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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2
    촛불집회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와라

촛불집회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적어 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단상들이 촛불시위의 정당성이나 필요성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네요.


1.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모일 수 있을까?

- 정치적 의사 결정 방식의 문제 : 형식적 민주주의의 표류가 만들어낸 시민의식의 발로라는 의견도 있지요.

-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해당하는, 가장 보편적인 먹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우리 정치사에서만 봐도 상당히 중요하고 민감한 정치적인 협상(갈등)들이 있었음에도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보편적인 지지를 받으며 확산되어 온 운동은 드물었던 것 같네요.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었고 (모두가 공유하는 방식의) 생활로 직접 체험되는 것은 아니었죠. 먹거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공유하는 생활로 침투하기 때문이겠죠.

-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광우병과 같은 자극적인 언어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농산물이나 소고기의 수입에 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UR이니, WTO니, GATT니, FTA니 하는 이름들은 모두 먹거리와 관계된 쟁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먹거리의 문제는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로 치환되어 쟁점화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농민분들은 무슨 협상 한 번 하고 나면 쌀이니 솥뚜껑이니 하는 것들을 여의도로 들고 날랐더랬죠. 이번 일 이전에는 이와 유사한 쟁점들이 모두의 먹거리가 아니라 일부 계층의 생존권 문제로 되어 버리곤 했죠. 이번에도 분명 다른 협상 때와 마찬가지로 축산농가의 생존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에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미국산 소고기 사태는 농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 버렸죠. 이런 담론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예전에 여중생 장갑차 사건 때처럼 이번에도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촛불집회 확산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광장에서 들리던 여리지만 단단한 그 함성이 뉴스나 UCC 등을 통해 계속해서 유포되며 촛불집회가 가진 ‘순수함’의 기호가 되어 버린 것이죠. 여학생들이 하나의 정치적 기호로 작동할 때, 즉 협잡과 음모가 난무하는 정치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순수함의 기호가 정치성을 띄게 될 때, 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감정적 울림이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과 고명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촛불집회의 양상들

- 여학생들의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는 좋은 의미로, 예를 들어 촛불집회는 순수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레이 초우가 원시적 열정이라고 불렀던 것이 촛불을 든 여학생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것 같아요. 초우는 여성, 아이, 자연이라는 장소에서 발견되는 순수함(원시적 열정이라는 허구적 감상)이 감성을 자극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죠. 유모차 부대(아이)와 여학생(아이+여성)들 그리고 먹거리(자연). 그 순수한 이미지가 전형적인 여성상이나 오리엔탈리즘(혹은 내부 식민지화)을 재생산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거죠. 그리고 의미가 고정된 이미지는 다른 의미가 유희하며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소통을 차단하게 됩니다. 아마도 가부장제에서 나타나는 아이나 여성과 관련된 강한 터부가 바로 이 소통의 불가능성에서 나오는듯 합니다. 가부장/아이 혹은 여성의 단절된 소통구조가 정부/시민의 단절된 소통구조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요?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촛불집회가 만약 여학생들의 이미지를 통해 그 정체성의 일부를 획득하고 있다면 그것에는 가부장제의 혐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촛불집회는 과연 순수한가라는 문제도 생각해 볼만한 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뭐 당연히 2MB가 말하는 배후세력이니 용공세력이니 하는 것을 말하는건 아니겠죠. 순수함이라는 것은 어떤 무목적성, 무의도성을 일컫는 것이거나 혹은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 이면의 의도가 없는, 오염되지 않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까요. 이런 식의 순수함은 극단적인 쇼비니즘에나 어울립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는 파쇼가 아닐까요? 촛불집회가 의미 있는 것은 순수함이 아니라 그 많은 오염, 즉 불순에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고결함이나 순수함을 요구하지 않기에 모두가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열심히 운동하시던 분들이 요구하던 그 숨막히는 고결함이 광장에는 없다는 것이 촛불집회의 불순한 순수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군복 입은 참여자들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군대는 명분상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군복을 입은 이들은 집회에서 평화 시위를 유도하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진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군인들일 것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멋지게 그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집회에서 그들을 보니 든든하고 고맙고 그러더군요. 문제는 예비군들이 군복을 입고 집회에 등장한 시점이 경찰들의 집회 탄압이 거세지고,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던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군복 입은 참여자들은 폭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폭력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위대들이 겪해지지 않도록 방지하고, 결찰 폭력에 맞서서 시위대를 지킵니다. 그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경계에서 폭력의 흐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경계란 언제나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물들기 쉬운 곳이죠. 군복 입은 이들은 집회 시작 전부터 집회 장소의 한 구석에 모여 앉아 있다가 거리행진이 시작되면 제일 앞에 나와 평화 시위를 이끕니다. 일종의 사수대와 같은 역할이죠. 집회에서 사수대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잠재적인 대항폭력(젓가락이나 꽃병)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군복 입은 이들이 잠재적인 폭력을 준비 중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그들이 위치하는 장소(경계)는 잠재적인 폭력이 마련되어 있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 속에서 그들의 역할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군대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존재 자체를 반대합니다. 저는 군복 입은 참여자들이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그들 각자가 가진 개인적인 비폭력 의사와 무관하게 그들이 입은 옷과 그들이 위치한 장소에는 잠재적인 폭력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군복이 가진 의도치 않은 효과. 인터넷 뉴스에 나온 군복 입은 이들의 사진 및에 이런 댓글들이 있었죠. “자랑스런 민중의 지킴이 군복부대를 위해 미니스커트 부대를 꾸리자”, “오빠, 저 이쁘게 하고 나갈께요.”… 물론 소수의 댓글이지만 그 댓글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네요.

- 인터넷 생중계라는 새로운 방식의 디지털 미디어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등장했다기 보다는 대중화 되었다거나 새로운 진지가 구축되었다고 말해야 하나...

이번에는 특히 진보신당 컬러TV, 아프리카TV,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라디오21 등이 대대적으로 촛불집회 인터넷 생중계를 했죠. 게다가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자체적으로 웹 방송을 통해 실시간 중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참가하지 못한 이들은 생중계를 보며 토론 게시판이나 자신의 블로그, 경찰청이나 청와대 홈페이지, 조중동문 같은 언론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사이버 시위를 했더랬죠. 아마 집회 생중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곳은 아프리카 TV였을 겁니다. 소규모 웹방송이 이번에 2500여개나 개설되었었다고 하네요.

관련글 => http://blog.jinbo.net/sparta/?pid=88

근데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프리카 TV 운영자측에서 불법집회 중계하지 말라는 메일이 웹방송을 하는 VJ들에게 왔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http://blog.daum.net/lalala-777/4333164 - 이 기사는 5월 25일 newsnviews에서 김혜영 기자가 쓴 기사인데 왠일인지 기사가 삭제되어 있는 상태네요. 일단 다른 블로그에 스크랩된 기사를 링크 시켰어요.

위 기사에 따르면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한 VJ는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 TV 운영측으로부터 시위 현장을 중계하던 많은 VJ들에게 저작권, 불법집회 선동과 관련된 방송을 중계할 경우 아이디를 정지시키고, 베스트 VJ 자격을 박탈시키는 등의 불이익을 줄 것임을 알려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TV 측에서는 이번 생중계를 통해 엄청난 사이트 홍보가 됐을 텐데 이런 메일을 보냈다네요. 혹시 정부측의 압력이 있었던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거 같네요. 현재 다음의 아고라에서는 인터넷 생중계를 막지 말라는 서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6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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