들추어 박원순에게 고소장을 들이밀었다. 9월 15일 발부된 이 고소장에는 박 변호사가 “지난 6월 ‘위클리 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해 시민단체들의 사업이 무산된다’는 식의 허위발언을 해 국가 안보기관으로서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박원순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고소장의 원고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복종하지 않는자에게 가해진 치졸한 복수

  

이명박 정권에 들어 강하게 나타난 정치적 특징 중 하나는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 한다는 점이다. 지배란 기본적으로 타자를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의 지배는 시민사회의 굴복과 짝을 이루고 있다.

 

시민사회의 복종은 자발적으로 혹은 순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배는 언제나 복종에의 혐오를 통제할 수 있는 토대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복종에의 혐오를 통제하는 토대가 바로 폭력이다. 지배는 폭력 행사를 근본적 조건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때로 국가의 지배는 직접적 폭력이 행사 되지 않을 때에도 무리 없이 이루어 지는듯 하지만, 사실 그 때 조차 그 지배의 저변에는 폭력이 가장 혹은 변형된 형태로 놓여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복종이 지배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실제로 자발적 복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지배에 예속될 때 복종은 피지배자의 완전한 동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폭력적으로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반복될 때 복종은 자발적인 것처럼 보여 진다.

 

문제는 그 선택조차 온전한 의미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선택이란 외부 조건의 간섭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복종으로부터의 탈피, 즉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지배자의 폭력에 노출되어 자신의 삶을 훼손당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로 진입하는 것이다. (올해 용산에서 목격한 것, 그 잔혹함에 치를 떨며 확인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실이다.) 따라서 복종은 선택이 아니다.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그래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자유라면, 최악의 상태로 치닫지 않기 위해 복종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유를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것, 어쩔 수 없이 복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적 억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 대신 자유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저항이라 부른다. 자유를 선택하는 저항은 폭로, 시위, 캠페인, 혁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항은 집단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때 가해지는 폭력(억압)의 방식 또한 고문, 검열, 감시, 감금, 추방 등 다양하다. 박원순 고소 사건은 지배에 저항하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방식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국가라는 거대 조직이 한 개인을 상대로 행하는 가장 치졸한 방식의 폭력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법적 고소라는 것은 공적 규칙을 통해 시비를 가리는 것이므로 형식적으로는 폭력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이야기 되어야 한다. 박원순 고소는 폭력을 원초적 법 사실로 정립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것은 국가가 (언듯 합리적인 것처럼 보여지는) 법을 매개로 한 개인의 삶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고는 대한민국, 피고는 국민

  

사실 국가가 군대나 경찰을 동원해 수 많은 개인에게 폭력을 가해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특이한 점은 그것이 법을 매개로 했다는 점, 그리고 명예를 훼손 당한 주체가 국가 자신이라는 점이다. 고소장에 원고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다. 국가가 원고가 되어 한 개인을 민사재판으로 불러들인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시민단체 뿐 아니라 보수적인 법학자나 단체마저 국가를 원고로 내세운 이번 고소가 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법적으로 국가는 추상적 실체이므로 인격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격권이 없는 실체가 어떻게 명예를 훼손당할 수 있겠는가.

 

‘추측컨대’ 국정원이나 국가는 바보가 아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그러한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이번 고소를 추진했다면, 이것은 이 정권의 무지가 아니라 그들이 준거하고 있는 통치 원칙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 정권은 국가의 토대가 되는 시민사회를 보호하고 유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지배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사회를 보호하고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파괴하더라도 자신들의 지배의 조건들을 마련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다.

 

지배의 조건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폭력이다. 현대 정치 제도는 폭력의 무차별적 사용을 제한한다. 현대 정치에서 폭력은 이미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종영이 정확히 지적했듯 공적 폭력이란 그것이 지배를 위해서 사용되는 한에서, 즉 이른바 공공성이라는 것이 사실상 지배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갖는 한에서는 궁극적으로 사적폭력으로 환원된다. 이데올로기적 외장을 벗겨내고 제도적 매개를 제거하고 나면, 지배는 적나라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용산참사에서 확인되었으며, 박원순 고소를 통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이 정권이 고소장에서 대한민국을 원고로 내세웠을 때, 즉 대한민국을 명예훼손 당할 수 있는 인격권을 가진 존재로 상정했을 때, 그 인격권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이 정권의 지배 세력들이다. 이 정권은 대한민국이 지배 세력의 것이라는 절대군주 시대에나 있을 법한 사고 방식을 통치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미디어스 기고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위와 축제 : MB정권의 순수에 대한 강박

* 미디어스 기고 글

 

 

지난 5월2일 진귀한 풍경이 목격되었다. 그날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고, 서울시에서 그야말로 ‘야심차게’ 준비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하 페스티벌) 개막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서울에서 한다는 것 외에는 별 관련이 없어보이던 것들이 교묘하게 융합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서울역에 모여 본행사를 마친 시위대는 청계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계속 가지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을 저지했다. 마침 그 앞에서 페스티벌의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고, 청계광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시위대는 자연스레 ‘경찰에 떠밀려’ 퍼레이드 혹은 퍼레이드 구경꾼들과 섞여들게 되었다. 설사 시위대가 청계광장으로 가려고 했던 것이 페스티벌의 구경꾼들과 함께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설사 서울시가 일부러 촛불집회 1주년이라는 상징적 시간대를 침범하기 위한 전략으로 페스티벌을 그날 개최하기로 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질감을 가진 두 무리가 그런 방식으로 섞여 든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퍼레이드를 이끄는 풍물패는 신명나는 집회를 위해 풍악을 울리는 듯이 보였고, 가면을 쓰고 ‘이명박 퇴진’이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든 시위대는 페스티벌을 구경하러 모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2009년을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었다.


시위대 중 일부는 이 수상한 시절에 흥청망청 기분이나 내며 놀 때냐고 한심한 눈길로 퍼레이드를 쳐다보았고, 페스티벌 구경나온 사람들 중 일부는 아름다운 행사를 이렇게까지 망쳐놓아야지 속이 시원하냐는 듯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몇몇 곳에서는 경찰, 구경꾼, 시위대의 마찰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 또 일부 시위대는 퍼레이드가 연출하는 스펙타클과 흥겨움에 어깨를 들썩였고, 일부 구경꾼들은 작년 촛불집회를 기억하며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피켓을 주워들고 구호를 함께 외쳤다. 그들은 결코 한 덩어리(mass)가 아니었으며, 4부류도 아니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합집산하는 기이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날 결국 시위대는 퍼레이드를 중단시켰고, 개막식 행사가 진행될 단상을 점거했다.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촛불시민들이 2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2009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 무대를 점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같은날 정부는 5월1일에 있었던 노동절 집회를 이유로 폭력 시위를 자제해 달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보수 언론들은 다음날부터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모양새도 좋았다. 시위대는 폭력의 대리인처럼 보였고, 정부는 폭력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보호자가 된 것 같았다. 조선일보는 시위대를 “비(非)시민, 반(反 )시민”이라고 부르며, 시민축제를 “난장판”으로 만든 “막가파”로 매도했으며, 동아일보는 “훼방꾼 시위대”, “불법 시위대”, “불법 폭력행위를 벌인 시위 참가자”가 시민축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보수 언론들은 시위대가 시민들의 문화 행사를 폭력으로 중단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위=폭력’, ‘축제=문화’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깔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은 ‘계몽되지 않은 야만적 행위’라는,  폭력을 비정치화하려는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가 은폐되어 있다.

 

 

보수언론과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시위대는 시민과 구분된 비시민이다. 시위대를 연행하기 위해 페스티벌 구경나온 시민을 잡아갈 이유는 없다. 페스티벌 참가자와 시위대가 뒤섞이기 시작할 때, 경찰은 페스티벌이 진행중인 거리로 뛰어들어와 시위대와 페스티벌 참가자들을 분리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했고 결국 시위대와 페스티벌 참가자는 자연스레 뒤섞였다. 이날의 뒤섞임은 축제와 시위가 문화와 폭력으로 결코 구분될 수 없음을, 나아가 시위가 하나의 축제이고 문화임을, 좀더 나아가 문화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을 통해 유지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도시의 게릴라들

 

시위는 하나의 문화이다. 그것도 한 사회의 정치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척도로서의 문화이다. 시대별로 공간별로 시위 문화는 상당히 다양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다양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시위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잘 관찰해보면 사회운동의 내적 성찰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고,  때로는 억압되어 왔던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는 방식이나 새롭게 억압되는 모순들이 무엇인지 지켜볼 수 있다. 여성운동이나 병역거부 운동에서 이러한 흐름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다양화된 소규모 시위 방식보다는 촛불집회 같은 대규모 시위 방식에 대해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만으로도 간단히 MB 정권의 기초적인 심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 시위 지도부의 계획에 따라 본행사와 거리 행진이 이루어졌다. 그러던 것이 2006년 반FTA 집회 이후 계획되거나 통제되지 않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시위가 나타났다. 본행사 이후 거리 행진에서는 계획에 없던 골목길 행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행진을 막아서면 모여서 항의하거나 행진을 계속하려고 그들과 부딪히기보다는 경찰이 없는 길을 찾아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작년 촛불집회 때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은 주변의 모든 길을 막아야 했고, (청와대 주변에 사는 일부 주민들은) 집이 코앞인데 경찰이 모든 길을 막아 놓아 택시를 타고 빙~ 돌아서 집에 가거나, 어쩔 수 없이 시위대에 참여해 경찰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적극적인 시가 행진보다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서 기습적으로 시위를 하는 일명 게릴라식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는 이제 도시의 게릴라가 되어 경찰과 쫓고 쫓긴다. 어찌보면 어릴 때 하고 놀던 숨바꼭질과 얼음땡 같은 놀이를 섞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시위대와 경찰은 도심 속에서 도망과 추격을 반복한다. 물론 이러한 시위 방식의 변화는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의 극적인 변화와 더불어 나타난 것이다. MB 정권에 들어와 시위 진압은 극도로 강화된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에 일어난 용산 참사는 그 전형을 보여준다. 게릴라식 시위는 그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여기서 시위대의 폭력과 경찰의 폭력은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경찰 폭력은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고 시위대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라면, 시위대의 폭력은 사회적 모순과 적대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치유로서의 폭력이다.)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은 단순히 폭력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감시와 통제를 통해 잠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나 통신비밀보호법 등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찍고 감시하기 위한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이르면 올 6월 마스크 착용 금지나 통신사업자의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 하는 극단적인 법률 개정안들이 통과될 수도 있다.

 

 

MB 정권의 강박

 

정부는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불순분자로 미리 낙인찍고 통제하고자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삶에 깊숙히 침투해 불순물들을 걸러내려 한다. 그들이 낙인 찍은 불순물들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는 것들이다. 불순물들은 제거될 수 없다면 분리/격리 되어야 한다. MB 정권의 순수에 대한 강박과 그것의 현실적 불가능성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 ‘평화 시위 구역’이라는 정치적 행위의 수용소이다. 그것은 작년에 제정되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되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울산 등에 지정된 평화 시위 구역은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시위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시위는 야유회가 아니다. 시위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기네끼리 흥얼거리며 만족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위는 적극적인 정치적 요구를 통해 사회 모순을 폭로하고 적대성을 드러냄으로써 현 정치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중요한 정치적 장이다.  그것은 비시민들이 벌이는 야유회가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시위대와 시민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처음부터 한 몸인 것이다. 분리될 수 없는 것들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실패한다. 울산에 지정된 평화 시위 구역인 울산역 광장에서는 올 1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시위도 일어나지 않았다. 울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 1월 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모두 732건의 집회 신고가 있었고 187건이 실제로 열렸는데도 말이다.

 

 

분리 될 수 없는 것들을 분리/격리하려 할 때 극단적인 방식의 감시와 통제 그리고 물리적 폭력이 사용된다. MB 정권의 순수에 대한 강박은 정치의 장에 극단적인 폭력을 기입한다. 시위라는 정치적 행위는 시민 혹은 시민들의 공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시위가 반복되는 만큼 이 정부의 폭력도 반복될 것이다. 만약 폭력을 통해 정치적 발언이 제거된 상태가 달성된다면, 그것을 순수 - 불순한 것들이 제거된 상태 - 라고 할 수 있다면, MB정권이 바라는 정치는 소통 없이 지배만이 존재하는 정치일 것이다. 극단적인 폭력을 매개로 순수를 열망하는 정치 속에서 파시즘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나뿐만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폭력의 과잉이라고? 과잉의 폭력이 아니고?

   언제부터인가 폭력의 문제가 도덕의 문제로 환원되어 가고 있다. 이번 민노당의 강기갑 의원이 벌인 ‘액션 활극’을 두고 말이 많다. 조선일보는 국회가 “폭력에 굴복”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자유선진당의 이회창은 “이번 폭력사태를 야기한 행위자”인 강기갑 의원에 대해 “즉각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여 “엄격한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기갑 의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폭력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규탄하고 있다. 오늘도(1/9) 한나라당의 홍준표는 “민주당이 또 폭력으로 상임위를 틀어막겠다고 하면 국민들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떤 목표가 있더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않으면, 특히 폭력이 그 수단이라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의 근저에는 폭력은 무조건 도덕적 해악이라는 판단이, 혹은 그러한 판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좀 더 멀리 가서 (벌써 ‘작년’이라고 불러야 하는) 2008년에 있었던 촛불집회를 생각해보자.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이슈들을 만들어낸 이 집회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폭력의 문제이다. 시종일관 비폭력을 외치며 정부에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했다.(물론 집회 참가자와 경찰들의 잦은 충돌이 발생했지만, 이것이 촛불집회의 비폭력적 경향의 반증이 되지는 못한다) 집회 내부에서는 몇 번의 논쟁이 있었다. 물대포 앞에서, 명박산성 앞에서, 전경에게 구타당한 어느 시민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매번 논쟁은 폭력의 의미에 대한 성찰보다는 폭력의 도덕적 결함으로 결론지어졌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충돌이 발생할 때, 누가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는가? 누가 더 많은 폭력을 행사했는가가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 대상이 된다. 정작 집회 참가자와 경찰 신분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폭력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한 폭력보다 더 많은 폭력들이 보도 되고, 그 의미도 과잉되어 간다. 이 과잉된 이미지들을 통해 폭력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상실한다. 이 지점에서 타협이 불가능한 윤리의 잣대로 폭력을 재단하고 그 의미를 초월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폭력은 언제나 바로잡아야 할 예외상태로 상정된다. 그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고, 포섭되지 않은 낯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태, 즉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지금의 상태(State, 국가/상태)가 온갖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면?

   폭력이 그 모순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프로이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이야기 했다. 아렌트는 이를 역전시켜 “정치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에 정상 상태란 없고, 일상적인 예외상태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나 정치의 안정적인 자기 기반이라는 것은 없고, 이 사회는 오직 예외적 수단, 체제 외적 강제력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때로)폭력이 드러내는 것은 정치의 일상적인 모순 상태(/국가)라는 금지된 실재의 영역이다.

   나는 지금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분명 해악이다. 그러나 그 중의 어떤 폭력은 맹목적으로 비난하기(과잉) 보다 그 폭력이 드러내는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해 수십 년 간 매맞고 살던 아내가 특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편을 공격했다는 (결과적으로 남편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누가, 쉽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그 아내에게 절대악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겠는가? 그 아내의 폭력은 공고화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폭력은 아니었을까? 이런 일상 속의 폭력 이외에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에 매개된 구조적 폭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영구히 호명하는 노동법들 속에 녹아 있는 폭력도 있다. 파업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다른 방식의 폭력이다.(조르주 소렐에 찬양하는 폭력은 바로 자본주의적 구조에 균열을 내는 총파업이라는 대항폭력이었다.)

   폭력은, 악으로 낙인찍힐 수 없는, 보다 세밀하게 분석되어야할 현상이다. 예를 들어 비비오르카가 제시한 정치이하(infrapolitical)의 폭력과 정치상위(metapolitical)라는 폭력의 구분, 조나단 프리드먼이 제시한 수평적 분단화와 수직적 분극화라는 구분, 마틴 루터 킹의 적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폭력, 사르트르나 파농의 적대와 치유로서의 폭력 등 폭력이라는 이름만으로 매도될 수 없는 수 많은 폭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폭력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비폭력의 의미 역시 좀 더 세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비폭력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비극적인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스펙타클이라는 정치적 계산 없이는 무의미한 희생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비폭력은 무폭력의 의미로 쓰인다. 비폭력의 사상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간디는 비폭력을 무폭력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간디에게 비폭력은 ‘직접행동’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피비린내나는 무기의 사용을 동반하는 운동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 혹은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는 거부하거나 회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석해야 할 정치적 저항의 근원(적 장소)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강기갑 의원, 민주당, 촛불집회에서 폭력이 가진 의미를 초월해 악으로 낙인 찍는 행위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폭력을 탈정치화 시키는 사건들을 정치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일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폭력론 -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 박홍규

폭력론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박홍규 • 영남대학교 교수/ 법학


1. 폭력의 뜻

국어사전에서 폭력이란 ‘함부로 난폭한 행동을 하는 힘’으로 풀이되고, ‘폭력을 써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단체’가 폭력단이라고 설명된다. 그리고 폭력주의자는 테러리스트, 폭력주의는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즉 폭력은 테러라는 것이 국어사전의 이해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는 폭력의 영어를 force라고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폭력은 테러(terror)도 힘(force)도 아닌 violence를 말한다. 영어사전에서 violence란 ‘비공인의 완력이나 물리적 힘에 의한 강습’을 뜻하고, 공인된 군대나 경찰의 경우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나 경찰력의 행사는 폭력이 아니게 된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정의하는 입장과 같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이 그런 것이다. 이러한 폭력 개념은 윤리나 정치 또는 법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관념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폭력을 힘의 비합법적인 행사인 악으로 보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이런 입장은 ‘구체적인 행동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조희연․조현연, 「국가폭력․민주주의 투쟁․희생에 대한 총론적 이해」, 조희연 편, ꡔ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ꡕ, 함께읽는책, 2002, 26쪽.
그러한 견해는 이러한 비판을 하면서도 달리 폭력을 정의하지 않고서, 억압의 폭력(기성 지배체제가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 공격적 폭력)과 해방의 폭력(필연적으로 불법적인 저항적 폭력, 생존의 방어를 위한 폭력)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제도나 저항까지 폭력에 포함한다. 그러나 그런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폭력 개념을 구체적인 행동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견해에서 사용되는 폭력이란 개념은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즉 종래의 일반적인 폭력 개념은 억압의 폭력이나 해방의 폭력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고, 폭력이란 개념은 억압과 해방이라고 하는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특수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위 견해는 억압의 폭력을 전쟁, 고문, 살인, 학살 등으로 상징되는 ‘국가폭력’이란 말로 이해한다. 위의 책.
그러나 그러한 국가폭력도 구체적인 행동을 뜻하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위 견해는 그런 국가폭력을 낳는 근거인 유신체제와 같은 악법을 ‘제도적 폭력’이라고 보고 있으나, 법제도까지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 폭력에 대한 더욱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정의는 빈곤을 비롯한 사회적 부정의를 말하는 더욱 광범한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예컨대 Johan Galtung,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The Journal of Peace Research6(2), 1969, pp. 167-91. 특히 p. 168과 p. 173. 또한 N. Garver, “What Violence Is," in J. Rachels and F. A. Tilman (eds), Philosophical Issue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New York: Harper & Row, 1972, pp. 223-8. 또한 빈곤과 관련해서는 S. Lee, 'Poverty and Violence', Social Theory and Practice 22 (1) 1996, pp. 67-82.
그것은 개인이나 제도에 의해 또는 사회 자체에 의해 가해지는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 심리적인 피해까지 낳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된다. 주로 평화 연구의 영역에서 평화를 저해하는 모든 반평화적 행태나 제도를 폭력으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광범하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C. A. J. Coady, “The Idea of Violence," Journal of Applied Philosophy 3 (1) 1986, pp 3-19.

이와 달리 폭력=테러라는 말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정부가 이슬람 또는 그 일부 세력 그리고 북한 등을 비난하며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힘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슬람 등은 미국 등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사용되는 폭력 논의는 그 판단이 쉽지 않으나, 어느 측이든 자신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은 확실하다.
이처럼 폭력이란 말의 사용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적어도 법적으로 폭력은 불법이므로 그 합법성이 논의될 수 없다. 물론 법적인 차원에서도 가령 범죄의 피침해자가 자력구제를 가하는 경우라든가 또는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와 같이 그 폭력에 대한 법적 판단이 반드시 구체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그러나 그런 법적 평가와 무관하게 억압적 국가 권력 자체를 ‘합법적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국가 권력 자체를 폭력이 아니라 합법적인 ‘권력’이라고 보는 것을 전제로 하여, 권력의 부당한 폭력적 행사에 대해서만 법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부당한 권력의 폭력적 행사에 대해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예컨대 인도의 간디처럼) 유효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대부분의 경우 더욱 큰 권력의 폭력적 행사를 초래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도리어 폭력적 저항(예컨대 알제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민지 해방 투쟁)이 유효할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해방 전략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비폭력 주장은 반드시 유효한 것이 아니고, 폭력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이 글은 폭력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정의에 대해서는 각종 사회과학 사전이나 문헌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이 글에서는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폭력 논의를 중심으로 폭력에 대한 사상을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논의의 핵심은 국가폭력과 그것에 대항하는 저항폭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개념에서 사용되는 폭력은 위에서 본 일반적인 폭력의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즉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의 행사와 그것에 저항하는 정당한 폭력의 행사를 대립시켜 그 범주에서만 폭력을 검토하는 것이다.



2. 국가폭력과 저항폭력

사회과학에서는 흔히 근대 국가를 일정한 영토적 공간에서의 힘(force)의 합법적 독점체로 규정한다. 예컨대 앤터니 기든스, ꡔ현대사회학ꡕ, 김미숙 외 역, 을유문화사, 1992, 276쪽.
여기서 힘이라고 한 force를 우리말 번역에서는 ‘폭력’이라고 하나, 그 폭력은 당연히 위에서 말한 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학적, 사회학적 개념으로써 힘을 말하는 것이므로 위에서 말한 법적 폭력과는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의 폭력이라 함은 법적 차원에서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적어도 합법적 폭력인 권력인 한 그것을 불법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 자체를 폭력 조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는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리라.
문제는 근대 국가가 합법적인 힘(폭력)의 독점인 권력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이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시민에 의한 저항의 폭력이 당연히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국가 기관이나 국가 관련 요원이 그 부당한 폭력에 의한 직간접의 희생자인 시민들에게 공포감과 복종심을 가질 수 있도록 폭력이나 위협행동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을 ‘국가폭력’(State Terror)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정당하게 저항하는 ‘저항폭력’을 대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항폭력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이고 정당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두 폭력의 대치는 흔히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 하나가 1920대의 독일에서였다. 즉 1917년 러시아에서 2월혁명(부르주아 혁명)과 10월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고, 이어 1918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11월 혁명이 터져 제국이 무너져 각지에서 혁명적 폭력 기관으로서 병사․노동자평의회가 수립되었다. 그 후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그에 의한 스팔타카스단의 폭력 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프롤레타리아의 비권력적인 폭력에의 기대가 지식인들과 민중 사이에서 높아졌다.
이 시기에 와서, 시민적 권리=시민법의 주체로서 각 시민이, 자연상태에서 행사하는 ‘폭력’을 ‘법’의 경계선 안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독점시킨다는 전제에 선 근대 시민사회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즉 국가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권력의 본질인 ‘폭력’을 계속 추구하여 가장 야만적인 폭력인 제국주의 전쟁과 계급 갈등의 유지에로 나아갔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그것을 억제하기는커녕 도리어 국가가 주장하는 ‘이성’이나 ‘도덕’ 및 ‘법’이라는 것에 순응했다. 근대 국가의 시민법 질서 틀 안에서 ‘주체’로 자기를 형성한 ‘시민’에게는 법의 목표인 실질적인 ‘정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혁명적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부르주아 국가 틀이 온존되고 시민이 그 속에 존재하는 한 법과 정의의 괴리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브로흐, 루카치, 그람시 같은 지식인들이 급속하게 공산당에 접근하고,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 모인 폴록이나 호르크하이머 같은 젊은 학자들이 네오 맑스주의적인 관점에서 계몽된 시민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된 배경에는, 폭력적인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한 부르주아 시민문화에 대한 절망이 있었다. 따라서 부르주아적인 권력 쟁탈과는 무관한 ‘정의’를 목표로 한 프롤레타리아 ‘폭력’의 가능성을 논의하여 ‘근대’라는 감옥을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대 지식인의 급선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벤야민의 폭력론이 나왔다.
3. 소렐과 벤야민의 폭력론

벤야민의 폭력론은 조르주 소렐의 ꡔ폭력론ꡕ(1908)에 근거한다. 소렐은 공포 정치로 변질된 프랑스 대혁명(1789)의 담당자인 부르주아에 의한 국가 권력의 남용과,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해 ‘법’의 지배를 타파하고자 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을 명확히 구별한다. 즉 부르주아가 혁명적 정치 행동을 야기해도 그것은 ‘법’에 의해 기존의 국가 형태를 온존시키면서 권력을 특권자의 것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나,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법’을 떠나 어떤 종류의 국가 권력 형태도 용인하지 않고 순수한 아나키를 지향한다고 소렐은 주장했다.
이러한 소렐의 주장 역시 20세기 초엽 프랑스의 위기 상황을 의식한 것이나, 소렐의 폭력론이 나온 지 13년 뒤에 쓰여진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은 위에서 설명한 1920년대 독일의 현실적 위기에서 소렐의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소렐의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법’에 의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를 벤야민은 Rechtssetzung이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를 법차정(法借定)이라고 번역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따르는 견해가 있으나, 차정이란 우리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니 우리말로 삼기에는 어색하다. 여기서는 반드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으나, 편의상 ‘법준거’라는 말로 옮기도록 하자. 벤야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법준거에서 폭력의 기능은 아래와 같은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즉 법준거는 폭력을 수단으로 하여 법으로 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구하나, 목적이 된 것이 법으로 제정된 순간 폭 력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 게다가 직접적으로 폭력을―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폭력과 결부되어 있는 목적을 권력의 이름으로 법으로 제정함에 따라―법준거적인 폭력으로 만들게 된다. 법 준거는 권력준거이고, 그 점에서 폭력을 직접 선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정의가 온전 히 신적인 목적준거의 원리임에 대해 권력은 온전히 신화적인 법준거의 원리이다.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Angelus Novus=Ausgewälte Schriften 2, 1966 Frankfurte a. M. (Shurkamp), S. 61.


벤야민은 자기 목적화 되지 않는 폭력의 최종 도달 목표인 ‘정의’와, 일단 준거되어 폭력적인 ‘권력’ 행사의 근거로 변한 ‘법’을 구별한다. 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justice가 라틴어의 ius에서 파생된 말인 것과 달리 독일어에서는 각각 Gerechtigkeit와 Recht가 구별되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법은 권력자의 ‘법 이전 특권’(Vor-recht)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이 미치는 경계선을 정하고 고정화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침범하는 자를 범죄자로 보고 속죄를 요구한다. 이를 벤야민은 신화적인 법이 지배하는 세계로 본다. 그 세계에서 법=권리의 주체인 각자는 시원적인 폭력을 통해 준거된 법의 경계선 안에 머물도록 강요된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법적 폭력을 법 수호적 폭력(기존의 법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법 형성적 폭력(새로운 법을 제기하는 폭력)으로 구분하면서도 그 둘 모두 법에 의한 지배를 전제함으로써 지배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신화적 폭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신화적이란 법을 변화시킴에 의해 지배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법에서 흔히 실정법과 자연법으로 구분하는 것에 각각 대응된다. 즉 벤야민은 실정법과 자연법에서 폭력의 개념이 모두 정당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도그마를 공유한다고 비판하고, 시인된 합법적 폭력과 시인되지 않은 불법적 폭력의 구별이 법과 관련된 폭력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반면 벤야민이 신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과의 연관을 부정하는 혁명적 폭력으로서, 법적 폭력-신화적 폭력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법의 경계선을 파괴하고 ‘법권력’ 하에서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다. 파괴적인 작용을 결과한다는 점에서 신적 폭력도 신화적 폭력과 유사하나, 전자가 파괴적인 것은 오직 재화, 법=권리, 생활과 같은 외적 사항과 관련되고, 생명 있는 것의 영혼을 파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즉 신적인 폭력은 희생의 피를 흐르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대립을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영역에서 신화에 신이 대립하듯이, 신화적 폭력에는 신적인 폭력이 대립한다. 게다가 모든 점에서 대립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에 준거하는 것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한다. 전자가 경계를 설정한다면 후자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제거한다. 전자가 협박적이라면 후자는 충격적이고, 전자가 피의 냄새를 풍긴다면 후자는 피의 냄새가 없고 치명적이다. 위의 글, S. 63.


이러한 신적인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신화적 폭력과 달리 명확하지 않다. 벤야민 자신은 그런 신적인 폭력의 보기로서 「폭력비판론」의 마지막에 구약성경의 예를 들고 있다. 즉 민수기(民數記)의 전설에 나오는 신의 심판이다. 그것은 예고도 협박도 없이 특권자인 제사장(레비) 무리에게 퍼부어져 그들을 섬멸시키는 심판이다.
따라서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법과 결별한 정의를 긍정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요청되는 어떤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문제는 신적 폭력이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계를 면제받는 순수 폭력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이를 데리다도 ꡔꡔ법의 힘ꡕ에서 비판한다. 즉 그에 의하면 벤야민은 법을 창설하는 ‘힘의 일격’이라는 것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여 법을 탈구축하면서도 다시 탈구축할 수 없는 정의를 내세워 법과의 구분을 시도했으나, 그 정의란 것이 다른 법으로 타락하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적 폭력이라고 하는 것도 언제나 신화적 폭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가 말한 신화적 폭력에 의해 근대 초월을 목표로 한 나치스가 집권하여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서도 프롤레타리아를 주체로 하는 비권력적인 신적 폭력에 의한 폭력혁명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작품」(1936)의 마지막에서 나치즘에 의한 정치의 ‘미학-감성화’에 대해 프롤레타리아는 그와 반대로 미학의 정치화에 의해 응하리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반대였고, 결국 벤야민은 현실에 대한 비관 끝에 자살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벤야민이 그 의도와는 전혀 거꾸로 그가 반대한 나치스의 이데올로기에 접근했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즉 나치스에 의해 폭력에 의해 계몽화된 시민사회의 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파괴하고자 하는 혁명적-메시아적 근본주의가 점증하는 가운데 벤야민의 주장은 나치스의 주장, 특히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결과적으로는 일치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주장한 신적 폭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도 이미 1930년대에 스탈린주의에 의해 그 허구성 역시 명백히 드러났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4. 데리다의 폭력론

1989년은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맞은 해였다. 그 해 데리다가 미국에서 행한 「법에서 정의로」라는 강연과, 이듬해 발표한 「벤야민의 이름」이라는 논문을 합쳐 발표된 책이 데리다의 ꡔ법의 힘ꡕ(1994)이었다. 1989년 프랑스는 1921년 독일의 벤야민처럼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폭력을 논의하기에는 그 역사적 상황이 너무 달랐다. 당시 2세기에 걸친 프랑스 혁명의 성과가 요란하게 축하되었으나, 혁명이 초래한 두 가지 정치 형태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특히 사회주의가 패배한 시점이었다. 즉 벤야민이 주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순수한 폭력에 의해 비권력적인 최종의 해방을 목표로 삼았어야 할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 이상으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결과, 당시 폴란드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총파업 등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법질서가 붕괴되었다. 게다가 데리다의 첫 강연이 있고 난 직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리다는 벤야민을 비판한다. 우선 그는 벤야민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을 구별함은 그리스적인 것과 유태적인 것의 이분법에 대응하고, 벤야민의 관점은 유태적인 것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그런 유태적 관점에 입각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그렇듯이 벤야민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으나, 그 파괴 이후 다시금 법준거의 권력으로 타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데리다는 비판한다.
데리다는 벤야민이 말하는 폭력(Gewalt)이 독일에서는 입법권(gesetzgebende Gewalt), 영적 권위(geistische Gewalt), 국가권력(Staatsgewalt) 등과 같이 권력이나 권위를 뜻함을 지적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기성 법질서에 근거한 권력이 폐기하는 ‘신적 폭력’은 그 폐기를 선언한 그 순간부터 그것을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변모한다. 즉 폭력의 선언은 동시에 법준거의 선언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적 법권력으로 변한 폭력은 역사 과정 속에서 부패하고 신적인 순수함으로부터 먼 것임을 폭로한다고 데리다는 본다. 벤야민은 법권력으로 준거된 그러한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신적 폭력을 요구하지만, ‘신적’인 것은 기성의 신화적 폭력의 폐기를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신화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고 데리다는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데리다는 폭력이 나타나는 순간만은 순수하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한다. 즉 벤야민이 순수한 신적 폭력에 역사적인 희망을 거는 것과 달리, 데리다는 그 순간을 특권화하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법 앞에서의 ‘결단’ 속에서 폭력에 의한 단절의 순간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데리다는 그 순간에 정의를 향한 일보를 딛게 되나, 동시에 그 순간은 광기를 가져 폭력을 증폭시킬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그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데리다는 정의를 향한 발걸음에서 시간적으로는 물론 공간적으로도 무한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 수반된다고 주장한다. 법을 개혁하고 혁명을 반복해도 법 자체의 근원적인 부정적 성격은 근절되지 않고 정의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가 되기 마련이라고 보면서도, 데리다는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갖는 결단을 통해 다시금 정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리다가 말하는 정의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그의 탈구축 또는 해체와 정치, 윤리, 법의 관계를 논의한 것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탈구축이 정의이다’라는 그의 결론은 대단히 난해하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은 어떻게 가능하고, 그것을 정의로 삼는 순수한 결단의 폭력이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의 논의가 모두 그렇듯이 논리적으로 그 내용을 확정하기란 어렵다. 이상의 주장에서도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그가 벤야민의 메시아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벤야민식의 메시아주의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논리 이전의 심정적 또는 상황적 동감을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이 1968년 범세계적인 학생운동에서 경전처럼 읽힌 점, 또한 데리다의 폭력론 역시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그 전후의 모든 사회적 저항에서 그들의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주민중저항을 비롯한 저항운동에서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원용될 수 있다.
특히 데리다의 논의 중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서구 근대의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비이성적인 폭력에 의해 행사되었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를 ‘국내 식민지주의’라고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그것은 언어에 의해 강요된 폭력이다.

주지하듯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이나 국가법을 수립하는 폭력은, 국가에 의해 재편성된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족에 하나의 언어를 강제하는 것에 있다. 프랑스에서 이 사태는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 생겼다. 그 최초의 것은 1539년의 왕령이 사법과 행정 용어로 불어를 강제하고 라틴어를 금지함에 의해 군주제 국가를 통합한 것이 었다.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프랑스혁명이었다. 당시 언어의 통일은 가장 억압적인 교육상의 전환을 초래했다. Jacques Derrida, “Force of Law: The "Mystical Foundation of Authority," in Drucilla Cornell, Michael Rosenfeld, David Gray Carlson eds., Deconstruction and the Possibility of Justice, New York, 1992, p. 21.


데리다는 ‘법에 있어서, 그리고 법에 관한 두 종류의 폭력’을 구별한다. 즉 ‘법을 수립하는 폭력, 곧 법을 제정하고 배치하는 폭력과, 법을 유지하는 폭력, 곧 법의 영속력과 강제력을 유지하고 확정하며 보증하는 폭력’이다. 위의 책, p. 31.
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근대성 역사의 특징이다. 제3 세계에서도 제1 유형의 폭력―수립하는 폭력―이 제2 유형의 폭력에 대한 제3 세계 민중의 관계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고 있는 것은 쉽게 발견된다. 문제는 그러한 폭력이 식민 종주국에서는 ‘국내 식민지주의’로 나타나도 근대화를 뜻했으나 식민지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 점이다. 예컨대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국가 기구의 법적 강제인 경찰에 의해 고문이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대적 역사관은 실패한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피억압자로부터 배우는 것이 된다. 물론 근대적 역사관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분배에 관한 정의의 관념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시민, 민주주의, 복지를 둘러싼 근대적 개념이 모든 계급―특히 피억압 계급―에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관이 진정으로 피억압자의 대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화는 목적론적이어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선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피억압자가 혁명에 이르게 되는 경우라도 그들이 그 혁명에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람시는 그 점을 인정하고서 피억압자는 혁명적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피억압 계급은 스스로가 <국가>로 되기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고 통일될 수도 없다. 그 역사는 필연적으로 단편화되고 있는 삽화풍이다. 이러한 집단의 역사적 활동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잠정적 단계의) 통일에의 경향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향은 지배자 집단의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중단된다. 실제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피억압집단은 자신들을 방위하고자 급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trans. and ed.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New York, 1971, pp. 52, 54-55.

우리는 국가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에 살고 있고 피억압자는 그 현실과 결부된 지식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지식 형태는 국가나 정부, 전체와 결부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계몽적 합리주의의 유산과는 결별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데리다의 논의는 지식인 논의로 나아간다.


5. 파농의 폭력론

이상은 서구에서의 폭력론에 대한 검토이다. 우리는 식민지 차원의 폭력론으로 파농의 그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파농은 식민지화란 어떤 땅에 대포와 기계의 힘으로 침략해온 타종족이 그 원주민을 지배하여 토지와 인간을 사유화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식민지 사회란 포식과 기아로 분할된 사회, 곧 그 경계가 경찰과 군대에 의해 직접 유지되는 인종차별적인 폭력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곳에서 원주민은 절대악이고, 반가치이며, 동물이나 물건에 가까운 수동적인 존재, 요컨대 비인간적인 것으로 식민자에 의해 조작된 대상이다. 이러한 식민지화 역사의 배후에, 식민지 사회 구조의 근본에는 식민자=타자의 폭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그 주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식민지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파농은 주장한다. 즉 비식민지화란 폭력 현상이고 인간 종족의 교대를 뜻한다. 즉 식민지화 역사를 통하여 심신이 모두 억제되고 고통당하며 동물화 되고 사물화된 원주민이 자신의 비인간성에 눈을 떠서, 내면에 저장된 폭력(내면화된 타자의 폭력)을 공격성(반대 폭력)으로 반전시키는 운동이 비식민지화 운동이라고 파농은 주장한다.
요컨대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식민지화 과정은 식민지화 과정 속에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 된다고 파농은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식민지주의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이성을 부여받은 육체도 아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의 폭력으로서, 그것 이상으로 ‘더욱 큰 폭력’에 의해서만 굴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더욱 큰 폭력’을 구현하고 인수하며 담당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파농은 먼저 식민지 시대에는 정당, 지식인, 상인 등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나, 참으로 혁명적인 폭력을 구현하는 자는 농민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해방 투쟁기에는 도시에서 산골로 도망간 지식인과 소수의 활동가가 농민을 만남에 의해 인민의 의식이 전진한다고 본다. 이어 봉기가 폭발하면 도시 주변부에 집결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통하여 그것은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파농은 식민지 사회에서 도시 프롤레타리아, 기술자, 관리 등은 특권층으로서, 식민지주의와 타협하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농민대중, 그리고 토지를 수탈당하여 도시주변을 방황하는 부랑자, 범죄자, 실업자들이 식민지주의의 이익으로부터 제외되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존재라고 본다. 그들만이 비타협적이고, 오직 폭력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농은 비식민지화 운동을 단순히 인간 종족의 교대로만 본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이 동시에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것, 존재의 ‘근본적인 변경’이라는 것, 곧 가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추상의 차원이 아니라 ‘대지에 저주받은 자들’이 비식민지화 운동을 통하여 형성하는 역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비식민화 운동이 폭력현상인 바 그 존재는 또한 폭력적 존재이기도 하다.
파농에 의하면 실제로 ‘새로운 인간’은 먼저 ‘식민지화된 신체’로 제출된다. 바로 굶주리고 억눌린 존재로서이다. 그러한 존재는 하루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싸움과 범죄 및 부족 항쟁으로, 또한 원시적 종교와 마술에 대한 신앙 및 집단무용으로 나타난다. 억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억압에 대한 눈뜸은 늦어지고 장기화된다.
파농과 달리 혁명 이론가들은 그러한 타락과 일탈 및 후퇴를 직시하지 않고 자각은 직선적으로 달성된다고들 했다. 그러나 파농은 종교도 주술도 ‘아편’으로 보지 않고 몽상도 광기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 모든 것을 폭력의 과정으로, 반대 폭력에 대한 성숙으로 ‘새로운 인간의 창조’를 향한 최초의 단계, 곧 ‘폭력의 분위기’로 보았다. 파농에 의하면 이러한 ‘폭력의 분위기’는 차차 ‘행동화한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식민지의 탄압이다. 여기서 폭력은 신체의 긴장과 이완, 집단 무용이나 축제로는 처리될 수 없다. 먹느냐 먹히느냐가 지배하는 반란의 초기 단계에 신체상 중요한 것은 노동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이란 생산 노동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식민지체제에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태만이야말로 비협력이자, 저항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원주민에게 가치 있는 노동이란 식민주의를 타도하는 노동이다.
파농은 말한다. ‘새로운 인간’, 곧 ‘완전한 인간’은 근육과 두뇌를 분리시키지 않고 노동 속에서 양자를 통일하는 인간이고, 능률과 효율이 아니라 자기 신체와 두뇌의 리듬에 따라 노동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도구나 기술에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목적에 따라서만 도구나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또한 일-행동의 계획으로부터 실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타인과 함께 의식적으로 참가하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의 자율적인 구성원으로서 타인에 대한 겸양, 배려,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료와의 협력이나 의사소통에 가치를 두는 인간이다. 나아가 타자-타민족의 착취와 지배를 거부하고 타자-타민족과의 공생을 원리로 삼는 인간이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이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서도 불가능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율적인 공동체와 완전한 인간의 미래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제3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파농은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농의 희망 역시 제3 세계에서 과연 현실적으로 구현되었는지 의심할 수 있다.
6. 아렌트의 폭력론

아렌트는 유럽과 달리 정당한 법의 근거를 폭력을 비롯한 다른 것에서 구하려는 전통이 없는 미국을 통해 위에서 지적한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을 비판하면서 나름의 해결을 강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언뜻 보면 아렌트는 소렐 등이 말한 저항폭력을 부정하고, 그들이 국가폭력이라고 한 권력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그녀의 ꡔ폭력론ꡕ(1970)에서 중점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ꡔ인간의 조건ꡕ(1958)을 비롯한 그녀의 정치사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ꡔ폭력론ꡕ에서 그녀는 폭력은 권력과 대립한다는 전통적인 주장을 전제한다. 그녀에 의하면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여 생기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권력이 폭력을 사용하면 이미 권력이 아니고 정당성도 없다. 그녀에 의하면 소렐 이후 폭력론이 등장한 것은 근대 사회의 이성이나 진보라는 획일화에 의해 토론과 행동을 통한 공공권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을 그러한 근대적 전통에서 해방된 개인, 그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를 서로 표명할 수 있는 공적 생활에 기초를 둔 공화제의 원리로 체현한 나라로 본다. 물론 그녀는 미국에도 많은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연히 인정하나, 이는 자유의 영역인 정치=공공권과는 무관한 사회의 영역으로 본다.
아렌트는 ꡔ인간의 조건ꡕ에서 그런 정치의 이상을 고대 그리스에서 생긴 공공권에서 발견한다. 그녀가 말하는 공공권이란 생물적 욕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언론과 설득에 의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을 뜻한다. 반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가계가 추구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근대 국가에 와서 가계가 가정을 뛰어넘어 국가의 관심사가 되어 사회적 영역이 나타났고, 인종차별과 같은 폭력은 그런 영역에서 문제된다고 아렌트는 본다.
아렌트는 근대 시민혁명의 두 가지인 1776년의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본다. 그녀는 우리가 말하는 자유를 Liberation, 즉 물질적으로 결핍된 상태나 물리적으로 억압된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소극적 개념과, Freedom, 즉 자신의 정신적 활동의 단서를 스스로 만들고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형성해 가는 능동적인 개념으로 구별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Freedom이 중심이었으나, 근대 국가에서는 Liberation이 중심이 되었고, 이는 맑스를 거쳐 사회주의 혁명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9-20세기 질서를 묘사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녀가 말하는 19세기 서구형 국민 국가는 자본주의를 강력히 추진하여 제국주의적 팽창을 결과했다. 그것은 또한 인종주의와 결탁하여 ‘피와 땅의 공동체’로 변질되어 반유태주의를 격화시켰고, 마찬가지로 제국 사이의 대립도 격화시켜 제1차대전을 낳았다. 그 후 20세기는 경찰 조직과 강제수용소를 통해, ‘국민’의 인종화와 전쟁에 의해 대량 생산된 무국적자=무권리자를 국민에서 배제했다.
아렌트에 의하면 프랑스 대혁명 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는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사이를 무시하고 개인의 마음 속 문제인 동정을 통일적 원리로 삼아 인간을 일반의지를 갖는 공동체로 조직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녀는 이러한 ‘동정에의 열광’에 근거한 정치가 폭력적 충동을 인간의 자연적 본능으로 보아 인민을 하나의 육체처럼 움직이고 하나의 의지를 갖는 것처럼 행위하는 영혼으로 변모시켰다고 본다. 어떤 이성적 제약도 받지 않는 이 육체는 스스로에게 동화할 수 없는 것을 폭력에 의해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폴리스적인 자유와는 상용될 수 없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킨 프랑스 혁명에 반해 미국 혁명은 ‘자유의 창설’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지 않고 계속 추구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그녀에 의하면 미국에도 빈민은 존재했으나 프랑스나 독일처럼 비참하지는 않았고, 경제적 격차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여겨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요구에 의해 혁명의 방향이 결정되거나 변질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관심도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유의 창설에 대한 참여였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인민(people)은 존재했으나, 그것은 프랑스처럼 자연적 충동에 의해 하나의 의지를 갖는 육체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을 보증하는 자유로운 결합체를 의미했다. 이는 제퍼슨이나 매디슨 같은 초기 대통령들이 정치적 자유의 본질을 복수성에서 구한 것에 알 수 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즉 그들은 상이한 의견을 갖는 사람들 사이의 교환이 있음으로 비로소 상대를 변론에 의해 설득하고자 하는 활동의 계기가 생긴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와 같이 일반의지가 지배하는 여론에는 다양성이 포함될 여지가 없으나, 미국 공화제에서는 처음부터 전원일치의 허구가 거부되고 서로의 논의를 통해 개인적인 이성의 잘못을 교정하면서 공공생활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즉 상이한 의견의 당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미국 통치형태의 특징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렌트는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존재에 의해 형이상학적으로 근거되는 삶의 방식을 인간성에 반하는 것으로 거부한다. 그녀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일원적으로 지배되는 세계에는 복수성에 근거한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따라서 종교적, 초월적 권위에 의해 외부로부터 정당화된 중세 기독교 세계의 통치체제는 인간성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렌트는 근대 혁명 속에서 탈형이상학적, 세속적인 정치권력 창설의 계기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 혁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기 통치의 근거를 자신이 창설한 자유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적인 원리에서 구한 혁명 전권은 형이상학에 빠져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공간을 스스로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반의지’의 표현이라는 여론에 의해 자기 통치를 신성화하고자 한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가는 좌절했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즉 앙시앙 레짐의 절대군주제로부터 자기를 해방하고자 한 그들은 절대군주를 대신하는 새로운 절대자를 실체적으로 창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에 의하면 식민지 미국에서는 그 지배자인 영국에서 절대군주제가 없어졌고 ‘법에 의해 제한된’ 군주제가 있었던 탓으로 미국인들은 ‘법을 초월한 절대적 지배자’라는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 반면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갖는 절대자를 인민에게 구한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절대성과 동화될 수 없는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정치 이전의 자연적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된 군중의 폭력은 절대군주제를 붕괴시켰으나, 동시에 같은 폭력에 의해 혁명 정부 자체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정치에서 절대자가 담당하는 기능을 다음 둘로 본다. 하나는 인간에 의한 법제정을 둘러싼 악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악순환이다. 첫째는 입법의 타당성과 합법성을 외부, 즉 ‘더욱 고차원의 법’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인위적인 법을 언제나 다른 권위에서 구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므로 결국은 자신의 이름으로 둘째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게 된다. 즉 인민의 이름으로이다. 이는 바로 앞에서 본 소렐이나 벤야민 또는 데리다까지의 ‘신화적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아렌트는 혁명에서 절대자는, 이러한 두 가지 악순환을 회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경우 논리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즉 근대초의 절대군주제는 중세 기독교 세계의 신적인 합법성을 차단하고 세속 권력을 수립하고자 하여 생긴 것으로 중세적 권위의 잔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에서는 절대군주제 대신 군중=인민이 절대자로 나타났다. 이는 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인민이 권력의 담당자로 여겨졌으나 법의 원천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대신 법은 풀뿌리 차원의 인민의 의지를 넘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혁명 과정과 함께 갱신되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즉 Freedom의 영역을 새로이 창설하고자 하는 혁명운동의 과정이 법의 원천이고 ‘보다 높은 법’은 언제나 생성되는 것이었다. 아렌트에 의하면 실체화되지 않고 언제나 자기생산을 계속하는 법이 ‘인민에 의한 통치’를 구속하고, ‘정치 이전의 폭력’을 봉쇄하는 메커니즘이 생김에 의해 미국 혁명은 절대자를 둘러싼 세속화된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았다. 즉 절대자가 실체적으로 표상화되지 않았기에 권력이 폭력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렌트가 말하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은 역사를 초월한 절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창설’하는 ‘행위’ 그 자체 속에 있다. 즉 행위가 절대이지 주체가 절대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소렐-벤야민-데리다의 문제는 아렌트에 와서 자신의 창설 행위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미국 혁명에서 해답을 보이게 된다. 아렌트는 ꡔ공화국의 위기ꡕ(1972)에서 미국 헌법의 기본으로 시민적 불복종을 다루었다. 즉 그것은 위법적 폭력행위가 아니라 헌법 옹호의 행위로서 합법화된 것이었다. 여기서 폭력론은 시민적 불복종의 논의로 나아간다.


7. 맺음말

지금까지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의 저항적 폭력론과 그것에 비판적인 아렌트의 폭력론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현실 상황에서 생겨난 논의들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어떤 주장이 반드시 옳고 그르다고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필자의 입장은 아렌트의 주장에 가깝다. 여하튼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한 두 가지를 더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국민형성의 폭력적 구조 문제이다. 근대사에서 국민형성의 폭력이란 ‘국민’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쟁이 비상사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과 관련된다고 하는 점이다. ‘전시동원’이란 신체의 동원으로서 생활의 규율화를 통해 가능하고, 생활 규율로부터 군사 규율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군사 규율은 생활 규율로 다시 내면화된다. 우리는 그러한 폭력적 구조를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에 경험했고, 그러한 구조는 분단에 의한 냉전 의식이 여전히 팽배한 지금도 상당 부분 온존되고 있다.
이러한 생활 구조적인 폭력성은 특히 성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근대 국가가 성을 제도로써 통제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전시성 성폭력인 ‘종군위안부’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부터 소위 ‘훌륭한 국민’을 재생산하기 위한 성과 생식의 통제를 가한 것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현모양처’와 ‘종군위안부’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 기준이 남성에 의해 이용되어 성폭력은 모든 국민에게 작용했다. 이러한 이중 기준은 식민지 전쟁과 6.25 전쟁이 끝난 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식민지의 경우 가해자 일본만이 아니라 피해자 조선-한국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그것은 서양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를 모방하여 발전시킨 것으로서, 서양에서도 식민지에서 더욱 가혹한 형태를 취했다. 그 근본인 경제의 논리와 민족 차별의 논리는 성 차별에도 그대로 관철되었으며, 일본의 그것은 서양식 성 관리 정책에 다름이 아니었고, 그 유습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성에 대한 폭력적 구조는 노동, 사상, 교육 등등 국민형성의 모든 요소 속에 동일하게 유지되어 이미 기성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저항적 폭력, 벤야민이나 데리다 또는 파농이 말하는 신적 폭력 또는 결단적 폭력 등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도 다시금 신화적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 순수성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 대안으로 아렌트가 말하는 폭력과 대치되는, 토론과 행동의 권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원문 : 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40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촛불집회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적어 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단상들이 촛불시위의 정당성이나 필요성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네요.


1.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모일 수 있을까?

- 정치적 의사 결정 방식의 문제 : 형식적 민주주의의 표류가 만들어낸 시민의식의 발로라는 의견도 있지요.

-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해당하는, 가장 보편적인 먹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우리 정치사에서만 봐도 상당히 중요하고 민감한 정치적인 협상(갈등)들이 있었음에도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보편적인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어 온 운동은 드물었던 것 같네요.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었고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의) 생활로 직접 체험되는 것은 아니었죠. 먹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공유하는 생활로 침투하기 때문이겠죠.

-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광우병과 같은 자극적인 언어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농산물이나 소고기의 수입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UR이니, WTO니, GATT니, FTA니 하는 이름들은 모두 먹거리와 관계된 쟁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먹거리의 문제는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로 치환되어 쟁점화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농민분들은 무슨 협상 한 번 하고 나면 쌀이니 솥뚜껑이니 하는 것들을 여의도로 들고 날랐더랬죠. 이번 일 이전에는 이와 유사한 쟁점들이 모두의 먹거리가 아니라 일부 계층의 생존권 문제로 되어 버리곤 했죠. 이번에도 분명 다른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축산농가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미국산 소고기 사태는 농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 버렸죠. 이런 담론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예전에 여중생 장갑차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촛불집회 확산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광장에서 들리던 여리지만 단단한 그 함성이 뉴스나 UCC 등을 통해 계속해서 유포되며 촛불집회가 가진 ‘순수함’의 기호가 되어 버린 것이죠. 여학생들이 하나의 정치적 기호로 작동할 때, 즉 협잡과 음모가 난무하는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순수함의 기호가 정치성을 띄게 될 때, 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감정적 울림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과 고명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촛불집회의 양상들

- 여학생들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의미로, 예를 들어 촛불집회는 순수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레이 초우가 원시적 열정이라고 불렀던 것이 촛불을 든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것 같아요. 초우는 여성, 아이, 자연이라는 장소에서 발견되는 순수함(원시적 열정이라는 허구적 감상)이 감성을 자극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죠. 유모차 부대(아이)와 여학생(아이+여성)들 그리고 먹거리(자연). 그 순수한 이미지가 전형적인 여성상이나 오리엔탈리즘(혹은 내부 식민지화)을 재생산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거죠. 그리고 의미가 고정된 이미지는 다른 의미가 유희하며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소통을 차단하게 됩니다. 아마도 가부장제에서 나타나는 아이나 여성과 관련된 강한 터부가 바로 이 소통의 불가능성에서 나오는듯 합니다. 가부장/아이 혹은 여성의 단절된 소통구조가 정부/시민의 단절된 소통구조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가 만약 여학생들의 이미지를 통해 그 정체성의 일부를 획득하고 있다면 그것에는 가부장제의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촛불집회는 과연 순수한가라는 문제도 생각해 볼만한 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뭐 당연히 2MB가 말하는 배후세력이니 용공세력이니 하는 것을 말하는건 아니겠죠. 순수함이라는 것은 어떤 무목적성, 무의도성을 일컫는 것이거나 혹은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이면의 의도가 없는, 오염되지 않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까요. 이런 식의 순수함은 극단적인 쇼비니즘에나 어울립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는 파쇼가 아닐까요? 촛불집회가 의미 있는 것은 순수함이 아니라 그 많은 오염, 즉 불순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고결함이나 순수함을 요구하지 않기에 모두가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열심히 운동하시던 분들이 요구하던 그 숨막히는 고결함이 광장에는 없다는 것이 촛불집회의 불순한 순수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군복 입은 참여자들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군대는 명분상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집회에서 평화 시위를 유도하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진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군인들일 것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멋지게 그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집회에서 그들을 보니 든든하고 고맙고 그러더군요. 문제는 예비군들이 군복을 입고 집회에 등장한 시점이 경찰들의 집회 탄압이 거세지고,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군복 입은 참여자들은 폭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폭력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대들이 겪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결찰 폭력에 맞서서 시위대를 지킵니다. 그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에서 폭력의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경계란 언제나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물들기 쉬운 곳이죠. 군복 입은 이들은 집회 시작 전부터 집회 장소의 한 구석에 모여 앉아 있다가 거리행진이 시작되면 제일 앞에 나와 평화 시위를 이끕니다. 일종의 사수대와 같은 역할이죠. 집회에서 사수대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인 대항폭력(젓가락이나 꽃병)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군복 입은 이들이 잠재적인 폭력을 준비 중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들이 위치하는 장소(경계)는 잠재적인 폭력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 속에서 그들의 역할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군대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존재 자체를 반대합니다. 저는 군복 입은 참여자들이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그들 각자가 가진 개인적인 비폭력 의사와 무관하게 그들이 입은 옷과 그들이 위치한 장소에는 잠재적인 폭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군복이 가진 의도치 않은 효과. 인터넷 뉴스에 나온 군복 입은 이들의 사진 및에 이런 댓글들이 있었죠. “자랑스런 민중의 지킴이 군복부대를 위해 미니스커트 부대를 꾸리자”, “오빠, 저 이쁘게 하고 나갈께요.”… 물론 소수의 댓글이지만 그 댓글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네요.

- 인터넷 생중계라는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미디어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등장했다기 보다는 대중화 되었다거나 새로운 진지가 구축되었다고 말해야 하나...

이번에는 특히 진보신당 컬러TV, 아프리카TV,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라디오21 등이 대대적으로 촛불집회 인터넷 생중계를 했죠. 게다가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자체적으로 웹 방송을 통해 실시간 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참가하지 못한 이들은 생중계를 보며 토론 게시판이나 자신의 블로그, 경찰청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조중동문 같은 언론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사이버 시위를 했더랬죠. 아마 집회 생중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곳은 아프리카 TV였을 겁니다. 소규모 웹방송이 이번에 2500여개나 개설되었었다고 하네요.

관련글 => http://blog.jinbo.net/sparta/?pid=88

근데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프리카 TV 운영자측에서 불법집회 중계하지 말라는 메일이 웹방송을 하는 VJ들에게 왔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http://blog.daum.net/lalala-777/4333164 - 이 기사는 5월 25일 newsnviews에서 김혜영 기자가 쓴 기사인데 왠일인지 기사가 삭제되어 있는 상태네요. 일단 다른 블로그에 스크랩된 기사를 링크 시켰어요.

위 기사에 따르면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한 VJ는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 TV 운영측으로부터 시위 현장을 중계하던 많은 VJ들에게 저작권, 불법집회 선동과 관련된 방송을 중계할 경우 아이디를 정지시키고, 베스트 VJ 자격을 박탈시키는 등의 불이익을 줄 것임을 알려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TV 측에서는 이번 생중계를 통해 엄청난 사이트 홍보가 됐을 텐데 이런 메일을 보냈다네요. 혹시 정부측의 압력이 있었던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거 같네요. 현재 다음의 아고라에서는 인터넷 생중계를 막지 말라는 서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696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