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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헌혈

검붉은 피가 흘러 시험지에 닿아 문질러지면

내 혈액형은 B형임이 다시 확인된다.

 

태어난 후 어른이 되어서도 내몸에 바뀌지 않은 몇가지 안되지만

그중 하나가 혈액형이겠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누어 준 설문지를 채운다.

이것 저것 내 피를 줄 만한 사람인지 요식적으로 묻는 질문들

그리고 간호사는 이것을 재차 확인한다.

 

어디어디 가보셨나요? 잠은 푹 잤나요? 이러저런 것은 안 해봤죠? 아픈 곳, 수술은?

차안에 줄을 선 이들을 의식해서인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지 눈 한번 맞추지 않고 중얼대듯 물어댄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몇번을 답해주고서 침대에 누워 5분 동안..

난 그 짧은 틈을 쪼개서 이러저런 생각을 한다.

 

맨 처음 이 것은 누가 생각해낸 걸까?

그때도 혈액형을 구분 했을까?

내 꺼는 또 누구에게 갈까?

혈액검사 후 안좋은 결과라도 날아옴 어쩌지?

 

처음엔 잡다한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불안함으로 돌아올때 쯤

주사바늘은 내 살갗밖으로 나가고

음료수 하나와 과자 한봉지.. 그리고 영화할인권 2장을 손에쥐고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2시간 동안은 피지 말라던 문구가 걸렸지만

청개구리처럼 담배를 빼어문다.

어지럽다. 걸음도 느려지고..

내 몸의 피가 빠져나간 그 자리에 차고드는 니코틴

검붉었다 더 뿌여질 것만 같은 내 핏줄을 타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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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며 보내기

예상대로 조금씩 엉망이 되가고 있다.

밤새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이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것인양

꿈 속에서는 미로를 헤메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는 설겆이를 서로 하겠다고 경쟁을 하다

장모님한테 밀렸다.

묵은 때나 털고 오라고 등을 떠밀려 나섰지만

빨간색 스쿠터의 모터 벨트가 끊어지고

도시 한복판에서 난 땀을 흠씬 흘리고

오토바이샵을 찾아 헤메야 했다.

 

핸드폰 문자는 넘쳐난다.

이름도 저장되지 않은 이들이 보내는 문자들

스팸성 광고글들

그리고 너무 공식적이고 상투적인 문자들이

엄지손가락 만한 창안에 가득찬다.

몇개는 더러 삭제하고 몇개는 누구일까 궁금해하지만 그것도 제풀에 지친다.

 

이럴 때 누구든 그립다.

 

고질병 아니 불치병

어쩌면 내 삶의 전부를 키워왔던 그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게으른 만큼 나는 참는 방법을 잊어왔다.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모르고

시끄러운 도시 한켠에 쥐며느리마냥 웅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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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햇살 맞기

햇볕이 내리자

사무실 사람들 얼굴에도 웃음이 걸린다

 

한결 풀린 날씨만큼 두텁게 껴입고 온 겨울옷을 의자에 걸어놓고

앞 마당에 옹기종기 대화꽃을 피운다.

 

항상 짧은 점심 시간도 오늘은 길게 늘어졌다.

이런 날은 서로 상처주는 말도 감춘다.

누구는 한쪽편 양지바른 곳에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길 앞 공사장에도 겨우내 칙칙했던 장막이 걷히고

주변에 새 흙은 깔며 화단을 만들고 있다.

저기엔 무슨 꽃이 심어질까. 앞으로 어떤 색깔로 채워질까.

기분 좋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내일 모두 명절길을 떠나지만

마음은 이미 와버린 봄바람 타고 두웅실

올해는 주말이 껴서 더 짧아졌다고 투덜댔던, 아쉬움 모두 떨구고 두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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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저녁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면서

도시의 밤이 성큼 다가왔다.

사람들은 제각기 분주하게 따로 또 같이 서성댄다

 

오늘 하루 매상이 좋지 않은지

길가 노점상의 표정은 보도블럭에 한 번 꽂혀다

발길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향한다.

 

희고 노란 전등으로 밝혀 놓은 매장너머로

고운 글씨로 빼곡히 적힌 할인가격은

명절 앞둔 이들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신호등 앞에 늘어서 녹색불을 기다리면 선 이들은

채 색이 바뀌기도 전에 총총 걸음을 더한다.

두껍게 챙겨입은 옷사이로도 겨울 도시의 차운 바람 새어들고

한번 움찔하곤 깃을 여미고 더 빠른 걸음으로 골목골목으로 흩어진다

 

늦은 퇴근길 아직 남은 러시아워에 걸려 늘어선 차들의

빨간 꼬리가 길게 뻗어 늘어선다.

 

 

난 무심코 구경하는 사람이 되어 멈추어 섰다.

이 곳에서 만났던 지난 시절 반가웠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한여름 축축했던 열기를 겪을 때 바랬던 계절에 대해 회상한다

 

커플들은 각자의 거리를 두고 걷는다.

누구는 자석마냥 한몸이 되어 걷고

서로의 시선을 부딛칠 새도 없이 웃음머금고 앞만보고 간다.

또 누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잘되며 분주히 서로를 쓰담듬으며 걸어간다.

 

한참 동안 추위도 잊고 섰던 도시 한복판

또 이렇게 하루는 분주하게 흘러서

내 발 밑으로 모이더니 까만 그림자가 되었다.

우두커니 그 속으로 걸어들어가면 또 하나의 쳇바퀴 다 돌꺼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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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간 아내... 그리고 나

아내는 인도로 떠났다

달마는 동쪽으로 갔건만

아내와 그의 동료들은 서쪽으로 갔다

 

 

한달여 동안 처음 보는 세상에 있다 오겠다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와 함께 남겨졌다

 

잠시 스치는 외로움

외로움은 하루 종일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나 치명적이다

문뜩 목뒷덜미 한기를 느끼듯

싸늘하게 지나쳐 간게 있다면 그게 외로움이다

 

살아오며 혼자 남겨진 것을 견뎌내지 못해

늘 제 짝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려 온 게 생존의 방정식이지만..

한달 또는 두달 여의 시간을 잘게 쪼개서

방정식 함수의 X 값을 구하는건 너무 어려운 과제..

 

결국...

난 결코 의연하지 못하고 그리 인내심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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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웅 시집 [물으면서 전진한다] 평론

 

시집 평: 조성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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