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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해서 요즘 부쩍 자주 만나는 노동자들이 있다. 화물 운반용 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인데 이들의 주된 관심사, 아니 불만은 월급봉투다. 이분들중 한분이 엄청난 비밀문서를 가지고 왔다. 회사의 규칙에 의하면 본인 이외엔 절대로 공개를 해서도 안되고, 말을 해서도 안되는 극비의 비밀문서다. 뭐냐하면 그 노동자의 천오백이십만원짜리 '연봉계약서'다.

 

무슨 프로야구 선수도 아닌데, 그냥 회사에서 짜주는 순서대로 운전하는게 전부인데 무슨 능력별 차이가 그리 크게 있다고 연봉제라니! 또 다른 노동자도 그 극비의 연봉계약서를 공개했는데 똑같이 천오백이십만원이다.

 

이 연봉계약서에는  가장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쫘악 쳐가며 강조한 것이 있는데, '본인이외에 타인에게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이다.

 

참나, 별개다 기밀이다.

 

그날, 천기누설을 한 노동자 열댓명과 술자리겸 해서 자리를 했는데, 이렇게 다들 모인 것이 처음이란다. 그 자리에서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배신하지 말자'다. 무슨 독립운동 결사조직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배신하지 말자'고 왜이리 비장한지 모를일이다. 하긴, 어떤 노동자가 노동조합 간부를 하기로 결단을 내리던 날 돌아가신 부친의 묘를 찾아가 절을 하고 왔다는 비장한 애기가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에 대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조성하는 우리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노동자들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안주거리로 내놓았다. '여기 두명의 죄수가 있다. 검사는 이 두명의 죄수에 대한 충분한 물증이 없다. 그래서, 두명다 자백을 하지 않고 부인하면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어줄 생각이다.  그리고 한명만 자백을 하면 그 죄수는 불구속으로 하고, 자백을 하지 않은 죄수는 5년의 형량을 구형할 생각이다. 둘다 자백을 하면, 3년을 구형할 생각이다. 그리고, 둘을 따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각각의 죄수에게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여기서부터 죄수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술자리에 있는 노동자 아저씨들한테 물었다.

 

이 죄수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가장 유리할까요! 아저씨들이 대답한다. '당연히 주딩이 꽉 다물어야지'. 하니 다른 아저씨가 '어떻게 믿어! 안 불은 놈만 쪽박차지'. 모두다 웃는다.

 

아저씨들한테 묻는다.

 

 '다들 불안하시죠. 괜시리 나만 손해보는 거 아닌가하고 다른 동료들이 배신하면 어떻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거죠.'

 

아저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왕에 천기누설까지 했으니, 다른 동료들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말고 내가 변치 않으면 다른 사람도 변치않는다는 노동자의 의리를 보여주자고 했다. 아저씨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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