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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여지없이 올해도 노동생산성보다 임금상승률이 높다하는 어느 단체의 발표가 있었고 이것은 여지없이 8시 뉴스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본능적으로 올 ‘평균임금 인상률’도 찾아보고 ‘물가상승률’도 찾아보고 일년에 두 번쯤 찾아볼 통계청의 홈페이지에도 접속해본다.

 

그러다가 ‘월척’을 잡은적도 있다(내딴에 월척이지만!). 아니 세상에 2005년도를 비교해보니 ‘근로자’(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란 말을 무조건 쓴다) 1년 총소득보다 민간사유지 땅값상승액의 총액이 더 크다는 노무현정부의 비밀도 우연스럽게 알아내는 월척말이다.  통계청 덕분에!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정부를 고맙게 알기는커녕 노무현 정부의 ‘싸가지 없음’에 고개를 떨었지만 단순히 이 정부가 우리 노동자와 서민의 정부가 아니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피부로 알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는 ‘감사’고 우리 노동계에 항상 덧씨워지는 ‘이기주의’는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다. 노동자에 더 많은 임금이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배정의' 혹은 '평등'의 척도라고 '절대신앙'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임금상승률보다 너 낮다 하는 노동생산생 수치는 적대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수치조작으로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내 주관, 아니 좀더 과장하고 나를 좀더 포장한다면 '내철학'으로 산다 했거늘 이렇게 수치에 대해서 민감하고 나름대로 객관적일지도 모르는 수치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방어본능이 작용했다. 그렇게 수치에 얽매어 살았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마이너스 성장도 성장이다. 왜 성장률에 집착하냐!' 가정친화적 삶도 그렇고 자연친화적 삶도 그렇고, 그런 지향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 4시간만 일해야 한댄다는 말을 들었다.

 

덜 먹고, 덜 벌고 하는 대신에 더 작게 소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삶의 철학'으로 대 전환하자는 말씀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웅다웅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재(지구)와 환경, 그리고 경쟁구도는 한계가 있고 그속에서 삶의 패러다임(성장 지상주의)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삶의 질의 개선도 없다는 거다.

 

머리가 정말로 '띵'했다. 그리고 이삼일 후, 어떤 지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고민을 나누는 분인데 그분이 살아가고 싶은 삶을 적시한 것이 너무나 강렬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다는 불혹을 지난 나이의 그분은 ‘필요한 만큼만 벌고, 가장 적게 소비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러다 머리가 두 번 ‘띵’하는 일이다. 이런 애기를 사무실 동료에 애기하다 보니 알게된 일이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내가 아는 상근자와 가족을 이루어 사는 이 사람은 삶의 목표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란다. 그래서 소득 중에서 내게 꼭 필요한 것만 빼곤 나머지 소득은 나눈단다.

 

아! 오늘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이자 세상이 어떤 사람에 의해 따뜻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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