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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2
    나는 표절자
    와라
  2. 2010/04/09
    뒤늦게 다시, ‘파랑새’와 ‘외톨이야’ : 표절과 저작권 침해
    와라

나는 표절자

이 글은 사과문이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고 최소한의 신뢰를 보내온 독자들이 '있다면', 그분들께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리 대단한 글쟁이는 아니기에 이런 글까지 써야할까도 싶지만, 그래도 공부하는 학생의 양심상, 그리고 몇몇 매체에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제대로 반성해야 겠기에 글을 남긴다.

뭐냐하면...

표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표절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의 글을 인용 표시 없이 썻다.

그것이 실수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중요치 않다. 내가 경솔했던 것이고, 무책임했던 것이다.

한 번이라도 내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는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린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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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뜬금 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할거 같다. 

그 분들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기억하면서 곱씹어야 하는 일이기에 어딘가에 뭍혀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 두려 한다.

얼마전, 그러니까 정확히 2010년 10월 26일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대학원 신문의 독자라는 분이었다.(현재 나는 중대 대학원 신문 서평란에 한 학기 정기 기고를 청탁받고 쓰고 있는 중이다)

그 분은 나의 인용표시 없는 인용, 즉 표절을 문제삼고 있었다.

다음은 10월 26일 받은 편지의 전문이다.(메일을 보낸 분과 실명이 거론된 다른 분의 이름을 제외한 전문이다).

허민호님, 안녕하세요.
<대학원신문> 독자의 한 사람인 000이라고 합니다.
이메일 작성 의도는 첨부된 사진을 통해 파악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상식이 있는 "대학원생"이라면 기고자의 표절 전력을 지적, 제보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줄 알았는데 현직 편집위원이 표절 작가의 기고를 중단하는 일도 없고 표절 여부에 독자에게 사과하는 일도 단연코 없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문제 당사자가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직접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지요. ^^
다 른 사람도 아니고 000 선생님 지도 하에, 다른 주제도 아니고 지적재산권에 관한 논문을 쓰고 이른바 진보 운동을 하시는 대학원생의 양심과 이름 있는 대학교의 대학원신문이 표절 시비에 관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다음 호를 내는 모습이 감탄스럽습니다. ^^
상황 파악이 안 되시는 경우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가운데 '홀로코스트' 챕터의 재독을 권합니다. ^^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게 다섯 군데인데 두 문장만 따옴표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많이 신기하네요.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시길 바라며,
독자 000 드림.
 
 
이 글에는 2006년 석사 1차 때, 대학원 신문사에서 일하며 쓴 기사 하나가 캡쳐되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연히 나의 잘못이고 해서 반성 겸 해서 그 분께 답장을 보냈다.
다음은 당일 저녁 내가 쓴 답장의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허민호입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지적하신데로, 제 경솔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좀 더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원신문에 확인해보니, 나름 논의가 있었고, 기고를 중단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선생님께서도 한사람의 입을 가로막기 위해 이런 지적을 했다기보다는, 한 사람의 연구자이면서 학생의 입장에서 좀 더 책임감 있게 글을 써야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허민호 드림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11월 1일 다시 그 독자분께 답장이 왔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글을 쓴 의도를 곡해 없이 파악하시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해명해 주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허민호님께서는 기고 중단 건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지 공식적으로 표절 건을 해명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허민호님을 어떠한 사적 감정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표절 문제 자체의 비윤리성을 인정하더라도 표절을 하게 된 과정을 고려하면 결국 개인이 저지른 하나의 실수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당장 허민호 기고자의 기고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으며, 신문을 만드는 편집위원들의 논의 결과를 경시하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중앙대학교의 <대학원신문>의 독자적 권한은 물론 내부 필자와 외부 기고자가 글쓸 권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해서, 기고를 유지하고 중단할지의 여부는 표절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독자들이 접하고 판단한 뒤에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절차상으로 편집위원들이 외부 필자의 기고 여부를 결정할 편집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일과 작은 일을 비유하는 일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가 어떤 사안을 비준한다면 법률의 절차상으로는 하자가 없으나 결코 의원들이 타당한 절차를 밟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중앙대학교에 소속된 학생이 아닙니다. 따라서 해당 언론이 학내에서 얼마나 읽히는지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웹상으로도 얼마나 많은 독자 피드백이 진행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많지 않은 덧글과, 학생 언론의 영향력이 강력하지만은 않다는 상식에 비추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뿐입니다.
표절 건에 대한 허민호 님의 해명이 소수일지 모를 독자들에겐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의 기사가 2006년에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에서 기억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로써,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의식하든 관계 없이 학문 세계에서 용인하기 힘든 과거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는 허민호님의 글을 볼 수 있다면 저로서는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이런 바람을 전하면서 두서 없는 글을 마칩니다.
안녕히 계세요.
 
000 드림.

 

그러니까 요는 개인의 반성으로는 충분치 않고, 공적인 반성과 사과를 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원 신문의 지면에 내 사정을 봐줄만한 공간은 없어 보인다.

현재 편집위원들의 판단과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대학원신문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글이 대학원 신문에 실린 글이긴 하지만, 그 글로 인해 현재의 대학원 신문을 그 책임의 주체로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원 신문은 한겨레 신문이나 경향신문 혹은 동아일보 같이 하나의 지속적인 입장을 가진 신문이 아니다. 그것은 매 학기 새로운 편집위원을 선출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새로운 편집위원의 손에서 매번 새롭게 만들어지는 종류의 신문이다. 때문에 내 개인의 잘못을 대학원 신문이라는 공간을 통해 반성하지는 못할듯 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공간이다.

문제가 된 그 때의 글은 여기 올라와 있지는 않지 않고, 전부는 아니지만, 외부에 기고한 글의 대부분이 이 곳에 모여 있다. 이 공간이 내 글을 읽는 분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 공간에서 반성과 사과를 하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공개적인 방식의 사과와 반성인듯하다.

유명한 글쟁이도, 정치인도 아니기에 내 이런 이야기를 신경쓰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이 곳에서 내 글을 읽는 분들께는)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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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다시, ‘파랑새’와 ‘외톨이야’ : 표절과 저작권 침해


 

와이낫의 ‘파랑새’와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사이의 표절 논쟁이 한창 지난 지금, 다시, 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당시 격한 논쟁이 오고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이제 사태는 법정으로 옮겨졌다.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대중적 관심이 사그라든 시점에, 정보공유연대의 주최로 4월 8일에 표절을 주제로 한 조그만 세미나(이달의 토크: 창작과 표절 그 미묘한 지점)가 진행되었다. 한물 지나간 주제로 뒷북이나 치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리는 치열했던 논쟁을 차분히 되짚어 보며, 표절문제에서 핵심적이지만 정작 논쟁 속에서는 누락되었었던 어떤 것들을 드러내고 이야기 하는 자리였다.

 

지난달 와이낫은 ‘외톨이야’의 작곡가를 상대로 저작권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는 소송을 걸었다. 소송을 제기하며 와이낫의 리더 주몽은 소송이 최선의 수단은 아니었지만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말한바 있다. 이달의 토크에서 그는 표절을 방치하는, 혹은 어떤 측면에서는 구조적으로 그것을 조장하는 음악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제제기의 방식에서 소송이 최선의 수단이 아니었다고 말할 때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는 이미 표절과 저작권 침해가 완전히 일치 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음악계의 구조적 병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음악계에 여러 측면에서 경종을 울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표절을 막기 위한 해결책에 대한 논의에서는 쉽게 저작권 침해 방지 정책으로 귀결되곤 했다. 과연 저작권 침해 방지가 표절을 막는 최선의 길이고, 유일한 길일까? 사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저작권이 저작권자의 권리를 강화 시키는 방식으로 개정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번 지적되어 왔다. 거기에는 이용자의 향유권은 거의 고려되어 있지 않다. 저작권의 유용성을 옹호하는 이들이 저작권법 1조를 거론하며 그것이 문화의 향상 발전(지난번 개정에서 문화와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으로 문구가 수정되었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여도, 그 세부 내용에서는 그 목적을 부정할만한 수 많은 악소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대중음악계의 유명작곡가들의 표절 관행에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소송이 저작권 강화로 환원된다면, 역설적으로 그 결과는 유명작곡가들(만)의 이익을 더 확실히 보장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표절을 저작권 침해로 동일시 한다거나, 표절 방지를 저작권 강화로 환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사실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개념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이나 공공영역(public domain)에 있는 표현물, 그리고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 저작권 침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표절에는 그런 예외가 전혀 없다. 표절에는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개념이 전혀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의 표현물이 타인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절은 단지 타인의 창작물을 흉내내거나 도용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타인의 창작물이 처음부터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때문에 표절에서는 타인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다.

 

또한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동의하에 이용된다거나 이용 후에 문제가 발생할 때 저작권자의 용인이 있다면 그것의 이용이 법적으로 정당화 되는 반면, 표절에는 원 창작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표절은 타인의 창작물에 있는 오리지널리티 자체를 부정하는 한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표절자는 원 창작물을 도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 창작자는 창작물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말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는 침묵해야 하며,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말할 (저항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창작은 원래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은 모방과 참조의 계기가 새겨져 있다. 모방과 참조를 통한 훈련과 그것들의 축적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조금 모방하면 창작이 되고, 많이 모방하면 표절이 되는 것처럼, 즉 창조와 표절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기 때문에, 창작자를 함부로 표절자로 매도해서는 안되고, 설사 그가 표절자로 판명이 난다고 해도 그를 쉽게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외톨이야’의 작곡가중 한명인 김도훈은 이러한 논리에 근거해서 자신이 표절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제기한 주장 중 하나는 와이낫의 ‘파랑새’가 박상민이나 컨츄리꼬꼬의 노래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외톨이야’가 표절이면 ‘파랑새’도 표절이며, ‘파랑새’가 표절이 아니라면 ‘외톨이야’도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모방이나 유사한 음악적 요소들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차용되거나 이용되었다고 해서 표절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표절은 단순한 모방이나 저작물 침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표절에는 타인에 대한 부정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권력이 각인되어 있다. 표절 문제에서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또 하나! 표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작권법이 가진 문제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저작권법은 여전히 문화의 향상 발전이나 이용자의 향유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에 반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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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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